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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달린 것이다(성령강림후열여섯째주일, 2014년9월28일)

하늘기차 | 2014.09.28 15:16 | 조회 2477

 

                                          주님께 달린 것이다.
성령강림후열여섯째주일                                                                                             삼상17:41-47

  

   사람은 위기를 만날 때, 아니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접할 때, 당연히 배워왔고, 살아왔던 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가 도움을 청하고 싶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다윗은 그러한 모습을 골리앗과 만났을 때 보여줍니다. 골리앗이 거구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조롱하며 다윗에게 너의 살점을 공중의 새와 들의 짐슴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하는데, 다윗은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너는 칼과 창으로 나에게 왔지만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에게 달려있다는 이러한 하나님의 절대능력에대한 고백은 믿음의 조상때부터 이어집니다. 아브라함이 여전히 후계자를 구하지 못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브라함에게 찿아와 내년 이 맘 때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 하자 뒤에 숨어있던 사라가 픽 하고 웃음을 터트립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내 아내 사라가 웃으며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고 했는데, 하면서
        “나 주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눅1장의 아기 예수 태어남을 전하는 수태고지 장면에서는 마리아가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하자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던 중에 귀신들린 아이로 인하여 제자들이 쩔쩔매고 있을 때, 그 아이의 아버지가
        “하실 수 있으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의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빌4:13에서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원초적인 근원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소위 파스카, PASS OVER, 뛰어 넘었다, 유월절입니다. 첫 번째 태어난 모든 것이 죽음을 당한 바로에게 내린 마지막 재앙때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라 생명을 얻은 날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언제나 능력의 하나님에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초월하시는 능력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을 하나님의 도우심, 인도하심, 보호하심, 지키심으로 살아가야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할 것은 능력의 하나님이 수퍼 마켓 진열장에서 하나님 능력이라는 캔이나, 포장을 꺼내어 커터에 담는 그러한 하나님의 능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14:17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
         는 의와 평화와 기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 사도 역시 벧전2:9에서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
         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기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 없이 어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라는 것입니다.

   경영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분이 있는데, 종종 기업에 가서 직원들의 의식을 연구한다고 하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연구한 자료를 컴퓨터에 입력하여 분석하는데 여자인지 남자인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인지 적게 받은 사람인지, 생산 부서에서 일하는지 영업 부서에서 일하는지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종교가 기독교인가 아닌가를 구별해 분석하면 아무 차이도 나타나지 않았는다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데 믿지 않는 사람들과 아무 차이도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앙이 형식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일예배는 드리는데, 교회 봉사도 하고, 교회의 프로그램을 잘 따라하는데, 정작 삶 속에서는 아무런 신앙인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타지않는 가시떨기’처럼 사람들에게 ‘왜그럴까?, “왜지?”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살아갈까? 참 신비롭네 하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내는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는 삶이 아니라, 자기 능력, 자기 인간관계 관리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17장 첫 절을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또 전쟁을 일으키려고 군인을 모두 모았다고 합니다. ‘또’라고 합니다. 당시 이웃에게 이스라엘은 왕따였습니다. 어디 블레셋 뿐이었겠습니까? 아말렉, 암몬, 모압, 아람, 가나안 족속들, , ,크게는 앗수르, 바벨론, 이집트에 이르기 까지 끊임없는 원수들의 공격에 숨 쉴 틈이 없었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백성들이 토굴에 숨어있거나, 다른 부족으로 피하여 숨어들어 살았을 정도였습니다. 가을 추수 때에는 블레셋의 눈을 피하기 위해 땅을 파서 타작을 할 정도였으니, 이스라엘의 처지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디 블레셋은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살아온 해양민족입니다. 그런데 점차 세력이 커지면서 가나안 초생달 지역의 비옥한 땅을 넘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블레셋이 점차 그 세력이 커지는 것과 이스라엘의 우상숭배가 깊어지는 것과는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향하던 때나, 광야 40년 동안에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괴롭혔다는 것을 성경에서는 찿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자, 온갖 세력들이 힘이 강력한 원수로 등장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성도들의 삶은 기도의 제목이 하나 하나 응답받는 신비로움, 하나님의 도우심,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심, 인도하심, , , 그리고 아름다운 교제, 나눔으로부터 오는 5병2어의 기적.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변화, 잔치, 말씀의 순종으로부터 오는 능력 등 이 귀한 은혜를 내 삶을 다 하도록 체험해도 못 다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 귀한 은혜를 놓쳐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상이 중심에 오기 시작하면서 수 많은 것들이 주인행세를 합니다. 이 놈이 물러가면, 이어서 또 다른 놈이 와서 주인 행세를 합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끝 없이 주인 행세하려는 세력들에게 시달리는 역사였습니다.
  
