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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에 담긴 마음(대강절둘째주, 2022년12월4일)

stephensh | 2022.12.04 18:50 | 조회 282

성육신에 담긴 마음


2022년 12월 4일(대강절 둘째주일)                                                             누가복음 136-9절      

 

오늘은 대림절 둘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을 잘 보내고 계시나요? 대림절이 되면 성탄목을 세우고 마굿간을 설치하며, 또 저마다 의미있는 경험을 하며 주님을 기다립니다. 대림절 기간 동안 가져야 할 가장 두드러진 마음의 자세가 기다림이어서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주님은, 먼저는 우리에게 오셨던 주님입니다. 주님은 2000년 전 베들레헴의 한 마굿간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인간들에게는 평화가 되시면서요. 또 주님은 우리들 각각의 삶에도 오셨습니다. 오셔서 하나님 나라에 어울리는 삶이 어떤 삶인지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생명과 인격을 심어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을 하나님 나라에 어울리도록 자라게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주님은, 오셨던 주님이기도 하지만 오실 주님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하나님 나라는 완성될텐데요. 그래서 우리는 매번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고통과 고단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괴되는 자연 속에서, 질병과 죽음 앞에서, 서로를 할퀴는 관계와 구조적인 불의 속에서 아파하며 말이죠. 고통이 커질수록 주님에 대한 기다림은 더 간절해집니다. 우리에게 오셨던 주님은 반드시 오실 것입니다. 언제일지는 알 수 없지만 오셔서 기다림의 수고와 목마름을 갚아주실것이라 믿습니다.

 

오늘 같이 묵상해보고 싶은 건 우리에게 오셨고 오실 주님의 마음입니다. 도대체 주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어떤 마음이셨길래 신과 인간 사이에 놓여있는 깊은 골을 넘으셔야만 했던 걸까요? 자유로운 분이 인간 몸에 자신을 제한해야만 했던 걸까요? 저는 오늘 읽었던 본문이 성육신하셔야 했던 주님의 마음을 잘 드러내는 본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이 본문을 통해 성육신하신 주님의 마음 한가닥을 엿보는 시간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오늘로 나에게로 이어지는 주님의 마음을 묵상하고 되새기는 시간되었으면 합니다.

 

본문내용을 한번 떠올려보시죠. 삼년을 열매맺지 못한 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무가 낸 열매를 팔아 수익을 내야 하는 농장주가 있습니다. 농장주에게 이 나무는 땅과, 농부의 수고를 허비하는 쓸모없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이 나무를 처분하려고 합니다. 땅을 더 이상 낭비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 농장주를 포도원지기가 말립니다. 한해만 더 보자고 합니다.

 

본문의 의미가 명확하게 다가오시나요? 열매맺지 못한 나무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선명히 떠오르실까요? 보통 비유는 익숙하고 일상적인 곳에서 시작해서 낯선 곳으로 향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방식으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토대들을 흔들어 버리고 전복하는 역할을 합니다. 비유를 읽을 때 어려운 점은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 갈라지는 길목에서 종종 길을 잃기 때문입니다. 익숙한 이야기와 낯선 이야기를 섞어버려서 어디부터가 하나님 나라 원리에 대한 이야기인지 혼동합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편인데요. 그래서 오늘 본문의 의미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려면 1-5절과 함께 읽으면 좋을듯합니다. 보통 성경은 앞의 이야기를 부연하기 위해 뒤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앞의 사건에 대한 해설로 뒤의 이야기가 등장하거나 하는 식으로 본문들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1-5절은 최근 예루살렘에 있었던 커다란 두 가지 참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먼저 참사를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선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언급하고 있는데요. 첫 번째 사건은 1절의 빌라도가 사람들의 피를 제물에 섞은 사건입니다. 갈릴리에서 온 순례자들이 성전에서 희생제사를 드리는 동안, 빌라도가 군대를 들여보내 이들을 살육했던 사건을 말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건은 4절의 실로암 탑이 무너져 18명이 치어 죽은 일입니다. 이 탑은 예루살렘 성벽 남동쪽 실로암에 세워진 군사적 용도의 감시탑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탑이 무너져 18명이 죽었습니다.

