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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새 마음(주현절후세째주일, 2023년1월22일

하늘기차 | 2023.01.22 11:16 | 조회 529


                      생각, 아니면 새 마음

2023122(주현절후세째주일)                                                  삼상13:12,13;요일5:1-5

   오늘은 주현절후세번째주일이면서 설 명절입니다. 이렇게 설이 주일과 같은 날인 경우가 드문데, 올 해는 신정도 주일과 겹쳤습니다. 설은 세수(歲首), 해 세()자에, 머리 수(), 첫 해의 날을 기념하는 의미의 세에서 유래한 것 같으며, 통상 설을 쇤다고 하는데, 쇤다는 맞이한다는 의미로, 설을 맞이하여 조상을 기리고, 어른에게 절을 하며 가족들과 함께 서로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새 해를 시작합니다. 한편 설이라는 말은 나이를 헤아리는 말로도 해석을 합니다. 한 해가 바뀌는 첫 날 설을 쇨 때 한 살 씩 나이를 먹는데, 설이 나이를 해아리는 단위로 살로 바뀌기도 하였고, 새 해 첫 날이 낯설기 때문에 설다’, ‘낯 설다에서 유래했다고도 합니다. 성도들은 물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한 해를 맞이합니다.

    새 해가 찿아왔는데, 양력으로는 벌써 1월 말로 접어드니 세월이 빠릅니다. 공간은 인간에게 속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시간은 한 번 지나면 다시 어떻게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시간 앞에 인간은 모두 똑 같은 것 같습니다. 영원함 앞에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봅니다. 창세기는 이 모습을 벌거벗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부끄러울까요? 하나님 보다 높아지려는 욕망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나뭇잎으로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가리는데, 눈가리고 아웅입니다. 우리의 부끄러움, 부족함, 연약함, 한계를 가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혀주었습니다. 가죽을 만들려면 동물이 희생되어야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의 표징입니다.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스스로 벌거벗은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유한하고, 가난하며, 부족한 것이 하나님의 에덴 동산에서는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후 스스로 이 부끄러움을, 가난함을 견디지 못해 하며 감추기 시작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감추는 역사사 아니가 싶습니다. 문화, 철학, 역사, 예술, 패션, , .물질과 과학문명의 풍요와 발달이 그럴듯하게 인간의 본래 모습을 잘 감추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물질과 과학문명은 끝이 없는 듯이 뻗어가는데, 정작 누려야 할 평화, 나누어야 할 사랑, 희망찬 미래는 점점 꺼져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인간은 유한합니다. 늘 생각하지만 유한함에서 오는 부족함, 결핍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모습입니다. 문제는 그 한계를 벗어나는데, 소망이 아닌 욕망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부끄러운 것입니다.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 까지 나아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란다면, 욕망은 보이는 것을 바랍니다. 소망하는 모습이야말로 유한한 인간의 온전한 모습,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인간의 유한함에서 오는 충만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충만함은 우리의 충만함과 다릅니다. 나의 한계를 가득 체우며 충만해지는 선함은 인간에게 속합니다. 우리에게는 소리와 색으로 그 유한함을 충만하게 드러내 주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궁핍함을 나누는 사랑의 충만함이 있습니다. 한계를 소망으로 풀지 못하고 욕망으로 푸니 부끄러운 것입니다.

    판타지 영화 중에 반지의 제왕은 참 탁월합니다. 3편 왕의 귀환에서 프로도가 반지를 파괴해야 하는데 망설이면서, 반지가 내 것이라 할 때, 프로도의 욕망으로 이글 거리는 눈과 두 개의 탑 사이에 있는 사우론의 탐욕의 눈이 똑 같은 것을 영화는 보여줍니다. 등장인물 중에 골룸은 “my precious”, 나의 보물 하며 절대반지에대한 욕망을 놓치 않습니다. “my precious”하며 뼈만 앙상한체로 죽어갑니다. 그런데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절대 반지, 나의 보물 하며 모든 관계는 끊어지고 욕망, 욕심, 애착 만 남아있습니다. 평생 놓치 못하는 것이 있어 내 영혼이 말라 죽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자기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무한하지 않습니다. 때를 놓치면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결국 골룸은 절대반지를 부등켜 안고 화산 용암에 빠져 최후를 맞이합니다. 지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 영화 중에 앞권은 전쟁장면입니다. 욕망에서 비롯된 싸움입니다. 전쟁에 등장하는 거대한 코끼리, 거인들, 괴물들, 짐승들 모두 욕망입니다. 이 싸움이 어떤 싸움인가요? 욕망으로 우리의 부끄러움, 그러니까 스스로 피조물임을 거부하는 우리의 삶의 틀, 자본, 물질문명, 문화, 철학, 역사, 예술, , , 세상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승리할 수 있을까요?