   골리앗의 등장은 이렇게 주인 세우기의 꼭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11절에
        “사울과 온 이스라엘은 그 블레셋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몹시 놀
         라서 떨기만 하였”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골리앗 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마침 그 때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아들들도 블레셋과의 싸움을 위해 모두 전쟁터에 나갔는데, 그래서 이새는 막내 다윗을 불러 형들에게 옷 가지와 먹을 것 좀 싸가지고 형들이 있는 전장터로 보냅니다. 다윗은 거기서 골리앗이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모독하는 소리를 듣고 견딜 수 없어하며 전의를 불태웁니다. 이 소식은 사울에게 전달이 되어, 다윗이 사울 앞에 서게됩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에게 저 블레셋의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용사이기 때문에 싸우기에 버거운 상대라고 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자기가 어떻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위기를 극복하였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다윗은 자기도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양을 지켜왔는데, 사자나 곰이 와서 양 새끼를 움키면 쫓아가서 그것들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나에게 덤벼들면 그 수염을 잡아 쳐 죽였다고 당당하게 강변을 합니다. 다윗의 이 강변은 어디에서부터일까요?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는데, 신앙은 자신의 신념이 아닙니다. 자신의 노력이 아닙니다. 신앙은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고, 도와주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45절을 보면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46절에서
        “주님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 주실 터이니”라고 합니다. 바로 믿음이요, 신뢰입니다. 그 다음이 어떠한가요?  다윗의 행동이 나옵니다. 믿음에 따른 행동입니다.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을 모조
         리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
         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고 합니다. 골리앗과 맞장을 뜹니다.

   오늘 다윗이 사울왕에게 골리앗이 어릴 때부터 용사였다고 하니, 다윗은 맞 받아서 자기도 어릴 때부터 그렇게 아버지의 일을 목숨을 걸고 도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릴적부터 하나님의 도우심, 인도하심, 보호하심에 익숙해 있습니다. 교회의 교육부서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사울이 안스러웠는지 자기 군복을 직접 힙히고 놋 투구를 머리에 씌우고, 갑옷을 입혀봅니다. 그러자 다윗이 군복위에 칼을 차고 몇 걸음 걸어보는데, 영 마뜩지가 않습니다. 불편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사울의 군복을 다 벗어버립니다. 그리고는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냇가로 가서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골라 주머니에 넣고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에게 나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과 하나님의 백성의 차이입니다. 세상은 세상의 방법으로 세상 일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합니다.

    싸움이 벌어집니다. 골리앗이 몸을 움직여 점점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다윗은 재빠르게 블레셋 군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갑니다. 한 손에 무릿매를 들었습니다. ‘무릿매’는 원래 나무에서 과일 등을 따기 위해 던지는 것으로 양털이나 또는 천이나 가죽으로 만드는데, 가운데 물맷돌을 놓고 돌리다가 한쪽 끝을 놓으면 돌이 날아가는 원리다. 소년용 물매는 길이 128㎝이고, 어른용은 154㎝ 정도 인데, 물맷돌의 크기는 계란보다 약간 큰 정도로 전쟁용은 지름 6~7㎝ 정도이고, 비거리는 400m, 속도는 시속 240㎞ 정도 이니, 프로 야구선수들의 빠른 직구 속도가 150km 정도 인 것생각해 보면 물매돌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달려가면서 시냇가에서 주은 돌 하나를 무릿매에 걸어 한 껏 돌리다가 획 하고 줄을 놓으니 정통으로 골리앗의 이마를 맞추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방법대로 싸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훈련시킨 방법으로 싸웠습니다. 칼과 창, 방패가 아니라, 무릿매, 시냇가 조약돌 다섯 개,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에게 달려있다는 전폭적 하나님에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흉내를 냅니다. 창도, 칼, 방패도 구비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없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주님께 달린 것이다’라는 믿음 말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던 베드로가 문 곁에 앉아있는 지체장애인을 보았습니다. 베드로에게 성령의 감동이 임하자 그 장애인에게 다가가 그의 오른손을 잡고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을 준다고 하면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자 발목에 힘을 얻어 뻘떡 일어나 걷기도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베드로에게 있는 것은 은과 금이 아닙니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우리의 삶이어야합니다. 다윗은 이기고 지는 것이 주님께 달렸다고 하는데, 성도들에게는 모든 삶이 주님에게 달린 것이고, 그래서 이기고 지는 것도 주님에게 달린 것입니다. 자녀들의 교육, 여러분들의 직장, 사업, 건강, , , 주님께 달리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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