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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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평화(성령강림주일, 2014년6월8일)

하늘기차 | 2014.06.08 14:16 | 조회 2344

  

                                                            함께하는 평화
성령강림주일                                                                                                                                      요14:27;16:33/요일5:4,5

   지난 주에 찿아오는 평화‘에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찿아온 평화는 과연 어떤 평화인가 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과연 주님이 말씀하신 평화는 어떤 평화일까요? 예수님은 오늘말씀요16장 마지막 절에서 지금까지 들려준 이야기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면서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더라도 ‘용기를 내라’고 하시면서,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선언을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는 세상을 이긴 평화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14:27, 그리고 16:33에서 평화의 주제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요일5:4,5에서는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누구인가?’라고 물으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이 세상을 이긴다고 말씀합니다. 아! 평화는 믿음에 근거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 그러면, 익숙하지 않아서, 그 다음에 어떻게 다가서야 할지 모를 수 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신뢰입니다. 그런데 성서가 말하는 신뢰의 대상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신앙이라 하는 것입니다. 돈을 신뢰하면 돈이 주는 평화가 옵니다. 돈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지요, 종종 T.V드라마에서 그렇게 돈이 주는 것을 얻고는, 아니면 얻지도 못하고 파멸하는 경우도 많고, 또 권력의 힘을 신뢰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바쳐 권력을 얻으려 하는 것이지요. 특히 권력은 법집행에서 오니까요. 사법고시, 행정고시에 올인하는 사람들은 그 권력의 평화를 얻는 것입니다. 또 가족, 아니면 우리 서민들은 아파트 하나 얻으려고, 아파트가 주는 평화를 맛 보고, 누리는 것을 위해 애씁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 이름으로 이러한 세상의 평화들을 마치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인 것처럼 포장하면 안될 뿐 아니라 성도들도 그러한 이야기에 미혹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오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에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세상을 이긴다는 것이고, 바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믿음으로부터 오는 평화가 세상을 이깁니다.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내려 와서 제자들에게 ‘내가 누구냐?’라고 묻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잘 대답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예언자요, 엘리야요, 세례 요한이라고 말 한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말을 하지 못합니다. 서먹서먹하고 썰렁해 졌습니다. 그런 중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 베드로의 고백이 믿음인 것은, 그러니까 생각이나, 신념이나, 철학이 아닌 것은 예수님이 바로 베드로에게 무어라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마16:17에서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
         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라고 합니다. 이 고백은 사람이 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우리에게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즉 나의 주인이라는 고백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여기 이 곳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에 초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바로 또 무어라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마16:18에서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
         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죽음이 그 고백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화인 것입니다.  제자들이 왜 두려워 떨었는가 하면 바로 죽음이 제자들을 엄습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찿아옵니다.

