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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게 살자(주현절후여섯째주, 2019년 2월11일)

하늘기차 | 2019.02.17 15:33 | 조회 166


                           기쁘게 살자

2019211(주현절후여섯째주)                                              7:15-18;2:12-13

 , 시편, 잠언, 전도서를 지혜문서라 합니다. 지혜문서는 주로 바벨론포로기 이후 구체화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은 후기유대신비주의의 바탕이 된 지혜문학의 영향을 받아 저 하늘 위에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내재하는 지혜, 즉 생명의 빛으로 넘쳐납니다. 포도나무 비유는 아버지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고 성도가 내적 합일의 지혜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요15:11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 복음은 유난히 내재하시는 하나님의 자유, 생명, 사랑이 섬광과 같이 번쩍여 독수리와 같다고 합니다. 1:1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위에 계신 하나님이 14절에서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이 계셨다에서 사셨다로의 전환은 하나님의 내적 거하심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야웨 하나님께서 출애굽하여 광야로 나간 이스라엘의 장막에 거하신다는 전통에 근거합니다. 그러나 그 내재하는 하나님의 영광이 에스겔10장에서 떠나갑니다. 그러면서 바벨론 포로기를 거치며 율법과 예언의 말씀과 성전에 내재하는 하나님은 사라지고 유대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는 그 보는 앞에서 아들들이 처형을 당하고 두 눈이 뽑히어 비참하게 바벨론으로 끌려감으로 더 이상 다윗왕권의 회복,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야의 비젼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 앞에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하나님은 승리하며, 평화로울 때는 우리 곁에 계시지만, 이렇게 패배하여 힘 없이 고통받는 백성들은 만나주지 않는가 라는 의구심이 생겨나면서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은 지혜문학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격으로 우리 안에 내재하심을 깨닫게 되는데, 그 내재하는 하나님의 신비가 신약으로 들어와서도 바울의 고전3:16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를 향하여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것을 모르느냐고 하며 여러분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뜻입니다. 이 전도서의 내용을 보면 율법이나 예언서처럼 하라, 하지 말라 하기 보다는 인격적으로 인간이 인간에게 말하며, 지혜 스스로 인격이 되어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를 이야기합니다.

 오늘 전도서는 너무 악하지도 말고, 너무 의롭지도 말라고 합니다. 중용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중용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도 뒤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라는 이 말씀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제가 이 중용의 자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얼마 전에 모처럼 청년 때의 친구들과 원로 목사님이신 유경재 목사님께 설 인사를 드리러 갔었습니다. 이야기 꽃을 피우면서 통일에대해, 또 다가오는 3.1운동에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한 친구가 지금이 일제 강점기였다면 자기는 아마 친일을 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는데, 마음이 씁쓸하였습니다. 잘 사는 사람입니다. 소위 일류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 전문 경영인의 자리에 있고, 지금도 왕성하게 기업 활동을 하니 보기에 좋은데, 그래도 어찌 그런 망말을 하는지, 물론 이야기 중에 친일에대해 무조건 비방할게 아니라고 하면서 어느 분은 자기가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친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도 있었다는데,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즈음에 너무 편하게 쉽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 단재 신채호 선생님께서 19231월에 쓴 <조선혁명사> 마지막 단락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얼마전 예장녹색교회 총회가 쌍샘자연교회에서 열렸는데, 근처에 신채호선생의 묘와 박물관에 들러 이 글을 읽고, 이 어른이 글을 쓰는 지식인이었지만, 특히 조선상고사를 쓰며,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고구려의 기상을 다시 세우려했던 노고야 말로 오늘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정신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급진적이고, 폭력적이지만, 당시의 역사적 정황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이렇습니다.

“. .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大本營)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없는 폭력 - 암살· 파괴·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자고 하면서 이제 폭력 - 암살· 파괴 ·폭동 - 의 목적물을 열거하건대, 1) 조선총독 및 각 관공리 2) 일본천황 및 각 관공리 3) 정탐꾼·매국적 4) 적의 일체 시설물 이외에 각 지방의 신사나 부호가 비록 현저히 혁명운동을 방해한 죄가 없을지라도 만일 언어 혹 행동으로 우리의 운동을 지연시키고 중상하는 자는 우리의 폭력으로써 마주 할 지니라. . .”고 썼습니다. 대단한 기상입니다. 그 시대를 전쟁상황으로 인식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의 오늘 말씀을 읽으며 중용이 무엇인가 되새겨 보았습니다.

