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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것(2013년 2월17일, 사순절 첫째주)

하늘기차 | 2013.02.17 15:39 | 조회 2101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것
2013년 2월17일(사순절 첫째주) 눅15:1-3;29-32

예수님께서 갈릴리 마을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면서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은 종교지도자들과의 갈등과 다툼입니다. 오늘 말씀도 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에대해 원망하는 장면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과 율법이라는 배를 함께 탈 줄 알았는데, 자신들의 배에서 내려 죄인과 세리들의 배에 타서 함께 먹고 마시고 하니 여간 속이 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탁월한 말씀과 능력을 가진 그가 자기들 편에 서서 죄인과 세리를 정죄하고, 질책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의 기를 살려주는 모습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못 마땅해 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세 가지 비유를 들려주었습니다. 하나는 잃은 양 찿는 이야기요, 둘째는 잃은 은전을 찿는 이야기요, 그리고 오늘 말씀의 소위 집 떠난 아들이 돌아오는 말씀입니다.

이 세가지 이야기는 기쁨에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기쁨은 누구의 기쁨인가요 바로 아버지의 기쁨입니다. 눅15장을 복음 중의 복음이라 합니다. 복음이 무엇인가요? 기쁜 소식이지요. 기쁨 중의 기쁨은 무엇일까요? 다시 찿는 기쁨입니다. 잃은 양을 다시 찿고, 잃은 동전을 다시 찿고, 아버지 떠난 아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회복의 기쁨입니다. 희년의 기쁨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다시 돌아오는 기쁨입니다. 자기 모습 다시 찿는 것입니다. 그 기쁨을 맛 보며 살아야 합니다. 인류가 이렇게 하나님께 돌아와야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한 성도의 삶에 있어서 절정은 ‘순교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 뉘우치고 돌아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작은 아들이 왜 아버지를 떠났을까요? 아버지 없이 자기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왠지 구속당하는 것 같고, 늘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에 짜증이 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기적인 자유를 위해 집을 떠나는 순간 부터 자유가 아니라 얽메임입니다. 시간에, 그리고 물질에 얽메입니다.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전에는 좀 실수를 해도, 잘 못을 해도 아버지가 다 해결해 주셨는데, 이제는 조금의 실수나 잘 못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인간은 자유가 아니라 얽메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수고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냥 하나님 아버지에게 돌아와 그 안에 머물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습니다. 시편 124:7은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
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집 떠난 아들이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발톱의 때 만도 못한 이기적인 자존심을 그나마 지켜주던 물질을 다 잃고 나서입니다. 재물이 사라지자 그와함께 했던 모든 것이 마치 신데렐라의 마차와 같이 다 사라지고 맙니다. 지금 인류 문명이 이렇게 자본이라는 누각 위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습니다. 물질이 사라지자 자기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더욱이 바닥 까지 떨어져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고 싶어도 없어서 먹지 못하는 극한 상황에 까지 다다랗습니다. 그제서야 작은 아들은 자기가 누구인지 깨달았습니다. 나는 돼지가 아니라는 것, 우리 인류는 떡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말씀으로 태어났고, 말씀을 먹어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으니, 나를 품꾼의 하나로 삼
아 주십시오”하고 독백을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작은 아들이 아들로서가 아니라 종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로 맞이하기 위해 좋은 옷과 반지, 그리고 발에 신발을 신기우며 기뻐합니다. 돌아온 것 만으로도 아버지는 참 기쁜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더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것은 진정 품꾼으로가 아니라, 아버지 아들로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작은 아들 뿐 아니라 큰 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집에서 살면서도 진정 아들의 마음은 갖지 못한 것 같습니다. 동생이 돌아왔을 때 큰 아들은 29절에서 보면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아버지의 명
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
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준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큰 아들에게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버지 품 안에 있지만 마음은 종입니다. 아버지와 하나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외쳤습니다. 요10:30에 보면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한 일로 바리새인들과 논쟁이 붙었을 때,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선언합니다. 간음한 것으로 붙잡혀 온 여인을 정죄하지 않고 돌려 보낼 때에도 예수님은 자기 자신에대해 요8:28에서
“내가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아니하고 아버지께서 나에게 가
르쳐 주신 대로 말한다“고 합니다. 또 29절에서는 나를 보내신 분이 나와 함께하는 것은
“내가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이 눈 먼 사람을 가리키며 누구 죄 때문이냐고 물었을 때에도 예수님은 죄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머물러 계십니다. 그래서 9:3에서 예수님은 그가 눈이 먼 이유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라 합니다. 4:34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 중에 먹을 것에대해 이야기 할 때에도 예수님은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라 합니다. 이것이 진정 주님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한 번 도 자기 의를 드러내신 적이 없으십니다. 십자가도 주님의 의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거부하려고도 했지만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었기 때문에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도 좋지만, 확실한 것이 아닐때에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즐거워하면 되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않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아버지와 하나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둘 째 아들의 모습은 바로 당시의 종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율법, 성전, 제사를 통해 무엇을 자꾸해야 합니다.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디지를 못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자꾸 빵 만 바라는 사람들에게 썩어 없어질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의 양식을 위해 일하라 할 때에도,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믿음에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믿을 수 있도록 기적을 보여달라고 하면서 모세를 들먹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만나를 먹였다는 것입니다. 또 먹는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그들에게 기적은 먹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자 광야에서 빵을 준 것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라 하면서, 그 때 예수님께서 무어라 말씀하시는가 하면 참 빵을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라 합니다. ‘우리’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들과 구분하여 ‘나의’ 아버지라 하십니다. 그러면서 다시 믿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요6:36에 보면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38,39에서말씀합니다.
“내가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왔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주신 사람을 내가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라 합니다.