 

2, 4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이 참사를 사람들이 어떤 시선으로 보았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참사 희생자들이 죄인이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당시 유대교는 현실에서 누리는 건강, 부유함 등을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여기는 신앙관을 가지고 있었죠. 이러한 신앙관은 어떤 사람의 현재 모습을 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는 일차원적이고 편협한 세계관입니다. 이러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니 희생자들이 죄인이고 문제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예수님은 이런 편협한 세계관을 가진 이들에게 자르듯 이야기 합니다. 2, 4절에 보시면 희생자들이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하고 말씀합니다. 이 말을 어감을 살려 다시 읽으면, 자기 죄 때문에 참사 같은 형태로 벌을 받는 거라고 한다면 너희야말로 진작에 이런 참사의 희생자가 되지 않았겠느냐. 희생자들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너희나 조심하며 바로 살아라. 이렇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어지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열매없는 나무가 누구인지는 잠시 미뤄두고요, 나무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해보죠. 이야기에 등장하고 있는 3년 동안 열매가 없던 나무는 무화과 나무입니다. 보통 무화과나무는 키우는데 그리 까다롭지 않은 나무로 알려져있습니다. 고대 팔레스틴에선 어디서든 자주 찾을 수 있는 나무였습니다. 열매는 5-6월에 한번, 8-9월에 한번, 2번 수확할 수 있는데다 맛과 영양이 좋아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라고 불렸습니다. 무성함과 풍성함 때문에 무화과나무는 성경에서 복과 평화를 뜻하곤 합니다. 성경은 번영과 평화의 상태를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는 것으로 말하기도 하죠. 그렇기 때문에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것은 대단히 낯선 상황이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농장주는 무화과의 열매를 3년 기다렸습니다. 본문은 3년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9년을 기다렸을 겁니다. 1923절을 보면 나무의 열매를 3년 먹지 말라는 규정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표면적으로는 할례를 받지 못해서라고 밝힙니다. 그러나 약자보호라는 강력한 원리에 충실했던 율법정신을 생각해보면 어린나무의 열매에 손대지 말라고 한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이 됩니다. 보통은 심어진 무화과 나무가 열매를 맺을 만한 성목으로 성장하는데까지 보통 걸리는 시간이 3, 레위기 19장 대로 열매를 먹지 않고 지나는 연수가 3, 7년째 수확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드디어 8년째부터 수확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는 9년째까지도 열매가 없습니다.

 

이런 배경을 두고 생각할 때 누가복음 137절 농장주가 이해됩니다. 열매얻기가 그리 어려운 게 아닌데 9년을 기다려도, 열매 하나를 얻지 못한 이해되지 않는 상황, 애쓰고 수고한 시간들이 증발했다고 여겨지는 허탈한 상황에서 나무를 포기하고 처분하려는 주인의 마음이 어렵지 않게 헤아려집니다.

 

오히려 이 상황에서 이상한건 그런 주인을 말리는 포도원지기입니다. 포도원 지기는 그냥 두십시오 하며 농장주를 말립니다. 둘레를 파고 거름을 줄테니 한해만 더 보자고 합니다. 9년을 열매없이 지나갔으면 포기할법도 한데 포기를 모릅니다. 생산성이 없고 쓸모 없는 것은 버려져도 된다는 익숙한 생각을 흔듭니다.

 

이제 정리를 해봅겠습니다. 오늘 이야기에서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누구를 의미하겠습니까. 농장주는 앞서 1-5절의 편협한 세계관에 갇혀있던 사람들이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들은 대체로 소수가 아닙니다. 종교기득권자들과 그들이 주도하는 시대의 가치관과 정신을 의심없이 받아들인 대부분의 사람들이랄 수 있겠습니다. 이들은 시대의 가치관이 만들어낸 질서를 이용해 이득을 얻습니다. 그래서 질서를 어지럽히는 튀어나온 못 같은 이들은 어김없이 제압하여 제거하려고 합니다. 포도원지기는 의심의 여지없이 예수님입니다. 그렇다면 열매없는 나무는 누구일까요?

 

1-5절과 이어본다면 갑작스런 참사의 희생자가 된 이들일 수 있겠습니다. 성전에서 갑작스럽게 학살당한 사람들, 탑이 무너져 어이없이 치어 죽은 사람들 말입니다. 이들을 좀더 살펴보시죠. 성전에서 학살당한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갈릴리는 주전 55년경 로마인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재편성된 지역입니다. 이 과정에서 강제이주를 해야 했습니다. 이런 갑작스런 이주는 실직같은 삶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경험이죠. 게다가 갈릴리는 엄청난 폭군이었던 헤롯에 의해 통치를 받았던 지역입니다. 그렇기에 이 지역의 사람들에게 고단한 삶은 일상이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든 자신들의 처지가 나아지길 희망했겠죠. 결국 갈릴리 사람들은 헤롯 사망하자 무기고를 습격하고 성읍을 장악합니다. 그러나 폭동은 진압되었고 로마는 이들에게 잔인하게 복수합니다. 성읍에 불을 질러 삶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주민들은 노예로 끌고가 버렸습니다.

