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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소원(2013년7월14일,성령강림후여덟번째주)

하늘기차 | 2013.07.15 12:35 | 조회 2235


단 하나의 소원
성령강림후여덟번째주 시27:1-14

다윗의 시를 보면, 그 표현이 무척이나 거칩니다. 특히 탄원시에서 자신을 해치려는 원수들에대해서 내 뱉는 거침없는 말들은 혀를 내 두를 정도입니다. 좀 거칠어도 들어보십시오.
“너를 장막에서 끌어내어 갈기갈기 찢어서 사람 사는 땅에서 영원
히 뿌리 뽑아 버리실 것이다.”(시52:5)
“달을 채우지 못한 미숙아가 죽어서 나와 햇빛을 못 보는 것 같이
되게 해 주십시오”(시58:8)
“악인의 피로 그 발을 씻게 해 주십시오...”(시58:10) 등 다리를 부러뜨리고, 빌어먹게 하라, 대가 끊어지게 하시라는 등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과 대치가 됩니다.

그런데 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다윗이 그렇게 하나님께 저주를 퍼부으며 원수를 갚아달라고 탄원하던 사울을 두 번이나 무방비상태로 만나 죽일 기회가 있었는데도 다윗은 사울을 하나님이 친히 기름부은 종이라 하여 죽이지 않습니다. 아니 하나님께 탄원을 할 때는 입에 담지 못할 저주를 퍼부으며 이를 갈지만, 막상 그 원수를 스스로 갚을 기회가 바로 눈 앞에 왔음에도 원수를 갚지 않습니다. 이 다윗의 태도를 통해 우리는 신앙의 지혜를 봅니다. 다윗의 하나님 앞에서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 같이 뛰어놉니다. 왕이요, 지혜자요, 시인이요, 음악가요, 용사인 다윗인데 하나님 앞에서는 어린아이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 같아야 들어갈 수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하나님나라의 백성이요 자녀의 모습입니다.

이 내용을 찬찬히 보면 다윗은 하나님에게 자기의 내적 마음의 상태를 하나도 거르지 않고 자기의 감정 그대로 표현합니다. 토해낸다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마치 그 모습은 집의 아이들이 밖에서 놀다가 힘 센 아이에게 폭력을 당했거나, 같이 놀다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집에 뛰어 들어와 엄마에게 그 사실을 모두 고하는 모습입니다. 그렇게 엄마에게 자기의 억울함과 분노를 다 털어 놓으면, 마음이 시원하고 평화로워집니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나가서 그 아이들과 어울립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자기에게 일어난 것들을 다 드러내 아룁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놓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삶의 여정 속에 늘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공경합니다. 지난 번에 경건이라는 것이 공경할 경, 공경할 건이라 했듯이 아버지 하나님에대한 경외심입니다. 자발적 경외입니다. 지난 주에 각별히 돌보시는 하나님에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각별하게 돌보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태생적인 삶의 두려움 속에서도 삶으로부터 야기되는 두려움 속에서도 자유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경외였다는 것입니다. 이 스스로의 하나님 경외의 시작은 어디일까요?

