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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성령강림후일곱번째주일, 2014년 7월27일)

하늘기차 | 2014.07.27 14:23 | 조회 2327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성령강림후일곱번째주일                                                                                          삼상3:1-10

 

각 나라 마다에는 건국에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 늑대의 젖을 먹고 큰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이야기, 우리나라의 시조는 곰이 100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은 곰이 웅녀가 되어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 왕검을 낳게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건국에대한 신화는 한 여인으로부터 시작이됩니다. 에브라임 지파에 엘가나라는 사람에게 한나와 브닌나라는 두 아내가 있었는데 브닌나에게는 자녀들이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자녀가 없었고, 그러나 엘가나는 한나를 더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브닌나는 아이가 없는 한나를 업신여기고 괴롭혔습니다. 억울하여 늘 신세를 한탄하며 울면서 세월을 보냅니다. 그러던 중에 한 번은 언약괘를 모셔둔 실로의 주님의 집에서 음식을 먹고는 슬며시 일어나 성전으로 나아가 그 한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아들을 허락하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셨고, 그래서 사무엘이라는 아들이 태어납니다. 그 말의 뜻이 ‘하나님이 들으셨다’입니다. 이스라엘 건국을 이끈 마지막 사사사무엘의 탄생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창세기에 일관하는 주제 중에 하나가 믿음의 조상들이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이삭의 아내 리브가, 야곱의 아내 라헬,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 그리고 오늘 말씀의 한나 등, 생명을 잉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아니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생명, 평화, 그리고 선한 의로움의 삶을 살 수 없다는 성경의 큰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들 역시 예외일 수 없는데, 이렇게 하나님 떠난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아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창12장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의 역사를 원역사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신화의 시대, 이야기의 시대라는 것이지요. 그 이야기의 끝이 인간의 욕망의 탑쌓기인 바벨탑 쌓기로 마무리가 되는데, 마지막 30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는 임신을 하지 못합니다. 12장으로 넘어 오면서 그러한 삶의 자리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던 자리를 뒤로하고 하나님이 약속한 땅으로 나아갑니다. 그 믿음대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낳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믿음의 조상들에게 아내가 여럿 있는데, 믿음의 조상들이 사랑하는 아내들이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야곱은 네 명의 아내 중에 라헬을 특히 사랑하는데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맨 나중에 요셉과 베냐민을 낳습니다. 열 두 지파의 맨 끝째입니다. 창29장에 보면 라헬의 언니인 레아가 남편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데, 그대신 하나님께서는 레아의 태를 열어 임신하여 르우벤, 시므온, 레위, 그리고 유다를 낳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되는데, 다윗,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이 야곱이 사랑하는 레아에게서 태어난 아들 이집트의 총리대신 까지 오른 요셉이 아니라, 야곱의 사랑을 얻지 못한 레아의 아들 유다의 혈통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족보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인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짧게 나오지만 야곱이 삼촌 라반 집에 가서 무려 14년의 순애보적인 사랑을 통해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는 허락을 받은 것입니다. 인간의 지고지순한 꿈같은 사랑이 사람의 마음을 애뜻하게 하며 연민을 불러일으키지만, 연민은 연민 이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마치 마른 땅의 비와 같이, 한 더운 날의 바람처럼, 한 겨울의 따사로운 햇볕처럼 온누리, 모두에게 고루 비추입니다. 그 은혜가 바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면 보이고 들립니다. 신명기서의 말씀처럼 저 하늘 높이 올라갈 필요도, 저 아래 지옥 땅 끝 으로 갈 필요도 없고, 오직 마음으로 믿고 입로 시인하면 어느세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와 함께 즐거워하십니다.

 

