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주현절후여섯번째주,2014년2월16일)

하늘기차 | 2014.02.16 14:21 | 조회 2978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

주현절후여섯번째                                                                                                         엡엡2:1-10

 

    오늘 말씀에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고 합니다. 허물과 죄란 근원적인 오류,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단절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버린 상태입니다. 영적인 죽음입니다. 그러나 영적이라 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다 거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 해서 육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러면 영과 육을 이원화 시켜버리는 오류를 범합니다. 그러니까 영적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의 삶이 바로 영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종교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이 영성, 영성하는데, 그것은 기독교가 말하는 영성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계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영적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혼 차원, 다시말해 의지, 인간의 뜻, 정신 수준이지 영적 차원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삶이 바로 육이여, 죽음입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세상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종종 사두개인, 바리세인 등 예루살렘 종교집단에대해 세상이라 하였습니다. 그것은 명색만 있는 종교에대해 주님이 하나님과 상관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계시게 때문에 그들에대해 세상이라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허물과 죄로 인한 죽음에대해 엡4:18절은

                         “그들은 자기들 속에 있는 무지와 자기들의 마음의 완고함 때문에

                           지각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고 합니다. 무지와 마음의 완고함 때문에 떠나있다, 다시말해 죽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에대한 무지인가요? 하나님에대한 무지요, 완고함입니다.

 

지난 목요일 ‘또 하나의 약속’이라는 영화를 집사람과 함께 보고 왔습니다. 그 실제 주인공이 고 황유미 양인데 부친인 황상기님 사진이 영화 맨 마지막에 나오는데 참 순하고 착하게 생기셨어요. 법없이도 살 수 있을 상이에요. 근데 평택 시사회 때 황상기님이 그렇게 말씀하더라구요. 삼성은 물론이고, 산업안전공단과 근로복지공단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 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짓을 하였는지 전에는 몰랐는데 이제는 안다는 것입니다. 영화에서도 그 사실을 알기위해 밤 새 공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동안 감추어져있던 진실을 알자 고 황유미양의 아버지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아주 힘차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영화에서 계속되는 이야기가 자기는 일자 무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산업재해에대해 법적인 것을 포함하여 다양한 사실에대해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아는 만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주 세밀하고도 섬세하게 사건에대한 진위, 참과 거짓,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먼저 알아야할 것과 나중에 알아야할 것, 도움이 될 것과 그렇지 못한 것 차근차근하게 알아갑니다. 거기서 힘이 생깁니다. 지난 고리원전 금식기도회 때 지역 대표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대책위 사무실이 6x3 작은 컨테이너 사무실이었습니다. 근데 그 사무실 한 쪽 책 꽂이가 그동안 자신이 공부한 원자력에대한 자료, 정보라고 하면서 보여주었습니다. 모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엡4:18은 무지로 인하여 지각이 어두워져 하나님에게서 떠났다고 합니다. 무지하면 시대의 흐름에 떠내려갈 수 밖에 없으며, 세속 가치에 메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에대해, 교리에대해, 교회에대해, 기도에대해, ,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에대해 하나님 나라에대해 아주 섬세하고도, 세밀하게 알아야합니다. 종교적 만족을 넓히는 지식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모르고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르면 힘찬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히4:12는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꽤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