참 예수님 집요하게 아버지의 뜻을 물고 늘어집니다. 그만큼 당시의 유대인들이 율법, 제사, 성전을 앞에 내세우고 자기 일, 자기 의, 자기 뜻을 즐겼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안 것입니다. 주님은 더 이상 아버지 하나님을 종교적 틀에 묶어두지 않으시고, 이 땅의 사람들의 생활 속에 찿아 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귀한 일 중에 하나는 하나님을 이제는 율법과 제사와 성전의 하나님이 아니라, 단도 직입적으로 나의 아버지라 부르신 것입니다. 10:36에서 이렇게 부름으로 신성모독한다는 말을 듣지만, 이제는 아바 아버지인 것입니다. 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나의 마음 속에, 우리들 가운데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까이 계시는데 사람들이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떠난 것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준 일이 없다”는 어이없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이야기를 하면서 놓칠 수 없는 것은 ‘안다’, ‘모른다’입니다. 이 것은 두 아들, 집 떠난 아들이나, 집 안에 있는 아들이 모두 겉으로는 아들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종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유대인들이 안다고 하지만 모른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알지만 돌아오는 기쁨, 생명의 잔치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안다’, ‘모른다’는 이 주제는 요한 복음 1장 에서부터 나타납니다. 10절에 보면
“그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특히 눈 먼 자의 눈을 뜨게 한 사건 속에서 ‘안다’, ‘모른다’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청년이 눈을 떳습니다. 사람들이 놀라고 난리가 납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은 죄인이 어떻게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부모를 불러 묻습니다. 그러자 부모는 이 아이가 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것을 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습니다. 10:21에 보면 부모가 유대인들 앞에서는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 누가 뜨게 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22에 보면 당국이 무서워 모른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알고도 ‘모른다’는 것은, 그리고 무관심하다는 것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비교가 됩니다. 알고도 모른 척, 아니면 무관심, 아예 ‘예’인데 ‘아니’라고 거짓 증언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눈 뜬 사람은 분명합니다. 자기는 ‘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자기는 지금 눈을 떳다는 것입니다. 바로 은혜를 입은 자의 모습입니다. 이 첫 은혜, 첫 신앙 고백을 평생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유대인들은 그 눈 뜬 청년에게 직전에 무어라 질문을 하는가 하면 9:24에 보면
“우리가 알기로, 그 사람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눈을 뜨게 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일 한 것 만 보이고, 평생에 장님이 눈을 뜬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눈 뜬 청년은 그들에대해 일 침을 놓습니다. 내가 계속 누가 어떻게 내 눈을 뜨게 했는지 말을 했는데도 당신들이 또 이야기 하라 하는 것을 보니 ‘당신들이 그 분의 제자가 되려고 그러는 것입니까?’ 합니다. 28에 보면 그들이 이 청년에게 욕설을 퍼 부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은 알지만 그러나 그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30절에서 그 청년은 이야기 합니다. 아니 그 분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다니 참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31절에서 결정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은 듣지 않으시지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의 뜻을 행하는 사람의 말은 들어주시는 줄을, 우리는“ 안다고 합니다. 후에 바리새인들이 그 청년을 내 쫓았습니다. 이것은 출교를 시켰다는 것입니다. 치외법권자가 된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들으시고 예수님이 그 청년에게 다시 찿아와 청년을 위로해 주시며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못 보게 하려"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안다고 하는 사람은 모른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고, 오히려 모른다는 사람이 진정 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한 마디 합니다. 차라리 가만히 있었으면 반 이라도 갈 것인데 말입니다. “우리도 눈이 멀었냐?”고 하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눈이 먼 사람들이라면 죄가 없지만 지금 본다고, 즉 안다고 하니 죄가 그대로 있다고 합니다.

제자들 역시 예수님과 줄 곳 함께 다녔지만 계속 등장하는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에대해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대해 몰이해 하는 것이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지난 번 말씀처럼 풍랑을 만났을 때, 오병이어로 5천명이 먹을 때, 예수님에게 다가오는 아이를 막을 때, 혈루증 앓는 여인과 옥신각신할 때, 예루살렘으로 향하며 누가 제일 높은지를 놓고 다툴 때, 예루살렘에서의 고난에대해 이야기 할 때, 오히려 그러면 안된다고 예수님을 꾸짖는 제자들의 모습, 변화산에서의 모습들, 부인하고, 배반하고, 도망하는 제자들, 부활하시고 40일 함께 하시고 승천하실 때에도 ‘여전히 의심하는’사람이 있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몰이해에대한 절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거듭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해하지 못하니 아버지의 뜻에 합하지 못한 삶을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엡1장에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 지혜와 계시의 영을 보내어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시기를 원한다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영광의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그래서‘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기 원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야 말로 하나님의 지혜이며 능력입니다. 십자가가 아닌 것은 자기의 능력이며, 자기의 지혜입니다. 이 참 지혜를 알고, 이 참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알게 하시려고 심한 병도 주시고, 사업에 실패하게도 하시고, 가족 관계를 통해 아픔을 주시기도 하는데, 결국 그것은 그 아픔, 고통, 시험을 통해 우리를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아들을 이 땅에 가장 낮은 자리에 보내시어, 가장 참혹한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세상의 모든 자기 의로움, 자기 당위성, 자기 성취, 자기 뜻을 모두 잠재우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사순절에 주님의 십자가 앞에 온전히 자기를 내러드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여러분, 교회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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