지금 청년들과함께 창세기 에덴동산에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에덴 동산 중앙에는 두 개의 나무가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나무이고, 또 하나는 선악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필 가장 먹음직스러운 선악과만 먹지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하지말라고 하면 더 하고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이잖아요. 그런데 에덴동산에서의 삶 속에서 처음에는 선악과에대해 동산의 사람들이 그렇게 먹고싶은 욕망에 집착하지 않고있음을 봅니다. 왜냐하면 최초의 에덴은 은혜의 동산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 그러니까 사람들이 아버지와 하나된 삶을 산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뱀이 와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합니다. 잘 못된 정보입니다. 뭐라고 하는가 하면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말라고 말씀하셨느냐?'고 묻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두 라고 하지 않고 창 2:17에 보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뱀이 정보를 왜곡시킵니다. 어리석은, 아니 이 순진한 그래서 멍청한 아담이 하나님 주신 그 날카로운 합리적 이성은 어디다 놓아버리고
"그러나 하나님은,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어기면 우리가 죽는다고 하셨다"고 응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보면 뱀이 주는 정보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데 거기에 한 순간에 넘어가버린 것입니다. 먹지 말라고 했지 만지지 말라고는 안했는데, 이 만지지도 말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 은혜가 아니라 아담과 하와의 만지고 싶은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뱀의 그릇된 정보와 아담과 하와의 어리석음이 뒤 섞여버렸습니다. 뱀은 4절에서 하와에게 비수를 꽂습니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말을 당당하게 이야기 합니다. 이미 하와의 마음이 뱀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그러니 뱀은 이렇게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말을 스스럼 없이 합니다. 5절에서는 더 나아가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뱀은 하나님의 뜻과 전혀 다른 정보를 하와에게 전합니다. 6절을 보니 하와가 완전히 뱀의 이야기에 넘어가 버렸습니다. 먹음짓도 하고, 보암직도 하다는 것입니다. 또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해서 자기도 먹고 아담에게도 주어 같이 먹습니다.

이 원역사의 신화적인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사람의 이성이 얼마나 진리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7절에 보면 눈이 밝아졌다고 합니다. 부끄러운 것을 알게된 것입니다. 무엇이 부끄러운가 하면 발가벗은 것을 보았다는 것은 자기가 힘이 없고, 연약하며 유한하며, 가난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는 것입니다. 뱀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피조물은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뱀은 이 구조적인 한계를 심리적으로 바꾸어 마치 무언가 결핍되어있고, 완전하지 않으며, 다른 어떤, 보다 강한 무엇인가를 얻어야 한다는 결핍되어있다고 넌지시 찔러준 것입니다.

은혜 안에 있을 때에는 피조된 유한함이 하나님의 선한 창조 질서인 것을 하나님과 하나인 고로 구지 말하지 않아도 동산 안에서 자유로웠던 것입니다. 죽음에대해서도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정녕 죽는다고 하였거든요. 그런데 그 죽음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에덴에서 사는데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뱀이 죽음에대해 이야기하자 그 죽음이 코 앞에 다가 온 것입니다.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 온 것입니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죽음을 낳은 것입니다.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선악과 이야기는 결과론적으로 보면 안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했기 때 문에 온 인류도 죄인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면 내 죄가 아니라 아담과 하와의 죄로 돌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이야기는 관계에대한, 지금 우리들의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뱀은 5절에서 하나님이 너희들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서 먹지 말라고 한 것은 너희가 하나님처럼 되어 선악을 알게될 것 같아서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이라 합니다. 이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마도 인류 문명이 끝 날 때까지 하나님 처럼되려고 하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 피조된 유한함에서 벗어나려고 문명을 만들어 냅니다. 자꾸 한계를 넘어섭니다. 하나님에대한 이미지도 뱀이 완전히 바꾸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궁핍함을 체워주는, 그러니까 하나님이 되면 그 연약함과 부족함, 유한함을 다 뛰어넘을 수 있는 존재로 보게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정의로워며,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선악과는 넘어서지 말아야할 경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피조물의 경계가 있는 것입니다. 또 뿐만아니라 인간 서로 서로에게도 경계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과 자연 사이에도 경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또 심리적으로 풀면 안됩니다. 금방 답답하고, 무언가 구속되는 것 같이 들립니다. 그러니 이 경계를, 한계를 우리 본래의 모습으로 구조적으로 본래 피조된 모습이 아름답다고 바라 볼 수 있어야합니다. 그러니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해 주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창조의 존재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쁜 정보가 하나님의 참 정보인 말씀을 자꾸 왜곡시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거짓되고 왜곡된 정보가 넘쳐납니다. 지난 밀양원전 탈핵희망 문화제 때 ‘핵없는세상행동’의 대표분이 나와서 농사지으며 평생을 흙과 함께 복되게 살아가는 밀양 마을을 파괴하는 삼각 편대가 있다고 하면서 자본과 공권력과 지식인테리계층이 삼박자를 맞추어 그 경계를 무너뜨렸다고 합니다. 저는 이 삼각 편대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바로 진리를 조작하는 언론입니다. 뱀의 역할을 합니다. 오늘 언론이 거짓 정보를 유포합니다. 이렇게 거짓 정보가 넘실데는 것도 하와같은 욕심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4대강,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거짓으로 위장된 핵발전소, 최근 대통령선거 때부터 시작된 국정원의 거짓말, NLL의 왜곡, 천안함 사건의 거짓말 등, 온갖 거짓 정보와 자본과 공권력과 지식인테리 집단이 하나가 되어 세상을 심리적으로 궁핍하게, 갈급하게, 좀 더 가져야, 좀 더 힘을 얻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방향으로 몰아갑니다.

