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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로부터 오는 소망(새해첫번째주, 2014년1월5일)

하늘기차 | 2014.01.05 17:09 | 조회 2617


감사로부터 오는 소망

새해첫번째주 애3:24-29

딤후2:20은 사람의 마음을 그릇으로 비유합니다. 그 그릇은 금 그릇, 투명한 유리 그릇 일 수 있고, 뚝배기나, 또 기가막힌 도자기 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릇이 사용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입니다. 도자기가 보기는 좋은데, 사용하지 않고 미적인 가치가 뛰어나 전시되어 있다면 사람들 보기에는 아름다운 가치가 있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그릇을 만든 분의 뜻과 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그릇이든지 사용하려면 그 그릇이 비어 있어야 합니다. 그릇을 쓸려고 하는데, 무언가 꽉 채워져 있으면 사용하는 사람은 그 그릇을 비우고 그리고 깨끗이 닦아서 지금 필요한 것을 그릇에 소담하게 담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려고 이 세상에 만들었는데, 보기에만 좋다면 사람이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하나님은 그 그릇을 사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내가 금 그릇인지, 은 그릇인지, 뚝베기 그릇인지, 쓰다가 깨어져 버렸지만, 그래도 깨진 조각 그대로 사용하는 그릇인지 딤후2:20처럼 만일 우리가 그릇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깨끗이 비어있을 때, 그 그릇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만일 그릇이 채워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대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본의 아니게, 자기도 모르면서 짬뽕이 될 것입니다.

얼마 전에 T.V에서 탈렌트들이 사찰에 머물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쓰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그 때 스님 한 분이 마당을 쓰는 분에게 깨끗이 잘 쓸라 하면서 마당 뿐만 아니라 마음을 쓸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음 속에 들어온 온갖 잡다한 것들을 깨끗이 쓸어버리고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를 돌아보면 아무리 깨끗이 쓸어도 좀처럼 마음이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깨끗해져도 또 마당처럼 더러워집니다. 미움과 욕심, 이기심과 싸움과 시비와 자기 교만함이, 그리고 열등감이 여전합니다. 씼어서 씻어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마음은 그리 쉽게 씻어지지 않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캐톨릭 신부요 수도자요, 신학자로서 죄에대한 강박이 아주 강했습니다. 당시 동기들 사이에도 죄에대한 강박으로 유명했고, 티끌만한 흠도 견디지를 못해서, 자신 뿐 아니라, 동료들의 흠도 바로 직언을 하여 동료들을 힘들고,난감하게 한 것입니다.

루터는 한 번은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을 찿아가 계단을 혓 바닥으로 핥으며 오르 내리는 고행도 서슴치 않았지만 죄를 씻을 길이 없었습니다. 법과 노력을 가지고는 아무리 해도 안되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루터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학교에서 로마서를 강해하면서 1:17절 말씀

“하나님의 의가 복음 속에 나타납니다. 이 일은 오로지 믿음에 근거

하여 일어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에 영적 감동을 받아 모든 죄에서 자유함을 얻게됩니다. 그렇구나 인간이 죄를 씻을 수가 없구나 죄가 있는데, 하나님께 죄가 없다구 인정을 받는 것이구나, 그런데 그냥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죄를 지심으로 대속의 은혜로 죄에서 자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니 감사요, 축제입니다.

올해 초에 눈이 많이 왔습니다. 어느 날은 새벽에, 그리고 저녁 늦게 두 번 씩 눈을 치운적도 있습니다. 그 날은 몸이 욱신욱신 거리는데 기분은 좋더라구요, 그리고 눈을 쓸 때 저는 마음을 씻는다는 생각은 한적이 없어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즐겁게 예배당 주변, 마당, 가게 뜰, 도서관 앞, 큰 방 주방 앞, 예배당 뒤쪽, 그리고 썰매장, 밤나무 아래를 차례로 치웁니다. 땀이 송송납니다. 은혜로 감사로 교인들과 함께 눈을 치웁니다. 이미 죄사함의 은혜로 죄 없다고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죄를 쓸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죄 없다고 인정을 받고 자유를 즐기는 것입니다. 마당을 비로 쓸지만, 쓰는 마음이 틀립니다. 그러니까 잔치요, 축제입니다. 세례 요한처럼 도끼날이 나무 뿌리에 닿았다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열처녀의 비유에 나오는 슬기로운 5처녀의 설레이고, 기쁘고, 흥분된 마음인 것입니다. ‘신랑이 언제 오나’하는 생각에 밤 잠 설치는 그러한 감동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일하면서,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면서, 그리고 가정에서 내 안에 즐거움, 기쁨, 잔치기분이 나지 않으면 그 마음을 다시 찿아야합니다. 이 마음이 어디에서부터 사라졌는지 조심스럽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릇을 씻는 것은 성도들에게 중요합니다. 그것은 어느 종교에나 다 있습니다. 그러나 씻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 또 무엇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입니다. 씻는 그 자체도 기다림인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슬기로운 다섯처녀의 기다림인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이 다음에 오실 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임을 알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바로의 억압에서 해방되어 광야로 나아가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땅으로 향할 때, 이집트에서 나온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은 결국 불평과 원망이었습니다. 이 불평과 원망이 가나안을 향하는 비죤을 가리웠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 바위에서 솟아나는 샘물 등 광야 길에서 끊임없이 은혜를 베푸시는데, 저는 이것을 위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늘의 위로로 힘을 얻어 그 자유의 여정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이스라엘은 자유를 향하는 여정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핑계를 댄 광야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결국 그 비죤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같은 시대에 소망을 잃어버리면, 어디로 가야할지를 놓쳐버리면 그 실마리를 어디서 찿을 수 있을까요?

