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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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성장과 종교 중독 사이에서..(창조절 열한째주일,2018년11월11일)

하늘기차 | 2018.11.17 10:26 | 조회 244



                    신앙 성장과 종교 중독 사이에서..

201811월 11(창조절 열한째주일)                                      요4:21-26                             

1.인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엄청 부담되는 이 자리를 허락해주신 <하나님과 고기교회에 감사합니다!>

라는 말씀은 못 드릴 것 같아요~ 너무 많이 떨리네요.

 

2. 소개

우선 제 소개부터 간단히 하겠습니다.

저는 상계동 생명사랑교회에서 온 채 경숙 장로입니다.

작년과 올해 두 딸이 차례로 결혼해서 든든한 사위를 둘이나 얻었구요,

지금은 교인이기는 하지만 신자는 아니라면서 한 달에 한번 교회에 출석해주는 걸 엄청 생색내는 남편과 단 둘이 살고 있습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생명사랑교회는

6년 전 담임목사님의 재신임 문제로 내부의 갈등이 생겨

모교회를 떠난 60여명의 교인들이 모여 눈물로 만들어낸 작은 교회입니다.

맨손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아파트 상가 지하에 예배 처소를 만들고

교육부 전용공간을 조금씩 확보해 가면서,

언젠가는 쾌적한 화장실과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넓은 마당이 있는 교회에서 자연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상상하고는 합니다.

고기교회에서 설교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교회 홈페이지를 처음 방문 했을 때,

~ 우리가 꿈꾸는 교회의 모습이 이런 곳인데.. 하면서 얼마나 부럽던지요.

단지 마당 있는 전원 교회여서가 아니라,

지역과 함께하는 여러 활동과 성도님들의 진솔한 삶이 신앙과 어우러지고,

생명사랑교회가 추구하는 작지만 건강한 교회, 평신도 중심의 사역, 선교 사명에 충실한 교회를 이미 실천하고 있는 본받을 만한 교회여서 더욱 그랬습니다.

3. 본론 - 믿음과 중독 사이

평신도 강단 교류의 올해 주제가 종교중독과 관련하여

그리스도교의 본질에서 너무 이탈한 한국교회와 교인들의 신앙을 점검하고

바로 알고 옳게 믿도록 돕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주제를 듣고 그동안 막연히 거부감을 가졌던 열성적인 신앙인들의 부정적인 모습들이 떠오르더군요.

같은 성경을 보고 그 성경이 보여주는 같은 하나님을 믿는데, 왜 드러나는 모습은 이렇게 다를까?

최근 몇 차례에 걸쳐 시사 프로그램의 단골 메뉴로 등장한 은혜로 교회, 사랑의 교회, 명성교회 문제를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봐야할까?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국기까지 들고 광장에 모이는 그리스도인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지? 또 하나님의 이름으로 신앙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폭력과 편가름, 배척을 어떻게 이해하지?

그 안에 있는 교인들은 본인들의 믿음이 참 믿음이라고 확신하고 있지 않을까?

나 역시 아주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나의 신앙이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잘못된 신앙의 가치로 인해 종교중독으로 보이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기본으로 돌아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즉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존재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해보려고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타인을 대하는 태도, 나 자신의 삶의 기준이 바로 설 때 신앙 성장과 종교중독을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말이죠.

 

( 본문 요한복음 4:21~26 )

 21.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여자여, 나의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 위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닌 데서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것이다.
22.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을 예배한다. 구원은 유대 사람에게서 나기 때문이다.
23.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24.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25.  여자가 말하기를 "나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압니다. 그가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하니
26.  예수께서 "너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다" 하고 말씀하셨다.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이 만나서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이 본문 내용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눈여겨보고자 하는 것은 이 사마리아 여인의 변화 과정입니다.

유대인들이 상종하기를 꺼리는 사마리아 사람에다가,

남편이 여섯이나 되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아무도 우물에 나오지 않는 정오에

마실 물을 길러 나온 이 여인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구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가 옳게 예배하고 있는지 예수님께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다

예배드리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참된 예배이다

네가 기다리는 메시아가 나다라고 말입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진리의 근본이신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나누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영적 차원이 결여되면 강의나 교육이 되고, 진리가 결여되면 맹목적인 중독이 되기 쉽겠지요.

 

이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동안 혼란스러웠던 자신의 삶과 신앙을 다시 점검하게 됩니다.

