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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봄 길이 되어(김준표목사)

하늘기차 | 2014.02.09 14:34 | 조회 2913
<p>&nbsp;&nbsp;&nbsp;&nbsp;&nbsp;<img width="640" align="top" class="photo" alt="" src="http://www.gogi.or.kr/files/2014/02/09/ad202bf00f59e5b68acc2b6d905e5388143422.jpg"><br><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p><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strong><font size="6">스스로 봄 길이 되어</font></strong><br><font size="3">주현절후다섯번째주</font>&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font size="3">요14:1-6</font><br>&nbsp;<br><font size="3">&nbsp;&nbsp; 1.&nbsp; 성서 이야기는 여러 관점과 배경과 따라 다양한 이야기가 혼재 되어 있습니다.<br>고기신학대학에서 입학시험이라고 가정하고 성서에 대한 퀴즈 한번 내 볼까요?<br>십계명은 어느 성서 몇 장에 나올까요?<br>출애굽기 20장이요 말하는 것이 80점 이라면, 여기에 신명기 5장까지 말해준다면 100점이겠죠.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계명이 10계명인데, 이 내용은 모세가 죽음을 앞둔 고별 설교에서 다시 한번 반복하게 됩니다. <br>십계명 이야기 나왔으니 퀴즈 하나 더 낼게요. 교우 여러분들, 11번째 계명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11번째 계명은 무엇일까요?<br>예, ‘네가 어긴 십계명에 대해서 들키지 말라!’ 입니다. 11계명만 잘 지켜도 만수무강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계명은 특히 정치인들과 대기업이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br>성서를 자세히 보면 같은 내용이 두 번 반복되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십계명은 다른 상황에서 반복되는 것이고 그 내용에서 큰 차이가 없어서 우리에게 혼란을 주지는 않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예수님의 관한 성서 이야기 입니다.<br>예수님이 탄생한 곳과 축하하러 온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베들레험의 한 여관에 달린 마구간에서 예수님이 나셨고 동방박사들과 목자들이 그 자리에 함께 했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내용이 아닙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이야기하는 두 가지 이야기를 적절히 우리 머리에서 짬뽕시킨 이야기 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좀 더 위엄과 권위가 있는 탄생 이야기를, 누가복음에서는 좀 더 낮고 비천한 무리가운데 태어나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br>&nbsp;&nbsp;&nbsp; 예수님과 관련한 이야기의 차이는 이 밖에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부활하는 장면은 다른 상황을 말하는 것처럼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은 표현과 등장 인물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이것을 두고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가짜냐 라고 구별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서 이야기는 그것을 쓴 저자의 관점과 배경, 그리고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달 받은 경로의 차이에서 여러 차이를 보여주는 것뿐입니다. 이 차이를 알고 성서를 읽는다면 성서 읽기가 더욱 풍성해지고, 입체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br>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요한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와 같이 예수님이 어떤 생애를 살다 가셨나를 공생애를 중심으로 들려주는 복음서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서는 앞서 세개의 복음서가 연대기적으로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는 것과는 달리 아주 독특한 방식과 개념으로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에 대해 자신만의 디테일한 묘사를 첨부한다거나, 예수님의 행적을 자신의 관점에 따라 재구성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예루살렘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는 성전정화 사건은 다른 세 복음서에서 예수님 생애 후반기에 일어나지만 요한은 활동 초기로 돌립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서에는 세 복음서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 이야기들은 거의 나오지 않고, 다른 곳에서 언급되지도 않았던 기적이야기와 에피소드들이 길게 이어집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세 복음서를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공관복음서라고 함께 묶을 때에 거기에 들지 않는 이유입니다. <br></font></p><p><font size="3">&nbsp;&nbsp; 2.&nbsp; 요한복음을 읽었던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절박한 문제는 무엇이었을까?<br>무엇보다 요한복음이 다른 세 복음서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로고스 기독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로고스라는 존재와 일치시키는 것이지요. 로고스는 헬라어로 이성,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희랍철학의 관점에서 절대이성, 우주만물의 근원, 원리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요한복음에서 중요한 메시지이냐? <br>요한복음이 쓰여지고 읽혀진 시기는 기원후 100년경이라고 합니다. 지역은 지금의 터어키 지역인 소아시아의 유명한 항구도시 에베소에서 쓰여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이 지역은 로마제국하의 헬레니즘 문명 도시 중에서 희랍철학이 가장 융성하게 발전하는 곳이었고, 특히 이 시기에는 신플라톤 사상이 모든 정신세계를 휩쓰는 때였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플라톤적 사유에 의해 지배되는 지적 세계에 포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br>플라톤적 사유는 무엇입니까? 