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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생명:사랑:기적(창조절 아홉째주일, 2018년 10월 28일)

하늘기차 | 2018.10.28 15:40 | 조회 199


                                           지혜:생명:사랑:기적

20181028(창조절 아홉째주일)                                                           9:1-6;6:51-54

     9장 말씀에서 지혜는 추상개념이 아니라, 인격이 있어서 이러저러한 일을 합니다. 집을 짓고, 짐승을 잡고, 포도주를 빚어 잔치를 벌입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이 말씀을 읽다 보면 사55:1 이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너희 목마른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면서 3절에 보면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너희 영혼이 살 것이며,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신약에서 생명의 빵으로 넘어갑니다.

     오늘 말씀 요6:51에서 예수님은 빵을 배불리 먹고 찿아 온 사람들에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고 합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빵이라고 하니 사람들이 예수를 두고 수군거립니다. 하늘을 문자적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그래야 하늘의 만나가 있고, 모세의 율법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들의 종교와 기득권의 근거를 마련해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하늘은 그런 하늘이 아닙니다. 생명의 하늘입니다. 하늘로부터 왔다는 것은 생명의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이야기처럼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예수님 안에, 우리도 예수님 안에, 아버지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33절에서 하나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배불리 먹은 기적 만 기억합니다. 그 의미와 상징, 은유는 뒤로합니다. 5장에서도 예수님은 베데스다 못 가에서 38년된 병자를 일으켜 세우는데, 이 사람은 베데스다못가에 들어 갔다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걸어 간 것입니다. 사람들은 베데스다 못 만 바라보며, 베데스다 못가로 몰려갑니다.

     최근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정부 지원금을 공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사적으로 사용한 것을 국정감사에서 밝혀냈습니다. 그러자 협회의 운영자들이 난리를 칩니다. 유치원을 폐쇄하겠다고도 합니다. 적반하장입니다. 이 현상을 보면서 예수님 당시의 모습과 똑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싫어한 것은 그들이 겹겹이 쌓아놓은 기득권의 거짓을 들추어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늘의 빵이며, 내가 생명의 빵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말을 못 알아듣습니다. 자꾸 베데스다 못가로 찿아가려고만 합니다. 유치원운영자들이 꽃 다운 어린아이들을 한 생명, 한 영혼이 아니라 돈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율법으로 겹겹이 쌓아놓은 한 쪽 벽을 예수님이 허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교회가 세습을 합니다. 그렇게 교회 전체가 세습을 인정해야 그동안 붙잡고 있던 물질, 건강, 자녀, 성공의 동아줄이 썩은 줄도 모르고, 매달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인들이 기득권자들과 같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들의 영광을 위해 자기들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물질, 건강, 직장, 아브라함의 땅과 부동산의 축복과 다윗의 권세와 솔로몬의 명예를 대대손손 만수무강누릴 수 있는 꼬투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나 정말 삶의 풍요, 기적, 지혜는 어디로부터 올까요?

     언젠가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여자 주인공 줄리엣이 감옥에서 15년 복역을 마치고 풀려나와 여동생 집에 머물게 됩니다. 줄리엣은 살인자입니다. 자기 아들을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15년을 살았는데, 재판을 받으며 변호사도 거부하고, 배심원들에게 일체의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동생 레아는 감옥에 있는 동안 한 번도 면회를 가지 않았습니다. 조카를 살해한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뇌졸중으로 말 못하는 시아버지, 베트남에서 입양한 어린 두 딸과 함께 사는데, 동생의 남편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며 어서 떠나기를 바랍니다. 직장을 구하려 하지만 살인범이라는 낙인이 찍혀 좀처럼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동생 레아는 우연히 언니가 아들을 살해한 동기를 알게됩니다. 그러자 레아는 감옥에 간 언니를 생각하며 사춘기 나이 때 시작하여 15년 동안 줄 곳 써온 일기를 보여줍니다. 정말 동생은 그렇게 오랫동안 언니에대한 연민을 가지고 기다리며 사랑했던 것입니다. 언니의 마음의 창을 조금씩 열 수 있었던 것은 동생의 소박한 사랑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줄리엣은 여동생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합니다.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면? 팔 다리가 뒤틀리면? 숨이 막혀가면, 가족이 뭘 해 줄 수 있는데?” 여동생이 그럽니다. “내가 있잖아... 언니를 사랑해. . . 말해봐 내게, 어서. . .그 아픔, 그 두려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 나에게 해. . .” 언니 줄리엣이 더듬더듬 아들에대해 말하기 시작합니다. 착하고 행복한 자랑스러운 아들 피에르가 쓴 시에서 죽음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창자가 끊어지고,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이었고, 그래서 피에르를 데리고 멀리 떠났고, 사람들은 유괴했다고 하는데, ‘피에르랑 도망친거야, 어느날 작은 파티를 온실에서 열었어. 거의 움직이지 못하지만, 함께 노래하고 웃고, 피에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침 까지 침대에 누워 사랑한다고 말해줬어. 아무 말 못해, 자식의 죽음 앞에 변명이 있을 수 없어 가장 지독한 감옥은 자식의 죽음이야, 그 감옥엔 석방이란 없어라고 읊조립니다.

