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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믿음이 없느냐?(주현절 후 다섯째주, 2019년 2월10일)

하늘기차 | 2019.02.10 17:13 | 조회 200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2019210(주현절 후 다섯째주) 4:35-41

 풍랑을 잔잔케 한 이야기에 앞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대해 겨자씨 비유, 씨뿌리는자의 비유, 스스로 자라는 씨앗에대해 말씀합니다. 삼십배, 육십배, 백배를 맺습니다. 아주 작은 겨자씨가 자라 나무가 되어 새들이 날아와 쉴 수 있을 정도로 커집니다. 씨를 뿌리니 누가 돌보지도, 아무 수고도 하지 않았는데, 다 자라 열매를 맺습니다. 모두 믿음에대한 말씀입니다. 17장에서도 겨자씨 만한 믿음 만 있으면, 이 뽕나무 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기어라하면, 그대로 될 것이라고 하면서 무익한 종에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무익한 종의 모습이 믿음의 모습입니다. 식사 때가 되어 양을 치고 돌아온 종이 시장함에도 먼저 주인의 밥상을 차리고는 그 다음에 밥을 먹을 때, 주인이 그 종에게 고마워하겠느냐고 하면서, ‘우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합니다.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믿음입니다. 풍랑이 잔잔해 지고, 귀신이 쫓겨 가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에 눈을 돌리지 말고, 그 기적이 왜 일어났으며, 기적을 통해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주님이 뜬금없이 왜 뽕나무 더러 바다에 빠지라고 했는지를 헤아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제자들은 씨뿌리는자의 비유를 이야기하자 이해하지 못합니다. 모른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습니다. ‘내가 빵이다할 때에도 이해하지 못하고 수근거립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니 하얀 것이 천지에 깔려 있습니다. 만나입니다. 이게 무엇인지 몰라 수근거립니다. 믿음이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나는 나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긍휼을 베푸시는데, 모릅니다. 그 긍휼, 그 자비, 그 은혜를 모릅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역시 함께하는 이웃과, 교회 직장 속에서, 역사와 우주 속에 편만해 있는 마땅하고, 합당한 일들, 호흡들이 있는데도 모르고, 기적을 구하고, 수고하는 열심에만 천착합니다. 이미 예수님은 그 기적에서 떠나 다른 곳으로 가셨는데도 여전히 기적의 미련에 머물기 십상입니다.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던 중에 풍랑이 입니다. 헤르몬산이 있는 북쪽의 산악지대로부터 저지대인 갈릴리호수로 호수면의 기온이 상승하여 골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는 광풍이 분다고 합니다. 그럴 때 배들은 요동을 칩니다. 배에 물이 가득 찰 정도로 파도가 배를 덮쳤습니다. 베드로 같이 뱃일에 잔뼈가 굵은 제자들을 포함해서 배에 탄 사람들은 이제 죽게 되었다고 소란을 피우고 있는데, 예수님은 배 뒤쪽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베게를 벴다고 하는 것을 보면 잠을 제대로 자고 계십니다. 제자들이 겁에 질려 깊이 잠든 예수님을 깨우며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하자 예수님이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더러 고요하고, 잠잠하여라하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고요해졌습니다. 예수님이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고 말씀하시고 바람을 꾸짖으셨습니다. 이 꾸짖었다는 말은 3:12에서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칠 때, 귀신들에대해 엄하게 꾸짖으셨다고 사용되었으며, 또한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막아 서자 역시 꾸짖으셨다고 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온 세상 우주 만물을 인격적으로 보기도 하며, 혹자는 풍랑을 사탄이 움직여 배를 침몰시키려 했기 때문에 꾸짖었다는 좀 어색한 해석을 하려고 하는데, 풍랑을 잔잔케 한 이 기적 사건을 마가가 기록할 때, 마가는 왜 굳이 풍랑을 잔잔케 할 때, 사탄이나, 귀신에게 예수님이 노여워할 때 쓰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 보면, 단순히 바다의 풍랑이 아니라, 사람들을 침몰시키려는 세상권세 잡은 어두운 힘의 풍랑을 꾸짖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합니다. 마가복음이 A.D 70년경, 즉 이스라엘이 로마제국에의해 멸망할 때 기록되었는데, 아마도 그 당시 가장 기독교에대한 박해가 심하여, 바다의 풍랑 같이 급작스럽고 빠르게 심하게 마가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가 흔들리지 않았겠나 생각을 해 봅니다.

