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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일 : 믿음(사순절두째주일, 2019년 3월17일)

하늘기차 | 2019.03.17 14:17 | 조회 152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일 : 믿음

2019317(사순절두째주일)                                              3:14-21;5:1-5(6-11)

 예수님은 14절에서 구리뱀 같이 인자도 높이 들려야 영생을 얻는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죽게한 것이 불뱀의 독이라면, 온 인류를 죽게하는 것은 죄라는 치명적인 독입니다. 불뱀의 독은 구리뱀으로 회복이되지만, 인류를 죽음으로 내 모는 죄의 독은 인자가 높이 들려야 해독될 수가 있으며, 십자가에 높이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마다 영생을 얻습니다. 믿음이라 했습니다. 구리 뱀이 나무에 높게 매달렸다는 것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기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라 합니다. 여기서 18절 말씀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때문이다.”라고 합니다. 믿지 않았다는 것은 어두움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끝날 때의 종말론적인 전통적인 심판과 다릅니다. 실존론적인 심판입니다. 죽은 후에 아니면 주님이 다시 오실 때의 심판이 아니라, 주님이 빛으로 오셨지만 어두움에 머물러 지금 여기에서 심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며, 믿음으로 영생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밤에 찿아옵니다. 밤은 요한복음에서 어두움, 세상, , 구체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하는 기득권자들을 지칭합니다. 니고데모는 그렇게 어두움의 모습으로 찿아와서 어두움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끝 까지 어두움에 머물러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죽음이요, 심판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반면에 버려진 땅 사마리아의 멸시받는 여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찿아가 자기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야 볼 수 있는 하나님입니다. 소위 중생인데, 이것은 어떤 종교로의 귀의, 새로운 종교의 틀로의 전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자기의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땅의 일도 모르면서 어찌 하늘의 일을 알 수 있겠느냐고 합니다. 땅의 일도 모른다고 할 때의 땅의 일이란 부자청년에게 네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고 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로의 초청을 받지 못하는, 어떻게 이 세상에서 구원이 일어나는지 모른다는 것인데, 하늘의 일이란 어떤 형상인지 우리는 알길이 없지만, 오늘 말씀14절 같이 높이 들리는 십자가야 말로 하늘과 땅의 일을 연결하는 통로가 아니겠나 싶습니다. 구리 뱀이 높이 들린 것처럼 내가 높이 들리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니고데모에게는 자기 일이 있었을까요? 그러니까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이스라엘의 공회원으로서, 지도자로서의 자기 지위에 있으면서 자기 일을 했는가? 라고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아니 자기 일이라 하기 전에 자기라는 정체성이 있었나 묻고 싶습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자기', '', '나는 나'의 자기 정체성이 있는지요. '나는 나'를 어디에서 인증을 받을 수 있나요?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니고데모처럼 끊임없이 하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에 둘러쌓여 하늘 만 쳐다보며 성전과 제사와 율법의 틀에 얽매인 사람들에게 스스로 인자’, '나는 나'라고 하지만, 아무도 거들떠 보지를 않았습니다. 하늘 만 바라보고 있으니, 나와 하나되시는 아니 온 우주와 역사 속의 모든 나는 나하나 하나와 조화로우신 하나님을 만나 본 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문제라고 하니 고개를 갸우뚱 할 것 같은데, 그러나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네게 주겠다고 제안을 하자 사마리아 여인은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받아들이는 순간, 믿음이며, 영생이며, 아버지 하나님 처럼, 예수그리스도처럼 '나는 나'인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한 번도 나는 나이지 못하였고, 볼 수도 없었지만, 이제 그 기회가 찿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어두움에 머물러 20절 말씀처럼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 두려워 합니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그 두려움, 사람들이 알면 쪽팔릴까봐 밤에 찿아 온 것입니다. '나는 나'의 정체성을 어디에서 인증을 받을 수 있나요? '나는 나'라고 야웨 하나님으로 이스라엘을 통해 인류에게 처음으로 자기를 소개하신 창조주 하나님, 아들 예수를 '나는 나'로 보낸 하나님 앞에 설 때 나도 역시 나는 나입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나는 나일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자꾸 어떻게 해야, 무슨 일을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아버지가 보낸 분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합니다. ‘나는 나이신 분 앞에 나는 나로 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합니다. 문자에 사로잡힌 니고데모는 어머니 뱃 속에 다시 들어가야 하느냐고 고개를 갸우뚱 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뿐 아니라, 볼 수도 없다고 합니다. 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에대해 통상 일반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당연히 물의 세례라고 종교적인 해석을 하는데, 성공회 신부인 존 셸비 스퐁은 자신의 요한복음 주석에서 물은 어머니의 양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 번은 육적인 태어남이고, 다음에 성령의 태어남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설득력이 있는 것이, 예수님은 3:6에서 바로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영에서 난 것은 영이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참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것 아닌가요?

