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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평화(성탄절,2018년 12월 25일)

하늘기차 | 2018.12.25 11:10 | 조회 221




                           땅에는 평화

20181225(성탄절)                                                                     2:11-14

   담장을 보면 간혹 갈라진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예배당도 사실 몇 군데 갈라진 곳이 보입니다. 이태훈 집사님께서 세로로 갈라지는 것은 좀 괜찮다면서, 가로로 갈라진 것이 위험하다고 하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왜냐하면 가로로 갈라지는 것은 기초가 잘 못 놓여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멀쩡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금이 조금씩 가다가 나중에 완전히 갈라져 존폐의 위기 까지 갈 수가 있습니다. 개인이나, 가정, 직장, 사회도 무수한 갈라짐, 분열, 싸움이 항상 상존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나쁘다고 할 수 없는것이 상호 간에 일치와 조화를 위한 과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청소년, 성장기 때에는 자기 정체성을 찿기 위해 심한 몸살을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성적인가? 외향적인가? 낙천적인가? 염세적인가? 명랑한가? 우울한가? 앞으로의 꿈? 등 복잡 다단한 것들로 인해 자기 자신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분열되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자기 분열의 극치를 사도 바울의 롬7:22, 23에서 봅니다.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에는 다른 법

                          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

                          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본다고 합니다. 법칙을 하나 깨달았다고 합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있다고 하며,

                  “,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

                          습니까?”라고 탄식을 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중요한 말을 합니다. 우리의 실존입니다.

   “이 죽음의 몸이라고 합니다. 싸움 구조 자체, 갈등 구조 자체를 죽음으로 표현했습니다. 평화가 없습니다. 가정 안에서도 이런 갈등과 분쟁은 흔히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 저와 집사람이 부부 싸움 하며 언쟁이 높아질라 치면, 아이들이 벌써 분위가 싸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아이들 중에 누가 아빠 마음이 아퍼!’ 그래서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것은 싸움이 아니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부 간에 싸우면 누가 먼저 화해의 손 길을 뻗치나요? 싸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화해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화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푸는 것에 익숙해지면 복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보면 가족 간에 이런 갈등과 분열이 부지기수입니다. 야곱과 에서를 보세요. 아예 뱃 속에서부터 싸우고 난리입니다. 태어나면서 동생이 형 발 뒷굼치를 잡고 나왔다구 해서 야곱입니다. 야곱과 에서는 일생을 싸우다가 극적으로 화해를 합니다. 삼촌 라반의 집에서 살다가 금의환향하지만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장정 400을 거느리고 온다는 소식을 접하는데, 전혀 흔들림 없이 형 에서에게 다가갑니다. 야곱도 가지고 있는 재산으로 용병을 구하여 앞장 세울 수도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얍복나루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기도하는 중에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하나님과 씨름하였습니다. 이겼게요, 졌게요? 완전 참패를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야곱의 엉덩이를 치는 바람에 엉덩이뼈가 탈골되어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졌습니다. 그러나 이겼습니다. 하나님에게 졌지만, 세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여전히 거꾸로 싸우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득바득 하나님과 싸워 이기는데, 세상에 매이는 것은 아닌지요? 야곱은 하나님에게 참패를 당했지만 에서를 향하여 절뚝거리며, 형이 치면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몸을 이끌고 에서를 향하여 다가가는데, 야곱의 고백이 기가막힙니다. 33:10입니다.

                      “. . .형님! , 형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듯하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완전히 내려 놓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도움 없이 야곱은 설 수 없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에게 내 몰려, 기꺼이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 하나님께 그동안의 자신의 모든 이기적이고, 영약하고, 얇삽한 삶의 자세를 내려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평화입니다.

   야곱의 성격을 이어 받은 11형제가 요셉을 시기 질투하여 요셉을 사지로 몰아 넣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이삭의 평화가 요셉에게 그대로 이어져, 모든 고난을 참고 견디어 이집트의 2인자의 자리에 까지 올랐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만나며 그렇게 고백합니다. 45:5입니다.

                      “ . .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

                               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

                               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압권입니다. 언젠가 성경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처음 모임에서 제가 창세기의 주제가 무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기억이 나는지요? 창세기 주제는 평화입니다. 압도적인 하나님의 평화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드러납니다. 자기가 스스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드러납니다.

   삼촌 아브라함과 조카 롯에게, 양떼가 늘어나 초지 문제로 갈등이 일어나자, 아브라함은 네가 먼저 택하라 하며, 좌 하면 우하고, 이 쪽을 택하면 저 쪽을 택하겠다고, 선택권을 조카에게 주는 배려심을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도 여전히 남과 북, 노사, 환경, 경제정책, 유치원, , ,이러한 분열,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지혜가 필요합니다.

