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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히 베푸신 은혜 !(2012년12월16일, 대강절세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2.12.16 13:27 | 조회 2327


친히 베푸신 은혜 !
2012년12월16일(대강절세번째주일) 사63:7-9;마2:13,19-23

예수가 베들레헴에 태어난 것을 알게된 헤롯은 베들레헴 지역에서 태어난 2살 이하의 사내 아이들을 모두 살해 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끔찍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릅니다. 어떤 분들은 그렇게 말씀합니다. 왜 예수님의 탄생 때문에 다른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야 하는 지 알 수가 없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아기 예수 때문에 다른 죄 없는 자가 죽었다고 보지 말아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권리, 기득권을 누가 어떻게 장악하느냐의 역사였습니다. 왕의 이름으로, 안보의 이름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미국의 안보 때문에 중동의 무고한 어린 아이들이 죽어갑니다. 이 번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에서도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것은 역시 아이들입니다. 아기 예수 탄생 직후의 영아 살해 사건은 그러한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권력과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욕망이 이런 참혹한 일을 자아냅니다. 지금도 북한에서 고통 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은 힘 없는 사람들입니다. 얼마 전에 본 유신의 추억에서도 얼마나 무고한 젊은이들이 권력의 욕망으로 인하여 죽어갔는지 모릅니다. 이 억울한 죽음들의 진실이 지금 계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마2:18의 말씀은 바로 그러한 말씀입니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울부짖으며, 크게 슬피 우는 소리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우는데, 자식들이 없어졌으므로, 위로를 받
으려 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영적 진리가 있습니다. 평화의 왕, 평화의 나라를 세울 왕을 필사적으로 죽이려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며, 파괴화는 힘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계12장 2절 이하에 보면
“이 여자는 아이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고
있었습니다. . . 붉은 용 한 마리가 있는데. . .그 용은 막 해산하려
고 하는 그 여자 앞에 서서, 그 여자가 아기를 낳기만 하면 삼켜
버리려고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용은 타락한 천사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영적 존재로서, 이 세상에 내려와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지 못하게 하고, 사탄의 나라, 폭력과 거짓, 죽음과 절망, 고통과 어두움의 나라를 세우고자 갖은 방법,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지금 이 시대, 여기 우리 삶 속에서도 이 어두움의 권세, 죄의 힘, 죽음의 능력은 여전히 활개를 칩니다. 죄에대한 무감각, 하나님이 살아계심에대해, 부활에대해 인정하지 못하는 것,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 거듭나지 못하게 하는 것, 돈을 더 사랑하게 하며, 용서하지 못하며, 엄밀한 의미의 평화가 무엇인지 모르게 하는 것 등, 무수히 많은 일들을 꾸미고 만들어 나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영적 혼돈, 위기 속에서 친히 아기 예수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오자 마자 역시 어두움의 힘에 휘둘립니다. 위기가 찿아왔습니다. 헤롯이 2살 이하의 사내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런데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이집트로 피신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부랴부랴 이집트로 피신을 합니다.

예수님의 이집트 생활에대해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애굽으로 피난 가는 중 밤에 추위에 떨며 사막을 지나다가 동굴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가 그 동굴에 들어가 사막의 모래 바람과 추위를 피하는데, 마침 헤롯의 군대가 추격해 옵니다. 동굴을 수색하려는데, 헤롯의 군대들이 그 동굴 앞에 왔다가 그냥 돌아갑니다. 그 이유를 알아 보니, 거미들이 동굴 입구에 거미줄을 쳐서, 헤롯 군대들이 그 곳에 아무 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여기게 됩니다.

