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찿아오는 평화(부활절제일곱번째주, 2014년6월1일)

하늘기차 | 2014.06.01 18:10 | 조회 2544


                       찿아오는 평화

부활절 제7주                                                                                                            요14:27

     평화는 에이레네, 즉 함께 묶는 것, 함께 합치는 것, 그러니까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 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 대변인인 유경근님이 희생자 유가족들과 함께 마음을 같이 해 달라고 하면서 “한 달 뒤에도 잊지 않겠습니다. 1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한 말은 공감해 달라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래서 그것은 평화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평화에 목 말라 있는 것입니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평화였습니다. 희생자 유가족들 곁에 함께 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평화는 물론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평화도 있지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평화일까요? 그 평화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찿아오는 것입니다. 진도의 팽목항에 대통령도 다녀가고, 여러 지도자들이 다녀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마치 유령처럼 아니면 사진을 찍고, 등 등, 대부분 유가족들이 원치 않는 방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분에대해서는 유가족 중의 어느 분이 그 지도자를 꼭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그 분에게 유독 그렇게 마음을 열고 그 아픔과 고통을 나누려 했을까요? 그 분에게서 공감의 진정성, 평화의 진정성을 느낀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찿아온 평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평화는 신앙하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입니다. 마침 사슴이 시냇물을 찿듯이, 파숫군이 새벽을 기다리듯이 말입니다.

     청년들과 창세기를 읽고 이야기를 나눈지 꽤 되었는데, 이제 두 Chapter만 하면 창세기를 마무리 짓습니다. 창세기를 처음 시작할 때 제가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창세기의 주제가 무엇인가? 대부분 창조라고합니다. 부분적으로 맞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전체를 통해 창세기를 기록한 사람이 말하고 싶은 것은 평화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래 하나님과의 평화가 깨지고 그 가족 안에서 형 카인이 동생 바벨을 살해하는 사건이 생깁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주인공이 누구일 것 같습니까? 희생당한 착한 아벨일 수 있지만, 아벨은 이야기 속에 사라지고, 죄인인 살인범 카인이 계속 이야기를 끌고갑니다. 종종 교회가 인도주의적인 생각과 윤리적 범주에 빠지기 쉬운데, 성경은 윤리가 아니라 생명을 지키시며 돌보시며 이끄시며 함께하시는 하나님에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그렇게 두려워 떨며, 스스로의 존재감을 잃고 창4:14에서

“. . .이 땅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그렇

게 되면,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죽이려고 할 것”이라고 고백하는 카인에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일곱 갑절로 벌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표를 찍어줍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가인을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16절에 가인이 주님을 떠나 에덴의 동쪽 놋 땅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 떠난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 잃어버린 인류의 자화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지 하나님은 여전히 카인 곁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곁에 계셔서 우리가 부르짖고 찿기를 원하십니다.

     창세기는 끊임없이 형제들과의 갈등, 싸움을 이야기합니다. 쌍둥이 에서와 야곱이 태중의 뱃 속에서부터 싸웁니다. 남과 북, 백인과 유색인, 가진자와 갖지 못한 사람들, 아프리카의 내전, 극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패권 싸움, 거대 담론 뿐 아니라,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식 간에 원수 같다고 합니다. 무어 원수 맺을 것이 없어서 가족 간에 그럴지 모르지만, 그만큼 가깝고, 그래서 너무 잘 알고, 그래서 막 편하게 대하다 보면, 상대에 대한 존귀함 다 잃어버리고, 내 남편, 내 아내를 다른 남편, 아내 보다, 다른 자식들 보다 못하게 보게 된 단말입니다. 창세기는 이러한 근원적이고도 실존적인 싸움에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속여 장자권을 얻어 삼촌 라반의 갈대아 우르로 도망갔다가 금의 환향하여 돌아 올 때, 마지막 까지 야곱을 힘들게 했던 것은 형 에서였습니다. 잔 꾀 많은 야곱은 칼을 빼어들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에서에게 자신의 재산 중에 일부를 4 대로 나누어 보내어 형 에서의 마음을 녹입니다. 팥죽 한 그릇에 넘어간 에서가 이 많은 가축 떼를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그러나 야곱은 마지막 까지 여전히 불안하여 얍복강 나루를 두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건너 가족들을 먼저 보낸 후 얍복나루터에 홀로 남습니다. 거기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납니다. 야곱의 생애의 전 존재를 뒤흔드는, 그의 모든 인생의 경험과 인생의 지혜와 부를 무로 돌리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실루엣을 만들어냅니다. 엉치뼈가 탈골되어 쩔둑거릴 수 밖에 없는 야곱이 떠오르는 동쪽 해를 뒤로하고 절뚝거리며 형에서에게 나아갑니다. 민영진 박사님은 이 뒷 모습을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극찬을 합니다. 온 몸이 싸움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이제 하나님의 은혜입은 자로 자기를 죽이러 다가오는 형 에서에게 다가갑니다. 그 때 야곱이 형을 만나며 한 말입니다. 무어라 하였습니까?

