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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고난과 고통을 겪고(사순절두째주일, 2019년 3월17일)

하늘기차 | 2019.03.24 14:57 | 조회 162


                       

                        이처럼 고난과 고통을 겪고

2019317(사순절두째주일)                                                       20:7-9;14-18

   예레미야의 활동 시기는 남유다 멸망 전후의 때입니다. 우상숭배가 극에 달해 성전의 제사는 병든 제물 바치기가 일수고, 고아와 과부와 이방인을 돌보지 않고, 도적질, 음행과 거짓 맹세, 불법과 불의가 횡횡한데, 성전에 나와 안전하다, 안전하다고 하니,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을 항아리가 깨지듯이 깨뜨려 버리겠다고 합니다. 예레미야의 고통과 고난은 말씀에대한 고통이요, 고난입니다. 주님 뜻대로 세상을 향해 폭력이다! 불법이다!” 전하지만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모욕합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 전하지 않고 세상도, 하나님도 안보겠다고 등 돌리면 마음이 편할 줄 알았는데, 주님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 속 까지 타들어가니 견디지 못해 합니다.

   최근 글쎄다 문학동아리에서 최은영이라는 젊은 작가의 단편 중에 <씬짜오, 씬짜오>라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고 합니다. 독일 플라우엔으로 이사를 간 주인공 아이의 가족이 그곳에 살던 투이라는 베트남 아이 가족의 초대를 받으며 이야기가 시작이 됩니다. 한 번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다행히 2차대전 이후 이처럼 대규모의 살상이 일어난 전쟁은 없었다고 하자, 투이가 손을 번쩍 들어 선생의 말을 끊으며 베트남에서 전쟁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요.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이모, 삼촌 모두 다 죽었대요. 군인들이 와서 그냥 죽였대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미국정부의 실책이며, 아무런 득이 없는 전쟁이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주인공은 그런 교과서적인, 먼 산 바라보듯 하는 결론은 투이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두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 나누던 중에 일제 강점기에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주인공은 잘난체 하려는 생각에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어요하며 자랑스럽게 엄마 아빠를 쳐다 보았지만, 아무말 없이 엄마는 조용하라는 눈치를 줍니다. 그 때 투이가 한국 군인들이 죽였다고 했어라는 말에 식탁 분위기는 차갑게 얼어붙습니다그런데 주인공의 아빠가 

      “저희 형도 그 전쟁에서 죽었습니다. 그 때 형 나이 스물이었죠. 용병일 뿐 이었어요.”그러자 아줌마가

      “그들은 아기와 노인을 죽였어요.” 아빠가

      “누가 베트콩인지 누가 민간인인지 알아 볼 수 없는 상황이었겠죠.”

      “태어난 지 고작 일주일 된 아기도 베트콩으로 보였을까요

          거동도 못하는 노인도 베트콩으로 보였을까요

      “전쟁이었습니다

      “전쟁요? 그건 구역질 나는 학살일 뿐이었어요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사무적인 말투였다.

      “그래서 제가 무슨 말을 하시길 바라시는 겁니까? 나도 형을 잃었다구

         이미 끝난 일 아닙니까? 잘못했다고 빌고 또 빌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예기치 않은 대화로 결국 두 가정은 점점 멀어졌고 서로 의 관계는 끊어졌고, 주인공의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미카엘라>라는 단편에서는 어느 미용사 아주머니가 야학에서 만난 운동권 대학생교사와 결혼을 하여 온갖 뒤치닥걸이, 옥바라지를 하며 살다가 16년 만에 남편을 잃었고, 딸 하나는 30살 먹은 결혼 적령기의 처자가 되었습니다. 2014년 프란체스코 교황의 광화문 미사를 위해 올라 온 아주머니가 우연찮게 세월호 가족과 광화문 광장에서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아주머니는 서울에 올라오면서도 딸에게 연락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누추함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서울에 올 때마다 온갖 마른반찬, 절인 반찬을 한 가득 바리바리 쌓아가지고 올라오는 엄마가 짜증나지만, 그렇다고 연락을 하지 않는 엄마에 속상해 합니다. 엄마는 미사가 끝나고 찜질방에서 만난 할머니의 친구 할머니의 사연을 듣고, 그 손녀 딸이 왜 죽었는지 알아야한다며 광화문으로 나간 친구 할머니를 따라 아주머니 역시 찜질방에서 만난 할머니를 따라 미사가 끝난 다음 날 광화문에 나가는데, 아주머니의 딸은 우연히 T.V에서 광화문 모퉁이에 모르는 할머니와 앉아있는 엄마를 보고, 부리나케 광화문 광장으로 달려갑니다.

