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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주현절후첫번째주, 2013년1월12일)

하늘기차 | 2014.01.12 14:28 | 조회 2902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
주현절후첫번째주 마3:13-17;사42:1;롬8:14

예전에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미국의 ‘말로 모건’이라는 자연예방의학을 전공한 여 의사가 1980년 경 호주의 초청을 받아 의료활동을 하던 중 호주 원주민들의 초청을 받아 그들과 석달반 가량 함께 호주 대륙을 그 것도 맨발로 걸었던 신비하고 독특한 체험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 당시 호주타임즈가 원주민들에대해 기록한 것을 보면 가장 등급이 낮은 인간, 역사가 없고, 과거에 무엇을 했으며, 어디에서 왔는가를 알려주는 아무런 기록도 없고, 멸종된다 해도 아무런 남길만한 것이 없으며, 민족으로서 그들의 존재를 증명할만한 어떤 기념물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였는데, 그러나 이 책 제목인 ‘무탄트’라는 말의 뜻은 ‘돌연변이’인데, 이것은 호주원주민들이 자신의 땅에 들어와 자신들을 쫓아냈던 백인들을 부르는 명칭이라는 것입니다. 돌연변이란 다시 말하면 ‘기본 구조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 본래의 모습을 상실한 존재’를 뜻합니다. 이들 원주민들은 적어도 호주대륙에서 5만년 이상 살아왔는데, 그 오랜 세월 동안 어떤 숲도 헤치지 않고, 어떤 강물도 더럽히지 않았고, 어떤 동식물도 멸종위기에 빠뜨리지 않았고, 어떤 오염 물질도 자연 속에 내 놓지 않으면서 풍부한 식량과 안식처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런데 문명 세계의 백인들이 호주에 들어 와 어머니인 대지를 파헤치고, 강을 더럽히고, 나무를 쓰러뜨리는 문명인들을 보고 원주민들은 이 백인들을 돌연변이, 즉 ‘무탄트’라 부른 것입니다. 문명과 타협하지 않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던 마지막 호주 원주민의 부족 이름은 ‘오스틀로이드’인데 풀이해 보면 ‘참사람 부족’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많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그런데 소위 ‘마음의 대화’가 아니라, 텔레파시를 통해 대화를 합니다. 저자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걷던 중 부족의 어른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두 손을 앞으로 내 밀어 천천히 흔드는데, 그것은 아침에 일찍 떠난 젊은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오는 것을 듣고 답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캥거루 요리를 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전화를 하듯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소통을 하는데, 이렇게 텔레파시가 가능한 것은 거짓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행중 한 부족원의 다리가 부러졌는데, 주술과 찬양과 그리고 순간적으로 물리적으로 잡아당기는 것을 통해 치료를 하였는데 다음날 바로 일어나 걸어서 함께 여행을 갑니다. 참 놀라운 기적적인 치료가 이루어졌는데, 기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참사람 부족이 자연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그 삶 자체에대한 경이로움입니다. 이 참사람 부족을 단순히 원주민으로 표현하는 것으로는 그들의 삶을 다 말해줄 수가 없더랍니다. 현대의 철학, 예술, 문학, 과학, 종교 그 어떤 것들을 통해서도 다다를 수 없는 삶을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참사람 부족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읍니다. 모든 것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고, 이 우주 속에 일시적인 변덕이나 우연 또는 무의미한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인간이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며, 아직 인간에게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신비가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은 작가가 생일파티에대한 이야기를 하자 참사람부족이 ‘왜 생일파티를 하는가, 나이는 저절로 먹는 것인데’라고 해서, 그럼 당신들은 무엇을 축하하느냐고 묻자 작년 보다 더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면 그걸 축하한다고 하면서 그래서 그건 자기 자신만이 있어서 파티를 열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참사람 부족은 말로 모건에게 무거운 메시지를 남기고서 ‘지구에서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부족의 어른은 “세상 사람들은 달라졌고, 땅의 영혼을 배반했”기 때문이며, 또 “더 이상 영혼에게 인간의 모습을 주어 이곳에서 살게 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덧붙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참 신비로운 이야기입니다. 아마 참사람 부족은 지금은 이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나 십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참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고 묻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하고 질문을 합니다. ‘왜 우리는 무탄트가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엡4:18-24는
“자기들 속에 있는 무지와 자기들의 마음의 완고함 때문에 지각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습니다. 그들은 수치의 감
각을 잃고, 자기들의 몸을 방탕에 내맡기고, 탐욕을 부리며, 모든
더러운 일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안에 있는 진리대로 그분에 관해서 듣
고, 또 그분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면,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
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그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새 사람을 입“으라고 합니다. 새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오늘 말씀을 본다면 롬8:12절 말씀처럼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럼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어떤 본 받을 사람이 있어야, 그 분을 통해 아! 이 시대에는 이렇게 사는 것이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이구나 할 것이 아니겠냐는 것입니다. 그동안 함석헌 선생님, 장기려 박사님, 문익환 목사님, 사상계의 돌베게 장준하 선생님, 권정생 선생님, 좁쌀 장일순 선생님, 거창의 전영창 선생님, 그리고 일제 때의 김교신 선생님, 또 하루 한끼의 식사 만을 하셨던 류영모 선생님 . . . 등 저는 동시대에 이런 귀한 분들의 삶을 통해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어렴풋 감을 잡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만한 사표가 될 분들이 다 돌아가셔서 어떻게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할지를 모르던 차에, 몇 일 전에 몇 분 하고도 이야기를 하였는데 채현국님에대해 인터뷰한 신문의 글을 보면서 아! 동시대에 이런 분이 아직도 살아계시는구나 하며, 기쁨을 감출 수 가 없었습니다.

