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악을 선으로 전환하시는 하나님(사순절두번째주일, 2023년3월5일 )

하늘기차 | 2023.03.05 13:47 | 조회 355

               악을 선으로 전환하시는 하나님

사순절두번째주일                                                                                                                  막12:1-12

   지난 주 수요일에 에스더서를 공부했습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왕 원년에 모든 민족들을 자기 고향으로 돌려 보내며 각 민족의 종교, 문화를 인정하고 후원하는 문화정책을 펼침에따라 이스라엘도 3차에 걸쳐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는데, 이미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면서 정착하여 삶의 기반을 다 잡고,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들이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2, 3백만의 이스라엘 포로들 중에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은 149,897, 21,754, 3차에 거의 느헤미야 단독으로 단지 5만 여명정도의 소수의 사람들만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는데, 이들을 통해 이스라엘은 숱한 난관을 극복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축하였고, 율법사인 에스라 제사장을 통해 율법과 절기, 예배를 회복합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사6:13에서 말씀한 남은자들입니다. 한 편 페르시아에는 여전히 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디아스포라로 남아있었는데, 하나님은 이들도 모른체 하지 않으시고 돌보아 주셨습니다.

   에스더서에는 인간이 꾸미는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페르시아의 왕후가 와스디에서 에스더로 바뀌는 섭리, 하만의 학살 음모가 모르드개의 승리로 바뀌고, 유대인을 멸절하라는 하만의 칙서가 원수들을 처형하는 칙서로 바뀌는 반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인간의 생각을 뛰어 넘으십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의 계략을 알고 궁으로 들어가 왕후 에스더에게, 사실을 알리면서 4:14에서 이런 때에 왕후께서 입을 다물고 계시면, 유다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라도 도움을 얻어서, 마침내는 구원을 받고 살아날 것이지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부름 받은 백성은 무엇을 하며 어느 자리에 있든지 아!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만사 제쳐놓고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존재, 다른 도구를 통해 꼭 필요한 일을 이루시는데, 그 때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여러 이유로 외면해 버린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잘 가꾸어 놓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멀리 떠납니다. 추수 때기 되어 세를 받으려 종을 보냈는데, 종을 잡아서 때리고 빈 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또 다른 종들을 보냈는데 더러는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단 한 사람 사랑하는 아들을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하며 마지막으로 보내는데, 농부들은 오히려 상속자라고 하며 죽여 밖에 내다 버립니다. 예수님이 묻습니다.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주인은 와서 농부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라 하며 집을 짓는 사람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 머릿돌이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비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게 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사시고, 완성하도록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길은 계속 세상 나라의 길과 엇갈리며 부딪힙니다. 포도원 비유를 듣자 바리새인들과 성전지기들은 자기들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예수를 잡으려 합니다. 분위기가 매우 험악해 집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신지 일주일 만에 이른 새벽에 체포당하시고, 오전에 십자가형 판결 받고 그리고는 불법적으로 당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오후 3, 6시간 만에 운명하십니다.

   저는 이 십자가의 죽음이 아버지의 뜻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아버지의 뜻이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이라고 하며 쉽게 아버지의 뜻 뒤에 숨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의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님은 말로만 하나님의 뜻을 외치는 종교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부모님에게 내게 받으실 것이 고르반이 되었습니다한다는 것입니다. 고르반이란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이라는 뜻입니다. “고르반했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드릴 것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유입니다. 세월호, 이태원 참사 등과 같은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도 모두 사탄에게 사로잡힌 인간이 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악한 계획을 인류 구원의 역사로 전환시키셨습니다. 사탄은 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습니다. 승리할 것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죽음은 사탄의 계획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말씀 순종의 침묵으로 사53:7의 말씀처럼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이미 예언된 죽음을 죽으신 것입니다. 이 죽음이 그렇게 예언의 말씀을 온전히 이룰 줄 사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죽음의 권세인 사탄은 세상 권력을 도구로 삼아 십자가의 죽음을 계획했지만, 그것은 형식적이고, 사실은 세상 권력 앞에서 아무런 말 없이 침묵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면 수동적인 침묵이지만, 오직 하나님 아버지에대한 온 인류와 역사와 우주와 자연의 모든 일체를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에대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절대 순종의, 능동적인 침묵이요, 죽음이었습니다. 이 죽음을 통해 예수가 죽은 것이 아니라, 사탄이 죽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자기는 살았지만, 죽었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죽었지만 산 것입니다. 사탄은 자기 일, 즉 죽음의 일을 하고, 예수님은 생명의 일, 즉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말씀 순종이 사는 길입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이 후 죽음의 권세는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사탄의 죽음을 말씀 순종으로 죽음으로써, 그러니까 사탄의 계획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계획에 순종함으로 더 이상 죽음의 권세인 사탄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백성들을 어두움으로, 무질서로, 공허함으로 무력화시킬 수 없습니다.