   광화문에서 엄마를 찿다가, 뒷모습이 엄마와 닮아서 엄마! 하니 누구세요?”라고 돌아보며, “아가씨. 내 딸도 그날 그 배에 있었어요.”라고 합니다. 그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 그렇게 엄마를 찿다가 어느 할머니를 부축하며 나아가는 엄마를 보고, 엄마! 한다. 미카엘라다. 엄마의 딸도 미카엘라고, 찜질방에서 만난 할머니의 친구의 소녀 딸도 미카엘라이다. 우리의 미카엘라이고, 우리의 엄마이며, 할머니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그렇게 세월호의 아픔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녹아내린다. 모두의 엄마이고, 딸이고, 할머니이다. 예은이 할머니이고, 미지 아빠이고, 동수 엄마이고, 우리 모두의 죽음이며, 고통이며, 억울한 폭력이며, 그래서 저는 이 소설에서 광화문에 높이 들린 십자가를 보았습니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는 배우지 못하고, 6.25에 가족을 다 잃고 사촌 할머니 댁에 들어와 재봉질하며 살아가는 16살 순애 언니가 자라 결혼을 하였는데, 남편이 소위 인혁당사건에 연루되어 소위 빨갱이라는 프레임에 갖혀 감옥을 살다가 고문으로 거의 패인이된 남편을 먹여살리며 살아가는데, 그렇게 살겨웠던 동생인 주인공 엄마는 순애 언니와 점점 멀어집니다. 처음에 이모는 엄마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전화하지 않았고, 주인공 엄마는 그래도 언니 보다는 편하게 사는 자신의 행복을 순애 언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조금씩 연락이 끊기던 중에, 형부가 출옥했다는 소식에 튀김통닭을 사서 검은 봉지에 싸 들고 어렵사리 순애 언니를 찿아 간 날, 형부가 질펀하게 싼 오줌에 스타킹과 치마가 젖어, 갈아 입을 것 조차 없는 언니의 형편에, 추운 겨울 수돗가에 가서 빨아 말리지 않은채로 입고 형부의 집을 빠져나오면서 언니가 싫다고 합니다. 형부의 석방을 위해 언니와 함께 목요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기도 하였지만, 점점 멀어집니다. 이 작품에서 언니가 키우는 곰이라는 강아지가 등장하는데, 이 강아지를 대하는 언니의 모습에서 주인공의 엄마는 언니의 마음을 보았고, 마지막 까지 그 마음을 간직합니다. 곰이는 병들어 죽어갑니다. 밥을 먹을 수 조차 없을정도로 기력이 다 쇄했는데, 이모가 곰아 밥먹어하면 안 아픈척 하며 꼬리를 흔들며 코를 밥그릇에 데고 먹는 시늉을 하는데, 그런 곰이를 보며 이모가 울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한 밤 자고 나고 나가보니 곰이가 사라졌습니다. 곰이가 자기가 아픈 것을 보고 마음 아파하는 이모를 보고는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죽으러 나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소설은 사람들의 아픔에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냥 아픈 것이 아니라 109 쪽에서 밝히듯이 작가는 그들은, 즉 형부와 함께 빨갱이로 치부된 사람들이 나라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최인영 작가의 소설은 그렇게 국가폭력에 희생된 이름없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대해 이야기합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십자가에 처형당하였습니다. 당대의 로마제국과 기득권 세력과 몽매한 백성들에의해, 공권력에의해, 국가에의해, 조직화한 세상의 욕망에 살해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이 이 죽음을, 이 죄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불뱀이 구리뱀 되듯이, 물이 포도주 되듯이. 그래서 신앙이란 십자가에서 폭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니 교회는, 성도는 십자가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에대한 인류 역사에서 찿기 힘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대한 절대적 순종을 봅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견딜 수 없어 심장이 터질 것입니다. 그래야 구원입니다. 폭력을 보면 전쟁입니다. 그러나 구리뱀처럼 높이 들린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죽음 넘어의 섭리와 경륜을 따라 십자가로 나아간 것입니다. 저는 최인영 작가의 소설 속에서 그 긍휼과 연민을 보았습니다. 폭력이 폭력의 일을 하지만, 우리들 안의 불쌍히 여기는 연민 까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평생을 근현대사의 질곡을 품고 살아온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인 몽실언니생각이 났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배 다른 동생을 업고 살아가는 몽실이를 통해 보통 사람들이 견뎌 온 일제징병, 6.25의 아픔, 고통, 눈물을 증언합니다. 이 번 사순절 연속기도회에 임하면서

