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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받자(2013년 3월 3일, 사순절 세째주)

하늘기차 | 2013.03.03 14:27 | 조회 2102


변화를 받자
2013년 3월 3일(사순절 세째주) 롬12:1-3;요2:7-10

산상수훈은 복있는 사람에대한 8복의 선언으로 시작이 되는데, 마지막 장인 7장21절에서 예수님은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
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며,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고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반석위에 집 짓는 사람과 모래 위에 집 짓는 사람에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반석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이야말로 복있는 사람이며, 바로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언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행하는 내용은 모두 사도 바울이 고린도서에서 말씀하는 것에 준하여 보면 모두 은사예요, 그러니까 열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따라 알맞게 은사를 주시는데, 그 받은 달란트를 잘 활용하여 하나님이 기뻐하는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모르는 자기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보기에는 다 똑같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어느 정도인가 하면 아예 모르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이 복을 선언하듯이 시편 1편도 ‘복 있는 사람’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 복있는 사람인가요? 시편 1편 마지막 6절에 보면 주님께서 인정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습니까? 시1:2에 보면 오직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 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삶들이 왜 복이 있는가 하면, 그 자체로 복입니다. 왜냐하면 3절에서 이런 사람들은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다는 것입니다. 늘 푸르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축복이란 열매의 축복입니다. 나무의 나무됨은 꽃과 열매입니다. 입 만 무성해 가지고는 기쁨을 줄 수가 없습니다. 꽃의 향, 색, 그리고 열매의 그 맛이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마7:22에 보면 주의 이름으로 많은 일을 했는데, 주님께서 모른다는 것입니다. 23절에 보면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도무지’라는 말의 어원은 ‘처음부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주의 이름으로 귀신 쫓고, 선지자 노릇하고, 권능을 행한 모든 것들이 애초 처음부터 잘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21절에 보면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
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것은 22절과 관련해 볼 때 주의 이름을 걸고 많은 일을 했지만,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말씀, 아버지의 뜻에 따라 행할 때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라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 부터라는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지금 오늘 주일 이 시간에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주께서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하나님의 뜻이 있어 우리를 부르셨는데,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 없이 자신의 뜻을 세우고 있지는 않는지요? 그래서 처음에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는가 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야하는 지를 보게 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는 80년의 세월의 준비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모세의 인생 120년의 각 40년은 차이가 있습니다. 첫 번 40년은 이집트의 왕궁에서 풍요로우며 자신의 꿈과 뜻을 키우는 시대입니다. 두 번째 40년은 그 뜻의 좌절로 인한 어두움과 은둔의 광야 시절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린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삶이었습니다. 모세의 삶 중에 80년은 열매 없는 삶이었다면, 후기 40년은 하나님의뜻의 결실기입니다. 모세는 한창 젊은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 준비하며 계획하였으나 좌절한 열매 없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40년은 은둔하며 자신의 모든 것이 다 빠져 나가버린, 자신의 진액을 다 뺀 그러한 시절이며, 그래서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방향과 관점의 태동이 있었던 때입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오랜 은둔생활 속에서 어느 날 타지않는 그러나 활활 타오르는 가시떨기 나무를 보게됩니다. 창3:3을 보면
“이 놀라운 광경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어째서 그 떨기가 불에 타지 않는지를 알아 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것을 보려고 돌아서 가는데,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돌아서는 모세를 보았다고 합니다. 모세가 이 놀라운 광경을 볼려고 합니다. 놀랍다는 것은 모세가 이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본 것입니다. 한글개역에는 그 표현이 좀 더 드라마틱합니다. 모세는 그 신기롭고 놀라운 불꽃을 보고 돌이켰고, 하나님은 바로 그렇게 돌이켜 오는 모세를 보았다고 합니다.

교우여러분 이렇게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기나 하다면 돌아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며, 듣게 하실 때 우리는 돌아서야합니다. 탕자의 이야기에서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기쁘게 맞이합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도 그 죄수 가운데 돌이킨 죄수를 주께서 영접해 주셨습니다. 교우여러분 우리는 모세처럼 자연 현상 속에서 아니면 교회 생활, 또는 가정과 직장 속에서 한 순간 하나님의 불꽃의 섬광이 번쩍일 때가 있습니다. 그 때, 그 순간 우리는 돌아서야 합니다. 우리들의 하루 하루 생활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십니다. 돌이킬 때가 왔을 때, 이 때다 십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영원히 그냥 그렇게 이전에 살아 온 모습과 같은 허송의 삶, 열매 없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부부 지간에, 친구들과의 우정 속에, 아니면 다툼 속에, 교회에서 말씀과 묵상, 봉사 속에서, 고달픈 직장 생활 속에서 아니면 인생의 쓰디쓴 실패, 힘든 육신의 질병, 어느 때, 어느 시간에 하나님은 마치 창3:2에서처럼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난다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늘 보고, 듣고 움직이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키에르케고르는 그것을 ‘순간’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함과 인간의 유한한 시간성이 한 ‘순간’에 이루어 집니다. 이 한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두려워 떨줄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 경외하는 믿음의 순간입니다.