 라 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낸다고 합니다. 말씀은 능력이요 힘이요, 삶의 생명력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무지할 뿐만 아니라 완고하였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목을 세웠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과 눈에 보이는 것에 붙들리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건져낸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겠다고 각을 세웠습니다. 결국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집트의 바로에게서는 해방되어 자유함을 얻었지만, 거기 까지였습니다. 광야에서 길을 잃고, 또 다른 노예가 되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이스라엘과 같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의 은총으로 죄로부터의 자유함을 얻었지만 삶의 여정, 삶의 각박함,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그만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완고함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뜻과 경험이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밀쳐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소망, 능력, 우리에게 물려줄 상속이 얼마나 큰지를 알아야한다는 것입니다. 모르니 눈에 보이는 것이 커 보이고, 쉽게 속물적인 생각에 메여,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2절 말씀을 보면 허물과 죄, 무지와 완고함에대해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다고 합니다. 불손종의 자식들을 통해 일하는 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순종을 통해 일하는 영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속하길 원하십니까? 당연히 순종을 통해 일하는 영의 감동을 받아야 하겠지요.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세웁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되고도 기쁨이 넘치는 가나의 혼인 잔치와 같은 생명력 넘치는 삶을 베푸십니다. 그러나 악한 영은 그 불순종을 자양분 삼아 자기 일을 마음 껏 합니다.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세상의 일을 한 껏 키우며 활개칩니다. 무지와 완고함으로 인하여 세상 영에 휘둘려 세상의 일에 웃고 울고, 기뻐하고, 행복해 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무지와 완고함, 죽음의 삶, 하나님과 상관 없는 삶 말입니다. 이제는 그러한 삶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그런데 5절에서 죽음의 삶을 살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또 구원이라고 합니다. 구원은 선물입니다. ‘이거 뭐 이리 단순 해’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단순함에 함정이 있습니다. 아무런 힘도, 노력도 들지 않으니 금방 잊어버립니다. 정말 귀한 줄 모릅니다. 그러나 은혜는 값없이 주는 선물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 보다 귀한 것인데, 은혜는 잊어버리고, 배부른 빵만 보입니다. 지난 번에 여호와께서 아끼는 사람에대해 말씀하면서 최춘선 목사님에대해 전해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기인처럼 사셨지만, 최 목사님의 심령 속에 사도 바울과 모세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민족에대한 불같은 사랑이 타오르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평생을 남과 북이 통일이 될 때 까지 맨 발로 살다가 마지막에는 자신의 선교 현장인 지하철에 앉아 조용히 생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부럽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끼지 않으시겠습니까? 그 최춘선 할아버지 목사님께서 초최한 모습으로 외친 여러 가지 말이 있지만 저에게 가장 와 닿은 말씀은

  “20대 부터 헌신한 가운데 지금까지 오지만 김포에서 개척교회할 때

 죽을 병에 걸려 목숨이 위태로웠는데 '한량없는 영광 중에 주의 얼굴

 대하리' 이 찬송 주시면서 죽을병도 고쳐주시고 평생의 사명도 주셔

 서 그 은혜를 생각하며 이렇게 전도하고 있습니다”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비의 초대, 예수 그리스도 자비의 초대”하고

미소 지으며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본훼퍼 목사도 우리의 은혜를 값 싼 은혜로 만들지 말라 하였습니다. 돈으로 따지지 말라 하는데, 돈으로 은혜를 값싸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김춘선 할아버지처럼, 디이트리히 본훼퍼 목사님 말씀처럼, 손양원 목사님처럼, 장기려 박사님 처럼 우리가 받은 은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죄 없는 죽음, 인류의 단 한 번의, 두 번 다시 없을 고귀한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거저 주신 구원의 은혜이니 어찌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는 것입니다.

 

롬11:4에 보면 사도 바울이 이러한 은혜에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선지자 엘리야 이야기를 하는데,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에게 이스라엘의 허물과 죄, 무지와 완고함을 고발하면서, 이제 자기 혼자 밖에 남지 않았고, 그들이 자기 마저 죽이려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 칠천명을 내 앞에 남겨 두었다고 하면서 무어라 이야기하는가 하면

“이와 같이, 지금 이 시기에도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이”남아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기에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렇게 이야기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상과 신당과 무지와 완고함으로 가득찼던 엘리야가 살고 있던 북이스라엘의 아합왕 때 처럼, 그리고 사도 바울이 살고 있던 로마제국이 세상을 지배하던 때 처럼, ‘이와 같이’ 거대 자본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지금 이 시기에도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 남은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사6:13입니다.

“주민의 십분의 일이 아직 그 곳에 남는다 해도, 그들도 다 불에 타

 죽을 것이다. 그러나 밤나무나 상수리나무가 잘릴 때에 그루터기는

 남듯이, 거룩한 씨는 남아서, 그 땅에서 그루터기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남아있는 긍극의 그루터기, 거룩한 씨, 남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그 주님 안에 남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남아있는 사람들에대해 롬11:5은 무어라 말씀하고 있나요?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6절은 무어라 말씀하고 있나요?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은혜는 은혜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와같이 지금 이 시기에 은혜는 다 없어지고 행위만 남아있습니다. 남아있는 것이 행위의 공과 만 남고 은혜는 사라져 버리고 있습니다. 11:7은 그 결과에대해 재미있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나머지 사람들은 완고해졌’다고 합니다. 무지함이 완고함으로 이어집니다. 은혜를 모르니, 자기 생각과 판단과 경험에의해 유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인간의 공로 평가하고 그렇게 갑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 7절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은혜를 입은 남은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무지와 완고함에서 이루어지는 계획, 생각, 행위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는 감추어진 섭리와 경륜, 손길, 지혜와 부르심의 소망, 상속의 풍요로움, 그 크신 능력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지혜를 알라고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더 나아가 욥3:18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고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빕니다. 그래서 최춘선 할아버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비의 초대, 예수 그리스도 자비의 초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에 감격하여 감사하며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을 사도 바울은 남은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오늘 이 남은자들에대해 또 무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10절에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라 합니다.

