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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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때(사순절다섯번째주일, 2014년4월6일)

하늘기차 | 2014.04.06 15:33 | 조회 2452

  
                          

                          은혜의 때

사순절다섯번째주일                                                                                                고후6:1-2

       이사야서에는 고난받는 종에대한 노래가 42, 49, 50, 53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고난받는 종에대한 노래가 이스라엘의 멸망에대해 기록하고 있는 1장-39장 메시지 속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40장 이후, 즉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이스라엘에게 희망을 선포하는 메세지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난에대한 이야기가 멸망과 관련될 것 같은데, 이사야는 고난을 희망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39장과 40장의 말씀의 내용이 전혀 다름니다. 39:6을 보아도 너희 조상적부터 저장해 온 모든 보물이 바벨론으로 옮겨 갈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40장을 보면 첫 마디에서 위로를 선포하면서 내가 택한 나의 종을 보라! 나의 종이 눈을 뜨게 하고, 감옥에 갇힌자를 풀어주고, 우리의 병을 고쳐주실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왜 고난을 받아야 하는 가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일하십니다. 그래서 인본주의자들은, 그리고 교회를 핍박하는자들은 기독교가 자기학대 망상에 걸려있는 집단이라고 매도하며, 무시합니다. 어떻게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매 다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죄의 깊음, 그리고 그 힘, 그 악한 지혜가 어떻게 인류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는 지를 몰라서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지금 돌아가는 세상의 풍조를 보아도, 끊임없는 전쟁의 폭력을 보며 나도 역시 그러한 조건에 붙들리면 자유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 번에 함께 본 ‘바르샤와 왈츠’에서도 레바논 사람들이 팔에스타인 난민들을 무차별 학살할 때, 이스라엘의 군인들이 방관하는 모습은 인간이 얼마나 죄에 매여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사39장 마지막 구절에서는 이사야 예언자가 히스기야 왕에게 당신이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이 바벨론 왕에게 잡혀가 환관노릇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자, 히스기야는 주님의 말씀은 지당한 말씀이라 하면서 자기가 사는 동안 만이라도 평화와 안정이 계속되면 다행이라고 합니다. 이 얼마나 무기력한 모습입니까? 히스기야 하면 남 쪽 유다에서 종교계혁, 사회개혁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에서 벗어나게 하였던 왕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거대한 바벨론 앞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로 인간의 모습입니다. 죄악의 거대한 힘 앞에 무력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제가 왜 고난받는 종에대한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은혜의 때에, 나는 네 말을 들어주었다.

구원의 날에, 나는 너를 도와주었다”하며 사49:8 말씀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근데 ‘너’를 돕겠다고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바로 고난받는 주의 종을 돕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이사야서의 고난의 종에대한 노래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와 이스라엘이 동격으로 나오기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되고 있음을 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과 모세에게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바로 그 돕는 때, 그 시간이 은혜의 때요, 구원의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구원해야할 때에 은혜를 베풀고,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날에 돕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실 때, 그 곳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하나는 엘리야 시대에 극심한 가믐으로 많은 과부들이 굶주림 속에 고통 받을 때, 오직 사렙다 과부 한 사람 만 도움을 받아 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병자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깨끗함을 입은 사람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방 사람인 수리아 나아만 장군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엘리야 시대, 엘리사 시대에 라고 하면서 ‘때’를 이야기하셨습니다. 엘리야 때에는 사렙다 과부가, 엘리사 때에는 수리아의 나아만 장군이 은혜를 입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때 뿐 만 아니라 예수님 때에도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우여러분 엘리야 때에 그 극심한 가믐에 은혜를 입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은 살기위해서입니다. 살라고 명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입니다. 엘리사 시대에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고침받지 못했다면 그것은 죽음입니다. 아무리 최고의 권력과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더라도 은혜를 입지 못하면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때”라고 합니다.

