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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아버지(어버이주일, 부활절제7주)

하늘기차 | 2013.05.12 15:47 | 조회 2699



영적 아버지 어버이주일(부활절제7주) 고전4:14-21 가정의 달에 말씀 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가정 마다 따뜻함과 사랑이 넘쳐나기도 하지만 아픔 또한 못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요일부터 게속 본문을 정하지 못 하고 이리 저리 자료도 보고, 먼 산을 바라 보지만, 본문 정하기가 그리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오늘 본문을 정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의 고린도 교회는 은혜도 풍성하였지만 탈도 많았습니다. 고전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에 주신 성령의 은사가 9가지가 나옵니다. 가르치고, 병 고치고, 예언하고, 방언하고, 그러나 그렇게 은사가 많으니 쉽게 말해 교통정리가 되지가 않습니다. 자기 잘난 맛에 자기 일 합니다. 그런데 은사는 그대로 은사입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시며, 또 거두어 가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누구는 10개, 누구는 5개, 누구는 1개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모두 귀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은사를 통해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까 은사는 열매가 아닙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하나님은 은사에대해 묻는 것이 아니라 열매에대해 물으십니다. 하나님이 고린도 교회에 주신 귀한 은사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은사가 많아, 분쟁도 많았고, 탈도 많았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은사를 인정해 주고, 배려하고 이해하며 마음을 합하여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분파와 성도들 간의 소송, 성적 타락, 우상 숭배, 음식에 관한 것, 성찬에 이르기 까지 교회가 혼란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고린도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사를 받았지만 그 은사가 향기를 피워내지 못합니다. 고전 14:4, 12, 26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 같이 은사는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라고 거듭 거듭 강조합니다. 간혹 아파트나, 어느 한 공간을 마련하여 종종 예언하고, 병도 고치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가짜입니다. 병고치고, 귀신쫓아내고, 예언하고 하는 모든 것이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바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일만명의 스승이 있을지 몰라도, 아버지는 여럿이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스승이라는 말은 헬라어 ‘파이다고고스’를 풀이한 말로 당시에 가정교사를 뜻합니다. 그 당시 가정교사는 전쟁 포로로 잡혀온 노예들 중에 학식이 있는 사람들을 택하여 귀족들의 자녀들을 성숙해 질 때까지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갈3:24에서 보면 율법을 주님이 오실 때 까지 개인교사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가정교사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어린 아이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사의 수를 사도 바울은 1만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그 만큼 이 사람들이 많은 문제들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복음 아닌 것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대하여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있다’고 선언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의 능력을 알아보겠다고 합니다. 말은 바로 일만 스승을 이야기합니다. 말로하는 가르침만 있지, 변화된 삶은 없습니다. 다양한 은사에 따라 교사들이 많은 것들을 가르치지만 삶의 변화, 용서, 화해 나눔, 이해, 관용은 없습니다. 평화의 열매는 없습니다. 이러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사도 바울은 채찍과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15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바울이 낳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잠재울 수 있는 것은 낳은 사랑, 낳은 가름침과 권면입니다. 갈4:19에 보면 “나의 자녀 여러분, 나는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 지 기까지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인 것입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부부 사이에, 또는 부모와 자식 간에도 능력 없는 말 만 무성하다면 아마도 고린도 교회처럼 사분오열, 또 세상의 온 갖 잡다한 가치들이 가정 안에 들어 와 주인 노릇 할 것입니다. 한 고층 아파트에 끔찍한 불상사가 일어났습니다. 부부 싸움 끝에 남편이 그만 가스 밸브를 열고 불을 붙였습니다. 펑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불이 번져 옆방에서 가습 조이며 있던 아들이 뛰쳐나와 창문으로 뛰어내렸습니다. 엄마도 그 불길을 피하려 아들을 따라 뛰어내렸습니다. 남편은 홧김에 저지른 일이지만 기가막혀 하다가, 소화기를 찿지 못하여 어쩔 수 없이 몸을 피해 뛰어내렸습니다. 세 가족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천만 다행히 한 사람도 다친데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고 합니다. 남편은 제비족이고, 엄마는 ‘날라리’였고, 아들은 비행청소년이 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수운 이야기이지만 , 오늘 우리 시대의 실제 상황이기도 합니다. 가정에 이렇게 갈등으로 힘들어 하는데, 저 역시 가정 안에서 그렇게 자유롭지 못합니다. 늘 부족하고, 때로 힘들기도 합니다. 가정에서 제일로 중요한 것은 서로 소통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통이 입의 말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린도교회처럼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바깥 세상의 일들이 가정 안에 그대로 들어와 실력 발휘를 하게됩니다. 