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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빛 Ⅱ(2013년 1월 13일, 주현절후 제1주)

하늘기차 | 2013.01.13 14:53 | 조회 2268


주 안에서 빛 Ⅱ
2013년 1월 13일(주현절) 엡5:8-14

지난 주에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았습니다. 이 작품의 시대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1899년 나폴레옹의 쿠데타와 1815년 워털루 전투 후의 몰락 그 이후 왕정 복고와 시민의 혁명이 오락가락하는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이 1875년 제 3공화국이 성립될때까지 근 100 여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정치적 혼란, 전쟁, 수많은 혁명들과 소요로 인해 민중들과 서민들의 삶은 억압과 비참 그리고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레미제라블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데, 유독 한국에서 더 인기를 끌고있는 것은 “대혁명 이후에도 여전히 빈곤과 불평등이 팽배했던 19세기 프랑스 사회와, 민주화 이후에도 빈부 격차와 경제적인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은 지금 한국 사회”와 유사하기 때문에 감정이입이 자연스럽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4·19 혁명과 1980년 서울의 봄, 5·18광주민주화운동, 87년 6월항쟁 등을 통해 일정한 수준에서 민주화가 됐지만 사회적 불평등은 오히려 악화돼 왔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울산, 부산, 평택에서, 그리고 용산, 밀양, 재능 교육 등, 무너진 공교육, 4대강 파괴 등 벼랑 끝에 내 몰린 레미제라블들이 실제 우리들의 상황입니다.

레미제라블의 말뜻은 불쌍한사람들입니다. 무식하고 가난한 시골 일꾼 장 발장은 조카에게 빵을 훔쳐 가져다 준 죄로 19년을 복역하고 출소하지만 다시 도둑질과 폭력의 유혹에 빠지는데, 자신의 불쌍한 처지를 돌보아준 교회에서 은 식기를 훔쳐 도망가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붙잡혀 오는데, 교회의 신부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자기가 선물로 준 것이라 하며 왜 이 것은 안 가지고 갖느냐 하며 다른 것도 더 건네줍니다. 장발장은 충격을 받습니다. 은혜입니다. 불쌍히여김입니다. 레미제라블의 뒤 배경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함께 따라갑니다. 장발장은 그 은혜에 붙들려 일 평생을 속죄와 성화의 삶을 살아갑니다. 불쌍히여김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장발장과 다른 등장 인물이 나옵니다. 바로 장발장을 끝 까지 추적하는 자베르 경감입니다. 그는 정의로운 법을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그 앞에 한 점의 죄 스러움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경감이 혁명의 와중에 시민군에 체포되었을 때, 장발장이 그를 풀어줍니다. 자베르 경감은 그 은혜를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 자기를 풀어주는 장발장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결국 자베르 경감은 코제트를 보러가야 한다는 범인 장발장을 놓아주고, 법집행을 하지 못하고 방관한 것을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자베르의 삶, 생각, 철학은 값없이 거저 주는 은혜를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그의 권력, 귀족의 명예, 당시의 사교문화는 스스로를 불쌍한 존재로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들은 바로 고통받는 천민들이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덜커덕 장발장이 은혜를 베풀자 받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장발장은 한 도시의 시장이되고, 한 공장의 사장 자리에 까지 올라가면서 항상 그 받은 은혜를 잊지 못합니다.

지난 주에 ‘주 안에서 빛’이라 했습니다. 그 밖은 어두움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어두움은 다른 것이 아니라 11절에서 말하듯이 ‘열매 없는 어두움’이라 했습니다. 열매 없는 삶이 어둡다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이 종종 기도할 때 보면, 저도 그러기도 하는데, 이 세상에대해 병들고, 고통스럽고, 어둡고, 죄 많은 세상이라고 너무 쉽게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오늘 사도 바울은 11절에서 세상이 어두운 것이 아니라 열매가 없기 때문이라 합니다. 무슨 열매인가요? 9절에서 ‘빛의 열매’라고 합니다. 저도 좀 조심하려고 하는데, 자꾸 세상이 어둡다, 폭력적이다, 악하다 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 악한 세상에서 건강하고 밝게, 그리고 평화를 만들어 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생각없이 악하다, 어둡다 라는 것은 너무 진부하고, 상투적입니다. 세상을 세상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십습니다.

