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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저항과 공명 (창조절 열둘째주일, 2018년11월18일)

mungge | 2018.11.18 17:50 | 조회 239

예배: 저항과 공명 / 계시록4:8~11

 

요한계시록에 대한 오해

요한계시록 하면 관련해서 떠오르는 문구, 혹은 자주 듣는 낱말들은 무엇이 있나요? 종말, 휴거, 적그리스도, 666, 심판, 재림 등이겠지요. 그러나 요한계시록을 자세히 읽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이 단어들 중에 휴거, 적그리스도라는 말은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참 읽기 쉽지 않습니다. 지금껏 신앙생활을 하면서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읽은 것은 신학대학원 다니면서 요한계시록 강의를 들을 때 였습니다. 그 전까지 요한계시록은 성경 66권중 하나였지만 왠지 들춰 보아서는 안 되는 금서와도 같은 읽기 두려운 책이었습니다. 저에게만 그런 느낌을 준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교회 2,000년 역사 속에서 요한계시록이 위험하다고 여긴 유명한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종교개혁의 아버지 마르틴 루터는 이 책은 사도의 글도 아니요, 선지자의 글도 아니다. 나는 성령이 이 책을 만들어내셨음을 전혀 발견 할 수 없다이 책은 그리스도를 가르치지도 않고 그리스도를 알려주지도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루터는 요한계시록, 야고보서를 복음서와 바울서신보다 열등한 책이라 평가했습니다. 루터뿐 아니라 니체도 유명한 극작가 버나드 쇼도 요한계시록을 혹평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신학자들뿐 아니라 많은 문학가, 철학가들에게 미움을 받아 왔고, 우리들에게는 왠지 모를 두려움과 공포심을 주는 성경이었습니다.

제가 중1휴거라는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그때 교회에서 청소년부, 청년부가 함께 단체관람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를 본 후의 후유증은 대단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어머니와 다른 형제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버지와 저만 남아 있는 악몽에 한참동안 시달려야 했습니다. 6식구 중 스스로 날라리 신자라고 말하면서 술, 담배를 즐겨하셨던 아버지와 믿음이 약하다고 느낀 저만 남기고 나머지 4식구가 휴거되는 꿈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신학대학원을 다니기까지 26년여 동안 요한계시록을 멀리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런 두려움과 공포는 큰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와 함께 요한계시록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초기 기독교와 요한계시록(배경 살피기)

요한계시록은 특별한 대상에게 주어진 편지글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쓴 글일까요? 요한이 교회를 향해 쓴 글입니다. 그러면 어느 교회를 향해 쓴 글일까요? 111절을 읽겠습니다. 이 책은 일곱 교회, 곧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썼고, 이들 교회 구성원들이 회람하며 읽기를 바랐습니다. 요한계시록은 2018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상징적인 표현이 너무 많아 이해하기 아주 어려운 책입니다. 그렇다면 일곱 교회의 구성원들이 이 글을 읽었을 때는 어땠을까요? 우리와 같은 반응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지금의 우리와는 다르게, 그 당시 일곱 교회 성도들은 요한의 이 편지가 어떤 내용인지 금방 알았습니다. 우리에게만 수수께끼였을까요? 아닙니다. 일곱 교회 밖에 있던 사람들은 아마도 지금의 우리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다. 이게 묵시입니다.