 어찌보면 해방 이후의 정국은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역사요, 이데올로기, 소위 빨갱이라는 신화적 언어에의해 근, 현대의 역사가 왜곡되고, 수 많은 민초들이 처참하게 죽음을 당한 역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제 분단 70년에 이르러 촛불을 통해 정권이 바뀌고, 이 민족이 남과 북의 대화를 바탕으로 종전과 평화로 나아갈 이 시점에, 7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엘리트, 지배 계층에의해 늘 왜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전한 백성들의 지혜, 해학, 용기, 열정, 재주, 정다움, 희생, 나눔은 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의로운 항거가 아니었는가 라는 것인데, 하여간 그래서 이 민족이 종전과 평화선언, 자주적인 통일의 과정을 통해 능히 인류 평화에 이바지 하기에 족하다라는 생각에 이르러 이 민족의 고통의 역사가, 함석헌 선생님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썼듯이 단지 한반도의 십자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류 평화를 위해 이 민족에게 지운 십자가가 아니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너무 의롭게도 살지도 말고, 악하게 살지도 말라는 이 말씀을 해방 이후의 70년의 전체 역사로 돌아 보면, 그동안 친일의 왜곡된 불의한 역사가 촛불을 통해 이제 바로잡히기 시작하였으니, ‘너무 의롭지도, 너무 악하지도의 말씀이 형평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의로운 행진을 계속 이어가야 하되, 왜곡의 역사가 한 순간에 올바르게 펴 질 수는 없을 것이며,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교회 공동체가 공적교회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세워나갈 것인가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본의 아니게 갈등하며, 미워하며, 원수맺기가 십상입니다. 진보다 보수다 하며 한 밥상에서도 얼굴을 붉히는 불상사가 생깁니다. 그러다가는 오늘 말씀처럼 스스로 망칠 수도 있고, 제명도 다 못 체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몇 년전 피로사회라는 책, 주제가 잇슈가 된적이 있었습니다.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사람들이 힘들어 하며, 피곤해 하는 것은 외부의 압력이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시 스스로 조바심을 내며, 열심히 살며 스스로를 착취하여 구원에 이르려는 거짓행복의 유혹 때문인데, 4혁명이니, 5혁명이라는 말 까지 나오면서 세상은 미래를 불확실하다고 봅니다. 미래는 당연히 불확실한 것 아닌가요? 불확실하지 않은 미래가 어디있었나요? 오늘 말씀14절에서도 하나님은 좋은 때도 있게 하시고, 나쁜 때도 있게 하신다. 그러기에 사람은 제 앞일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모른다는 것은 전도서의 지혜의 실마리입니다. 스스로 겸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지 않습니다. 3:11에서도

                     “. .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는 못

                             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12절에서 지혜의 삶으로 초청을 합니다. 12, 13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

 전도서의 주제는 허무와 기쁨입니다. 이 허무는 죽음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나 기쁨은 어디에서부터 오나요? 전도서 기자는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하는데,허무가 죽음으로부터 온다면, 기쁨은 생명으로부터 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헤입은자의 삶은 기쁨의 삶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17, 18절에서 거듭 기뻐하라고 강조하는데,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기뻐한다고 합니다. 피를 붓는다는 것은 제사를 드릴 때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처럼, 빌립보 교회의 예배, 신앙, 교회를 위해서는 생명 까지도 내어놓을 각오가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죽음을 뛰어 넘고 있습니다. 죽음을 이기는 이 생명이 사도 바울을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감옥에서 기뻐하게 하였습니다. 죽음의 허무가 바울을 이기지 못하고, 오히려 어려움 당하는 밖의 교회를 향해 기뻐하라고 합니다. 이 기쁨이 어디에서 올까요?

 예수님은 포도나무 이야기를 통해 생명이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농부이신 하나님 아버지, 참 포도나무인 아들 예수, 그리고 그 나무 줄기에 붙은 가지인 하나님의 백성이 계명을 지켜 머물라고 하는 것은 내 기쁨, 즉 생명의 기쁨을 넘치게 하려는 것이라 합니다. 엊그제 반디가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김방울집사님이 얼굴이 방글벙글합니다. 왜요?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 명예, 땅이, 권력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오늘 세상이 이 기쁨을 보잘 것 없게 합니다. 거짓영적뉴스를 남발합니다. 팩트체크를 해야합니다. 말씀으로 팩트체크 해야합니다.

 10여년 되었나요? 북한의 극심한 가믐 때문에 2,3백만이 죽어갔는데, 그 때 지하교회 공동체는 한 명도 죽지 않았다고, 예수원의 벤토레이 신부가 영상으로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콩 한 톨을 나누어 먹었다고 합니다. 모두 굶고있는 상황이어서 먹을 것이 하나라도 생기면, 자기나, 자기 식구들을 챙길텐데, 북한지하교회 성도들은 콩 한알이라도 생기면 먼저 교회로 가지고 와서 급한 교우 부터 먼저먹이며 나누었다고 합니다. 생명의 나눔입니다. 52어의 기적이 1990년대 극한 가믐에서 북한지하교회의 교우들을 살려냈습니다. 생명의 나눔입니다. 산에도 가믐이 오면 큰 나무들이 품고있던 물을 내어 아래 작은 나무를 먹여살린다고 합니다. 기쁨입니다. 내 땅, 내 집, 내 새끼가 아니라, 비록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자기의 뜻과 생각에 맞지 않더라도 자기 것을 포기함으로 함께하는 모두에게 생명을, 갈 길을 열어줍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그렇게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생명은 쟁취가 아니라 내어놓음입니다. 교회공동체에 이 내어놓는 생명의 기쁨이 없다면, 세상은 희망이 없습니다. 주님은 포도나무 이야기에서 이렇게 내어 놓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고, 그래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이 생명의 기쁨이 한국교회에 넘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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