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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와 이스라엘의 건국(주현절후일곱번째주,2014년2월23일)

하늘기차 | 2014.02.23 15:52 | 조회 2875

    

                            

                                 한나와 이스라엘의 건국

주현절후일곱번째주                                                                                                       삼상1:9-19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정착하여 왕정에 이르는 근 200년 동안, 비교적 느슨하게 조직된 12지파동맹 체제를 유지하며 살았는데, 이 시대를 사사시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주로 에브라임을 중심으로하는 산악지대에서 살았고, 대부분의 평야지대에는 원주민들이 살았는데, 그들은 막강한 철병거를 가지고 있어 이스라엘이 평야지대의 원주민들을 몰아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평야의 원주민들과 해안에서 이주해 온 블레셋에게 늘 시달리며 살아갑니다. 그런 정황 속에서도 이스라엘은 중앙정부나 단일 국가 체제를 갖지 않고 하나님 신앙으로 주변의 강대국과 어깨를 겨누며 살 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여호와의 영을 받은 사사들의 지도로 적들의 침략을 물리치고 지파간에 결속을 다졌고, 특히 중앙의 성소를 중심으로 하여 하나님 신앙을 공유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해 나갑니다. 그러나 사사들의 권위는 절대적이지 않았고, 영속적이지도 않았고, 그러니 세습되지도 않았습니다. 사사들은 그저 평범한 지파의 한 일원이면서, 민족에 어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홀현히 일어나 하나님 신앙을 힘입어 적들을 물리치곤 한 것이 200년 세월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사 시대를 보면 하나의 통일된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파동맹 공동체가 여러 가지 이유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사기 마지막 장인 21:25을 보면 사람들이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마치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그렇다는 말 투입니다. 이 말투는 지지난 주에도 17:6, 18:1, 19:1에서 거듭 언급되고 있는데, 제가 볼 때에는 왕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 신앙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원치 않는 군주제로 넘어갑니다. 왜 하나님은 왕권국가를 원치 않으셨을까요? 그 이유를 삼8:11-17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왕이 백성을 억압하고 세금을 거두어 가며, 자녀들을 강제 부역과 전쟁터로 내보내는 기능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사무엘은 왕정이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 때문에 군주제를 강력히 반대하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 요청은 출애굽 이후 유지해 온 이스라엘의 평등주의, 연대와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야훼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서 이탈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국가는 사무엘이 이야기했던 그대로 백성들의 공동체적 삶을 무참하게 파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주도 강정, 평택, 용산, 76만5천Kv 고압선 설치로 신음하는 밀양, 그리고 남한의 산하를 모두 망가뜨린 4대강 사업 등, 고대나 현대나 변한 것이 없습니다. 저는 이 사사시대의 정신이야말로 오늘 이 세대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귀중한 본이 되지 않나 십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도 국가와 상관없이 각 지역의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연대하며, 나누며, 도우며 의지하는 그러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나라로서는 대표적으로 최근 마포의 성미산공동체를 들 수 있고, 우리 고기, 동천동도 이우학교를 중심으로, 느티나무 도서관, 그리고 생협을 중심으로 평화와 나눔의 공동체가 구속됨이 없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있고,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CO-하우징을 준비하는 것도 역시 큰 틀에서 그렇게 변하는 시대의 요청이 아닌가 십습니다. 그런면에서 사사시대의 정신은 오늘 국가주의에 묶이지 않고 자유와 평등, 연대와 나눔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습니다.