   너무 단순하고,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소중한 것은 어찌 보면 가장 가까이에 있습니다. 기독인들에게는 당연히 일상적이지요. 그런데 왜 그렇게 예수를 매 주 고백하는데 평화가 없지요? 왜그럴까요? 이스라엘이 빼앗긴 율법궤를 임시로 기럇여아림이라는 곳의 아비나답의 집에 모십니다. 그 때 사무엘이 온 족속을 불러모아 연설을 하는 중에 삼7:3에서       
        “여러분이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께 돌아오려거든, 이방의 신들과 아
         스다롯 여신상들을 없애 버리고, 주님께만 마음을 두고 그분만을
         섬기... ”라고 합니다. 평화는 두 주인을 섬기느냐, 아니면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교우여러분, 삶의 일들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이 모르는 아픔으로 삶을 체워 갈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일에 매여 스스로 삶을 놓아버리고 무기력하게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기 바랍니다. 세상의 일이 아무리 커 보일 지라도, 아무리 힘이 커 보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이기지 못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는 믿는 사람들은 세상을 이긴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나를, 이 나라를 이 민족과 인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죽음, 거짓, 폭력의 힘이 우리와 더불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두려워하며, 견디지 못해 스스로의 연민에 빠져 우상을 붙듭니다. 이제는 떨쳐버리고 주님 안에 머물러 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돈에대하여, 권력과 명예, 여러 다양한 자기들의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세상입니다. 또한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세상의 소리들이 도를 넘어 너무 한 가지에 기울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이 되어지는 일에 연연해 하지 말고, 우리는 부르심을 받았으니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평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평화에 좀 더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요20:21에서 보면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찿아오셔서 두 번이나 평화를 빌어주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평화를 위해 보내겠다고 합니다. 벼랑 끝, 고통과 아픔, 눈물과 싸움과 전쟁이 있는 곳으로 말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에게 평화의 사도, 평화의 대사직은 당연직입니다. 영국의 웨스트 코트라는 다소 신비주의적인 목사님은 그래서 이 본문 구절을 ‘교회의 장정’이라고 까지 합니다. 평화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태생적으로 파송되어 왔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찿아온 하나님께서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하셨듯이, 주님은 그렇게 하늘을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며, 파송된 것입니다. 눅9장에 보면 이미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는 데, 그 때 ‘모든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능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병든 사람을 고쳐 주게 하시려고’ 그들을 내 보내신다 고 합니다. 그냥 보내지 않고 능력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냥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을 전할 수 없습니다. 그냥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을 이기며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성령의 능력을 힘입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시기 전 요14:1에서 근심하지 말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이미 도마는 주님이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고, 빌립은 하나님을 보여달라 합니다. 이미 예수님이 3 번 이나 죽음에대해 이야기하자 또록또록한 도마와 빌립이 낌 새를 알아차리고 불안해 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감각이 없는 사람은 베드로 같습니다. 베드로는 전혀 감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나도 죽을 각오가 되어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죽음이 아니거든요. 혈기 왕성한 의로운 죽음이 아닙니다. 어디 한 번 해 보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마와 빌립은 무언가를 느낀 것입니다. 그러자 불안해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14:11에서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으라’고 합니다. 정 믿지 못하겠거든 주님이 하시는 일을 보아서 믿으라고 까지 합니다. 사실 15장의 포도나무 이야기는 이 14:11,12,13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입니다.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한다는 이 말씀은 이제 사랑으로 넘어갑니다. 믿음은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남녀 간에 사랑합니다. 사랑이 깨집니다. 왜요? 신뢰가 깨진 것입니다. 아니 사랑이 식으면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사랑하지 않는 것을 꾸밀려고 하니 거짓 만 남는데, 그게 금방 알지요. 사랑과 믿음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말씀을 지키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 십자가에서 보여준 사랑은 말씀을 지키는 사랑입니다. 포도나무 비유에서 무려 11번이나 거듭 머물러 있으라고 했는데, 그 것은 바로 말씀을 지키는 것을 통해 예수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랑에대한 것입니다. 그러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머물러 있는, 주님 안에 사랑, 말씀을 잘 지키는 신뢰하는 사랑을 위해 예수님은 요14:16에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라 합니다. 교우여러분! 성령의 역할 중에 매우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는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영으로 함께하며 우리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요15장에서 11번이나 머물러 있어라! 머물러 있어라 하는데! 머물러있지 못하는 것은 그래서 열매가 없는 것은 성령의 내재, 성령의 함께하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머물러 있는 기쁨도 맛 보지 못하고, 구하는 은혜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듭 말씀을 지키는 사람을 아버지 하나님은 사랑하신다고 하면서 23절에서는 아버지와 내가 그 사람에게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라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주시려는 평화는 바로 주님과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하는 평화, 하나되는 평화입니다. 이 평화가 세상을 이깁니다. 어떤 프레미엄이나, 특별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랑,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함께하는 평화입니다. 이러한 평화는 예수님에게서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닙니다. 구약성서를 보면 마찬가지로 창조주 하나님은 계속 이스라엘과 함께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하시기 위해 모세에게 머물 수 있는 성소를 지으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것이 성소입니다. 그 성소의 모든 기구들, 절차들, 제사장, 우림과 둠밈, 놋 바다, 촛대, 진설병, 향단, 그리고 율법궤가 있는 지성소, 율법궤. . . 그 모든 법도와 규례와 도구는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머물기 원하신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출25:8,29:45). 또 레26:11,12에서도 보면
       “너희가 사는 곳에서 나도 같이 살겠다. 나는 너희를 싫어하지 않는
        다. 나는 너희 사이에서 거닐겠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
        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예언서 중에 겔37:26,27은
       “내가 그들과 평화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다. 내
        가 그들을 튼튼히 세우며,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들 한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어지게 하겠다. 내가 살 집이 그들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평화는 이미 처음부터 함께하시는 평화였습니다. 이 평화 만이 오직 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 평화는 세상이 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세상으로부터 오는 근심, 걱정에 눌리지 말아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보내신 보혜사 성령님을 요청하고 받아들이며, 감동을 줄 때 예하고 움직이는데 익숙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주인이 물질이 아니라는 것, 권력이 아니고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신앙할 수 있습니다.

   교우여러분! 성령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합니다. 평화는 그냥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지 않고 어찌 평화의 발걸음을 내 디딜 수 있을까요? 성령을 받지 않으면 자꾸 사람의 소리, 사람의 계획 만 세웁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령을 받으라’ 하셨습니다.
  
   교우여러분! 하던 일 멈추고, 일상의 관행을 멈추어 보세요, 가만히 멈추어 있으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평화로 다가오시는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삶을 새롭게 질서잡아 주시는지, 그리고 어떻게 돈과, 명예와 권력과 이기적이지 않은 평화의 발걸음으로 인도하시는지 보아야합니다. 어떻게 거짓 가치와 참된 가치를 분별할 수 있는지, 아버지 하나님을 진정 주인으로 인정하기 시작할 때, 성령은 내 안에 오십니다. 그동안 두 주인을 섬겼다면, 그러나 이제는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진정 고백한다면 성령은 도와주시고, 인도하시고, 지켜주시고, 깨우치시고, 관계맺어주시고, 능력으로 함께하시며, 무엇이든지 구하는대로 다 들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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