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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시는 성령님(성령강림후첫번째주일, 2014년6월15일)

하늘기차 | 2014.06.15 16:55 | 조회 2728


                                                  도우시는 성령님

성령강림후첫번째주일                                                                                                     롬8:26-30

 

   성경은 우리 인간에대해 거듭 약하다고 합니다. 시편 기자는 벌레 같다, 티끌 같다,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다는 표현을 합니다. 유약하고,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것은 우리 인간의 본래적인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창세기는 벌거벗었다고 표현합니다. 벌거벗었다는 것은 아무런 힘도, 가진 것도 없는 가난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들 때 그렇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지 구분하자면 이것은 육적인 연약함의 모습이고,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역으로 풀어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의 온갖 수 억, 수 조, 경 에 이르는 개체들, 부족하고, 유한한 개체들의 조화로운 하나됨의 힘, 그 선한 창조의 질서가 있습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조화로운 하나됨에대해 창세기에서 계시록에 이르기 까지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입니다. 그런데 이 자연스러운 모습을 자연스럽지 않다고 흔들어 놓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사탄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에대해 요8:44에서 거짓말쟁이며, 처음부터 살인자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없는 것, 가난한 것, 부족한 것을 싫어합니다. 힘있고, 부요하고, 빠른 것을 원합니다. 혹 그렇지 못하면 어딘가 모자라고, 온전치 못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피조된 모습 그대로를 당연하고 아름답게 받아들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뱀이 찿아와 한 마디 합니다.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는냐?’ 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살짝 비틉니다. 그러면서 이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며,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뱀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하와는 그동안 살아 온 삶이 무언가 부족하고, 결핍되었으며, 자신의 삶을 한 껏 살지 못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뱀이 한 이야기를 살펴보면 눈이 밝아져, 선과 악을 알게 되어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하와는 귀가 얇아 그만 그 이야기를 듣고 선악과를 바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여 자기도 따서 먹고, 또 자기 혼자 먹을 수 있나요, 사랑하는 아담에게도 주어야지요. 이 멍청한 아담이 사랑하는 아내가 준다구 낼름 받아 먹습니다. 부부일심동체입니다.

 

   그리고는 눈이 밝아져 자신이 벌거벗은 것을 알게됩니다. 자기의 힘 없고 유한한 것이 부끄러워졌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할 때는 선이었는데, 그래서 이제는 끊임없이 힘있고, 빠르게, 그리고 끝없이 재화를 만들어냅니다. 바로 인간의 과학 물질 문명입니다. 그래서 인류 역사는 과학 물질 문명과 함께 끊임없는 전쟁과 폭력으로 점철됩니다. 또한 선과 악을 알게되어, 선악의 윤리적인 틀에 매여 선악 간의 진흙탕 싸움을 하며 인생을 소진하며 살아갑니다. 윤리이고, 도덕입니다. 성경은이것을 율법이라고 합니다. 선악 간에 인생을 소진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마치 홍해에 가로 막혀 가나안을 향하여 앞으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쫓아오는 이집트의 뒤로도 가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죄인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 바울은 롬8:2에서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다고 합니다. 3,4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

 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

 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이러고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본래의 모습을 회복시키시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인도하며, 지혜롭게 하며, 능력으로 함께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8:2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의 법’이라 했는데, 이것은 율법에 대하여 성령의 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풀어보면 선악을 구별할 줄은 알았지만 결국 선악에 붙들려 선악 간에 인생을 소진하게 하는 율법에대해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줄 알았는데, 그 율법이 할 수 있는 일이 단지 죄를 드러내 주는 일, 그래서 그 죄를 인간이 감당을 못하니 7:10이하의 말씀처럼 내가 죽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죽은 것이 아니라, 법에 무릎을 꿇ㅅ은 것입니다.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성령의 법은 말씀 그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인 것입니다. 이 성령의 법이 4절 말씀에서 처럼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십니다. 그동안 선악간에 인생을 소진하던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입고, 성령을 받고 평화의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자유로우며, 능력이 있으며 어리석어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것입니다.