   사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가던 시대에 자기가 속한 지파가 위기에 처하면 절대적 하나님 신앙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지파의 결속력을 묶어주는 구심적 역할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때로 지파동맹을 통하여 적들과 싸웠고, 중앙 성소에서 공동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 함께 지향할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당시 가나안의 도시국가들로부터의 침략과 경제적 착취 그리고 우상 숭배로부터 자신들의 삶을 지켜나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아쉽게도 그러한 시대를 뒤로하고 왕권 국가가 태동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그 좋던 지파동맹, 실로 중심의 하나님 숭배가 흔들리며 쇄퇴하던 때입니다.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엘가나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아내가 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첫째 아내 한나는 아이가 없어 늘 둘째 아내 브닌나에게 없신여김을 당합니다. 아이 없는 서러움이 하늘 끝에 닿았습니다. 실로에 올라가 하나님께 경배를드릴 때 였습니다. 한나는 성전에 나아가 하나님께 자식 없는 서러움을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자기의 슬픈 감정을 억누르고 입술로 만 읊조리는 모습을 본 당시의 제사장 엘리는 한나에게 술에 취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한나는 제사장에게 나를 그렇게 나쁘게 보지 말라고 하면서 너무 고통스러워 이렇게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엘리 제사장은 한나에게 평화를 빌며 하나님께서 한나의 간구를 들어주실 것이라 축복합니다. 18절 말씀에서 우리는 한나의 순전하고도 깊은 신앙을 봅니다. 한나는 그 길로 가서 음식을 먹고 슬픈 기색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엘리에게 무어라고 한 마디 했을 법 합니다. 그런데 한나는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엘리는 3:1-3에서 보면 말씀은 끊기고, 환상은 나타나지 않고, 눈은 점점 어두워졌다고 합니다. 엘리는 이미 제사장의 역활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나의 하나님에대한 그 갈급함과 간절함이 그런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았으며, 그녀의 순전한 신앙은 엘리의 무기력함을 뛰어넘었을 뿐만아니라 당시의 이스라엘의 혼돈을 꽤 뚫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출구가 되었습니다. 한나는 마치 은혜를 탐지하는 안테나처럼, 당시의 퇴락한 엘리 제사장의 말 속에 담김 하나님의 긍휼, 은혜를 하나도 흘리지 않고 마치 마른 스폰지처럼 전부 다 빨아들였습니다. 한나는 은혜를 입고 사무엘을 낳아, 사무엘은 성전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가 됩니다.

   당시 블레셋은 점차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워 지중해 지역을 넘어 가나안의 산악지대 까지 그 영역을 넓혀 가던 때여서 이스라엘은 늘 괴롭힘을 당하였습니다.  삼4장은 이스라엘이 군주제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사건에대해 이야기 합니다. 블레셋이 침략해 온 것입니다. 쌍방 간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스라엘은 그만 4천명의 사상자를 내며 싸움에서 패합니다. 패잔병이 되어 진으로 돌아 왔을 때, 장로들이 실로에 있는 율법궤를 이 곳으로 모셔오자고 제안을 합니다. 율법궤가 진으로 오자 땅이 진동할 정도로 크게 환호성이 울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오히려 불레셋은 죽기로 싸우자고 결의를 다집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이 전투에서 크게 참패를 당하고 율법궤 까지 빼앗기고 맙니다.

   이스라엘은 율법궤만 오면 기적이 일어나 블레셋을 물리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근본적으로 잘 못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궤는 그렇게 마음대로 옮기는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에게 묻지도 않고, 자신들의 이기적인 생각대로 성소에 있어야할 율법궤를 옮긴 것입니다. 껍데기만 갔지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종교적인 맹신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말씀을 그렇게 쉽게 읽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그리고는 자기가 원하는 말씀 만 선택하여, 그러니까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우리를 비추어주는 것이 아니라, 수퍼마켓에서 물건 고르듯이, 아니면 백화점 쇼핑하듯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지는 않는지, 그리고 생각과 말과 행동은 온통 자기 중심적이면서 성경은 마치 율법궤를 옮기듯이 그렇게 쉽게 읽고, 쓰고 자기가 필요한 상황에 갖다 붙이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제사장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율법궤를 자의적으로 옮기는 것에대해 제동을 걸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에 야합하는 홉니와 비느하스가 그것을 막을 힘도 없었고, 이미 하나님에대한 경외심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그러한 여지는 조금도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스라엘이 율법궤를 빼앗기는 지경에 까지 이른 것은 역시 이스라엘이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 모습을 우리는 두 가지의 예를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지난 번 말씀에서 미가라는 사람이 어머니의 돈을 훔쳤는데 자그만치 우리 돈으로 3억 정도였는데, 어머니가 저주하자 다시 어머니에게 돌려드리고 어머니는 그 돈으로 신상을 만들어 자기 집에 모시는데, 마침 베들레헴의 레위인이 먹고 살기 위해 우연찬케 미가의 집에 당도하자 그를 자기 집 제사장으로 세웁니다. 하나님을 사유화합니다. 그런데 미가 개인 뿐만 아니라 율법궤를 빼앗기는 장면을 보니 아예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을 사유화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패하자 장로들이 율법궤를 전장터로 모셔 오자고 제안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유화하는 것은 당시 가나안의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의 종교적 행태에 익숙해 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임의로 신상과 사당을 만들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는 모습 속에서 하나님 신앙이 왜곡되어가지 않았나 십습니다.