잠2:15에 보면 참 재미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가서는 솔로몬왕의 한 여인에대한 애뜻한 사랑이야기인데, 그래서 왜설스럽기 까지 하지만 이 사랑은 바로 교회가 그리스도를 향한, 성도가 그리스도를 향한 애뜻한 사랑의 은유적 표현입니다. 그 내용은 “여우 떼를 좀 잡아 주오, 꽃이 한창인 우리 포도원을 망가뜨리는 새끼 여우 떼를 좀 잡아”달라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 여우가 들어 와 애써 가꾼 포도원을 다 망친다는 것입니다. 가정에도 이러한 여우가 숨어들어오기 십상입니다. 여우는 정문으로가 아니라 울타리 허술한 작은 구멍을 타고 들어옵니다. 그렇게 가정의 연약한 부분을 틈타 파고 들어온 세상의 가치관과 일들이 가정 안에서 활개치는 것을 막으려면 말로 만이 아니라, 상대 방의 마음을 읽는 진정한 대화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가르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의 대화를 주고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 진정한 관계의 바다 한 가운데로 나아가려면 나룻터에 묶어둔 내적 진실한 관계의 배를 풀어 노를 저어 관계의 바다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됬다 싶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의 영의 감동으로 이루어지는 내적 깊은 관계는 우리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합니다. 우선적으로 거친 의사표현은 관계를 더 꼬이게 합니다. 저도 가정에서 이제는 큰 소리를 많이 줄인 것 같습니다. 거친말을 듣는 순간 사람은 침묵모드로 바뀝니다. 거친표현을 하는 사람은 ‘침묵모드’의 사람에게 ‘말 못한다’ 하면서 더 거친 말로 응수합니다. 결국 침묵모드의 사람은 영원히 침묵모드에 빠져들게 됩니다. 대화가 단절되고 맙니다. 또한 가정에서 가장 싫어하는 말은 통제하는 말입니다. 소위 말하는 잔소리는 통제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잔소리는 올바른 말이며 꼭 이치에 맞는 말입니다. 예를들어 부인이 전기를 아끼기 위해 불을 끄라고 이야기 합니다. 얼마나 맞는 말입니까? 그런데 남편도, 아이들도 전기를 절약하기 위해 불을 끄라는 아내의, 또는 엄마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불을 끄라는 아내의 말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처럼 들리기 시작하면 아내의 말은 물론 맞지만 남편은 기분이 나빠서도 일부러 불을 끄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럴 때 아내는 남편에게 “당신은 왜 항상 불을 켜 놓고 다니세요? 전기를 절약해야 하는 것도 모르세요?” 라고 말을 하지 말고 가족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에 ‘우리 가족은 불을 켜놓고 다닐 때가 많아요. 그래서 우리 가족 식구가 불을 끄는 일에 신경을 좀 더 기울이면 좋을 것 같에, 나부터 실천할께”라고 하면 남편도 자녀들도 기분좋게 엄마의 말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잠25:11은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라고 합니다. 진리도 경우에 맞지 않으면 잔소리가 되기 십상이지만 경우에 합당한 말은 은쟁반에 금사과처럼 귀합니다. 왜 내가 옳은 소리를 했는데 아내가, 자식이 싫어할까요? 내가 권면했는데 왜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며 속상해 하는 경우가 있는데, 꼭 알아야 할 것은 권면을 할 때 상대방을 통제가 아니라 충분히 존중한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처럼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 같이 훈계하려 한다고 하는 사도 바울처럼 말입니다. 스승은 여럿이 있을 수 있지만 아버지는 여럿이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내가 여러분을 낳았다’고 합니다. 결국 낳아서 길러준 사람 많이, 그러한 사랑 만이 우리를 구원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특히 아버지의 사랑은 더 할 나위 없습니다.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 때의 이야기입니다. 영국 국가대표 5번 데렉 레드몬드 그는 영국 기록을 갈아치운 400m의 강력우승후보였습니다. 그러나 150m에서 다리 힘줄이 갑자기 끊어졌습니다. 고통 속에서 레드몬드는 주저 앉았습니다. 그러나 레드몬드는 진행요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잠시 주춤하다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뛰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깨끔발로 절뚝거리며 뛰었느네, 이 때 . . . 관중석에서 한 남자분이 갑자기 트랙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안전 요원들이 막아서는데도 불구하고, 레드몬드에게 다가가서 함께 뛰었습니다. 그는 아들의 고통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그의 아버지였습니다. 울며 뛰는 아들에게, “이제 그만 하여라” 해도, 아들은 “끝까지 완주할래요!”합니다. “그래 그러면 . . ., 아들아, , , 같이 뛰자꾸나!” 그리고 아들을 팔로 부축하고 같이 뛰기 시작합니다. 결승점까지 아들이 완주하도록 아버지는 도왔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수 많은 사람들은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습니다. 사람들은 1등한 사람 보다, 완주한 레드몬드에게 더 열광했습니다. 고통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끝까지 완주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들을 부축한 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근육이 끊어져 고통 속에 괴로워하는 아들의 얼굴이 아버지를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오셔서 반드시 도와주실 것입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고기교회 여러분 고통스러워도 절데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힘들어 하는 우리에게 찿아와 함께하십니다.  

 

 

 

  ‘다리, 아버지 사랑’이란 짧은 영상을 함께 보겠습니다. 체코에서 있었던 실제 상황이라고 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most'라는 제목의 체코 단편영화입니다. 미국인 Bobby Gabedian 감독에의해 2003년 체코에서 촬영된 29분짜리 길이의 단편영화인데 복음을 위해 편집한 것입니다. 2004년 제76회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영화작품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던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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