에덴 동산에서 이야기되는 한계를 넘어서는 죄에대한 아주 정확한 이야기가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 속에서 잘 소개되고 있습니다. 창39:9입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
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
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하고 이집트에 팔려간 요셉이 자신을 유혹하는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말을 물리치며 하는 말입니다. 나는 나의 역할이 있고, 당신은 당신의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이 말은 내가 여기서 장군이 그어준 경계를 넘어서면 안된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 경계가 심리적으로는 자꾸 넘어가고 싶은 것으로 세상 정보는 온갖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미화시키고, 정당화시킵니다. 그러나 성서는 이 한계를 심리적 궁핍으로 보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아름다운 뜻으로 보게 합니다. 이 은혜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이 동산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은혜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나님 경외하는 모습으로 은혜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죄 용서의 은혜, 회개입니다. 자기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의 합당한 열매가 없이는 이 은혜의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다우시은 충신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감추었던 그 사실을 나단 선지자자가 폭로하자 그 말씀을 받아들여 통회의 자복을 합니다. 어머니의 모태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라고 구우너적인 죄에 모습을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시51:10-12에서
“아, 하나님,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내 속을 견고
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
시며, 주님의 성령을 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께
서 베푸시는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내가 지탱할 수
있도록 내게 자발적인 마음을”달라고 합니다. 빛이신 주님의 구원의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뱀 유혹 이전의 사람들 처럼 하나님과 하나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윗은 오늘 말씀에서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고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원수들과 대적이 다윗을 치러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3절에서 하나님 만을 의지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다윗도 끊임없이 두려움에 붙들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외적 두려움에서 벗어나 하나님만 의지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 만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윗은 끊임없이 하나님에대해 절대적 신뢰를 보여줍니다. 결국 우리는 여기에 머물러 있어야합니다. 믿음이라는 것 자체의 속성이 두 가지일 수 없습니다. 두 마리를 토끼를 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 안의 잡다한 생각과 우상, 욕심, 관계, 거짓. . . 이 모든 것을 떨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하나님을 바라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었던 것은 1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나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요일1:5는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창고에는 온 갖 잡다한 것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중에는 어디에 무었이 들어 있는지를 알 길이 없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아니 윗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그 모든 인자들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내면은 창고와 같습니다. 우리들의 내면에 무엇이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나를 보아도 분명한 것은 원하는 것, 좋은 것 뿐만아니라, 끊임없이 원치않는 나쁜 감정들, 생각들이, 욕망이 솟아오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 밭, 골짜기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꽃, 열매를 피워올릴 수 있을까 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렇게 고백합니다. 한 가지 소원입니다. 하나 만 구하겠다고 합니다. 4절 말씀입니다.
“주님, 나에게 단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나는 오직 그 하나만 구
하겠습니다. 그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면서 주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는 것과, 성전에서 주님과 의논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교우여러분! 여러분에게 만일 인생에 한 번, 딱 한가지 소우너을 무엇이든지 들어준다고 할 때 여러분은 무엇을 소원하겠는지요? 다윗의 복된 소우너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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