신앙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예수님을 만나 해답을 얻습니다.

예배의 대상을 명확히 알았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예배의 행위가 어떠해야 하는지 깨닫고 실천하기에 이릅니다.

예배드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로마서 12:1 에는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라고 하셨고,

아모스 5:21~24 에서는  “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성회로 모여도 기쁘지 않다.  번제물이나 곡식제물도, 화목제로 바치는 살진 짐승도 거들떠보지 않겠다. .....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신 예배는

성전 안에서가 아니라 성전 밖 세상 속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드려져야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죄인처럼 숨어 살던 사마리아 여인이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난 후,

신앙의 본질을 제대로 깨닫고, 동네로 들어가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섰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제대로 만난다면 성전 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들어가서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지 않을까요?

 

1)세상을 향하여- 생명, 평화, 정의

 

극단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그리스도 교회가 이웃사랑을 줄기차게 외치면서도 동시에

배금주의와 지독한 집단 이기주의적인 행태까지도 주저하지 않고 있으며,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신도가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교회 안에서는 천사요 밖에 나가면 악마로 행세하는 이중인격자

라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닌 것이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교회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그리스도교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하나의 이익집단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교회가 사회에서 기대하는 역할을 하기는 커녕 오히려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기준에 현저히 못 미칠 뿐더러, 오히려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고,

잘못을 지적하는 사회의 비판을 <사탄의 박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서

도대체 왜?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는 멀쩡한 사람들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선택하게 했을까?

 

제 생각에는 그들이 진리가 결여된 영적 신앙에만 집착한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결여된 진리는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저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몸으로 보여주신 생명과 평화,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고기교회 홈페이지를 둘러보다가

<희년을 맞이하여 고기교회가 드리는 공동 기도문>을 보았습니다.

생명의 하나님에게, 정의의 하나님에게, 평화의 하나님에게 드리는 기도문을 보면서, 굳이 이 교회에서 생명, 평화,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본문을 바꿔야 하나? 고민도 했었는데,

오히려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함께 나누기가 더 좋겠다, 싶었습니다.

 

고기교회 교인들은 너무나 잘 알고 계시듯이

<생명, 평화, 정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보다 먼저 구하라고 하신 그 나라와 그 의에 가장 합당한 가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고, 예수님의 삶이 그러셨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세상은 우리에게 세상의 가치 기준에 따라 살라고 끊임없이 우리를 압박합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라고 오늘도 파이팅을 외칩니다.

그것이 권력이든, 명예든, 재물이든..

세상이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집과 차의 크기, 사회적 지위와 학력, 직업-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느냐 인 것 같습니다.

그것으로 사람대접 받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기준에 좀 더 다다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고 능률과 업적을 올리기 위해, 효율과 합리라는

아주 그럴듯하게 포장된 말로 세상에서 소외시킨 사람들의 눈물에 무심합니다.

우리는 능력에 따라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남녀의 차이, 학력의 차이, 지위의 차이가 차별이 되어도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갑니다.

오늘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 폭력과 차별의 대상이 내가 아닌 것에 감사할 뿐이고, 그 피해자들의 아픔은 외면합니다.

미친 집값을 비판하면서도 내 집값은 오르기 바랍니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사회복지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내가 세금을 많이 내야한다면 싫어합니다.

내가 좀 더 편해지고 이익이 된다면

남들도 다 하는 약간의 불법과 편법은 괜찮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자본의 가치는 높게 평가하면서 노동의 가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이렇듯 우리 안에는 끊임없이 세상적인 속성들이 꿈틀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말의 고백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던 삶을 내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세상이 원하는 <더 많은 소유>가 아니라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분명한 기준을 우리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그럴 듯한 핑계거리로 우리의 삶을 흔든다 해도

억압과 착취, 편견이 아니라 생명을,

폭력과 파괴, 편가름이 아니라 평화를

차별과 편법, 불의가 아니라 정의를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이 기준이 흔들렸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교회 밖 악마가 되고, 배금주의에 물든 천박한 기독교인이 되고,

시사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된 것 아닐까요?