   최근 글쎄다에서 윌리엄 포크너 라는 미국 작가의 소설 <압살롬! 압살롬!>을 읽었습니다. 초모더니즘 기법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소설의 화자와 시점이 수시로 바뀌며 쓰여지고 있어 좀처럼 그 소설의 중심 점을 찿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기법은 19세기 헉슬리의 <신세계>를 소망하던 서구 문명이 1, 2차 세계대전을 격으면서 완전히 무너져 내리면서 태어난 사조입니다.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논리적으로 바라보던 세계를 뒤집어 엎어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지금은 포스트 모던 시대로 넘어가 모든 것을 해체시키는데, 이러한 해체와 분열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미 창세기 바벨탑 사건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교만, 이기심, 탐욕, 폭력의 탑을 하늘 끝 까지 쌓아올리는 것을 하나님이 보시고 언어를 혼동시켜 서로 괴리되고, 분열되어 해체됩니다. 죄된 인간의 모습입니다. 스스로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탐욕과 폭력은 지금도 여전히 바벨탑 처럼 끝이 없습니다. 더 이상 인간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빨라지고, 더 힘이 강해져 갑니다.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평화가 없이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의 물질문명은 스스로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온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분열된 자아를 보면서 죽음의 몸이라 하며, 탄식하며 성령을 요청합니다. 인류의, 아니 나 자신의 분열, 괴리, 폭력, 갈등은 어디에서 오나요? 영적 상실, 하나님과의 분열, 괴리입니다. 어떻게 하면 세상이 하나님과의 화해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아니 세상 이전에 교회는 이렇게 모든 것이 해체되는 바벨탑을 쌓는 세상 속에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요? 한국 교회, 아니 세계 교회가 지금 까지 해 볼 것은 다 해 보지 않았나 싶습니다. 캐톨릭의 수도원 운동부터, 말씀, 기도운동, 봉사, 헌신, , ,수도 헤아릴 수 없는 프로그램들, 그런데 한 가지 않 해 본 것이 있습니다. 개혁교회가 무심하게 지나쳤던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도 어떤 뜻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카톨릭과 개혁교회, 국가의 위협과 폭력 아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쫓겨나니며 투쟁하기 보다는 평화로 수 백년을 지켜온 공동체입니다. 재세례파, 메노나이트, 후터라이트, 근대에 이르러 부르더호프, 아미쉬, 떼제, , , 특별히 신앙과 관련해 특별하다는 그 무엇을 하지 않지만, 그들은 일상 속에 매일의 경건과 하나님의 의를 세상속에서 지켜나갑니다.

   얼마전에 미국 뉴욕주의 메이플릿지 부루더호프에 살고 있는 박성훈, 최순옥 부부에게서 성탄 편지가 왔습니다. 참 반가웠습니다. 공동체의일상을적어 보내왔습니다. 지금 메이플릿지는 7년 전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심었는데 잘 자라 집집 마다 나무를 베어 트리를 만들고 있다는 들뜬 소식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마리아와 요셉과 마굿간 연극을 하는데, 동방박사가 타고 온 낙타가 마굿간이 낮아, 낙타의 혹이 걸려 들어 갈 수 없자, 낙타가 무릎을 꿇고 마굿간에 들어가 곱게 태어난 아기에게 경배하였다는 연극이야기를 들여주었습니다. 어제 우리도 유년부에서 머나 먼 은하계에서 왕따당하는 큰 별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동방박사들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멋진 역할을 한 아름다운 연극을 보았습니다.

   또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공동체 일원인 미리암이 암에 걸렷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는데,

                    “저는 지금까지 형제자매로 여러분과 함께 살면서 오늘같이 더불어 사는 삶이 이처럼 소                               중하게 느껴본 적이 없어요. 우리는 가끔 이 소 중함을 잊거나 형제자매를 진정으로 

                             존중 하지 않고있어요. 우리가 더 마음을 열어 형제자매를 한 몸으로 받아드리고 진실하                               게 사랑하 면 우리가 사는 이곳을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거예요. 난 여러분들 을 더 사랑                               하고 기쁘게 하나님나라를 향해 가고 싶다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홀로 사는 50살된 유치원 교사 이바라는 자매 역시 암에 걸렸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대강절에 모두 모여 트리를 장식하며 습니다

                    “나는 내 생명이 주어지는 날까지 가능하면 유치원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크리스마                               스가 다가 오고 있어요. 그 누구도 크리스마스를 막을 수 없어요.”라고 고백을 하며 아이                              들과 함께 성탄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렇게 사랑의 띠를 띠우며 삶을 살아갑니다. 공동삶을 살아갑니다. ...냥 삶을 삽니다. 함께 세상 폭력 속에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기뻐함을 입은 사람으로서 평화를 살아갑니다. 우리 고기교회가 일상의 평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 . .냥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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