 

여기서 저는 ‘우리’라는 말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상 하나님의 작품이라 말 할 때, 한 개인의 예를 들면서 탁월하고, 뛰어나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찬찬히 보니 내가 아니라 ‘우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우리는 바로 공로 없이 거주 주신 은혜에 감격하여 ‘이와같이, 지금 이 시기에도’ 남은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건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 각자 각자가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께 죄 없다고 인정받은 감격 속에 오늘 말씀처럼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10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다고 합니다. 아! 그렇습니다. 주님이 만드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만들지 않으시면 선한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주께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우리가 일을 하려고 합니다. 아닙니다. 주님께서 만드십니다. 그래서 작품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꼭두각시인가?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도구요, 파트너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듯이, 하나님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성령의 감동을 따라 아버지의 선한 뜻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19절에서는 이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합니다. 근데 20절에 보면 이 하나님의 가족이 그냥 세워진 것이 아니라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며, 그리스도 예수가 그 모퉁잇돌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모퉁이 돌이 된다는 것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모퉁이돌은 건축의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그 우리, 교회, 하나님의 작품의 기준인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신데, 14절 이하에서 보면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된 것을 없애시고, 이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신것입니다. 자기 몸으로 담을 허물었다는 것입니다. 사상이나, 철학이 아니라 몸으로 나누인 것을 하나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평화가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작품입니다. 평화는 생명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물질, 과학 문명의 총화를 다 더하여도 그 주님의 평화를 십자가에서부터 오는 생명을 만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고기교회가 하나님의 그러한 작품, 걸작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26/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600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936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315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905 2005.09.02 16:30
475 복이 있으라! 슬퍼하는 자여!(스승의 주일,부활절 제5주, 2014년5월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183 2014.05.18 14:29
474 예수님은 무어라 말씀하시나 Ⅱ(어버이주일,부활절 제4주, 2014년 5월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798 2014.05.11 14:32
473 예수님은 무어라 말씀하시나 Ⅰ(어린이주일,2014년5월4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944 2014.05.04 16:05
472 눈물을 흘리셨다(2014년4월27일, 부활절 제2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24 2014.05.01 12:30
471 눈물을 닦아주소서(부활주일, 4월20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564 2014.04.20 18:38
470 우리에게 좋은 것(종려주일, 2014년4월11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265 2014.04.15 19:47
469 은혜의 때(사순절다섯번째주일, 2014년4월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52 2014.04.06 15:33
468 아, 하나님, 자비를 베푸소서(사순절네번째주일 , 2014년4월30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60 2014.03.30 13:32
467 핵에너지의 안전신화에 저항한다(후쿠시마3주년)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907 2014.03.23 16:52
466 내가 아는 하나님(사순절두번째주, 2014년3월16일) wishong 2411 2014.03.17 00:03
465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사순절첫번째주, 2014년3월9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535 2014.03.09 16:28
464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였다(주현절후여덟번째주, 삼상3:15-21;4:1;엡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672 2014.03.02 16:30
463 한나와 이스라엘의 건국(주현절후일곱번째주,2014년2월23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876 2014.02.23 15:52
>>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주현절후여섯번째주,2014년2월1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979 2014.02.16 14:21
461 스스로 봄 길이 되어(김준표목사)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914 2014.02.09 14:34
460 참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주현절후네번째주, 2014년2월2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752 2014.02.02 13:45
459 마라와 엘림(주현절후세번째주, 2014년1월2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829 2014.01.26 14:00
458 여호와께서 아끼는 사람( 주현절후두번째주,2014년1월19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019 2014.01.25 10:55
457 [일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주현절후첫번째주, 2013년1월12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903 2014.01.12 14:28
456 [일반] 감사로부터 오는 소망(새해첫번째주, 2014년1월5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617 2014.01.05 1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