    오늘 요일5:4, 5에서 세상을 이긴다고 하는데, 세상은 누구입니까? 주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데, 왜 세상을 이겨야 하나요? 여기서 세상은 바로 죄, 욕심이 만들어내는 죽음으로 향하는 세상을 이기었다는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혹여나 올 해 세상 속에 섞여 살며 아픔과 어두움, 욕망, 이기심, 나쁜 습관에 묶여 닫힌 마음으로 죽음을 향한 미래로 한 걸음 씩, 한 걸음 씩 걸어가시렵니까? 아니면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믿으며 소망의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실 것인가요?

    5절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사람이 세상을 이깁니다. 1절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났으며, 낳아주신 분,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 믿음의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3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합니다. 그러니 태어나지 않고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데, 그것은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것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3절에서 하나님의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얼핏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무겁게도 느끼는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을 듣고 그대로 지켜 행하는 것이 무겁다고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힘들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럼 왜 계명을 지키는 것이 무겁고 힘이들까요? 사실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힘에 겨운 것이 아닌데, 그렇게 느껴지는 것 아닌가요? 느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요?

    삼상10:8에 보면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고 블레셋과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사무엘은 내가 전쟁터에 갈 때 까지 일주일 동안 기다려 번제와 화목제물을 드린 후에 전쟁에 참여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삼상13;12 이하에 볼 것 같으면, 블레셋과 싸우는 중에, 블레셋은 바닷가에 모래알처럼 새카맣게 달려오고, 상황이 아군에게 점점 불리해져 백성들은 흩어지기 시작하고, 군사들은 불안에 떱니다. 그러자 사울왕은 자기가 스스로 번제를 드립니다. 사무엘이 오지 않아서 드렸다고 하지만 번제를 드리자 마자 사무엘이 전장터에 도착을 합니다. 정확히 일주일입니다. 사무엘이 왜 이런 일을 하였느냐고 묻자 사울이 다음과 같이 답을 합니다. “블레셋이 내려와 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할 수 없이 번제를 드렸다고 합니다계명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생각이 말씀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지 못하고, 주변의 상황, 관계, 그리고 정보들을 주인으로 모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이 들어 기다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생각, 의지, 느낌이 말씀을 무너뜨립니다. 삼상10:9에 보면 사무엘이 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릴터이니 일주일을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사울이 돌아갈 때, 하나님이 사울에게 새 마음을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새 마음, 값으로 따질수 없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새 마음을 잘 간직하여, 필요할 때 생각을 접고 영의 감동을 따라 주신 말씀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생각이, 의지가, 염려와 걱정이 주님이 주심 말씀과 새 마음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난 주 기독공보 목양 칼럼에 뭉그적거리기”, “얼쩡거리기!”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1982년 미국에서 하늘을 날고픈 사람이 시력이 나빠 비행기 자격증을 딸 수 없게 되자 지름 1M가 넘는 풍선 45개를 의자에 묶어 공기총 하나를 들고, 왜냐하면 내려올 때 공기총으로 풍선을 하나 씩 터뜨려서 내려올 생각이었는데, 무려 3,300m 나 올라겠는데, 내려오려고 공기총을 쏠려고 하니까 잘 못 터뜨렸다가 몸이 기울어지면 추락할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구조대의 헬리콥터로 간신히 지상으로 내려왔는데, 그 때 방송기자들이 왜 이런 일을 하게 되었느냐고 묻자, 사람이 그저 그렇게 앉아서 뭉그적거리고 살 수만은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한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굼뜨게 자꾸 비비적거리다가 새 해가 왔는데도 여전히 옛 생각에 머물러 겨울이 지나가는 줄도, 새벽이 오는 줄도, 성령이 다녀가시는 줄도 모르고 지내는 것은 아닌지요?라고 하면서 성도 한 분이 목사님에게 올 한 해는 어떻게든 예수님 주변을 얼쩡거려 보려고 한다면서, 교회 공식 예배도 좀 더 참석하고, 성경과도 가까워 지고, 기도의 자리에도 좀 더 오래 앉아있다 보면 예수님 뵙기도 하고, 좀 더 친해질 것 같아서라고 했답니다. 평소 얼쩡거린다는 말이 불량해 보였는데, 성도님의 말을 듣고는 얼쩡거린다는 말이 사랑스러워졌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온통 얼쩡거린 사람들 이야기로 가득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 이 법정에 섰을 때 베드로가 가야바의 뜰에서 얼쩡거리다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는데, 22:59에 보면 두 번째 부인과 세 번째 부인 사이가 한 시간 쯤 있다가로 기록되어 있는데, 두 번이나 속 마음이 들킨 이후에 한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데,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그렇게 초조하고, 두려움 속에서도 얼쩡거린 그 베드로를 주님이 만나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뭉그적 거릴지, 아니면 얼쩡거리겠습니까? 올 한해 주님이 주신 새 마음으로 시작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자기 생각에 머물러 뭉그적거릴 것입니까?

    오늘 하나님께 존귀, 영광, 권세, 찬양, 부와 지혜를 모두 돌리며 예배를 드릴 때, 해 마땅히 누려야 할 은총을 구하며 날 마다 새로워지고, 새 힘을 얻으며, 일터와 가정에 주의 평화 위로가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침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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