그 분은 채현국이라는 분이신데, 거의 글이나, 방송이나,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는 분인데, 어떻게 인터뷰를 했는지, 그 인터뷰 한 분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식으로는 효암학원 이사장이고, 강원도 삼척시 도계에서 흥국탄광을 운영하며 한 때 개인소득세 전국에서 10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거부였었는데, 유신시절 쫓기며, 핍박받던 민주주의의 보루였다고 합니다. <창작과 비평>의 재정이 바닥이 날 때 마다 후원을 아끼지 않았고, 셋방살이 하는 해직기자들에게 집을 사 주기도 하며, 김지하, 황석영, 고은 등 유신 시절 수배자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민주화 운동 단체에 자금을 대어준 사람으로 지금은 경남 양산의 개운중, 효암고 이사장으로 보통 작업복 차림으로 학교 정원일이나 하니 학생들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분은 73년 오일쇼크로 탄광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을 텐데 왜 기업을 정리했느냐고 물으니 그 당시 국회가 해산되고, 유신이 선포되어 더 이상 탄광할 이유가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손 털 때는 광부들이 이후 10년씩 더 일한다 치고 미리 퇴직금을 앞당겨 계산해서 나눠줬다.”고 합니다. 돈을 벌어 민주화운동을 지원해야 더 좋지 않은가라고 물으니 “사업을 해보니까… 돈 버는 게 정말 위험한 일이더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돈 쓰는 재미’보다 몇천배 강한 게 ‘돈 버는 재미’다. 돈 버는 일을 하다 보면 어떻게 하면 돈이 더 벌릴지 자꾸 보인다. 그 매력이 어찌나 강한지, 아무도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어떤 이유로든 사업을 하게 되면 자꾸 끌려들고, 정의고 나발이고, 삶의 목적도 다 부수적이 된다.”중독이 되는 건가?하고 물으니 이건 중독도 아니고 그냥 ‘신앙’이 된다. 돈 버는 게 신앙이 되고 권력이, 명예가 신앙이 된다. 그래서 ‘아, 나로서는 더 이상 감당이 안 되니, 더 휘말리기 전에 그만둬야지’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부친도 역시 일제 치하에서 중국으로 가서 독립 운동을 하려다가 그 곳에서 여러 가지 사업을 했는데, 하는 것 마다 잘 되어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는데, 부친은 일제 치하에 잘 산 것이 자랑일 수 없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지식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가 쉽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정답’이라니…. 이건 군사독재가 만든 악습이다. 박정희 이전엔 ‘정답’이란 말을 안 썼다고 하면서 모든 ‘옳다’는 소리에는 반드시 잘못이 있다.”고 합니다.

기업을 제대로 키워서 돈을 벌어 좋은 일에 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거 전부 거짓말이다. 꼭 돈을 벌어야 좋은 일 하나? 그건 핑계지. 돈을 가지려면 그걸 가지기 위해 그만큼 한 짓이 있다. 남 줄 거 덜 주고 돈 모으는 것 아닌가.”

-기업가가 자기 개인재산을 출연해서 공익재단을 만드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흥분한 어조로) 자기 개인 재산이란 게 어딨나? 다 이 세상 거지. 공산당 얘기가 아니다. 재산은 세상 것이다. 이 세상 것을 내가 잠시 맡아서 잘한 것뿐이다. 그럼 세상에 나눠야 해. 그건 자식한테 물려줄 게 아니다.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닌데, 재단은 무슨…. 더 잘 쓰는 사람한테 그냥 주면 된다.”

세상엔 장의사적인 직업과 산파적인 직업이 있다. 갈등이 필요한 세력, 모순이 있어야만 사는 세력이 장의사적인 직업인데, 판사 검사 변호사들은 범죄가 있어야 먹고살고 남의 불행이 있어야 성립하는 직업들 아닌가. 그중에 제일 고약한 게, 갈등이 있어야 설 자리가 생기는 정치가들이다. 이념이고 뭐고 중요하지 않다. 남의 사이가 나빠져야만 말발 서고 화목하면 못 견디는…. 난 그걸 장의사적인 직업이라고 한다.”