   이사야는 사55:8,9에서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다." ... "하늘이 땅보다 높듯이, 나의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고 하시며 11에서나의 입에서 나가는 말도,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나서야...성취하고 나서야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라고 합니다. 말씀의 권위요, 능력이요, 질서요 창조입니다. 이 말씀 앞에 설자가 없습니다. 에스더서에서 바로 이 역설이 나타났으며, 감옥의 죄수에서 한 나라의 총리로 전환하는 요셉이야기 속에서도, 하나님과 씨름하여 졌으나 이긴 그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 붙여진 야곱의 역전, 아브라함의 이삭을 바치는 이야기 속에서 세상의 형식에 감추어진 하나님 나라의 질서, 경륜이 엄위하게 밑에서 강물 같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영적인 감흥을 통해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모르며, 느끼지도 못한다면 어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구역예배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지금 세상은 각자 도생의 세상이요, 개인과 개인이 인터넷 등의 편리하 매개체를 통해 단절된 삶을 살아갑니다. 앞으로 더 개별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세상 속에 교회는, 특히 지역의 구역 교회는 서로 모여 삶의 이야기, 기도의 제목,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의 띠를 띠며 영혼을 살려내고, 위로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는 공동체의 최소 단위가 될 것입니다. 이 때 공동체의 중심은 예배입니다. 기도하고 성경 공부하는 것 과 또 다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이 세상에 살다가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받은 모든 것을 다시 돌려드리는 자리이며, 보다 중요한 것은 예배의 자리는 세상의 겉으로 보이는 것과 그 내면의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 부딪히는 자리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의 일들이 눈 녹듯 녹아내리며 은혜에서 은혜로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시간이요, 자리인 것입니다. 이 예배의 자리에서 솔직한 자기부딪힘이 없다면 예배는 형식, 다시 말하면 세상의 논리를 따라가는 종교행위가 되며, 그 반복은 사탄이 기뻐 춤추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세상이 어둡고, 부정하며, 악하며, 무질서하다고 그래서 인생을 단순히 고()라고 느낀다면, 그것 역시 틀리지 않지만, 그 세상의 밑에는 진짜로 세상을 이끄시는 선한 하나님의 섭리가 강물처럼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교활하게, 또는 어리석게 꾸미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선하게 바꾸시는지를 성령의 내적 감동으로 보며 날마다 새로워지며, 새 힘을 얻고, 위로와 평화를 얻는 우리서로같이 교회이기를 기도합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3/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498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870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225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815 2005.09.02 16:30
935 하나님의 스캔들(부활둘째주일, 2023년4월1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69 2023.04.16 12:54
934 죽음은 거짓, 부활이 팩트(부활주일, 2023년4월9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89 2023.04.09 10:37
933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자(종려주일.2023년4월2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11 2023.04.02 14:14
932 고난을 당하심 ? (사순절다섯번째주일.2023년3월2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9 2023.03.26 13:29
931 어느날, 문득....(평신도 강단: 전영희 집사, 3월 19일 저녁예배 첨부파일 김현식 276 2023.03.19 23:41
930 성령이 친히 간구하는 기도(사순절네번째주일.2023년3월19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08 2023.03.19 13:53
929 우리 일은 ?(사순절세번째주일.2023년3월12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9 2023.03.12 12:40
>> 악을 선으로 전환하시는 하나님(사순절두번째주일, 2023년3월5일 )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56 2023.03.05 13:47
927 잿더미 위에 앉은 욥(사순절첫번째주일, 2023년2월26일 )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30 2023.02.26 14:27
926 하늘에 속한 형상:십자가 (주현절후마지막주일, 2023년2월19일 )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44 2023.02.19 11:20
925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님(주현절후다섯째주일, 2023년2월5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81 2023.02.05 14:52
924 떠나감에 대해(주현절후네째주일, 2023년1월29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96 2023.01.29 13:36
923 생각, 새 마음(주현절후세째주일, 2023년1월22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530 2023.01.22 11:16
922 나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주현절후두째주일, 2023년1월15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38 2023.01.15 13:07
921 세례 · 십자가 · 기쁨(주현절후첫째주일, 2023년1월8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89 2023.01.08 11:15
920 오늘은 선포의 날(성탄절후첫째주일, 2023년1월1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59 2023.01.01 14:48
919 이름을 부르는 성탄(성탄절, 2022년12월25)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80 2022.12.25 15:45
918 기쁨으로 기다립니다(대강절 넷째주, 2022년12월18) 첨부파일 만지다 367 2022.12.19 17:10
917 우리 가운데 오신 주님(대강절 셋째주, 2022년12월11일) 첨부파일 김현식 344 2022.12.12 16:55
916 성육신에 담긴 마음(대강절둘째주, 2022년12월4일) 사진 첨부파일 stephensh 283 2022.12.04 1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