묵시는 진리를 함부로 드러내 놓지 않습니다. 비밀이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은밀하게 나타납니다. 21세기의 우리와 1세기 교회 바깥의 사람들에게 십사만사천명과 666이라는 숫자의 뜻이 감추어져 있지만, 일곱 교회 성도들은 이 편지를 읽자마자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알았습니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 누구를 말하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일곱 교회 성도들은 대번에 알아듣고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이 편지글을 읽어 나갔을 것입니다. 왜 일곱 교회 성도들에게만 이 상징의 언어들이 읽혀질까요? 이들은 박해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탄압하고 잡아 죽이려는 사라들의 눈을 피해 살아야 했습니다. 저 멀리 팔레스틴이라는 변방에서 예수라는 청년이 삶으로 보여준 하나님의 나라와 로마권력에 의해 십자가의 죽임당함, 그리고 3일만의 부활의 이야기를 믿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예배하고자 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목숨을 내 놓는 일이었습니다. 213절을 읽겠습니다. 안디바는 예수의 이름을 신실하게 믿고 증언하다가 죽임 당했습니다. 이 편지글, 요한계시록을 쓰는 요한도 이 믿음과 고백, 증언 때문에 밧모섬에 투옥되었다고 19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의 이야기를 대 놓고 쓸 수 있겠습니까? 신앙공동체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만 아는 기호와 상징으로 예수에 대한 비밀글을 써야지요. 그리고 그 비밀글은 현재의 핍박을 견뎌내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글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묵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낱말이지만 약간 다른 어조로 우리 새번역 성경에서는 계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1:1; 22:20) 계시는 곧 가까운 미래에 감추어진 것이 드러난다는 뜻을 더 강하게 담고 있습니다. 묵시와 계시 모두 현재의 악이 곧 그 끝을 보이고 있으니, 너희는 참고 끝까지 신앙을 지켜라. 그러면 너희들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의 새 세상이 열릴 것이다.” 라고 희망을 주는 글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현재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감추어진 언어로 그들의 신앙을 격려하며 쓰는 편지글이자 묵시이자 계시의 글입니다. 그래서 이 요한의 편지글을 읽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알았습니다. 비록 지금은 악의 세력이 강하고 죽음과 폭력과 불의가 자신들을 위협하고 있지만, 곧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오셔서 이 모든 불의와 억압의 현실을 뒤집어 놓고 심판하시고 자신들을 구원하리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현재의 구체적인 역사 상황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고 도전하는 이 글은 그래서 또한 예언의 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편지글, 묵시, 계시이자, 예언의 글입니다. 먼 미래의 일이 궁금해서 미래에 일어날 일을 환상으로 보고 쓴 글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과 문제로 인해 현재의 관점에서 쓰여진 글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이 하나 더 생깁니다. 왜 예수를 믿고 예배 하는 일이 죽임을 당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 될까요? 요한계시록이라는 비밀 편지글을 받았던 일곱 교회는 모두 소아시아에 있던 교회들입니다. 지금의 터키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당시 로마제국의 식민지였습니다. 그것도 아시아 지역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입구의 식민지였습니다. 로마는 일곱 교회중 하나가 있었던 에베소를 당시 제국내 3번째로 큰 도시로 만들었습니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모두 지중해를 바라보는 해안에 접한 항구도시여서 상업, 종교, 정치의 중심지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곳 소아시아 지역 전체에서는 황제숭배가 강요 되었습니다. 황제에게 충성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그 지역만이 정치적으로 큰 특권을 누리고, 경제적으로 큰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일제시대때 친일파처럼 소아시아 지역에서는 경쟁적으로 황제숭배를 받아들였고 일상에서 충실하게 따랐습니다. 황제숭배는 로마의 황제만이 이 땅과 역사의 주인이라고 고백합니다. 로마황제가 전쟁과 혼란의 땅을 그의 지혜화 힘으로 평화의 땅으로 바꾸었다고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로마황제만이 참된 신이고, 인간의 경배를 받기에 유일한 존재라고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소아시아 사람들은 로마황제의 신전을 각 지역마다 세우려고 했고, 그 신전 안에서 지역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의회를 열고, 상업의 조합원들은 연례회의를 하고, 도시의 주민들은 축제와 황제예배를 일상적으로 드렸습니다. 더구나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기능까지 신전에서 일어났으니 소아시아 사람들 삶의 중심은 로마황제 신전이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 소아시아 주민들이 로마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고, 그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질서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에서 도저히 어울리지 못하는 이상한 무리들이 생겨 난 겁니다. 아니 어울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질서를 거부하고 사는 이들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과 예수 이외에는 없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이들은 단호하게 황제숭배를 우상이라고 불렀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관심은 어떻게 이 힘든 세상에서 벗어나 휴거가 될까가 아니라, 황제숭배라는 거짓우상이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로,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였습니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거짓우상 황제신상이 있는 신전에서 벗어났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일곱 교회 중에서 유일하게 꾸지람을 받지 않은 두 교회가 있습니다. 서머나와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아시아의 꽃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도시 서머나에 있던 교회는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결심하자, 환난과 궁핍함을 당합니다(2:9) 빌라델비아 교회는 힘이 약합니다(3:8). 능력이 작아졌다는 말입니다. 두 교회 모두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힘들어졌습니다. 황제가 아닌 하나님만을 믿고 예수님만을 따르겠다고 결심하자 자연스럽게 따른 것이 경제적 궁핍의 어려움이었습니다. 이제 이해가 되시죠. 황제숭배를 끝까지 거부하게 되니 이들에게 죽음에 앞선 닥친 고난이 경제적인 문제였습니다. 신전에서 벌어지는 어떤 회의도 참석하지 않았고, 어떤 제사음식도 먹지 않고, 어떤 물건도 사지 않았고, 어떤 축제에도 참여하지 않았으니 그들 스스로 가난해진 겁니다. 그러나 이 두 교회는 이겨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교회는 유일하게 책망을 받지 않고 칭찬과 격려의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예배의 두 차원, 하늘과 땅