성경은 이 기다림을 소망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수고, 사랑의 역사, 소망의 인내, 기다림입니다. 소망한다는 것은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망의 실마리를 어디에서 찿을 수 있을까요? 2000년 이지선이라는 장래가 총망되는 대학생이 도로에서 추돌사고로 얼굴은 물론 상반신 화상을 입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사고를 낸 운전자는 술취한 운전자였습니다. 참 교회에서도 열심히 봉사하며 얼굴도 고와 모두들에게 사랑을 받던 청년이었는데 졸지에 음주운전자의 객기로 참담한 나락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불타는 차 틈에 끼여있던 지선 양을 팔에 화상을 입으면서까지 구한 오빠의 품에 안겨

지선이가 비몽사몽간에 내뱉은 말은 "오빠, 나 이렇게 어떻게 살아. 나 죽여줘." 였다고 합니다. 또한 의사들도 전신의 55%에 3도 화상을 입은 그녀를 보며, 살지 못하리라고, 혹 살게 되더라도 사람 꼴은 되지 않으리라고들 말했다고 합니다. 지선이의 곱고 아름다운 옛 모습은 다 사라지고 수 십번의 수술을 통해 간신히 얼굴 형태 만 찿아가는데, 지금도 지선양의 모습은 접근하기 부담스러운 그러한 모습이되었습니다. 얼굴은 얼굴이라 치고, 몸도 걸을 수 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끊임없는 재활치료을 통해 조금씩 회복되는 과정이었는데, 정말로 자기가 꿈꾸며 소망하던 장래가 촉망되는 아름다운 딸이 한 순간에 아무런 갈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추락을 한 것입니다. 그 때 지선양과 어머니가 나눈 이야기는 한 가지씩 그 날 하루 감사할 것을 찿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재활치료에대한 감사, 첫 발걸음을 디딘 날, 문고리를 잡고 스스로 문을 연 날,옷의 단추 구멍에 단추를 체운 날, 그렇게 매 일 감사한 일을 붙잡은 것입니다. 그 감사를 하나하나 추적하면서 그동안 보이지않던 길도 열렸고, 그래서 5년 후 2005년에 보스턴대학에 재활상담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 3년후 학위를 잘 마쳤다고 합니다. 뿐만아니라 계속 컬럼비아대학을 거쳐 켈리포니아대학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금도 사회복지, 특히 화상을 입은 사람들을 위한 복지를 위해 애 쓰고있습니다. 그가 죽을 만큼 힘들고 어려웠을 때, 지선양은 지혜롭게 감사할 거리를 찿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사의 줄기를 따라 새롭게 희망의 날개를 편 것입니다.

감사는 소망의 단초입니다. 지금 인생의 앞 길에 안개가 자욱하여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다면 감사의 초롱불을 밝히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은혜를 헤아리는 것입니다. 전에는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것들이 감사 즉 은혜였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평안과 풍성함을 찿게될 것입니다. 지난 추수감사주일에 내 건 타이틀을 기억하시니까? ‘하나님께 힘을 얻어 감사’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은 눈에 보이고, 귀로 듣는 것에 마음이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삶의 조건과 정황이 막히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쉽게 실망하고 포기합니다. 그래서 감사는 영적입니다. 보이는 것에대한 감사는 감사가 아닙니다. 자기만족입니다. 사도바울은 롬8:24에서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라고 하면서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느냐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보이는 것에대한 감사는 자기만족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을 향할 때 얻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마음으로 느끼는 것들의 결핍을 보이는 것들로 채우려하면 한 순간에 욕망이 되어버리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피조물에게 한계가 있다 하십니다. 선악과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자유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 보면 한계가 있어서 자유입니다. 한계가 없이 무한하다면 자유도 없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하며, 유한하여 힘들고, 어려움 속에서 자유를 맛보며, 자유롭게 살라고 사도 바울은 갈5:1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합니다. 갈5:13에서도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

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고 합니다. 자유의 모습입니다.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사랑으로 종노릇 하라’ 모두 유한한 인간의 자유하는 모습입니다.

충만하라 하는데, 한계가 없으면 충만함도 없습니다. 그러면 술에 술탄 듯, 물에 물 탄 듯 하는 것입니다. 한계가 있으니 그 안에서 충만하여 넘치는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자꾸 이 경계를 넘어서라고 유혹합니다. 색, 향, 맛이 다 그 유한함에서 오는 선한 우리의 삶의 아름다움인 것입니다. 그 색, 향, 맛이 우리를 아프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며, 기쁘게도 하며 우리 삶을 다양하게 하는 것입니다. 온 갓 다양한 생명의 피조물의 조화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체우려 하면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딪히고, 좌절하고, 절망하며 힘들어합니다. 넘어가려고 하는데, 보이는 만족을 추구하는데, 욕망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나 그 한계 안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소망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영적 긴장감을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하나님이 이루어주신다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이 그 비죤, 그 꿈을 다시 회복하려 한다면 그 실마리는 감사입니다. 감사를 통해 일상 속의 하나님의 손길, 은혜, 위로를 맛 본다면, 그 사람은 하늘 문을 여는 것입니다. 감사의 소망, 감사의 기다림 속에서 그릇을 닦으며 자기 자리에서 자기 모습 회복하며, 자기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복된 2014년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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