이 우주를 둘로 나누는 겁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현상은 다 헛것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실재가 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둥바둥 거리는 이 현실을 부정하고 어딘가에 있을 고요한 우주세계, 천국을 동경하는 것입니다. 플라톤 사상으로 예수님의 신앙운동을 각색한 이들은 예수님이 이야기한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들에겐 참신이었던 예수님이 참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왔다는 이야기 또한 받아 들일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절대 타자이며 거룩한 신이 더럽고 유한한 인간의 몸뚱아리 속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들은 자꾸 70년 이전 실제였던 예수의 살아 있는 역사 이야기를 두루뭉실 추상적 개념으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예수가 걸었던 분명한 사람의 길을 자꾸 희석하려고 한 것이지요.<br>요한복음서는 이러한 시기에 예수는 분명한 인간의 길을 걸었으며 그 길이 곧 생명과 평화와 빛의 길이었음을 선포하는 복음서입니다. 로고스라는 희랍철학의 개념을 빌려 왔지만 그 로고스가 저 우주에 머문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으로 들어왔다고 강력하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서 1장 1절을 보십시오. ‘태초에 말씀, 곧 로고스가 계셨다. 그 로고스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로고스는 하나님이셨다’(1절) 14절입니다. 그 로고스는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br>태초에 하나님과 함께였던 로고스 예수님은 인간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감행했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로고스가 육신이 되어 외아들의 영광으로 우리에게 나타났다는 고백은 당시 사상계와 종교계를 휩쓸던 플라톤 사상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입니다. 신이 곧 인간이다. 인간이 곧 신이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이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자꾸 신의 영역에만 올려 놓는다면 우리는 2000년 서양 역사에서 기독교의 가장 큰 적이라고 할 수 있는 플라톤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br></font></p><p><font size="3">&nbsp;&nbsp; 3.&nbsp; 그렇다면 철저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은 어떤 길을 걸으셨을까요?<br>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예수님은 스스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그 동안 이 본문을 너무 교리적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 외에는 어떤 구원의 길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천국이라는 곳을 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이름이 적힌 입장권이 꼭 필요한 거죠. 그래서 예수 이름만 믿는다면 죽어서도 지옥불에 떨어지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근거를 이 본문에서 찾았습니다. 그러니 신도림 환승역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낯 뜨거운 광고판을 흔들며 목숨 걸고 전도한다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 말씀은 예수만을 통한 배타적 구원의 근거를 이야기 하는 본문이 아닙니다. <br>이 본문은 앞서 12장부터 시작되는 예루살렘 입성부터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나사로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신 예수님은 드디어 갈릴리 주변에서 이루어졌던 자신의 모든 중요한 기적과 행적을 마무리하고 예루살렘으로 다시 한번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런데 이 걸음은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호시탐탐 예수님을 죽일 기회를 엿보고 있던 당시 권력자들, 지도자들에게 ‘나 여기 있으니 잡아가슈’ 하고 제 발로 호랑이 굴에 걸어 들어가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증오하고 미워하는 당시의 지배자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곳이었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너머에서 들려오는 예수의 각종 기적이야기와 그를 믿고 따르는 수많은 군중들에 대해서 예의주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예수는 꼭 죽어야 할 인물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자신들 권력의 토대를 뒤흔드는 선동가였기 때문입니다. <br>인간 예수님이 걸어갔던 길들은 명확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그들 삶의 중심이요 존재의 근거라 할 수 있는 율법을 파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복음 5장 18절에 유대사람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불러서,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놓으셨기 때문이다’ 라고 말합니다. <br>인간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회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오고,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나타내었던 율법이 어느 순간 인간의 삶을 옥죄고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습니다.