우리 학교에 가면 ‘쓴맛이 사는 맛’이라고 돌멩이에 쓰여 있다. 적극적인 긍정론이지. 쓴맛조차도 사는 맛인데…. 오히려 인생이 쓸 때 거기서 삶이 깊어지니까. 그게 다 사람 사는 맛 아닌가.”

-그럼 비문에 “쓴맛이 사는 맛이다” 이렇게?
“그렇게만 하면 나더러 위선자라고 할 테니 뒤에 덧붙여야지. ‘그래도 단맛이 달더라’ 하고.(웃음)”“쓴맛이 사는 맛이다… 그래도 단맛이 달더라.” 뭐가 인생의 단맛이던가?“사람들과 좋은 마음으로 같이 바라고 그런 마음이 서로 통할 때…. 그땐 참 달다.

한 분에대한 이야기를 더 하려고 합니다. 미국 듀크대의 기독교윤리학교수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스텐리교수는 부인 앤의 심한 우울증, 아내의 분노, 그리고 아들 아담을 그러한 아내의 정신질환에서 지켜내야했던 처절한 삶을 살면서, 강연 마지막에 담담하게 고백한 내용은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을 배우는 것은 답이 없이 사는 것을 배우는 거라 하면서 믿음이라는 것은 답을 모른 채 계속 살아간다는 것인데, 어떤 사람들이 자기에게 인생에대해 신학자로서 무언가 답을 해 달라고 할 때가 있는데, 자기는 그런 질문에 무어라 답변해야할지 전혀 모른다고 하면서, 기독교 신학자로 살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우리가 그러한 질문에 답변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꾸 질문을 하는데, 만약 우리가 현명하다면 침묵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며, 우리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고 기독교인들을 안심시키려 하는데, 그런 정답은 기독교를 설명으로 폄하시킬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스텐리 교수의 말을 풀어보면 기독인의 신앙적 삶이란 믿음의 역동성과 흥미로움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정도로 요약을 해 보았습니다.

어제 사이라는 분의 컨서트가 있었습니다. 그 분도 나름대로 생태적, 진보적인 삶을 살려고 애쓰면서 또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인데, 어제 노래 중간에 이야기하면서 농사를 지어보니 작물은 혼자 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햇볕, 바람, 비, 거름, 사람의 손길,,, 그렇게 모든 생명이 자기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인류가 역사를 통해 이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 모르지만 몸으로, 인간이 만든 조직이나 구조를 통해 그렇게 인간뿐 아니라, 언제 자연과 함께 살아야한다는 것을 깨달아 실천해 나갈 수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영적 각성이 필요합니다. 엡2:5는 그렇게 주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몸으로 그 벽을 헐어버리셨다고 합니다. 머리가 아니라 성경은 '몸'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그렇게 십자가를 통해 죄 사함의 은혜와 그리고 함께 살려면 이렇게 살아야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알아야할 것은 모든 피조물에게는 아픔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이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겠습니까? 자기에게 찿아온 아픔을 견디어내야지요?

기독교도 그렇고, 요즈음 회자되는 힐링이라는 것이 얼마나 성서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할 것입니다. 저는 자주 사용되는 치유라는 말도 못네 아쉽습니다. 물론 아플 때, 병들었을 때 치료를 받야하지만, 값싼 위로나, 듣기 좋은 말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가 겪어야할 아픔과 고통을 희석 시킨다면 이 것 또한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 함께하는 것'이 아니겠나 십습니다. 기쁨과 행복이 있듯이 아픔과 고통 또한 우리에게 찿아올 때 아픔을 아픔으로,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감당하는 것, 기다림입니다. 기다림 속에 평화가 있고, 기다림 속에 소망이 있습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기다림의 하나님 시간 속에는 그 어떤 인간적인 논리나, 합리성이나, 노력이나, 자기 의지, 자기 설명이 개입해 들어올 수 없는 자리입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이 일하시며,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입니다. 그 기다림의 여전 속에서 우리는 아픔과 고통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성령은 오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키시며 보호하시며 참된 위로를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롬5:4-5에서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
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
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 합니다. 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 그러니까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이 중요한 가 하면 15절 말씀에 종이 아니라 자녀로 그러니까 자유자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자유에대해 말하며 성령의 인도함으로 자유를 얻었으니 사랑으로 종노릇 하라고 권면합니다. 말씀드렸지만 인간이 무한하면 자유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피조물은 유한하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유해야 하는데, 욕망의 자유로 치달아 갑니다. 성령은 그렇게 욕망으로 이기심으로, 개인적으로 달려가는 자유함에서 우리를 함께 나누며, 함께 아파하는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 자리에 깊은 영적 깊이와 높이와 넖이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욕망으로 향하는 자유, 그래서 세상에 붙들리어 종노릇하며 인생을 소비하는 그러한 세속적 자유가 아니라, 사랑에 복종하는 참 자유, 사랑에 종 노릇할 때 놀랍게도 끊임없이 솟아나는 에너지, 생명의 역동성, 관용, 용서,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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