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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산 제물, 그 다음 (주현절 후 둘째주, 2019년 1월 20일)

하늘기차 | 2019.01.20 13:57 | 조회 183


               

                  거룩한 산 제물, 그 다음

2019120일(주현절 후둘째주)                                                    12:1, 2, 9-16

     지난주에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 이루어진 요단강도하는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를 어떻게 살아낼 지를 보여준 기적입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의 맨 앞에 선 하나님의 말씀 괘를 온 땅의 주권자이신 주님의 언약궤 고백합니다. 이것은 우상이 넘치는 가나안정착시대에 여전히 참 하나님은 우리 조상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신 여호와 하나님 뿐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냥 요단강을 건넌 것이 아니라 성결, 즉 자신을 구별하여 온전히 봉헌합니다. 이 온전히 드리는 성결을 롬12:1에서는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라고 합니다. 성결이라는 말이 구별한다는 것인데, 12:2절도 분별하라고 하지만, 이 분별이 윤리적으로나, 마음으로도, 자기 의지로 잘 안되는 바, 이 성별은 그래서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 예배의 봉헌을 통해 세상과 구별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별은 온전히 드림으로 성별일진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 온전한 드림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의 성결입니다. 우리는 이 성결을 따릅니다.

     교회공동체 성도는 장로로서, 권사로서, 집사의 직분자로, 성가대원으로, 구역장으로, 목사로, 교사로 평신도로서 우리는 이만하면 되겠지 하는 내 자의적인 생각이나 스스로를 기만하는 자기 만족이 아니라 각 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산 제물로 하나님 앞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지 물어 보아야 합니다. 특히 고기교회는 예배당 건축을 앞 두고 진정 이 변화를 통해 하나님이 고기교회공동체에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이 예배당 건축을 하나님은 기뻐하시는가? 이 건축을 통해 우리 교회 공동체 일원들 모두가 마땅히 받아야할 각 자의 은혜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 변화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나?라고 물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 즉 스스로 자기 희생을 통해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 앞에 서는 성결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나서야 사도 바울은 이어서 교회공동체에대한 아름다운 권면을 써내려갑니다

     기독교윤리를 풀어내는 12장 말씀에서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9, 17, 21절 말씀입니다. 거듭 선과 악에대해 말씀합니다. 이미 사도 바울은 롬 7장에서 선과 악으로인해 스스로 얼마나 피폐해 질 수 있는가 라는 것을 설파하며 여기서 자유로울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성령을 요청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을 감사해 합니다. 아마 우리는 평생 선과 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9절에서 악한 것을 미워하고 선한 것을 굳게 잡으라고 합니다. 17절에서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19절에서는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합니다. 기독교 윤리의 특이점은 선한 행함이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죽음과 죄, 악을 이기신 이김을 삶 속에서 확인하는 삶이라고 종종 말하였습니다. 요일5:4, 5입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다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승리

                     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믿음으로부터 오는 기독인의 윤리는 그래서 은혜입니다. 선물이구요. 감사입니다. 그런데 이 성도들의 삶의 실마리는 롬12:1입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이 봉헌이 없이는 은혜도 없으며, 감사, 기쁨도 허위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9절은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한다고 합니다. ‘사랑에 무슨 거짓이 있어할 수 있는데, 그러나 그 원어를 보면 연기자가 연기한다, 배우 노릇한다, 위선한다는 뜻입니다. 배우가 연기하듯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웃에게, 옆 동료에대해 무관심하며 사랑이 없으면서도 마치 배우가 무대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사랑의 배역을 연기하는 것처럼 남을 속일 뿐 아니라, 자기를 기만하여 자기 만족을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아주 오래된 기독교 영화 쿼바디스를 혹 보신 분들이 있지요. 이 영화에서 로마인인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유대인 여자의 공동체 모임에 우연찮게, 아니 사랑하는 여자를 쫓아 예배에 참여하는데, 예배가 진행되는 과정을 통해 사랑의 영적 기운이 넘치는 것을 보며 놀라움을 금하지 못합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하여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가?’라고 합니다. 초대교회는 거짓없는 사랑, 연기하는 사랑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로마시대의 기독인들은 극렬한 박해 속에서 죽음에 내 몰리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적으로 하나님께 내어놓아서 하는 사랑이 공동체에 끼어들 여지가 없었습니다.

