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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들리기 시작하였다(주현절후여덟번째주, 삼상3:15-21;4:1;엡1:17-23)

하늘기차 | 2014.03.02 16:30 | 조회 2672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주현절후여덟번째주                                                                                                                          삼상3:15-21;4:1;엡1:17-23

   지난 주 우리는 사무엘 당시의 시대가 왕정제를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고 했는데, 외적으로는 블레셋 같은 세력에대해 좀 더 강력하게 대처하기 위해서이고, 내적으로는 이미 그 당시 부정과 부패, 그리고 불신, 종교적 타락과 맞물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서 빈부의 격차가 생겨 신흥 기득층이 자신들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왕권과 군사력을 원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군주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무엘서는 왕권의 태동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왕정시대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성서는 고대 근동의 왕의 개념과는 달리 왕을 신격화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왕은 다만 신의 대리자일 뿐이며, 야훼께서 친히 왕권을 행사한다는 사상이 여전히 깊게 깔려 있습니다. 신명기17:14~17은 왕이 되기 위한 기본 요건으로서 타국인을 왕으로 세우지 말 것, 군마(軍馬)를 많이 두지 말 것, 아내를 많이 두지 말 것, 자기를 위하여 금 · 은을 많이 쌓아 놓지 말 것 등을 규정하고 있으며, 또 왕은 반드시 율법책을 평생 자기 곁에 두고, 야훼를 경외하기를 배우고 교만해져 백성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왕권에 대한 제한적 조처들은 이스라엘은 왕이 아니라 '야훼가 다스리신다'라는 신앙을 보여며, 아울러 대외적으로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주변 국가에 대한 비판적 태도의 반영일 뿐만 아니라, 세금의 과중한 징수와 경제적 불평등 등이 결합된 사회적인 견제 장치였습니다.
 
  하여간 그러한 전환기에 사무엘이 태어납니다. 사무엘은 한나의 서원대로 젖을 떼자 바로 실로의 엘리에게 맡겨져 성전에서 엘리의 수발을 들며 성전에서 자라게 됩니다. 참 신비로운 것은 사무엘이 실로에 거한 후에 엘리의 아들들은 점점 더 불경하였으며, 엘리는 정신이 점점 더 희미해져 갔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사무엘을 통해 들리기 시작합니다. 희망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말씀이 끊어지면 죽음입니다. 여러분은 일상 속에서 어떤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며, 행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열매가 있습니까?