성도들이 깊이 묵상하고, 집중해야할 것은 빛의 열매입니다. 그런데 그 빛이 주 안에서라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란 무엇을 뜻할까요? 은혜 안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되시니, 그 주 안에서 빛입니다. 레미제라블에서 주인공 장발장이 한 도시의 시장이 되고, 공장의 사장이 되어 잘 살아가는데, 지나가던 수레가 웅덩이에 빠지자 장발장이 그 수레를 웅덩이에서 끌어 올리는 괴력을 발휘합니다. 힘쓰는 그 모습을 자베르경감이 보고 시장이 장발장이 아닌가 하고 의심합니다. 그런데 자베르 경감이 시장을 의심하는 중에 장발장이 구속되어 지금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래서 시장인 장발장에게 그동안 의심한 것에대하여 용서를 구하는데, 그러나 장발장은 고민을 합니다. 장발장으로 오인받고 재판정에 서 있는 무고한 시민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공장의 수백명 직원을 생각하며 모른채 할 까 밤 새 고민하다가 결국 자기가 장발장이라고 고백합니다.

어려움 당하는 마차꾼을 돕기 위해 진흙탕에서 수레를 꺼내는 모습이나, 무고한 사람을 죄의 혐의에서 풀어주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모습에서 은혜입은 자, ‘주 안에 있는 자’의 모습을 봅니다. 자신의 모습, 자기 정체를 감출 수가 없습니다. 장발장의 정체는 죄 사함을 받은 ‘은혜 입은자’입니다. 이 영화에서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묻는 ‘Who am I'라는 노래가 반복해서 들려옵니다. ‘나는 누구인가?’야 말로 은혜받은 자, 주님 안에 머물러 있는 자의 살아있는 모습입니다. 장발장은 거듭 묻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수백명의 노동자를 돌보고 있고, 그들은 모두 나를 의지하고 있지 않는가? 내가 감옥에 갇히면 그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러니 모른척 하자’고 하는데, 마지막 대사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영혼은 신에게 속해있는데, 오래 전부터 그렇게 정해졌는데”하면서 ‘내가 절망에 빠졌을 때, 신께서는 내게 희망을 내려주셨고, 여정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셨다고 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하며 자베르 경감에게 자기가 장발장이며 죄수 번호 24601이라 실토합니다.

장발장이 자기 삶 속에서, 자기 의식 속에서, 무수히 많은 관계 속에서 지울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죄수 번호 24601인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안에서’란 자기 정체, 자기 존재감, 자기 존엄성을 회복한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죄인인데, 은혜를 입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롬8:30에 보면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부
르신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사람들을 또한 영화롭
게 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를 정하여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CALLING입니다. 그렇게 죄인을 부르셔서 의롭게하셨습니다. JUSTIFICATION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의로움은 나를 justify, 즉 나를 인정하신 것입니다. 나의 결점, 나의 더러움, 거짓, 욕망, 교만, , , 그대로를 받으신 것입니다. 자베르 경감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 은혜를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는 두 가지의 의로움이 있는데, 한 가지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서부터 오는 의로움입니다. Rightousness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인류를 향한 십자가에서 보여준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로움인 것입니다. 성도들의 의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의롭게 하여서 영화롭게 하신다고 합니다. 바로 Glorification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우편에 우리를 앉히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십니다. 그러니 아마도 이 과정은 정말 참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지구 탄생의 역사나, 인류의 출현의 역사 보다 더 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부르시고, 죄인이지만 죄 없는 것처럼 인정하고 영화로운 자리에 이르는 사이에 우리의 몫이 있습니다. 바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Santificat ion입니다. 장발장은 교회의 신부에게 은혜를 입구 나서부터 바로 거룩함의 길을 줄 곳 걸어간 것입니다.