 

8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갈릴리 사람들은 억울했고 삶은 피폐합니다. 그리고 권력자로부턴 여전히 불온하고 과격한 사람들 취급을 받았습니다. 빌라도는 이들이 성전에 왔을 때, 그들이 왜 왔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과잉진압하여 학살한 듯 합니다. 이렇듯 성전에서 죽임당한 갈릴리 사람들은 오랜 시간동안 수탈당하고 억압을 받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의 삶을 돌아봐주시기를 간구하며 숨이 턱밑까지 차서 고단하게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온 이들 말입니다.

 

또 실로암 탑에서 치어 죽은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당시 예루살렘엔 물 공급을 개선하기 위해 수로가 건설되고 있었습니다. 이 수로 공사 중에 지반이 약해졌는지 탑이 무너집니다. 치어죽은 18명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공사에 동원된 노동자들이었을 겁니다. 이들도 하루하루 고단하게 삶을 살던 사람들이었겠죠. 이들은 재난을 당하기도 전부터 이미 재난과도 같은 삶을 살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종교기득권자들은 뒷배없고 힘없는 이들을 쉽사리 죄인으로 낙인찍고 응당받아야 할 심판을 받은 것처럼 말할 수 있었던 것이죠.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는 갈릴리 사람들이고 현장 노동자들입니다. 생산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든든한 뒷배가 없고, 고단한 삶을 간신히 견디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이라서 찍어버려져도 괜찮다고 여겨진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이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는 우리들 아닐까요? 고단하고 힘겹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말입니다. 남들은 이런저런 성과를 내는데 나만 그러지 못한 것 같아 괴로워하며 자기검열로 무수한 시간을 보내는 우리들이며. 삶에 찾아온 어려움의 이유를 찾아보지만 찾아지는게 없으니 자기를 탓하다 탓하다 속병든 우리들이며. 왜 내게,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건지 이해할 수 없어 불면의 시간을 보내곤 하는 우리들 말입니다.

 

포도원주인은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고 합니다. 그런 주인을 포도원지기가 막아섭니다. 포도원지기는 나무를 탓하지 않습니다. 땅을 두루파고 거름을 주겠다고만 말합니다. 열매맺지 못하는 이유가 나무 자신때문이 아니라고 하는듯합니다.포도원지기의 이 말은 요새 쟁점이 되고 있는 능력주의 논쟁을 뒤집어 놓은 것 같습니다. 소위 능력주의는 한사람이 이룬 성과, 업적은 그이가 노력해서 얻은 능력의 정당하고 공정한 결과라고 합니다. 그러나 마이클 샌델 같은 이들은 어떻게 한 사람이 얻은 성과와 업적이 순전히 그 개인의 노력 때문일 수 있겠는가 반문하죠.

 

포도원지기의 입을 빌어 말씀하시는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무의 저조한 성과가 어떻게 나무만의 문제, 탓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 같습니다. 땅이 문제고 양분이 문제라고 하는 듯합니다. 그런 곳에서, 그런 환경과 경험 속에서 살아왔는데 이 정도면 그래도 훌륭하다고 괜찮은 거라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니 잘못이 아니야 문제는 니가 아니야 하시는 듯합니다. 9년간 무화과나무를 보아온 포도원지기는 1년만 더 기회를 달라고 합니다. 1년 만 미루어진걸까요? 1년 내내 추수 때가 되도록 열매가 없으면 찍어내버려질 거라는 두려움 속에 살게 될 거라면 유예된 1년이 이전과 달라진 게 뭐가 있겠습니까. 무슨 열매를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그러나 9년간 무화과나무를 보아온 포도원지기는 무화과나무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금 포기하지 않는다면 내년에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 확실합니다. 내후년 그 내후년에도 마찬가지이겠죠. 포도원지기는 찍어버리겠다는 주인을 계속 막아설 것입니다.

 

성육신 하신 주님은 이 포도원지기의 마음으로 우리에게 오셨을 것입니다. 우리를 포기할 수 없었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오신 것이지요. 스스로를 자책하고 자책하다못해 자신을 혐오하며 포기하려는 우리에게, 결코 너 때문이 아니야, 괜찮아 하시며 주님은 오셨습니다. 사는 게 막막하고 고단하여 낙심할 때, 삶이 무겁게만 느껴질 때, 주님은 우리를 도우며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주님은 우리에게 오고 계십니다. 결코 우리를 포기할 수 없었던 주님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이죠.

 

이 대림절, 여전히 삶은 고단하고 현실은 불의하지만, 기필코 주님이 우리를 돌보시고 고치실 것이라는 희망과 위로가 새로워지는 기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에게 오신 주님 마음을 묵상하고 우리에게 오실 주님을 기대하며 침묵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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