                 “십자가의 고난은 나 개인의 고난일 뿐만아니라, 구약의 예언자들,

                          대의 순교자들, 인류의 폭력과 죽음 그리고 지금 이 시대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연의 아픔, 그리고 궁극에 예수 그

                          리스도의 십자가로 이어집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든 각 자는 자기의 말 못할 아픔과 눈물이 있습니다. 이 아픔과 눈물을 그저 가기 혼자의 아픔, 소위 내 팔자여! 하며 팔자 소관이라 하는 것이 아니라, 최인영 작가의 눈으로, 권정생 선생님의 시선으로 돌아보면, 지금 내 아픔과 눈물이 가정이든지, 직장이든지, 학교든지 창문없는 골방의 고난과 고통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픔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아픔은 사도 바울이 롬8:22에서 말씀하듯이 피조물 역시 같이 겪는 아픔입니다. 이 아픔을 내 혼자의 아픔으로 아퍼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 고난과 고통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온 우주와 역사와 자연 피조물과 우리의 일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궁극에 십자가의 고난에 닿아있습니다. 기독인은 폭력을 고난과 고통으로 봅니다. 이것이 생명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주님이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역사와 온갖 신음하는 피조물의 아픔은 기억에서부터입니다. 밀란 쿤데라는 <웃음과 망각>에서 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이라 하였습니다. 4.3이 다가오고, 4.16이 다가옵니다. 교회가 매 달 3.1운동을 기점으로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에대해 특강을 열고 있습니다. 역사를 모르고 어찌 이웃에대해 운운할 수 있겠느냐 라는 심정에서입니다. 피상적인 이웃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보아야 구체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역사의 하나님이십니다.

    폭력은 폭력의 일을 하며, 악은 악의 일을 합니다. 몇 년전 지금 소마교회의 임기도 목사님과 EM을 사용해 시내물을 맑게 한 적이 있습니다. EM, Effective Microorganisms (유용 미생물균)인데, 유산균, 효모, 광합성균, 방선균 등 51080여 종의 미생물로 이뤄져 있습니다. EM이 활성화 하면 부패균이 억제되어 생명현상이 활성화됩니다. 처음에 저는 EM이 부패균을 잡아먹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냥 부패균은 그대로 자기 역할하는데, EM이 활성화되니 부패균들이 맥을 못춥니다. 하나님 나라의 운동과 같습니다. 폭력과 불법과 불의 혐오의 내용들이 심심치 않게 회자됨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이 모든 폭력을 구리뱀처럼 높이 들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고통의 십자가를 통하여 바라보며 생명과 정의, 평화의 삶을 살며, 하늘의 위로를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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