 예수님이 믿음이 없다고 하신 것은 불신앙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의심하는 것에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역시 갈릴리 호수에서 있었던 일인데,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의 배로 다가 가셨습니다. 모두들 유령이라 하며 화들짝 놀랍니다. 그 와중에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갈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여, 오라고 하니 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 예수님에게로 나아 갑니다. 그러다가 그만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것을 보고 무서워 물에 빠져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주님, 살려주십시오하고 외치자,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으며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고 말씀을 하십니다. 의심하였다고 합니다. 바람을 꾸짖으시고 나서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라고 하신 것은 불신앙이 아니라, 아무 것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양다리를 걸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이 바알 만을 섬겨서가 아니라, 바알과 하나님을 같은 산당에서 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믿음 안에 우상이 같이 자리하여 뒤 섞여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IMF를 통해 자본이 어떻게 한 나라와 백성 개개인의 삶을 풍비박산나게 하는지를 체험했습니다. 지금은 또 다른 것 같습니다. 평범한 청년들이 소박한 행복을 꿈꾸며 살아갈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자본이 개인의 삶을 파편화시켜, 사회에서 가족에서 공동체에서 점점 개별화 시킵니다. 각자도생의 삶을 사는 체제로 굳어가게 합니다. 이것은 모두를 고립시켜 세상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게 하며, 죽게합니다. 사물인터넷, A.I 혁명과 같은 4차산업혁명에대해 거론되는 상황에, 벌써 5차 산업혁명에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의 삶과 직결된 직장에대한 빠른 변화들을 미쳐 따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구촌 전체의 기후환경생태의 위기현상이 실제로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미국이 셰일석유생산을 본격화 하면서 중동에서 떠나면 국가 단위가 미국, 유럽, 동남아, 극동아시아로 나뉘어질 수 있다고도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이지만 근거가 없지도 않습니다. 이런 사회 변화가 우리에게 큰 풍랑으로 다가와 한 가족이 탄 작은 배를 덮치는 것은 순식간일 수 있습니다. 또한 무수한 난민들이 처했을 상황이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이 아니었겠나 하는 가슴 아픈 상황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로서는 남의 일입니다. 또 개인적으로 평생에 불치의 병을 품고 살아가야할 수도 있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또 가족이 한 사람의 잘못으로 풍비박산이 나기도 하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여 노숙인으로 절락합니다.

 이러한 현상들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여러분은 언제 두려운가요? 배에 물이 벌써 가득 찼다는 것을 보면,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위기가 닥쳐온 것 같습니다. 얼마나 놀랐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그 배에 주님이 타고 계십니다. 이 두려움을 해결해 줄 분이 계시다는 것 만으로도 위로를 받습니다. 주님이 바람을 꾸짖어 잔잔케 하시며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고 하셨는데, 마지막 절에서의 제자들의 반응이 흥미롭습니다. 41절 말씀입니다.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서로 말하였다. ‘이분이 누구이

                                 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가?’” 바다가 주님의 꾸짖으심으로 잔잔해지자 진짜 두려워 할 분이 누구인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나에게 닥쳐 오면, 그것 만 보입니다. 닥쳐 온 것이 커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괜찮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이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정말 두려워할 분이 누구인지를 제자들이 깨달은 것입니다. 이 두려움은 외부에서 힘으로, 빠르게 나를 충동하는 두려움이 아니라, 나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자발적인 경외입니다. 내적 두려움은 평화를 줍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낮춤, 자기 비움인데, 자꾸 창조주 하나님이 아닌 물질의 신에게 무릎을 꿇습니다. 어떤 작가분과 동행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작가분이 돈에도 인격이 있다고 하길래 그게 무슨 말인가 의아해 했는데, 돈이 사람을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하고, 분하게도 하고, 싸우게도 한다고 하는 말에 고개가 끄떡여졌습니다. 같은 물이라도 독사가 먹으면 독이 나오고, 젖소가 먹으면 우유가 됩니다. 내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의심의 샘을 파면 거짓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이고, 믿음의 샘을 파면 큰 두려움, 즉 내 안에서 솟아나는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으로부터 오는 신뢰가 회복될 것입니다. 이 경외심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줍니다. 이미 주님이 세상을 이기었습니다.

                      <밀물과 썰물>이라는 정호승 시인의 짧은 동화가 있습니다.

     밀물 때는 꽃게 잡는 아저씨들이 좋아하는 반면에 썰물 때에는 아이들과 아낙네들이 갯벌에서 조개, 낙지, 등을 잡을 수 있기에 좋아합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은 밀물은 은근히 썰물을 시샘합니다. 그래서 밀물은 썰물의 정체가 알고 싶어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썰물이 누구인지를 묻습니다.

   먼저 갈매기한테 물어보니, 그는 썰물이란 이름조차도 모른다고 했고, 촛대바위에게 물었더니, 머리가 돌이라 그런지, 모른다는 표시로 머리만 가로 저을 뿐입니다. 답답해진 밀물이 이번엔 소라와 조개에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한참을 째려보더니, 그놈이라면 말도 시키지도 마, 너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그 놈 때문에 우리가 매번 사람들에게 잡혀 먹히지 않겠어 합니다.

   밀물은 썰물이 어떤 녀석인지는 대충 알았지만, 확실히 알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 老松에게 물어보았습니다. 老松! 老松! 당신은 연륜과 지혜가 있으니 썰물이 누구 신지 아실 겁니다. 꼭 가르쳐주세요.

   썰물이라고! 넌 누군데! 밀물 이예요. 그랬더니 노송은 바닷가가 떠나가라는 듯이 웃어대다, 웃음을 멈추며, 밀물에게 꿀밤을 한 대 주면서 야! 임 마! 뉘 놈이 바로 그 놈이지 뭐야! 너와 썰물은 하나란다. 그러니 이젠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고 합니다.

     세상 광풍에 마음 나뉘어 무서워하지 말고, 스스로 나는 나이신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무릎꿇어 세상으로부터 오는 허구적인 두려움을 넘어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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