여려분 ‘나는 누구인가요?’ 죄인입니다. 그런데 주님 안에 죄인입니다. 죄인인데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성도들의 정체인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이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하고, 늘 긴장감 속에 고백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열매맺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드렸지만 ‘빛의 열매’입니다. 장발장의 모습 속에 빛으로 사는 사람의 모습을 어렴풋 봅니다. 장발장의 삶의 여정은 그 날 은촛대를 훔친 날, 교회의 신부님에게 죄인이 아니고 손님이어서 준 선물이라는 그 말에서 부터입니다. 그 전의 삶은 삶이 아닙니다. 어두움입니다. 그의 출신 성분, 그 당시의 시대의 어두움 때문에 어두움이 아니라, 주님 안에 있지 않은 어두움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를 향하여 ‘주님 안에서 빛’이라고 합니다. 빛을 반사한다거나, 빛을 담는, 빛을 올려 놓는 보조도구 역할, 촛대 역할이 아니라 빛이라 합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라구 합니까? ‘주님 안에서’라구 합니다. 그래서 빛의 자녀 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빛이라 했는데, 빛의 자녀는 무엇인가요? 빛과 같은건가요? 아니면 다른가요? 같으면서, 다릅니다. 마치 죄인이면서, 죄인이 아닌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말입니다. 성도의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빛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빛의 도구, 내지는 빛의 반사 정도가 아니라 빛일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포도나무에대해 말씀하십니다. 포도나무를 보면 어떻게 열매를 맺는지 알 수 있습니다. 포도 열매가 뿌리에 열리나요? 아니면 줄기에 열리나요, 잎에서 열리나요? 포도 열매는 포도나무 가지에 열립니다. 그러면 그 가지만 중요하다구 해서, 가지를 잘라서 키우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가지에서 열리지만, 가지는 뿌리로부터, 그리고 태양으로부터 열매 맺기에 적합한 모든 것들을 공급받습니다. 어떻게 공급을 받는가 하면 붙어있기 만하면 되는 것입니다. 요15장은 그러한 포도 열매에대해 머물러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장발장이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가 항쟁 중에 부상을 당하여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갔을 때 ‘Bring him home'이라는 간절한 기도를 하는데, 그 기도 중에 그는 아직 젊고, 소년이니 데려가시려거든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어대사가 'If I die, Let me die' '에스더가 고백한 바로 그 기도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다입니다. 이러한 기도가 어떻게 나올 수가 있을까 하면 그가 은혜를 입었고, 주님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바울이 민족을 위하여 자기를 생명책에서 기꺼이 지움을 당해도 좋다는 고백인데, 이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빛이라는 정체성이라는 것이 결국 자기를 다 태우는 것인데, 그래야 그 한 자리에서 어두움을 몰아내는 것인데, 그러려면 주님의 소위 영성을 받아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포도 나무 가지가 자기가 열매 맺으려고 막 힘쓰고 그러는 것 아닙니다. 뿌리와 줄기와 잎과 햇볕과 바람과 공기와 물을 통해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아마 이 시대에 열매 맺기가 어려운 것은 서로와 서로 사이에 너무 관계의 단절이 깊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지금 이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가 빛의 열매를 맺으려면 세상에 넘쳐나는 거짓된, 이기적인, 욕망의 정보로부터 자유로워야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귀와 눈을 막고살까요? 생활인인데, 도를 닦으러 산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 여러분 중심 안에 깊이 자리하여 그 말씀이 여러분의 내면에서 샘물처럼 솟아나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 안에서 죄인’인 그 말씀이 여러분을 세속적인 정보와 가치 속에서 정화시키고 세상을 이길 능력이 될 것입니다. 포도 나무와 가지, 뿌리, 잎이 하나이듯이 우리도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포도나무는 그냥 자라면서 하나인데 우리는 주님과 어떻게 하나가 될까요? 사랑하세요. 장발장이 코제트를, 판핀을, 자베르 경감을 마리안느를 사랑하듯이 말입니다. 이 세상에 사랑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 없으면 빛은 물 건너 간 것입니다. 요15:9,10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
물러 있어라.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주 안에서 빛’은 사랑입니다. 용서요, 관용입니다. 기다림입니다. 말씀으로부터 오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빛이 여러분 안에서 빛을 발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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