 

   피조물과 더불어 인간의 처음 시작은 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죄로인하여 하나님과 멀어지면서 동행하는 그 기쁨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지난 주에 평화는 하나님이 함께하는 평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재화로 따지면 끝없이 늘 부족합니다. 아이들 학비도 감당해야 하고, 집도 전세금이 계속 올라가는데, 조기 은퇴하면 무얼해서 먹고 사나, 나의 병은 언제 까지 계속될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족함, 연약함, 가난함,,, 어떻게 감당하나 . .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오는 풍요로움이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함께함으로부터 오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요15장에서 내가 포도나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기쁨이 어떤 기쁨인가요? 포도나무 이야기 그대로 농부 아버지 하나님, 포도나무인 예수님, 그리고 우리는 가지, 무수히 많이 뻗은 포도나무 가지 성도들에 관한 이야기, 즉 농부와 포도나무와 줄기가 하나가 되는, 즉 함께하는 기쁨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성령의 역할 중에 매우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에대해, 요14:16의 말씀을 인용하여‘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라 하였습니다. 율법이 아닌 성령의 법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어떻게 함께 하실까요? 저는 고기교회를 섬기면서 20여년 동안 도우심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도록 풍족하게 입었습니다. 공감하고 싶은 마음에 이 번 교회 리모델링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를테면 성령의 감동이라는 것이, 하나님이 함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가 할 때, 조심스럽기도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성령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경험한 성령님은 나를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시며, 또 이 세상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리고 지혜롭게, 합당하고도 당당하게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 참 평화의 발걸음으로 살 수 있도록 하시며, 또한 위로를 베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풍족하고도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에게 찿아오신 하나님이시지,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닐 수 있다는 것이고, 한편 그러한 개별적인 체험이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 감동, 그 함께하심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만난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삶을 다른 사람에게 들려줌으로 또한 서로가 공감을 할 수 있지 않나 십습니다.

 

   그래서 몇 일전 성령께서 저를 도와주신 작은 이야기를 하나 하고 싶습니다. 지금 도서관을 잘 리모델링 하구요, 이어서 큰 방과 부엌을 리모델링 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월요일에 데크를 잘 놓을 수 있도록 사방 각 파이프를 반듯하게 수평으로 놓기 위해서 아주 간단하게 파이프를 분유 통에 묻어 콘크리트를 하여 땅에 일정한 간격으로 묻고 평을 잡아 전기 용접을 하였습니다. 사실 이태훈 집사님은 목수이지 용접기술자는 아닙니다. 그래도 집사님 한 번 일잡으시면 온 몸을 던져 일을 하십니다. 오전에 땀을 뻘뻘흘리며 일하시는데, 아예 양동이로 부은 것처럼 땀을 흘리십니다. 오전에 기본적인 사각 틀은 용접을 다 하였는데, 오후에 해가 나기 시작하며 더워지니까, 도저히 용접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냥 피스로 박자고 하는데,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피스를 박아서는 피스 머리가 튀어 올라 오기 때문에 그 위에 방부목을 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 하루 쉬라는 것인가 하다가 최태순 집사님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혹 용접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다시 전화하겠다고 하더니, 후배 한 사람과 지금 교회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최태순 집사님도 그렇고, 그 후배도 용접 기술자입니다. 정말 오후에 와서는 2시간 정도 되었나 순식간에 일을 끝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데크를 전 부 깔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늘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지만 늘 돕는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예를들어 도서관 넓힐 때에도 그저 도우미들이 사무일을 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려 하였는데, 어느날 ‘정 식’님이 오셔서 목사님 나중에 후회하십니다. 하면서 전체를 넓히라는 것입니다. 전혀 생각지도, 예상치도 못했던 안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전기 불이 반짝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공간이 마련된 것입니다. 그냥 사무 공간 만 만들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늘 그렇게 하나님은 지금까지 지혜를 주시고, 천사들을 보내 도와주셨습니다.

 