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 있어야 하는데, 인간이 안식일을 위해 박해 받는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또한 그 율법체계를 지배 이데올로기로 바꾸어 버린 종교 권력자들을 용서할 수 없었고, 거짓 평화를 강요하는 로마제국의 불의를 받아 들일 수 없었습니다. <br>이러한 거대한 불의 앞에서, 수백년 동안 이어져 온 거짓된 종교체제 앞에서 인간 예수는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그를 잡아 죽이려고 모의를 꾸미는 이들에게 자신의 발로 걸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두려움 없이 외치셨습니다. ‘지금은 이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이다. 이제는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날 것이다.’(12:31)<br>인간 예수님은 거짓과 어둠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빛이 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빛을 통해 이 세상의 어둠을 해체시키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피가 참 양식이요 참 음료이니(6:55)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우리를 위해 내어 놓았습니다. 인간 예수님은 자신이 인간의 고통에서 피할 수 없는 사람의 아들임을 고백하였지만 동시에 자기를 보내신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신다는 의식을 놓지 않았습니다(8:29). 결국 예수님은 자신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이 세상의 어둠을 해체시키고 인간들에게 내재하고 있는 빛을 해방시키는 것을 최후 삶의 목표로 삼고 예루살렘으로 걸어 들어가신 것입니다. <br>인간 예수님의 고뇌와 고통이 느껴지십니까? 모든 이들이 어둠의 세력에 갇혀 있을 때 홀로 꺼져가는 불빛을 되 살리려 애쓰는 예수님이 느껴지십니까? 거대한 권력과 지배 시스템이 저항하는 한 인간을 죽이기 위해 쇠몽둥이를 내려칠때에 조용히 머리를 들이밀며 죽음이 얻게 되는 참된 승리와 생명을 곱씹으며 떨고 있는 인간 예수님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br>인간 예수님은 그런 길을 걸으셨습니다. 죽음을 무릎 쓰고 진리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아무도 엄두내지 못하는 고독과 투쟁의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걸었 왔던 그 길을 자신있게 ‘진리와 생명의 길’이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합니다. 너희가 나의 제자라면 내가 걸었던 이 길을 따라 와라.<br>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 앞에서 제자들은 웅성거렸습니다. 자신들이 믿고 따라왔던 예수님이 꼭 어디론가 떠날 사람처럼 이야기하고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죽음 앞에 선 예수님의 고뇌를 이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어디로 가십니까?’하고 안타까운 질문만 내뱉습니다. <br>이때 예수님이 드디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14:4)<br>“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br>이 말씀은 저에게 이렇게 들립니다. <br>“나는 지금껏 내 길을 외롭게 걸어왔다. 인간 예수로 여기까지 힘들게 세상과 싸우며 왔다. 어둠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빛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고, 내 빛을 통해 너희 안에 잠들어 있던 영혼의 빛을 깨우려고 힘써 왔다. 나는 이제 마지막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려고 한다. 이 십자가 죽음의 길이 곧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길일 것이다. 이 길이 아니면 절대로 아버지에게로 갈 수가 없다.” <br></font></p><p><font size="3">&nbsp;&nbsp; 4.&nbsp;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br>&nbsp; 로고스가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인간의 형체를 유지했지만 그 속성은 신의 능력을 가지신 분이었다고 생각하면 이것이야 말로 이단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인간이셨습니다. 자신의 편리를 위해 중요한 순간마다 도술을 부리며 인간과 신의 영역을 적절히 오갔던 분이 아닙니다. 철저히 나약한 인간의 몸을 가졌지만, 신의 부름에 완전히 복종하며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애썼던 한 인간이었습니다. <br>&nbsp; 그런데 그 인간 예수가 갔던 죽음의 길이 곧 신의 길이었습니다. <br>&nbsp; 고기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인간 예수님이 걸었던 그 복종과 헌신, 저항의 길을 걸어가라고 재촉하십니다. 스스로 길이 되고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되는 십자가의 길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십니다. 이 엄혹한 세상, 무자비한 공권력과 자본의 횡포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떨고 있는 우리에게 스스로 봄길이 되어 인간 예수가 걸어갔던 길을 이어가라고 우리 등을 두드리십니다.<br>두려워 말고 우리 스스로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되는 길로 나아갑시다. 인간 예수님이 걸었던 그 고독과 투쟁의 길에 함께 나아갑시다. </font></p><p>&nbsp;</p><p align="center"><font size="3"><strong><font size="4">봄길</font></strong><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 정 호 승<br>&nbsp;<br>길이 끝나는 곳에서<br>길이 있다<br>길이 끝나는 곳에서도<br>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br>스스로 봄길이 되어<br>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br>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br>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br>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br>보라<br>사랑이 끝난 곳에서도<br>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br>스스로 사랑이 되어<br>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br></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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