 

2)타인을 향하여- 사랑, 나 자신을 향하여- 귀족적 자의식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

- 남에게는 봄바람 같이 나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즉 타인에게는 따뜻하게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대하라는 채근담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 저부터도 거꾸로 행하는 모습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타인을 대할 때의 기준이

봄바람같이 따뜻한 사랑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확하고,

그동안 들은 말씀이 넘치고 넘쳐서 굳이 이 자리에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더불어서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보다

더 엄격하고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교회에서는 권위 있는 장로님, 고상한 권사님, 교회 봉사에 열심인 집사님들이

교회 밖에서는 비겁하고, 이기적이고, 속 좁고, 교만하고..

특히 열심히 산다는 핑계로 너무 악착같이 돈 버는 일에 매이거나,

돈 앞에서 인간관계도 품위도 내버리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저 역시 돈 문제와 마주할 때 신앙의 기준이 너무 쉽게 흔들리곤 합니다.

 

사실 제가 내일 이사를 하는데요.

두 딸이 결혼한 후 봄부터 집을 팔고 은행과의 공동명의에서 벗어날 계획을 세웠는데, 여름이 되어서야 팔게 되었어요. 17년을 살면서 참 순탄하게 살았던 집이라 미련은 있었지만, 이제 때가 되었다 싶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중년이후의 삶을 기대하면서 계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중도금도 받기 전에 계약금으로 받은 돈보다 더 많이 집값이 올라 버린 거예요. 분명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이게 뭐지? 해약해야하나? 위약금을 물어주더라도 해약하고 더 비싼 가격에 팔면 더 받은 돈으로 건축헌금도 하고 차도 바꿀 수 있을텐데... 어쩌지?

계약할 때는 우리 집을 산 젊은 부부에게 이 집에서 좋은 일 많으실 거라고 축복하고, 부동산 사장님께도 수고 하셨다고 온갖 교양 있는 척 다했는데, 집값이 오르니까 괜히 심술이 나고 원망이 생기더군요.

그렇게 고민하는 저에게 가족들 모두가

그건 우리 몫이 아니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지금까지도 많이 감사했던 집이라고, 욕심내지 말자고 그러더라구요.

장로 직함 달고 있는 저보다 훨씬 신앙적이죠?

 

많은 신학자나 목사님들은 그리스도인의 경제 윤리를 말할 때 이 땅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며 성실히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교회들은 재산을 많이 소유하고 부를 누리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 가르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너무 당연하게 재산의 규모를 자랑하고 간증꺼리로 삼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천국을 차지할 것이다라고 성경이 말하지만, 그 말씀을 믿고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을 포기하더라도 이 땅에서 부자가 되기를 꿈꾸는 것 같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축복을 자랑하기 위해

주님의 것을 도둑질하여 자기 곳간을 채우거나,

이웃의 몫까지 자기 곳간에 쓸어 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넘치게 주시면서도 하루치만 거두라고 하셨고,

예수님도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에서 하루 양식을 구하라고 하신 의미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하고 거룩한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기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는 귀족적 자의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통하여 드러나는 하나님의 모습을 생각하면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결코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예수님 따라 살겠다고 작정한 우리 모두

세상 풍조에 흔들리지 않고 선을 지켜내는

품위 있는 사람, 품격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 결론

영어로 신자가 되다라는 말이 < experience religion> 이라고 합니다.

직역하면 <종교를 경험하다> 정도 되겠지요.

결국 신자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필요나 경험 또는 신념이나 학습된 틀 안에 하나님을 가두고,

그 안에서 만난 익숙한 하나님을 믿고 싶어 할 것입니다.

 

신자가 되신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을 경험하고 계시나요?

어떤 모습의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는지요?

 

어느 누구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신앙의 최우선으로 삼고,

어느 누구는 생명을 살리고 평화로우며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일을 신앙의 가치로 삼고,

어느 누구는 자신의 신앙성숙을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본 가치이기에,

이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어느 하나에만 매일 때,

자칫 우리도 신앙 성장과 종교중독 그 사이 어딘가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늘 깨어있는 마음으로 돌아보며, 관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세상의 지탄을 받는 종교중독자가 아니라

올바른 신앙인으로서 세상에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기도 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삶이

세상 속에서는 예수님께서 삶으로 보여주신,

생명과 평화와 정의를 기준 삼아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타인에 대해서는 사랑으로 섬기며,

스스로는 귀족적 자의식을 품은 품격 있는 사람이 되어

세상에서 귀히 여기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18년 평신도 강단교류 설교 채경숙(생명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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