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강도가 좌 우에 있었는데, 회개한 강도의 이름이 다스마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강도는 예수와 초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가 이집트로 피난가다가, 강도를 만났다고 합니다. 근데 그 강도 중의 한 사람이 강보의 아기를 보는 순간 그 아이의 아름다움에 차마 요셉과 마리아가 가지고 온 황금, 유향, 몰약을 빼앗고 그리고 모두를 죽일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강도들에게도 아이의 그 아름다움을 보이고, 그냥 보내주자고 하였고, 강도들도 감동을 받아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훗 날 골고다에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메달린 회개한 강도가 바로 그 때 예수를 보고 그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아 아기 예수를 살린 강도라고 합니다, 예수님에대한 이야기들에 황당하고, 허황된 이야기들이 무수히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태는 이집트로 갔다가 돌아 온 예수님의 가족에대해 호11:1을 인용하여 마2:15에서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러냈
다”고 합니다. 23절에서도 보면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말씀 이 외에 다른 것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한 눈을 팔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태가 제2의 모세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바로 이집트의 바로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제 2의 모세라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해 모세 때와 같은 영아 살해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1장은 예수의 족보를 통해 다윗의 자손으로서의 예수를 드러내고 있고, 2장에서는 제2의 모세로서 첫 번째 모세는 히브리 노예들을 이집트에서 구출했지만, 제 2의 모세인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메시야 임을 모세와 비교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모세를 수 많은 위기, 환난, 고통 속에서 지켜주신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역시 예수님의 생애 처음부터 마찬가지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확장해 나가기 까지는 악한 힘으로부터 돌보시며, 보호하시고, 인도하셔서 손가락 하나도 다치치 않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3절은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일, 하나님이 계획하고 섭리하시는 일이 결국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두움의 힘, 거짓의 영, 폭력의 힘이 강할지라도, 물론 사람 보다 강하여, 사람이 이겨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며, 그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경륜 속에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 사건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 속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기본적인 인생관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비록 죽음의 힘이, 핍박과 고난이 성난 파도와 같이 나를 덮칠지라도, 어두움이 깊어 한 치 앞을 바라보지 못할 지라도, 그리고 고향을 떠나 낯선 이방지역으로 나아갈 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매우 밝은 전망과 평안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 살면서, 나사렛 사람이라 불릴 것이라’ 합니다. 이 삶의 여정은 임의로, 또는 자의적이거나, 이기적이지 않은 섭리와 경륜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교우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를 향한, 교회를 향한, 가정을 향한, 더 나아가 나라와 민족, 인류를 향한 계획이 있음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다는 신뢰, 확신이 있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믿는 사람의 삶의 자세는 어떠할까요? 그렇습니다. 기다림입니다. 기다릴 줄 아는 것입니다. 기다림에 익숙해 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강한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일까요? 저는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스테판이 핍박으로 순교를 당한 이래 로마의 공인을 받은 시간이 300년입니다. 지난 주 홍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스라엘이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된 이래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한 연수가 몇 인가요? 400년입니다. 아니 그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이 한 사람 모세를 세운 연 수가 몇인가요? 80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른 연 수가 75살이요, 또한 아들을 주신 연 수가 100세입니다. 그것은 농부가 씨를 뿌리고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하나님의 기름을 부음받을 때는 언제인가 하면 사울이 여전히 살아있을 때 였습니다. 사울이 자기 연민에 빠져 하나님 보다는 사람을 의식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한 사람을 준비시켰습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죽고, 명실 공히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위를 계승받을 수 있지만 다윗은 왕권을 접수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다윗은 삼하5:5에 보면 예루살렘 옆 다른 산 봉우리에 위치해 있는 헤브론에서 7년 6개월을 기다립니다. 왜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왕권을 인수받지 않았을까요? 사실 사울이 죽었지만 그 때 까지도 여전히 사울을 쫓던 북 쪽 10지파는 다윗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러한 와중에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왕위를 계승했다면 피비린내나는 권력 투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7년 6개월 만에 북쪽 10지파를 대표하는 장로들이 모두 헤브론에 찿아와 다윗에게 무릎을 꿇고 명실 공히 통일된 이스라엘왕으로 추대를 합니다. 7년 6개월 걸렸습니다. 7년 6개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평화입니다.

기다림의 결과는 우선적으로 평화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우선적으로 평화입니다. 왜냐하면 기다림 속에 평화이신 하나님께서 일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니 하나님 만이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그 7년 6개월의 기다림에 익숙해지는 것이 신앙이 아니겠습니까? 모세의 80년이 신앙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아들을 기다리는 25년이 바로 신앙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누가 복음의 메시야 오심을 기다리는 시므온과 안나의 모습이 바로 신앙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라는 것입니다.

이삭이 수 차례에 걸쳐 우물을 팝니다. 우물을 파는 족 족 물이 나옵니다. 그런데 파면 미디안 족속들이 나타나 그 우물을 빼앗습니다. 그러면 이삭은 또 다른 곳으로 가서 우물을 팝니다. 쉬지 않고 우물을 팝니다. 그러면 언제 까지 인가요? 하나님께서 ‘이제 됐다!’ 할 때 까지 우물을 팝니다. 그러면 언제 하나님이 ‘됐다’고 할까요? 창26:22에 보면
“이삭이 거기에서 옮겨서, 또 다른 우물을 팠는데, 그 때에는 아무
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주님께서 우리가 살 곳
을 넓히셨으니, 여기에서 우리가 번성하게 되었다" 하면서, 그 우
물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는 그것을 원하신 것입니다. 이삭이야기의 정점은 32절입니다. 32절에 보면
“이삭의 종들이 와서, 그들이 판 우물에서 물이 터져나왔다고” 보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삭이 파는 곳에서만 샘이 터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괴롭히던 사람들, 그들이 누구인가요? 바로 이스라엘을 늘 괴롭히던 블레셋 사람들이 판 우물에서도 샘이 터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렇습니다. 평화입니다.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은 평화를 이루십니다. 기다림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은 생명의 열매를 맺습니다.

대강절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축복입니다. 기다림의 날들을 맛 보는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이 기다림 속에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들에게 찿아오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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