    덕분에 데크 바닥을 잘 깔았습니다. 근데 이제 천장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유일한 방법은 비닐하우스를 천장에 치는 것입니다. 15년동안 하우스를 짓고 부수고 하면서 난을 키웠습니다. 양난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고, 채소하우스가 아니라 시설 하우스를 짓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아는 게 그 것 뿐이니그래서 데크 천정을 비닐로 올렸다, 내렸다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목요일 아침 새벽에 기도하면서 머리 속이 데크 천장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자꾸 기도 중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 같은 경우 교회 일의 지혜는 하나님께서 항상 새벽에 떠오르고,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렇게 기도를 마치고 저녁에 모처럼 어느 음식점에 식사를 하러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쭈꾸미가 먹고 싶은 겁니다. 쭈꾸미가 요즈음 대세입니다. 쭈꾸미집이 한 둘이 아닙니다. 특히 우리 목공방 식구들 하고 잘 가는 곳이 있습니다. 근데 그 날은 그 곳을 가지 않고 동네에 있는 쭈꾸미 집을 찿는데, 가 보니 쭈꾸미집이 아니라 낙지볶음집입니다. 그래서 에~이 그냥 먹을까 하는데 집 사람이 아! 저 위쪽에 쭈꾸미 집이 하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들어가서 식사를 했습니다. 역시 땀 뻘뻘 흘림면서 말입니다. 식사 끝나고, 그냥 차 타고 돌아왔으면 데크 천장을 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근데 매운 것을 먹어서 그런지 음식점 앞에 아이스케잌 박스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하나 꺼내서 나오는데, 마침 야외용 테이블이 있어, 그 자리에 앉았는데, 좌우를 돌아 보니 데크이고, 당연히 자연스럽게 천장을 바라보니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로 비가림 천장을 마감했드라구요. 근데 여름에 비가림은 되어도, 겨울의 눈 무게는 어떻게 지탱할까 하고 자세히 살펴 보니, 그 기둥과 석가래를 각 파이프로 했더라구요. 아! 머리에서 전구가 반짝했습니다. 그래 각 파이프로 하면 되겠구나, 그 가게 데크는 천장이 기울기 없이 완전 수평이드라구요. 그래도 눈을 견딘다는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아이스케잌이 맛잇는지, 그 날 아침 기도 중에 스쳐간 생각들을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기도가 실제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제3의 길을 열어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최태순집사님에게 전화했더니, 뭐 그게 그렇게 특별한가 하는데, 용접기술이 없고, 각파이프를 다루어 보지 않아, 나에게 전혀 그 쪽으로는 생각해 볼 수 없는 길을 하나님께서 그 가게를 찿아가게 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며, 인도하심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위로에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위로란 이스라엘이 광야로 가는 동안에 엘림이라는 오아시스를 만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향할 때, 함께하시면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 바위를 쪼개어 샘물을 나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며, 지키시고 능력으로 함께하셨습니다. 그래도 광야 길은 이스라엘에게 힘든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지혜와 능력으로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며 위로를 베풀어주지만 힘이 듭니다. 그런데 그 힘이 드는 것은 우리 몫입니다. 하여간 이스라엘은 엘림의 나무 그늘과 샘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위로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은 다시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가나안이 어디인가 라는 것입니다. 혹시 한국교회는 가야할 가나안 땅을, 그 방향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그냥 이스라엘처럼 받은 위로인 엘림에 흠뻑 빠져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요, 베드로처럼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변화산에서 받은 황홀경에 빠져 여기가 좋아오니 하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런면에서 지난 주 목요일 바로 쭈꾸미 먹으러 간 날 오전에 노회 사무실에서 2년동안 기도해오던 치유와 화해의 생명공동체10년 운동 위원회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생명평화의 발걸음입니다. 주로 외국인노동자, 다문화 가정, 샛터민, 그리고 중점적으로는 핵발전소문제, 기후 환경 생태의 문제를 다루기로 합의를 보았고, 다음 달 15일에는 우리 교회에서 모이기로 하였습니다. 핵발전소는 진보, 보수를 떠나 모두의 문제입니다. 세월호 침몰에대해 참사라고 이야기하지만 핵발전소는 정말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수준의 위험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인 교회 차원의 하나님 창조질서 보존의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 첫 발걸음을 띤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여정 속에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동행하십니다. 지혜와 능력과 보호와 인도하심으로 함께하십니다. 교회가 이러한 우리 현실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며 힘차게 나아가야 합니다.

 

   밤토실어린이도서관이 지금의 도서관으로 세워져 지역분들의 사랑을 받기 까지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2006년 처음으로 도서관이 오픈할 때 그 전에 2005년 1년 동안 도서관 공부를 마을 분들과 함께 했고, 그 전에 3-4년 전에 문화적으로 아무런 혜택이 없는 지역에 도서관이 하나 세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도서관 학교’를 2년 열심히 다니며 기도하는 과정 속에 도서관이 세워졌습니다. 정말 돈으로 세우려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물었습니다. 포도나무비유에서도 예수님의 포인트는 아버지와 함께하는 것이고, 그 자체의 기쁨이 있고, 그 열매가 있으니 기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밤토실은 여러번의 리모델링과 최근 개축을 한 오늘 까지 전 과정이 기도의 과정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도우심, 함께하심, 지혜, 능력, 인도의 열배요, 그래서 마을의 기쁨이 됩니다.

 

   그냥..가게 역시 무엇을 하려고 해서 한 것이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웃과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라는 화두를 끌어 안고, 찬찬히 물 흐르듯이 돌아가며, 멈추며, 빨라지다가, 느려지기도 하며,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가게가 세워져, 모든 분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목공방 역시 한 순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모으며, 물으며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최산님 같은 경우 참 젊으신 분인데 우리 동네에 살면서 뇌경색이 와서 몸이 불편해져 직장을 쉬면서 이 전에 하던 목공을 래 공방에서 계속하며 이제는 목공인의 꿈을 키우고 있으며, 몸도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한영이 아빠가 1t트럭을 몰고와 수원에 가서 큰방과 주방 사이의 문을 구입해 가지고 올 수 있었습니다. 늘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을 분들이 기꺼이 함께 해 줍니다. 도우심의 하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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