        교우여러분 오늘 이 시대야말로 역시 엘리야의 시대요, 엘리사 때입니다. 생업으로, 영적 가믐으로 고통스러워 합니다. 정의와 공법이 무너진 시대입니다.그렇다면 역으로 지금이 바로 은혜의 때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두 번째 편지를 쓰면서 당시의 시대를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사랑이 넘치는데 사랑이 없습니다. 하나님 보다 쾌락을 더 사랑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원형은 십자가입니다. 사랑이 이 것이라는 것을 십자가를 통해 드러내셨습니다. 사랑에 두 가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를 내어 놓으시데 십자가에 죽기까지 내어놓으셨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것을 딤후2:8에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찬찬히 살펴보면 교회의 사랑의 정체는 순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통해 사랑이 드러납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랑이고, 성도들의 사랑입니다. 자기의 생각이나, 의지나 노력이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성서가 이야기하는 세상과 다른 사랑의 신비입니다. 이 사랑이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에도 이 사랑이 없어진지 이미 오래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사랑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지기를 제 스스로 원합니다. 홍수가 나서 물이 넘치지만 정작 먹을 물은 없는 형국입니다. 오염되지 않은 물, 오염되지 않는 참 사랑을 먹고 마셔야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마지막 때에대한 말씀을 하면서 하나님 보다 쾌락을 더 사랑한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마지막 때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보통 마지막 때라 하면 그 징후, 증상, 현상에대해 이야기합니다. 천재 지변, 전쟁, 기근 등 이 것도 옳은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듯이 또한 교만하고, 훼방하고, 무정하며, 절제하지 못하고, 감사할 줄 모르고 등의 부정적 이야기들도 있지만 이것은 구지 드러낼 필요가 없는 너무 잘 드러난 모습이고, 성도들에게 있어서의 종말은 그러한 현상들을 있게 한 세상의 가치 지향에 종말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를 쓰고 달려드는 세상 풍조에서 돌아서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것 처럼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라는 말에 귀 기울여 그 말씀을 포기하지 않고 그 말씀 받아서 순종하려 한다면, 자연스럽게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싹이 나고, 가지고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맛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순종을 통해 세상이 줄 수도, 맛 볼 수도 없는 사랑이 여러 분 주위에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사랑인 것입니다. 교회에는 이 사랑이 넘쳐나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입니다. 초대 교회에도 이 사랑을 방해하고 거부하는 움직임이 드셌지만, 믿음의 사람들, 남은 사람들이 이 사랑을 지켜냈습니다.

        예수님의 때에 예수님께서 여리고성을 지나가실 때 장님 거지 바디매오가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조용하라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 큰 소리로 외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알았습니다. 지금 이 시간 예수님을 못 만나면 그 때는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바디매오에게 지금이 종말입니다. 예수님 지금 못 만나면 끝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도들에게 종말은 말씀을 믿음으로 받느냐, 못 받느냐, 또 들은 말씀을 순종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말씀을 못 받으면 바로 세상의 가치에 그대로 자리잡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말입니다. 그런데 장님 거지 바디매오는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깨닫고 막무가네로 외친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자 주님께서 걸음을 멈추고 불러오라 하셔서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말씀하자, 장님은 “보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간절한 믿음이 종말, 끝에서 새롭게 열린 시작점, 출발 선 앞에 서게 한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망설이지말고, 종말의 때에 은혜의 출발 선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예배의 시간, 예배의 자리가 바디매오의 자리요, 사렙다 과부의 때요, 장님 바디매오의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8년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그렇게 주님을 만났고, 여리고성의 세리장 삭케오가 예수님을 만나려고 체면 내려놓고 뽕나무에 올라 예수님과 눈을 마주친 것입니다. 눈을 마주쳐야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눈을 마주치듯이, 대충 바라보지 말고 또렷이 예수님과 눈 마주치며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종말의 때에 은혜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은혜의 때에, 종말의 때에 한결같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농부가 추수 때에 기쁘고, 즐겁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아직 봄이 오기 전부터 씨앗을 뿌리기 위해 마음 설레이며 파작을 준비하여 모종하고, 땅을 갈아 엎고, 거름주고. . . 가믐에 마음 졸이고, 폭풍우 속에 가슴 쓸어 안으며 가을 추수 때 까지 설레이는 마음으로 긴장감을 놓지 않고 열심히 땀흘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고후6:1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고린도 교회에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때에 은혜를 거절하거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지 않거나, 바울을 통해 전달된 유일한 참 복음을 복음아닌 세상의 철학이나, 영웅신화나, 성공, 성장 신화, 또는 세상의 규례, 율법, 터부나 금기 같은 것에 흔들리지 말고 처음에 받은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굳게 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가 받은 은혜에대해 고전15:10에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

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 보다 더 많이 수고 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의 12 사도 보다 더 수고가 많다고 합니다. 이 말만 딱 때어서 보면 교만이지만, 사도 바울이 은혜입은 자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그 수고가 ‘나’가 아니라 은혜라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가 나를 지금까지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은혜로 옥에 갖힘, 굶주림, 환난, 매맞음, 잠자지 못함 등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감당했습니다. 7절은 이에대해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을 한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즉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에대해

“우리는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이름 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

하고, 죽는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고,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무 때나 그러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이사야서사49:8에서 인용한 것 처럼 은혜의 때, 구원의 날에 네 말을 들어주었고, 너를 도와주었다는 것인데, 바로

“너희를 구원해야 할 때가 되면,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겠고,

살려 달라고 부르짖는 날에는, 내가 그 간구를 듣고 너희를 돕겠다”고 하면서 ‘너를 시켜서 뭇 백성과 언약을 맺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연약을 맺고자 하는 ‘너’가 바로 고난 받는 종,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49:5을 보면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주님께서는 나를 그의 종으로 삼으셨다. 야곱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고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불러모으시려고, 나를 택

하셨다. 그래서 나는 주님의 귀한 종이 되었고, 주님은 내 힘이 되셨다. 주님

께서 내게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종을 돕겠다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사도 바울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고 언급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는 종을 돕겠다는 것입니다. 언제! 지금, 이 시간에 은혜요,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로 이제 더 이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은혜의 때요, 구원의 때인 것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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