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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으로 기다립니다(대강절 넷째주, 2022년12월18)

만지다 | 2022.12.19 17:10 | 조회 365





기쁨으로 기다립니다.

누가복음 113-17절, 빌립보서 44-7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지는, ‘진정한 소망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마라나타”, “주여 오시옵소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우리에게 오시는 것. 그것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품고 있는, , 품어야 하는 소망입니다.

그 소망을 우리 고기교회 성도님들은 품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를 희망하며 기다리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다시오실 때, 주님은 비참한 현실 속에 놓인 우리를 위로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인간들이 망가뜨려 놓은 이 세상을 완전히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악한 자들을 무릎 꿇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선하게 다스리실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소망을 떠올릴 때마다, 항상, 저절로 기쁨이 생겨납니다. 정말로, 다시 오실 주님이, 그렇게 이루어 주신다면,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진정, 참된 기쁨입니다. 그렇기에, 어서 빨리, 하루 속히 주님이 오셨으면 하는, 작은 바램도 있습니다.

물론, 그때가 언제일지 모른다는 사실은, 아주 잠시 우리의 기쁨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오실 예수님을 생각할 때, ‘도대체 예수님은 언제 다시 오시는 거지?’라는 질문이 매우 자연스럽게 뒤따라 오게 되는데, 특히나 거짓된 공정과 상식, 제 멋대로인 자유. 그러한 무지와 무능, 무책임으로 인해 망가지고 있는, 오늘의 우리가 겪는 현실과 같은 이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 하루라도 빨리 오셨으면 좋겠다는 너무나도 간절한 마음 때문에 예수님이 대체 언제 오실까?’ 그런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기도 하겠지만 그 질문에 대해서 딱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도저히,,,, 절대로,,,! 예수님이 언제, 몇날 몇시에 오시는 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때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때를 모른다고 해서, 우리는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언제 오시는지는 결코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처음,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성탄의 때가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메시아, 그리스도를 아주 오래도록 손꼽아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가 언제 오시는지, 성탄의 날이 언제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그가 오신 후에도 많은 사람들은 진정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때에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예수님은 아기, 사람의 몸으로 이 땅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약속은 지켜졌습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신 게 언제냐아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신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주어졌고 반드시, 기필코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기다리면 됩니다. 성탄의 예수님이 마침내 오셨던 것처럼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도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 다시금 중요하게 되는 것은 반드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어떻게 기다리느냐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시는데 우리는 그 예수님을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를 말입니다.

 

우선,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중에서, 누가복음의 말씀을 먼저 살펴보며, 우리의 기다림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누가복음 본문 말씀에서는 세례 요한의 출생이 예고되는 말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아기 예수님의 성탄 이야기를 전할 때에 세례 요한의 탄생 이야기를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 보다 앞서 태어나서, 그의 탄생 역시 아기 예수님 못지 않게 특별하고 비범한 것으로 묘사가 됩니다.

어느 날, 제사장 사가랴 앞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세례 요한이 태어날 것이라고 출생을 예고합니다. 특별히, 천사 가브리엘은 앞으로 태어날 세례 요한이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고, 주님보다 앞서 와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백성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아시는 것 처럼, 그 천사의 말대로 세례 요한은 자라서 사람들에게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주며 많은 사람들을 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또한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백성들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그것은 이사야의 예언서에 적혀있는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누가복음 34절의 하반절부터 있는 말씀을 보시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여라이 예언의 말씀처럼, 세례 요한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 주님이 걸어가실 길을 곧게 준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시는 주님보다 미리 앞서서, 먼저 주님께서 하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도록 준비를 하는 사람.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모든 산과 언덕을 평평하게 하고, 굽고 험한 것을 곧고 평탄하게 함으로써, 오시는 주님이 바로 당신의 나라를 세우실 때,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볼 수 있게 하는 사람. 그런 세례 요한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냐고묻는 바리새파, 사두개파 무리에게 속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라고 답했으며, 똑같은 질문을 던진 세리들에게는 너희에게 정해준 것보다 더 받지 말아라라고 대답합니다. 또 한편에서 똑같은 질문을 던진 군인들에게 요한은 아무에게도 협박하여 억지로 빼앗거나, 거짓 고소를 하여 빼앗거나, 거짓 고소를 하여 빼앗거나, 속여서 빼앗지 말고, 너희의 봉급으로 만족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당시 힘과 권력, 부를 가진 그들에게, 심지어 헤롯 왕에게까지도 거침없이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으라 말하며 그렇게 세례 요한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며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세례 요한에게, 천사 가브리엘은, 다시, 1장의 탄생 예고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보면, 그가 기쁨이 되고, 그를 기뻐할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그는 기쁨이었습니다. 아버지인 사가랴에게 기쁨이 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라고, 물론,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을 만큼 나이가 든 상황에서, 간절히 원했던 아이가 태어나게 되었으니, 그 자체가 기쁨이었습니다. 하지만, 천사가 말한 그 기쁨은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서 생기는 심리 상태를 넘어, 삶 전체를 대하는 태도이자 관점으로써, 아기가 태어난 순간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 기쁨은 그가 자라서,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며,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지며 주님을 맞이하는 백성들이 누리고, 이루는 기쁨입니다.