  사람들이 지금의 이 시대를 문명사적 전환의 시대라고 하는데 저도 공감을 합니다. 그러니까 1,2차 세계대전과 같은 유럽을 황폐하게 만든, 또 우리 민족으로치면 해방과 남북전쟁의 아픔, 등 인류와 역사에 많은 어려움과 역사적, 국가적 전환의 시대가 있었지만, 오늘 이 시대는 그 정도가 아니라  후쿠시마 이후, 기후의 변화 위기 이후에 인류가 과연 신생대의 말기를 무사히 잘 넘겨 새로운 시대로, 혹자는 생태대라 부르기도 하는 시대로 잘 넘어 갈 수 있을까? 그리고 전세계를 뒤 덮은 금융자본 거품 경제 체제의 위기 속에 인류가 지속 가능한가에 대해 질문해야한다는 의미에서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이했다고 보고, 민족과 국가적으로도 이제는 남과 북이 더 이상 통일의 발걸음을 뒤로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으며, 또한 일본 군국주의와 맞물려, 중국의 부상, 그리고 미국의 견제가 극동 아시아에서 상충되고 있는 위기 속에, 우리 사회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몰입되면서 훨신 더 극명하게 나뉘는 모습을 봅니다.

   이런 위기 속에 우리는 이스라엘의 이기적인 신앙을 닮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러한 정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모든 백성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왕권체제로 넘어갑니다. 그렇게 백성들이 강력한 왕권을 원했던 것은 이스라엘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성소 실로가 위협을 당하면서, 느슨한 지파동맹체제로는 막강한 불레셋을 막아 낼 수 없으며, 그래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군사력과 지도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사사 시대 이스라엘 사회가 점차 지파 또는 계층 간의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하면서 내적인 분열이 가속화되었다는 점이다. 제사장 가문의 사제권 남용(사무엘기상 2:12~17)이나 뇌물 수수(사무엘기상 8:1~3) 등은 그 사회가 균열되어 가고 있었다는 증거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가라는 가정의 신앙의 사유화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에 벌써 경제적 갈등이 있었고, 이러한 계층 간의 갈등은 토지 분배에 따른 새로운 계급이 생겨났으며, 새로 출현한 귀족 계급은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에 적합한 새로운 체제와 질서를 요구하였으며, 그러한 요구가 바로 군주제를 탄생하게 만든 배경이 된 것입니다.

   블레셋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어리석음, 즉 율법궤가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는 맹신에빠져버립니다. 그러니까 모든 인위적 종교성을 떨쳐버리고 순전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신앙을 따라야 할텐데, 그러한 면에서 저는 우선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며 느슨한 지파동맹으로 각 족속이 연결되어 한 하나님을 실로라는 성소를 중심으로 섬기는 그래서 서로간의 평등, 나눔의 자유로운 공동체를 이루었던 정신을 오늘 이 시대에서도 계속 살릴 수 있어야 겠다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그러한 시대 속에 힘들게 살아가는 한 개인인 한나처럼, 시대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 개인적인 아픔과 고통을, 어찌 보면 개인적일 수 없는 것이 그 당시 아이가 없다는 것은 자손을 번식시켜야하는 이스라엘 부족 사회에서 버려질 수 밖에 없는 절박함 속에서, 그러니까 그 당시의 시대의 가치가 한나를 세상 밖으로 내 모는 그 상황에서 한나는 하나님을 간절히 찿았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이스라엘이 어떤 동기로 왕정을 받아들이게 되었든지 간에 왕정 체제의 도입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시대적 흐름이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전환기에 사무엘이 태어난 것입니다. 사무엘은 한나의 서원대로 젖을 떼자 바로 실로의 엘리에게 맡겨져 성전에서 엘리의 수발을 들며 성전에서 자라게 됩니다. 참 신비로운 것은 사무엘이 실로에 거한 후에 엘리의 아들들은 점점 더 불경하였으며, 엘리는 정신이 점점 더 희미해져 갔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사무엘을 통해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오늘 이 시대, 자본에의해 모두 힘들게 살며, 오직 돈의 가치 만 남은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렵고, 힘들고, 또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꾸 초라해 지기 까지 하는 이 때에 그래서 그 사회적 문제가 개인에게 엄습해 들어올 때, 나 개인이 어떻게 이 시대를 헤쳐 나갈까 하는 문제 앞에 봉착한다면, 저는 한나를 따르자고 권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바라며, 교회를 바라며, 성도를 바라는 그 순전하며, 깊은, 그래서 세상의 소리에 연연하지 않는 참 신앙을 하나님은 기쁨으로 받으십니다.  오늘 이 문명사적 전환의 시대에 그 신앙의 고백을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시어, 즉 한나의 그 생의 아픔에서 터져나오는 기도를 받으시어 그 기도의 응답을 통해 이스라엘 건국의 기초를 삼았던 것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교회가 그리고 성도님들이 하실 수 있으면 참 좋겠고, 그것이 복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한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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