     이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2층에 있는 레아와 줄리엣을 누군가 부르는데, 그 때 줄리엣이 예 여기 있어요. . .” 그러면서 영화가 끝이 납니다. 감독은 줄리엣이 나 여기...’할 때, 그녀를 포로생활 15년에서 지금 여기로, 일상으로 끌어옵니다. 밀양이라는 영화가 생각이 났습니다. 밀양 마지막 장면에서 하수구에 떨어져 있는 깨진 거울 조각이 태양 빛을 받아 반사하며 마당을 따뜻하게 반짝 반짝 비추어주는데, 그 깨진 거울 조각은 마치 전도연의 곁을 끝까지 지켜주는 송강호를 연상하게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 손길, 섭리, 기적이 이런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감옥, 말 못하는 시아버지, 동생남편의 못 마땅한 눈초리, 입양한 베트남 어린 조카들, 불확실한 직장, 2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감찰관 포레이의 자살, ~한 이웃들의 눈초리 사방을 둘러싼 벽들 안에서 그나마 소통할 수 있는 숨을 쉴 수 있었던 것은 동생 레아의 한결같은 작은 배려, 사랑이었습니다. 기적이 싹트기 시작한 것입니다. 잠언서에서 지혜가 집짓고, 포도주를 빚고 이웃을 초청하여 즐긴다는 것이 진짜 사랑이고, 기적이고 지혜입니다.

     마지막 이름을 부르는 장면에서 영화는 줄리엣을 지금, 여기로, 일상으로 초청합니다. 그렇게 15년의 포로생활에서 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은 동생 레아의 소박해 만 보이는 사랑이었습니다. 아마도 동생 레아가 베트남 아이들을 입양한 것은 언니가 조카를 살해한 충격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세월호 가족들을 보면서, 4년 전 아이들의 죽음의 충격에서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 아빠들을 보면서, 곁에 있지만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느낍니다.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관심, 배려, 곁에 있어주기입니다. 기적의 실마리는 거기서부터입니다. 하나님께서 거기서부터 일을 시작하십니다. 이것이 기적이고 지혜입니다.

     하루는 모세가 양을 치다가 가시떨기에 불이 확 붙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가지들이 타지가 않습니다. 이상해서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러자 신발을 벗으라는 마음의 울림이 옵니다. 그래서 신발을 벗고 조용히 타지않는 가시떨기를 응시합니다. 왜 모세는 태양열에 불이 붙어 타오르는 가시떨기에서 이상한 현상을 보았을까요? 종종 보던 현상인데, 왜 이전에는 못 보았을까요? 신발을 벗자 거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모세야!’하는 음성을 듣습니다. 마더 테레사가 난민 구제를 결심한 것도 늘 왔다 갔다 하던 수녀원 벽도에 걸린 예수님의 십자가 그림에서 부터였습니다. 삶의 전환의 포인트, 실마리는 놀랍게도 우리 일상입니다. 일상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에 둘러쌓여 있습니다. 모세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늘 보던 타오르는 가시떨기에서 이전에 듣지 못하던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모세가 만일 바로의 왕궁에서 쫓겨나와 술만 먹으며 신세한탄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전환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괘감은 실마리를 찿지 못하게 합니다. 우울함, 자기 연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감정의 끝은 하나님의 선하심의 반대편입니다. 마음 한 쪽 끝에 우뚝서있는 우상입니다. 그래서 이웃이 중요하고, 교회공동체가 중요합니다. 감정의 끝으로 가지 못하게, 주님 안에 머물러 있도록 교회의 성도들이 곁에 있어주어야 합니다. 세상의 과학물질문명은 우리를 그렇게 고립시킵니다. 저도 그렇지만 스마트폰은 우리를 한 개인으로 고립시켜, 세상, 세속, 자본의 정보에 빠뜨립니다. 이렇게해서는 실마리를 찿을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교회신앙은 우리의 일상을 소소한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지혜입니다. 기적의 실마리인 것입니다. 구원의 신비입니다. 주일을 성수하고, 101를 당연히 하나님께 드리며 교회의 소박한 일상에 머물러야 합니다. 교회의 일상과 세상의 일상이 따루따루가 아니라, 함께 가야 지혜와 생명의 신비의 실마리를 얻으며, 볼 수 있습니다. 결단코 교회주의는 절대 아닙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놓치지 않았던 긴장감, 두렵고 떨리는 경외심으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가시떨기를 보고 이상히 여겨 두려운 마음으로 다가 갔습니다. 다가서야 합니다. 멀리서 바라보아서는 하나님의 신비 안에 머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두려움과 떨림에 하나님의 사랑이, 긍휼이, 자비가 덧 입혀지기 때문입니다. 신비로운 치환입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기적은 52어의 빵 부스러기가 아닙니다. 기적은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드는 베데스다못가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 생활의 일상이 기적의 온실이요, 사랑의 실마리이며 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엡3:10에서

               “교회를 통하여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에게 하나님의 갖가지 지혜를 알리고자 한다고 전합니다. 2:23에서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함이라고 합니다.

     당신을 사랑했어요의 마지막 장면이 눈에 선 합니다. 아래층에서 누군가 줄리엣을 부르는데, 줄리엣이 나 여기 있어요라고 합니다.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지만 주님이 부르면 , 나 여기 있어요하는 것이 지혜이며, 생명이며, 사랑이며, 기적이며, 하나님 나라의 잔치입니다. 집을 짓고, 짐승을 잡고, 포도주를 빚어 잔치를 벌이는 지혜 안에 머물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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