 

그렇게 세례 요한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으로, 하나님께는 물론이거니와 돌아온 자에게도 기쁨이었습니다. 또한, 헤롯왕에 의해 옥에 갇히는 상황이 불보듯 뻔한 상황에 이르러서까지도 기꺼이 기쁨 속에서 주님의 길을 준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 기쁨이 있는 곳, 세례 요한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본격적인 자신의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앞서 나눈 이 사실들을 통해, 우리가, 한 걸음 나아가 생각해본다면, 성탄의 예수님이 기쁨으로 준비가 되고, 기쁨이 있는 곳을 찾아가셨던 것처럼 다시 오실 예수님도, 똑같이 기쁨이 준비가 되고, 기쁨이 있는 곳에 찾아오시지 않을까요? 주님의 길이 준비된 곳으로, 모든 사람들이 돌이켜 구원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회개의 열매를 맺는 곳으로,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저는 오늘날 우리가 세례 요한과 같은 역할, 같은 포지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도, 세례 요한처럼 기쁨으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의 외치는 이의 소리로, 우리를 주님보다 먼저 오늘에 보내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기쁨이라 부르십니다. 우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에는 우리가, 거짓된 상식과 공정이 가득하고, 자유를 빼앗기고, 생명과 평화가 사라져가는 불완전함 속에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불완전함 속에 내버려두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길을 준비하게 하시며, 주님의 백성들이 누리는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을 기대하게 하십니다. 나아가, 기대에서 끝나지 않고, 반드시,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완전함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누가복음의 말씀와 함께 우리는 오늘 또 하나의 본문 말씀인, 빌립보서 말씀에서도,

마찬가지로 기쁨 속에서 기다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빌립보서 책은 기쁨의 서신이라는 별명이 붙여질 만큼 이 책 전체에서 저자인 바울은 자신이 느끼는 기쁨을 차고 넘치게 표현할 뿐만 아니라 이 서신을 받는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또한, 기뻐할 것을 매우 강조하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나 차고 넘치게 기쁨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중에, 한 가지 아이러니 한 사실은 이 빌립보서가 바울이 선교를 이어가던 중 체포되어 감옥에 투옥을 당하고 있던 때에, 마찬가지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심한 박해를 당하고 있던 상황 중에 쓰여진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투옥과 박해.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그것들은 기쁨과는 아주 거리가 먼 상황들입니다.

하지만 이 빌립보서에 나타난 바울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고난과 박해 속에 있는 것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분명 기쁨에 차 있습니다. 아주 굉장히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도대체 무엇이, 고난과 박해 속에 있는 이들을, 그렇게 기쁨과 희망에 차있게 만들었던 것일까요?

저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5절 말씀에, ‘주님이 가까이 오셨다라는 표현. 그 표현에 담겨있는 마음을 주목하게 됩니다. 바울과 빌립보 교회 성도들, 그들에게는 주님이 가까이 오셨다.’ ‘예수님이 곧 오실 것이다라는 믿음을 잃지 않고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믿음이 그들에게 언제나 늘 기쁨과 희망을 제공해 주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그들이 당시에 당하고 있던 투옥과 박해가 완전히 끝이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비참한 현실을 지내던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세상을 회복시키시고 악한 자들을 무릎 꿇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오신 주님이 선하게 다스리실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마음과 믿음이 바울과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기쁨이 가득 차게 했습니다.

한편, 그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로, ‘’, ‘가까이라는 그런 시간적 표현들이 중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미 다시 오신다고 하고서 떠나신지도 50년이나 지나버린 시점에서, 오히려 어느 특정한 시간을 기대한다는 것이 오히려 실망감만 증폭시킬 뿐이란 걸,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기쁘게 하는 요인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곧, 가까이, 빨리, 오신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바울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그보다는,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자체에 기뻐했습니다. 반드시 다시 오실 예수님에 소망을 두었습니다. 다시 오셔서,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고난과 박해 속에서 구해내주실 예수님. 다시 오셔서 이 땅에 세우실, 새롭게 다스리시는 그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 그런 예수님을 향한 소망이, 그들을 기쁨으로 가득 차서 기다리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직접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서로를 돌보고,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또한 자신들 빌립보 그리스도 교회 공동체 간의 서로를 넘어서’, 하나님을 떠난 사람을 향해 그들에게까지 다시 오실 주님이 세우실 온전함을 살짝 맛보아 알도록,

기쁨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바울과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기쁨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결론부에 들어서며, 우리 고기교회 성도님들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어떻게 기다리시겠습니까?

기쁨으로 기다리십시오. 기쁨이 되셔서,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또 누군가로부터 기쁨을 얻으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우리 서로 같이 고기교회가 기쁨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백성들이 누리는 기쁨이 주어져 있습니다. 거짓과 폭력, 아픔과 슬픔의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참된 기쁨을 가져오시는 예수님의 그 길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기쁨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쁨이라 부르십니다. 우리는 기쁨이 되고, 많은 사람이 우리를 보고 기뻐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리스도를 기다렸던 사람들에게 아기 예수님이 기쁨 속에, 기쁨으로 이 땅에 오셨던 것처럼 오늘날, 다시 한번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반드시 참된 기쁨의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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