그러니까 담론은 건국이라는 큰 이야기이지만 내용은 한 보잘 것 없는 여자에게서 시작이 됩니다. 모세의 이야기도, 예수님의 이야기도 한 여인 생명을 잉태하는 이야기에서 시작이되는데, 한나는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여 그 삶이 고달프고 힘이들고, 억울하여, 마음에 응어리가 지고 맺힙니다. 생명을 낳지 못하면, 성령의 열매가 맺히지 못하면 우리 인생은 고달프고, 힘이 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11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면서 무어라 말씀하고 있나요. 멍에를 메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꾸 짐을 지려고 하는데, 여러분 멍에를 메야합니다. 말씀의 멍에, 순종의 멍에, 기도의 멍에, 나눔의 멍에, 성령의 멍에, , , 예수님은 목수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꼭 맞는 멍에를 주문 제작 해 주십니다. 여러분 나에게는 어떤 멍에가 필요한지 스스로 결정하지 말고, 전문가이신 주님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여러분에게 꼭 맞는 멍에를 무료로 주문제작해 드립니다. 그래서 삼상1:10에 보면 한나가 어느날 작심을 하고 ‘괴로운 마음으로 주께 나아가, 흐느껴 울면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사람 사는 것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서로 서로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애증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희로애락이지요. 어느 가정이고 크고 작은 일로 일희일비합니다. 가정은 삶의 전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창조하신 인간의 제도에는 2가지가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입니다. 교회 보다 가정이 먼저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그 좋은 일을 가정을 통해 회복시키시고, 세우시고, 확장시켜 나가십니다. 또 교회를 통해서도 구원의 사역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한나는 그 가정에서 일어난 아픔과 괴로움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와 아룁니다. 하나님은 한나에게 기도의 멍에를 메어주신 겁니다. 소가 스스로 멍에를 메지 않습니다. 그 주인이 멍에를 메어줍니다. 주인이 아닌 사람은 그 소에게 꼭 맞는 멍에를 알지 못합니다. 자기 멍에가 아니면 메우 힘이 듭니다. 자신의 짐을 끌고 갈 수 없습니다. 메지 않은 만 못한 것입니다. 각자 나의 멍에가 무엇인지 주님께 나아가 물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며, 회복시켜주십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사무엘은 한나의 서원대로 젖을 떼자 바로 실로의 대제사장 엘리에게 맡겨져 성전에서 엘리의 수발을 들며 성전에서 자라게 됩니다. 엘리는 당시 사사이면서 동시에 대제사장인 이스라엘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 기력이 쇄하여, 열심히 기도하는 한나를 보고 술에 취했다고 하며, 또 두 아들의 성전에서 부리는 행태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 하나님을 모독하기에 이르렀으며, 오늘 말씀1,2절에서는 주께서 말씀해 주는 일도 드물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고, 눈이 어두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엘리는 자기 처소에 누워있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가 놓여있는 주의 성전에서 잠자리에 있는 데,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고 환하게 밝혀있다고 합니다. 성전에서 하는 일 중에 하나가 율법궤가 자리한 곳의 등을 어두워질 때 밝히고 날이 밝으면 끄고 해서 법궤가 있는 것을 항상 밝혀 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 레위지파의 역할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촛불을 밝힙니다. 불을 밝힌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 성령의 불, 영적지혜를 밝혀 내 안의 어두움과 혼돈과 공허함을 물리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 만이 내 안을 밝게 비추어주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의 눈이 어두웠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사무엘이 엘리대제사장 대신 율법궤 앞 등불을 지킨 것입니다. 그런데 성소를 지키며 봉사하는 것은 레위지파가 순번을 정하여 봉사하는 것인데, 이적이 당시에 지켜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자기 생각나는대로 살아가는 때였고, 그래서 왕을 추대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 신앙이 이스라엘 가운데 사라진지 꽤 된 것입니다.

 

사무엘이 율법궤 있는 곳에 누워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엘리에게 가지만, 부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3번 이렇게 거듭 엘리에게 달려갔는데, 그 때서야 엘리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른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사실 사무엘은 아직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지 못하여,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엘 리가 사무엘에게 일러줍니다. 다시 너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거든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있습니다”대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처음으로 사무엘과 대면하여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사시대의 마지막 때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며 하나님이 원치 않는 왕을 세우겠다고 하는 시대, 말씀도 사라지고, 환상도 나타나지 않는 때에 하나님은 한 여인을 통해 말씀을 들을 사람을 태어나게 하시어 세우시고 이제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말씀하시며, 그 말씀을 누가 듣나요? 말씀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풀어서 이야기하면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떻게하면 들을 수 있을까요?

 

성도들의 삶 속에서 목회자에게 중요한 것 중에는 결혼과 장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탄생이지요. 그 중에 제일로 중요한 것은 장례입니다. 고기교회에 처음와서 마을에서 장례를 치르면서 호되게 신고식을 치르던 기억이 납니다. 과장되게 말하면 장례를 치르다가 죽을 뻔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상주는 교인인데 그것도 다른교회 교인인데, 가족들 대부분은 신앙이 없는 가운데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20년 전 마을 장례는 염도 직접하여, 저도 함께 염습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상주하고는 기독교식 장례를 치르자고 굳게 약속을 했는데, 가족들은 자꾸 제사상을 차립니다. 그 것이 발인하는 날 까지 계속 싸움이되었고, 상여가 나가는 날에는 멱살잡이 까지 하였고, 저는 큰 돌에 맞아 운명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상가에서 목사가 가장 조심해야할 것은 누구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가입니다. 그런데 가끔 목소리 큰 어른들이 이래라 저래라 합니다. 처음 목사가 되었을 때에는 그 가족의 어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가 낭패를 당한 적도 있습니다. 목사가 장례를 치를때에는 상주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다른 소리들은 안듣고 무시해도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종은 주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주인과 친하구 자기에게 잘 해 준다고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 안됩니다. 다른 소식들, 다른 높은 사람이 무어라 해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주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게 종입니다. 종은 오직 주인의 소리만 들어야합니다. 바로 사무엘처럼 말입니다. 그러한 성도, 그러한 교회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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