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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랴의 노래((대강절 첫째주일, 2018년 12월 2일)

하늘기차 | 2018.12.02 14:36 | 조회 1433

                                

                                  사가랴의 노래

2018122(대강절 첫째주일)                                                          1:67-79

  사가랴는 68절에서 하나님께서 찬양받아야 할 이유를 당신의 백성을 돌보아 속량하셨기 때문이며, 69절에서는 능력있는 구원자를 자기의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다고 하는데, 이 표현은 삿2:16주님께서는 사사들을 일으키셔서, 그들을 약탈자의 손에서 구하여 주셨다는 것처럼 외세에 굴복할 위기에 처한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어떤 한 사람을 구원자로, 해방자로 일으켜 세우셨다는 것과 같습니다. 71절로 넘어가면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여기서 원수는 피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입니다. 당연히 로마제국과 그 추종자들이며, 성전을 중심으로하는 기득권세력들입니다. 그리고 72절 이후에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통해 이어지는 축복을 상기시켜 주는데,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계약백성으로서 공의와 거룩한 백성의 삶을 찬양합니다.

   이 본문은 구약의 시편이나 예언서의 구절들로 구약적인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표현하지만, 엄연히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그 예언의 성취를 보는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 고백입니다. 그러구보니 생각이 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 직전, 1:6에서 제자들이 한 말이 떠오릅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라고 묻는 모습 속에, 구약 전통의 하나님 나라, 즉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할 메시야가 곧 오리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지고, 그리고 그 분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세례요한 조차도 구약 전통에 따른 대 파국을 기다렸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오실 그 분이 당신이냐?’고 물어 보았을 정도인 것을 보면 사가랴의 노래 속에 담겨있는 원수들을 쳐서 물리치고 싸워 승리하리라는 구약전통의 민족적인 구원과 메시야대망은 당시 초대교회 공동체의 일상 속에 여전히 녹아들어가 있는 것을 봅니다.

   그렇다면 왜 교회공동체 내에 아직도 구약전통이 계속 이어지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이스라엘신앙의 출발이 출애굽에서부터이기 때문입니다. 신구약에서 출애굽의 기억은 거듭됩니다. 출애굽은 단지 종교적인, 영적인 해방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적인 해방이었고, 그 전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공동체 속에서도 계속해서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전통이 한국 교회에서는 사라진 것 같습니다. 성경을 자기 편의대로, 편협하게 골라서 읽으니까요? 그러니 종교적 울타리 안에 갖히어 이제는 벗어나기 매우 힘든 지경에 이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십자가와 부활의 교회공동체는 구약 전통에 따라 예수를 힘입어 로마제국과 로마에 붙어서 살아가는 기득권자들을 대상으로 투쟁하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들 속에는 열심 당원들이 적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홍해가 갈라지듯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령의 강력한 역사, 나아가 이전의 어느 종교운동과 단위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교회공동체의 태동에 있습니다. 교회공동체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공동체 신앙, 새하늘과 새땅의 비죤을, 그리고 참 평화와 위로를보았던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그동안의 지리했던 독립 투쟁, 금욕 운동, 성서 연구, 제사의식, , , 등 모든 당대의 신앙 운동, 종파운동을 넘어 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그렇게 자신이 평생을 추종하며, 누렸던 유대교를 떠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78에서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하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말씀은 원수를 진멸하여 승리하는 구약의 전통에 따라 읽혀지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에 따르는 부활의 소망으로 바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대에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도 성서의 바탕에 깔려 있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정황을 간과해서는 안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바라보아야 합니다.

   구약의 전통에따라 이방과의 적대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사가랴의 시 전체를 다른 관점에서 보게하는 구절이 바로 76, 77입니다. 이것은 전혀 다른 종교적 인 변화, 패러다임의 전환입니다. 누가는 3:5에서 이사야를 인용하면서 4절에서 광야에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어,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할 것이라고 말씀을 선포하는데, 6절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라고 확정을 짓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구원을 광야의 소리를 통해 듣게 될 때에, 감추어있던 진리, 정의와 평화, 하늘의 위로를 눈으로 보고 만지게 될 것이며, 이 아이가 바로 그 구원을 볼 수 있도록 준비하고, 길을 터 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사가랴의 탄생이야기는 사가랴가 자신의 제사장 역할에 따라 성소에서 분향을 하는 일상 중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래서 더 와 닿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반복적이고, 규칙적이어서 지루할 수도, 무료해질 수도 있는데, 아마 사가랴도 그랬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날마다 새로워지며, 날마다 새로운 의미를 주시며, 새 힘을 달라고 날마다 기도합니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일상을 통해 세워지는 것입니다.