   성경 말씀에 좀 더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무언가 선택해야하고, 결단해야할 때에 그리고 하나가되어야 할 때, 용서를 구하거나, 용기를 내어야할 때, 오직 나만 홀로 남아있는 것 같은 때,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질병으로 또는 정신적인 일로 힘들 때에 내 생각이나, 이웃,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물론 하나님께서는 다른 매개를 통해 말씀하기도 하지만, 진정 내가 읽고, 묵상하여, 내 안에 깊이 자리한 말씀이 내 안에서 나에게 말씀하는 것을 영적으로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귀한 은혜가 아니겠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익숙해 있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다니엘이 마음을 정하였다. 시험받을 때 지혜를 구하라, 하나님께 우리가 필요한 것을 구할 때 우선적으로 성령을 통해 나에게 위로와 평화를 주신다는 것, 감옥에 갇힌 베드로가 태평스럽게 자고 있던 중에 옥문이 열린 사실 등,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이야기 . . . 많은 말씀들이 우리를 보호하고, 인도하고, 지켜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엡1장에서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에대해 힘써 알기 원한다고 아주 절실하게 권면을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에대한 앎으로부터 오는 3가지 귀한 은혜에대해 말씀합니다. 소망과 상속과 능력에대해 알기 원한다고 합니다. 첫째 여러분은 소망이라고 할 때, 희망이지요, 무엇을 희망하나요? 오늘 말씀하시는 소망은 어떤 소망인가 하면 다른 소망이 아니라 부르심의 소망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른 이유가 있을텐데, 밖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데, 엄마가 부릅니다. ‘야! 홍택아!’ 쉽게 대답이 안나옵니다. 집에서 컴퓨터로 게임을 열심히 합니다. ‘예 야!, 밥먹어라’하고 부르면 좀처럼 대답을 안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하는 일에 몰두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부르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꼭 부르지 않았으면 할 때 부르시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하나님은 바로 내 그 상황에서 벗어나라고 부르시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르심 자체로도 이미 나는 나에게 메여있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모세가 사도 바울이 그렇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선진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부르셨습니다. 당시 우상으로 가득찬 세상 속에서 인류를 축복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이집트에서 고통받는 히브리 노예들을 자유케 하기 위해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이스라엘 왕권을 신정의 왕권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그리고 인류 구원의 비죤을 드러내기 위해 다윗을 부르셨습니다. 그렇게 부르심의 소망이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불렀다는 것은 거저 부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도 사람을 부를 때 그 이유와 목적이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부르심에대한 합당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불렀는지 안 불렀는지 잘 모르겠다구요?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망에는 기다림이 함께합니다. 잘 기다릴 줄 알아야합니다. 예를들어 모세가 왕궁에서 쫓겨난 것은 세상적으로는 실패요, 좌절이요, 절망이요, 죽음일지 모르겠지만, 부르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리고 부름을 깨닫는 사람에게는 생명이요, 희망입니다. 이게 진짜 희망입니다. 부름의 주체가 생명이면 생명의 희망이지만, 부름의 주체가 아직도 물질적인 것, 세상적인 관계에서 비롯되었다면 히망인 것 같지만 여전히 죽음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셔야 희망입니다. 특히 힘들고 어려울 때 일수록 오랜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이 기다림을 잘 기다려야합니다. 모세는 그 부르심을 깨닫는데 40년이 걸렸습니다. 그 날도 역시 양을 치러 반복되는 똑 같은 날을 보내는데, 홀연히 항상 다니던 한 언덕베기 구퉁이, 늘 보는 바짝 마른 나무떨기에 갑자기 불이 확 하고 붙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신비롭게도 타는데 타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이 가시떨기는 사실은 모세입니다. 아무 쓸데 없는 가시떨기. 그게 바로 모세입니다. 40년 전에는 왕자이었지만, 지금은 가시떨기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가시떨기에 불이 확 붙어 활활 타오르는 것입니다. 이제 다 늙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리 때에 말입니다. 힘 넘치고, 지혜롭고, 활력이 넘칠 때가 아니라, 모든 것 다 떨구고 바짝 마른 가시떨기가 되었는데, 그래서 다 타서 한 줌에 재가 될 법한데, 신비롭게도 그대로 활활 타오릅니다. 사람의 불, 사람의 열심히 아닙니다. 다 말라버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모세에게 하나님의 열정의 불이 붙은 것입니다. 모세는 신비로워 가까이 다가서는데, 하나님께서 신을 벗고 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려면 자신의 신을 벗어야합니다. 그동안 길동무 되었던 신을 이제는 내려 놓아야합니다. 자신을 여기까지 인도한 신을 이제 그만 벗을 때가 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소망 같은 욕망에 더 깊이 사로잡히게 됩니다. 모세는 신발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의 소망, 즉 노예해방의 소망을  덧 입습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아야한다고 합니다. 상속이 영광스럽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려고 하기에 영광스럽다고 할까요? 롬8:30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부르
         신 사람들을 의롭게하시고, 의롭게 하신 사람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고 합니다. 의롭게 하셨다는 것은 사실은 의롭지 않은데 의롭다고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첫 번째로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을 성경은 아브라함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75세에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하란에서 첫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것은 잘 알고 계시겠지만 여전히 첫 부르심에대한 응답이 없을 때, 즉 아직도 자식이 없을 때, 아브라함이 머리 처들고 하나님께 ‘뭘 주려고 날 불렀습니까?’하며 이제 엘리에셀을 내 상속자로 삼겠다고 자기 고집을 펼 때, 하나님은 아브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하늘의 별을 보며 상속의 풍요로움을 보여줍니다. 교우여러분! 아버지 하나님이 베푸시는 상속의 풍요로움은 우주적입니다. 우리가 미쳐 감당하지 못할 만큼 풍요롭습니다. 다시말하면 내가 내 믿음 가지고 이기적으로 내 대에 누리고 끝 날 그러한 상속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주적이며, 역사적입니다. 그러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을 헤아리시는 그러한 신비로운 상속입니다. 궁극에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하나님과 함께 자녀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누는 풍요로움입니다. 그래서 영화롭습니다.