 19절은 어두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빛으로 나오지 못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사람, 바람 같은 사람,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21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빛으로 나아온다. 그것은 자기의 행위

                               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언 듯 4장에서 등장하는 사마리아 여인이 생각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기 자신이 수치스러워 마을 사람들이 두려웠고, 유대인이 두려웠고, 모든 것이 두려워 빛으로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물가에서 예수님의 청혼을 받아들여 신랑이신 주님의 신부가 된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물동이를 야곱의 우물가에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갑니다. 그동안 피해다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에게 구세주, 구원자를 만났다고 힘차게 전합니다. 역전되었습니다.

 예수님으로인하여 가치가 역전되는 경우는 더 있습니다. 눈먼자의 눈을 뜨게하신 후에 유대인들과 치열한 논쟁이 붙었을 때, 예수님은 요9:39에서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못 보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는 죄 많은 세리와 금식과 헌금에 충실한 바리새인의 기도 중에 누가 인정을 받았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39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 성경이 나에대해 증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미 예수님은 이 시대로 말하면 성경공부, 제자훈련, Q.T 등에대해 당시 시대상에 맞추어 이야기하자면, 그 모든 프로그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님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성경연구는 오늘의 성경공부 프로그램 과는 치원이 다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영생의 성경연구를 하고 가르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다시 태어나라고 하셨습니다. 방향성과 정체성에대해 하늘의 가치에대해, 빛에대해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무소부재한, 전지전능한 하늘의 하나님을 무당처럼 불러내지 말고, 네 안에 빛으로 계시는 나는 나의 살아계심 하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나는 나인 하나님은 나는 나인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하나님이 이 땅에 살면 어떤 사람으로 살것인지, 죽음에 대해 죽고, 생명에 대해 사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나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는 참사람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바로 사마리아 여인이 나는 나인 예수 하나님을 받아들이며,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일, 즉 믿음을 사람들 속에 드러낸 것입니다. 믿음의 일이 유대인만의 일인 줄 알았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 안에서 자기 일이 된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자기를 드러냅니다. 사마리아여인은 스스로 나는 나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임을 깨닫고 하나님 안에서 자유인입니다. 자기의 행위, 즉 믿음의 일이 하나님 안에서 예수를 바라봄으로 이루어졌음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종교인이 된 것이 아니라, 교인이 된 것이 아니라, 리더가 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된것입니다. ‘나는 나가 된 것입니다. 참 역설적입니다. 니고데모는 평상시 대 낮에는 모든 사람과 만나고, 뿐만 아니라 가르치고, 지도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하고, 헌신하는 사람인데, 예수님을 만날 때에는 낮이 아니라 밤에 찿아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눈초리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다시태어난 사람은 자유합니다. 왜냐하면 종이 아니라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8:14, 15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 니다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지난 전교인 기도회 때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순간, 다시 말해 모든 틀을 다 벗어버리는 순간, 바로 그 때 16절에

                     “바로 그 때에 그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

                               을 증언하십니다. ” ‘나는 나임을 깨닫는 순간, ‘나는 나이신 하나님과, ‘나는 나이신 예수님과 나는 나인 내가 하나가 되면, 그래서 온 세상의 피조물과도 조화로워, 피조물들의 아픔, 역사의 고통,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려는 불쌍히여김이 나의 마음이 됩니다. 사모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마음입니다. 성령이 주는 감동의 삶을 살기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를 야곱의 우물에 게의치 않고 버려두고 마을에 들어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일 : 믿음의 일을 드러냈습니다. 오늘 마지막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드러냈다고 합니다. 믿음은 무엇을 열심히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주님 찿아오신 기쁨을 살 속에서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 드러내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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