모든 세상의 관심을 멈추고 이제 그만 돌아설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정말 멋있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러 온 부자 청년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보화가 네게 있을 것 이라 합니다. 그 때 이 청년은 돌아서야 했습니다. 이 말씀, 이 순간이 이 청년에게는 모세가 본 타지 않는 가시떨기 불꽃입니다. 청년은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말씀의 섬광같은 불꽃이 타오를 때, 돌아서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청년에대해 근심하며 갔다고 합니다. 여전히 자기 길을 간 것입니다. 그 길에는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뜻이 없습니다. 이 청년은 예수님에게 십계명을 다 지켰다고 합니다. 율법 종교에 철저했지만, 그 율법 정신과는 상관 없는 형식만 따른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를 때 의 장면을 보면 멋이 있습니다. 같은 청년이었지만 부자 청년은 그냥 자기 길 갔지만, 베드로 안드레는 곧 바로 그물을 버렸다고 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부친이 함께 일하던 일꾼들과 배를 버렸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다고 합니다. 모세는 돌아 섰다고 합니다. 바울도 그동안의 자신 의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겼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한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모두 이렇게 돌이키고, 버리며, 떠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그러나 돌아서는 것, 버리는 것, 떠나는 것 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돌아서는 모세를 바라보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요20:17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감격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잡으려 하니 예수님께서 무어라 말씀하셨습니까? “나한테 손을 대지 말라”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마리아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뵙던 예수님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의 신앙적 깨달음이 없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전에처럼 십자가 이 전의 예수님으로 바라보고, 만나려는 것을 멈추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마리아는 주께서 이루신 그 부활의 신앙으로 예수님을 만나야 했습니다.

모세가 그 불꽃으로 접근해 가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멈추게 합니다. 그리고는 신발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열망,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 자신이 갖고 있는 삶의 틀, 경험, 가치, 종교적 틀에다 하나님을 끼워 맞추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다시 한 번 이집트에서 찿던, 그리고 간구했던 그 하나님을 가시떨기 나무에서 뵙고자 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생각하는 그러한 하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은 허구요, 그저 우상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리고 나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신발을 벗으라!”지금 80년 만에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은 40년 전 바로의 궁정에서 모세가 보았던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 일을 해야하는 하나님, 하나님을 위해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야할 하나님, 자신의 과분한 왕권을 포기하고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는 하나님,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마침내 민족에게 배반을 당하고 버림받아 미디안 까지 내 몰리게 된 그러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 40년의 은둔 생활 속에서 모든 것을 잃고 홀로 힘들어 할 때 유일하게 찿아 와 주셔서 관심가져 주시는 하나님이며,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 긍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 나의 할아버지의 하나님, 나의 조상의 하나님이십니다. 유별나고, 무언가 색다르고 특별한 하나님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살게 한 단초가 된 요셉의 하나님, 늘 익숙해 있는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밥상 머리에, 이 예배드리는 자리에, 버스 안에, 길 거리에 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돌아가신 김정심 전도사님의 하나님이십니다. 또 김동선, 김동건 목사님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돌아가신 문효순 집사님, 그리고 이사 가신 이순복 권사님, 우리를 신앙으로 인도하신 교우, 부모님의 하나님이시고 아무도 나와 함께하지 않을 때 찿아오시는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 우리는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를 받고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롬12:2에 보면 변화를 받는다고 합니다. 변화는 내가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자비와 긍휼입니다. 선물입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이 포도주는 돈으로 산 것이 아닙니다. 집에서 열심히 만들어 맛이 좋다고 세상에 널리 소문난 그러한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주가 떨어져 어찌할 줄 모르는 우리에게, 우리 교회에, 우리 가정에, 인류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인들이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여 얻은 선물입니다. 아마 하인들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였다면, 부리나케 어떻게 해서라도 포도주를 구해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포도주는 그 포도주가 아닙니다. 주인에게 이야기 하고, 신랑이나 신부, 아니면 양가 부모에게, 아니면 연회를 집전하는 연회장에게 이야기 했다면 아마 포도주를 구했겠지만 그 포도주가 그 포도주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껏 그러한 포도주를 구해서 마시는 살아오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을 예수님에게 알렸습니다. 요2:9에 보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포도주는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는 포도주입니다. 우리의 것에서 오는 포도주가 아닙니다. 또 잔치를 맡은 이가 포도주를 맛 볼 때, 그 포도주에대해 성경은 ‘포도주로 변한 물’을 맛보았다고 합니다. 신비로운 맛입니다. 우리는 자꾸 우리가 계획하고, 생각하고, 노력해서 얻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포도주라고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교우여러분 물로 된 포도주를 내어놓는 곳은 한 군데입니다. 아니 그 포도주가 어디에서 온 줄을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9절에 보면 잔치를 맡은 사람은 모르는데, 물을 떠 온 일꾼들이 알았다고 합니다. 물은 맛도, 향도, 색도 없지만, 포도주는 맛과 향과 색이 있습니다. 저는 물 보다 맛과 향과 색이 나는 포도주가 좋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산, 집에서 빚은 그러한 포도주 말고, 주님의 순간 적인 부르심에 돌아서서 기꺼이 신발을 벗고, 그리고 포도주가 아닌 물을 항아리에 붓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어리석은 모습으로 주님께 나아가 주님이 주시는 그러한 포도주에, 성령의 포도두에 한 껏 취하여 세상을 축제요, 잔치로 살아가는 신앙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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