  셋째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기 원한다고 합니다. 시사 IN이라는 잡지에 ‘이숙이 편집국장님께 안녕하세요. 1년 내내 받기만 하다가 글을 쓰려니 쑥스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라고 하는 글이 실렸습니다.
  “ 저희는 양가 부모님께 전혀 도움을 받지 않고(사실은 500만원 정도^^;) 맨주먹으로 2008년에 결혼했습니다. 카드 할부로 혼수 장만하고, 부끄럽게도 그 나이에 2000만원밖에 모으지 못해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80만원으로 신접살림을 시작했지요. 맞벌이를 하고 (해외는커녕) 국내 여행도 한번 안 가는데도 매달 ‘월급이 통장을 스치우니’ 부모 덕 보지 않고 이 땅에서 생존이 가능한가 늘 자문했답니다. (중략)저의 본론은… 해고 노동자에게 47억원을 손해배상하라는 이 나라에서 셋째를 낳을 생각을 하니 갑갑해서 작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싶어서입니다. 47억원… 뭐 듣도 보도 못한 돈이라 여러 번 계산기를 두들겨봤더니 4만7000원씩 10만명이면 되더라고요. 법원에 일시불로 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우선 이 돈 4만7000원부터 내주실 수 있나요? 악법도 법이라고 하니 일단 다 털어드리고 그분들 숨통 좀 트여드리게 하고 싶네요. 나머지 9만9999명분은 제가 또 틈틈이 보내드리든가 다른 9만9999명이 계시길 희망할 뿐입니다. 이자가 한 시간에 10만7000원이라고 하니, 참 또 할 말이 없습니다만… 시작이 반이라고…. 그분들에게 47억원을 거뜬히 넘어서는 희망이 2014년에는 솟아나길 기도합니다.내년에도 저의 눈이 되어주실 <시사IN>을 기대하며 아줌마의 토설을 마칩니다.”는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2013년 12월19일. 김○○, 배○○, 김○○, 김○○, 김○○(예정) 드림
‘크리스마스에 편집국으로 카드 한 통이 배달됐다. 4만7000원이 든 봉투와 함께. 그저 눈물만 나왔다. 나는, <시사IN>은, 그리고 이 땅에 함께 숨쉬는 우리는 무어라 응답해야 할까. 이 무겁기도 하고 한편으론 반가운 질문으로 2014년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한다.’ 고 편집자는 글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지난 30일에 4억 7천 만원이 모였다고 합니다.

   보리 떡5개와 물고기 2마리의 기적은 아마도 이렇게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수 천 수 만의 무리였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역시 누가 복음입니다. 누가복음의 눈은 가난하고, 병든, 그리고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연민으로 바라보는데, 그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무리들을 50명씩 앉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보리 떡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축복하시고 나누기 시작하였습니다. 남자 만 무리지어 5천 명 일 때는 그냥 배고프고 굶주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50 명 씩 무리를 지으니 각 50 명의 삶의 이야기들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그냥 배고픈 사람들이 아닙니다. 눈과 눈을 볼 수 있습니다. 서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기 시작합니다. 이윽고 보리 떡과 물고기가 나누어지기 시작합니다. 놀랍게도 그 곳의 모든 사람들이 먹고 12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주님의 능력이 이렇게 아름답고도 섬세하게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5병2어의 기적은 너무 놀라워서 제자들 속에 계속 회자되었습니다. 그러나 자꾸 제자들이 빵 이야기만 하니까 보다 못하여, 그래서 예수님은 빵 만 보지 말고, 그 징표, 그 뜻을 보라하셨습니다. 그 뜻, 그 징표가 지금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서 드러납니다. 우리는 그 5병2어의 기적이 이 시대, 이 땅에 배고픈 사람들, 고통받고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을 감동시켜 단지 소외된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랑 받을 수 있고, 존중 받을 수 있는 한 생명, 한 존엄, 한 존재로 세우지는 모습을 봅니다. 문제는 이 5병2어의 기적이 교회 안에서, 신앙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져야 마땅한데, 공동체 안에 이 아름다운 기적은 다 사라지고, 개인적인 이기심만 남았는데 부끄러운 줄도 모릅니다. 주님이 너희들이 소리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친다 했습니다. 이 47,000원의 아르다운 기적이 교회 공동체가 아니라 교회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은 정말 커서 우리의 지혜로는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긍휼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무릎 꿇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3장에서도 알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이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씀합니다. 3:18은
        “모든 성도와 함께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
         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고, 지식을 초월하는 그
         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갖 충
         만하심으로 여러분이 충만하여지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씀에대한 앎은, 영적 지식, 영적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보여주신 구원의 사랑, 구원의 소망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말씀을 이루시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지식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엡1:22,23에서 교회가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함이라 말씀합니다. 교회가 재물로인하여, 물질, 돈에의하여 천박한 추락을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말씀해주신 부르심의 소망,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 크지만 섬세한 하나님의 능력을 교회가 성도가 익히 알아야하겠습니다. 이 놀라운 구원을 향한, 자유와 평화를 향한 탁월한 하나님의 지혜, 생명과 정의와 평화를 특히 지금 이 시대에 교회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넓고, 길게, 높고도, 깊이 아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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