   일상을 일상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은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이 그렇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와 바위를 쪼개어 내신 물, 구름기둥과 불기둥, 그리고 성막과 회막. 이것이 이스라엘의 일상이었습니다. 날마다 입니다. 교우여러분, 날마다!입니다. 한 주일 건너 뛰고가 아니라 매 주입니다. 주일 아침 예배로부터 저녁예배에 이르기 까지. 그렇게 성도들의 일상입니다. 가마솥에 물을 끓일 때 장작을 넣었다 말다 하면 물이 끓지를 않습니다. 신앙의 일상도 그렇습니다. 나오다 말다 하면 물이 끓는 비등점에 이르지 못하는 것처럼, 신앙의 깊은 자리로, 은혜의 깊은 바다로 참 위로, 참 평화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누가는 사가랴와 앨리사벳의 일상에대해 1:6에서

              “ 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어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율을

                     흠잡을 데 없이 잘 지켰다.”라고 하는데,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것에대해 누가는 계명과 규율을 잘 지켰다고 합니다. 계명은 말씀과 명령을 뜻하고, 규율은 종교적 의식과 제도인데, 흠잡을 때가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새로움, 새 힘, 새 뜻의 실마리가 생깁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일상입니다. 아주 평범한 주님 안에서의 삶 속에 빛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입니다. 2장에 등장하는 평생 성전에 머물러있는 시므온과 안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누가는 이렇게 규칙적인 일상의 일들을 간과하지 않고 조명하고 있을까요? 사마리아여인과 예수님의 대화가 생각납니다. 당시의 부패한 예루살렘의 종교행위를 사람들은 조롱하였습니다. 지금의 교회가 조롱을 당하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무너진 유대교에 개의치 않고, 규례와 계명을 쫓았는데,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들을 의롭다고, 다시말해 인정하셨습니다.      사가랴의 노래는 한 아이에대한 노래인데, 1:66에서 "이 아기가 대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라고 물으며 시작이 됩니다. 이 말은 당시 사가랴가 살고있던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여러분은 아이들을 키우며 이런 소리를 들으면 어떤가요? 기분이 좋은가요? 아니면 가슴이 덜컹내려 앉지 않나요? 그런데 66절 뒷부분을 보니 주님의 보살피는 손길이 그 아기와 함께 하시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동네에 입소문이 난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에게향하는 주님의 보살피는 손길이 느껴지시는지요?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말씀 그대로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의해 그 아이가 어떻게 자라가는지 느껴지는가 말입니다. 느껴진다면 그것은 믿음입니다. 불안한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지 마세요. 염려 놓으세요. 내 아이입니다. 엄마, 아빠의 아이입니다. 어디를 가겠나요? 다른 것을 보지말고, 하나님이 아이와 함께하고 계신 손길을 보아야지요? 세례 요한은 그렇게 자랐을 것입니다. 그것이 확실한 것은 누가가 사가랴와 엘리사벳에대해 계명과 규례를 이야기 했기 때문입니다. 늙은 노부부의 평생의 일상입니다. 요한은 주님의 보살피는 손 길 안에서 잘 자랐습니다. 전혀 지루하지 않다니까요?

   사가랴의 노래는 자식에대한 노래입니다. 이스라엘과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태어날 아이와 함께할 것인지에대해 노래합니다. 누가는 통상 당시에 불리어지던 여러 종교 단체, 집단들, 가정의 일상에서 불리어지던 찬양의 싯구에 76, 77의 메시지를 넣었습니다.

           “아가야, 너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릴 것이니, 주님보다 앞서 가서 그의 길을

                 예비하고, 죄 사함을 받아서 구원을 얻는 지식 을 그의 백성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7677절이 단지 구약의 하나님, 이스라엘 민족의 전쟁의 신, 대적을 물리치는 신을 찬양하는 시일 수 밖에 없는 시를 온 세상의 피조물을 구원할 참 메시야에대한 대망의 시로 바꾸어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78, 79는 단지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온 인류와 피조물, 우주와 역사, 자연과 인간 모두를 어두움에서 빛으로 인도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요단강으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올 때, 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선언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개인의 아픔과 고통을 넘어, 개인의 개별적인 신앙의 좋다, 나쁘다를 넘어, 교회공동체 정신으로 세상과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나라와 민족과 자연 생태계와 이웃들의 삶으로 이어지면서 함께 사랑의 띠를 띠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이며, 교회공동체의 면모입니다. 따로, 그러나 같이 조화로이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 머물며 일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원의 신비요, 생명의 신비 입니다. 모든 피조생태계가 그렇게 조화로운 것입니다.

         사가랴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대강절의 일상 속에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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