     10절에서는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하라고 합니다. ‘먼저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합니다. 나중에 구하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모든 것 보다 먼저가 복음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먼저에서 은혜와 감사가, 평화와 위로가, 공의가 글자 그대로 하나님 나라가 세워집니다. 감리교의 원로이신 이현주 목사님은 노자49장에서 성인무상심(聖人無常心), 이백성심위심(以百姓心爲心)이라 하여 성인은 자기 마음을 따로 지니지 않고 백성의 마음으로 자기 마음을 삼었다고 하면서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는 일은 두 사람이 함께 노력해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둘 가운데 누군가 먼저 자기 마음을 비워 상대의 마음으로 자기 마음을 삼아야 한다고 하면서 누군가 먼저 시작해야한다고 합니다. 칼바르트는 이 본문에대해 단지 나 보다 상대를 더 나은 사람으로 높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형제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대속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으니, 그 형제 안에 임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바라 보며, 내 몸 이상으로 더 높여 사랑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어떤 주석은 10-13절 말씀을 사랑의 십계명이라고 하는데, 김치영 목사님은 특히 11절 말씀

                     “열심을 내어서 부지런히 일하며, 성령으로 뜨거워진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십시오.”라는 말씀에대해 주님의 우리를 향하신 압도적인 구원의 은혜에대해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변화되어 삶 전체가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에대해 헌신으로 응답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예배, 순종과 찬미, 환희와 사랑과 창조로 충만하였으나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며, 감사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니 본능과 욕망 안에서 삶의 내용도, 목적도, 방향도, 생명의 역동성도, 사랑도 모두 상실해 영적인 나태와 게으름, 권태와 태만이 들어차게 되었다고 합니다.

     칼뱅은 인간이 타락하면 두 가지 바위, 즉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망은의 바위영적인 나태의 바위에 부딪힌다고 합니다. 특히 기도에, 회개에, 성서를 읽는 일에 게을러 집니다.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죄 사함의 압도적인 은혜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모임으로 나태함과 게으름이 아니라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아야합니다. 또한 본문의 성령으로 뜨거워지는 것을 감성적인, 환상적인 엑스타시로 착각하면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과장된 열광주의에대해 경고하였습니다. 주여! 주여!하며 소리만 높이는 흥분된 열기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각자에게 함께 더불어 섬세하게 찿아오시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은총이 살아 넘쳐나야 합니다. 그러한 면에서 브루더호프 같은 공동체의 삶은 어린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 까지 장애인과 소수자들을 포함하여 여려움당하는 이웃과 피조 세계와 함께 모두가 서로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보며 인정하며 자연스럽게 평화입니다.

     끝으로 12절은 첫째 소망으로 즐거워합니다. 5:2은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는 의로움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려, 지금 여기 은혜의 자리에 나아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으로 즐거워합니다. 세상을 넘어, 마지막 선함의 완성을 바라보는 삶입니다. 종말로부터 다가오는 소망입니다. 1:5는 골로새교회가 보여준 믿음과 사랑이 소망에 근거한다고 할 정도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시간 넘어, 저 우주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계신 하나님에게 닿아있습니다. 그래서 딛2:13은 이 소망을 복되다고 합니다. 둘째 환난 중에 참습니다. 바울과 함께하는 교회들은 일상이 핍박과 환난이었습니다. 참는다는 원어의 뜻은 ‘~아래에서 굳게 머문다입니다. 회피하지 않고, 지금 되어지는 상황을 자기 자리에서 감당합니다. 주님이 그러하셨습니다.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그 아래에 굳게 머물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셋째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얼마 전교인 기도회 때에 영적으로 짓눌린 교회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답답하였고, 우리 교회는 지금 영적으로 어떤가 돌아보았습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쉬게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세상 짐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세상 짐 지느라 헛수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혜를 전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우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짐 지는 것에 일생을 소비하지 말고 멍에 메는 법, 영적짐을 지라는 것입니다. 주님에게 배웁시다. 어떻게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었는지. 주님은 십자가에 짓눌리지 않으시고, 겟세마네의 깊은 기도에 머물며 흔쾌히 십자가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저는 12절 말씀에서 시므온을 보았습니다. 시므온은 자기 만족의 경건이 아니라, 두렵고 떨림의 경건과 자기 열심이 아닌, 벽을 두텁게 쌓은 자기 의가 아닌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로움으로 기다림의 감격을 맛 보았습니다. 여러분! 기왕에 고기교회 공동체에 속하였으니 세상 짐에 짓눌리지 말고 고기교회가 지고 가야 할 영적 짐에, 특히 기도하는 짐을 주님에게 배워 흔쾌히 지고 갈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교회는 짓눌리면 안됩니다. 침묵하며 영적 짐을 지고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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