일곱 교회가 신앙고백을 위해 삶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택한 것이 가난이었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예배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황제는 이 우주와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참된 주님이 되십니다. 그러니 황제숭배가 거짓임을 드러내고, 하나님만이 참된 주님, 구원자이심을 고백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택한 것이 예배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 이 편지글을 읽고 있는 소아시아 교회의 교인들에게 예배는 저항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가장 분명하고, 강력한 메시지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였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2장 안에는 무수히 많은 예배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찬양과 경배의 메시지가 이곳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헨델뿐 아니라 많은 시인과 예술가들이 요한계시록에서 영감을 받아 성가를 만들고, 성화를 그렸나 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도 예배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잠시 눈을 감아 보시고 제가 말하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하늘 문이 열리면서 나팔소리가 들립니다. 하늘 위에 보좌가 가운데 하나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 한 분이 앉아 계십니다. 그 분의 모습은 보석처럼 빛납니다. 보좌 둘레에 비취옥 같아 보이는 무지개가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분 둘레에 흰옷을 입고 금 면류관을 쓴 24명의 장로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앞뒤에서 온통 눈으로 가득 달려 있는 여섯 개의 날개를 펄럭이는 네 생물이 쉬지 않고 외칩니다. ‘거룩, 거룩, 거룩하십니다. 전능하신 분, 주 하나님! 전에도 계셨으며, 지금도 계시며, 또 장차 오실 분이십니다.’ 이제 24장로가 자신들이 썼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내려놓으며 외칩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하나님, 주님은 영광과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만물은 주님의 뜻을 따라 생겨났고, 또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눈을 떠 볼까요. 여러분들이 상상 속에서 그려진 모습이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하늘의 예배입니다. 어떻습니까? 가슴 벅차지 않았나요? 손이 떨려오지 않나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온 우주를 울리는 심장박동입니다.

요한은 일곱 교회에 황제숭배에 저항하는 진정한 예배를 격려하기 위해서 환상을 통한 하늘의 예배를 보여준 것입니다.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습니다.”(4:1) 하늘과 땅은 동일한 역사의 두 차원입니다. 하늘은 우상 숭배를 거부한 희생자들과 성도들, 죽임당한 약자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세계이고, 땅은 악인과 압제자와 우상 숭배에 저항하는 이들 십사만사천명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14:1~5). 지금 우리가 드리는 땅의 예배는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우주적인 예배의 공명입니다. 예배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통로입니다.

 

이천 년전 요한은 계시록을 통해 우리를 진정한 예배로 초대합니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예배를 통해 로마제국에, 황제우상숭배에, 악한 세력이 힘을 발휘하는 땅의 질서에 목숨을 걸고 저항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배를 통해 어떤 우상숭배에 저항하고 있습니까? 지금 깨어서 보십시오. 어떤 것이 하나님 자리에 앉아 스스로 경배 받으려 하고 있습니까? 지금 정의와 사랑과 생명과 평화를 위해 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우상은 무엇입니까? 현재 사회질서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돈과 권력, 거짓된 욕망 아닌가요. 동포요 한 형제인 북에 대한 증오심과 불신을 조장하며, 북한에 동조한다는 이유만으로 몸이 불편한 김성윤 목사님을 3년동안 감옥에 가둔 국가보안법 아닌가요. 75미터 높이의 굴뚝에 두 명의 노동자가 1년 넘게 올라가 있는데, 이들에 대한 무관심으로 살아가는 우리안의 이기심 아닌가요. 여전히 세월호 참사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가슴 아파하는 유가족들에게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손가락질하는 이 사회의 뒤틀어진 모습 아닌가요. 예배에 대한 기쁨과 기대감보다는 일상의 피곤함과 분주함을 핑계로 예배에 나아오지 못하게 하는 우리 안의 나태함 아닌가요?

 

진정한 예배초대에 열린 마음으로, 가난한 마음으로 나아오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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