“형님께서 저를 이렇게 너그럽게 맞아 주시니, 형님의 얼굴을 뵙는 것

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듯”하다고 합니다. 화해 하나님의 평화가 이

렇게 찿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서를 만나기 전에 야곱을 완전히 변화시

키셨습니다. 하늘에서부터 오는 평화입니다.

     야곱에게는 4아내와 12아들이 있습니다. 이미 갈등구조입니다. 특히 야곱의 요셉에대한 총애가 가족들을 시기, 질투의 소용돌이로 몰아갑니다. 결국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애굽 군대 장관의 부인의 유혹을 뿌리치며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고, 감옥에서 떡 맡은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정확히 해몽하여, 후에 술 맡은 관원장을 통해 왕의 7년 풍년, 7년 가믐의 꿈을 해몽하여 이집트의 총리대신의 자리에 까지 올라갑니다. 그런데 지중해 전 지역에 극심한 가믐이 발생하면서, 가나안 땅의 야곱부족도 먹을 식량이 다 떨어집니다. 야곱은 자녀들을 애굽으로 보내어 식량을 구해오게 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요셉은 형들과 대면하게 됩니다.

     그 때 요셉이 형들에게 하는 말이 기가막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로부터 오는 언어입니다. 이 말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우여러분! 이 말을 우리의 마음 속에 꼭 꼭 간직해야 합니다. 성령을 요청하여 이 말씀을 마음에 문패처럼 달구 다녀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서 살아나야 합니다. 그런데 죽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요즈음 새벽기도 시간에 신명기서를 읽고 있습니다. 신4:5-6입니다.

“보십시오, 내가, 주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명하신 대로, 당신들에게

규례와 법도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당신들이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당신들이

그대로 지키도록 하려고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당신들은 이 규례와 법도를

지키십시오. 그러면 여러 민족이, 당신들이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이 모든 규례에 관해서 듣고, 이스라엘은 정말 위대한

백성이요 지혜롭고 슬기로운 민족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세상과 다른 지혜와 슬기로움은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 민족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 백성을, 그 교회를, 그 성도를 보며 참 지혜롭고, 슬기롭다 할 것입니다. 이거 뭐 이레 하실 수 있을지 모르지만, 너무 평범하지만, 그리고 만일 세상 사람들이 추상적이라고 시비를 건다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평화, 자유, 정의라는 말이 추상적이어서 뭔 말인지 모르겠다고 한다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즉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증거, 성령의 내적 증거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생명의 언어들을 구체적으로 세상 속에서 살아내게 하는 위에서부터 오는, 우리 밖에서 오는 하나님의 생명의 지혜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무어라고 말하였습니까? 창45:4-5입니다.

“내가,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 넘긴 그 아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

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

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어떻게 시기 질투하여 죽이려고 했는지를 잘 알고 있으며, 그리고 그 고통과 아픔을 평생 품고 지냈던 것입니다. 이 아픔이 심리학적으로는 소위 치유받아야 할 마음인데, 오늘 요셉은 어떻게 치료를 받나요. 바로 45:4-5의 말씀을 통해 치료를 받습니다. 요셉이 요셉의 입으로 걱정도, 자책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형들과 요셉이 마음을 합한 것입니다. 공감을 한 것입니다. 평화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 속에서 우리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는 그 과정에 들어오셔서 그 싸움을 선하게 값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화이며,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며, 사모하며 신앙해야 합니다.

     하갈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의 몸 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삶의 선택권이 없습니다. 이리 하라 하면 이리 하고, 저리 하라 하면 저리 합니다. 하갈은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낳아줌으로 신분상승의 기회로 삼지만 결국은 쫓겨납니다. 하갈은 그야말로 씨받이 일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저 이용 당하고 죽어갈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갈은 나름대로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려고 애를 썻지만, 한계에 부딪치고 말았고, 돌파구를 찿아 나섰지만, 지금 그는 지금 죽음의 고앙야에서 헤메고 있습니다. 임신한 여자가 광야 어디에 머리 누일 곳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찿아오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잃고 헤메는 하갈을 광야 길 샘물 곁에서 만나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혹 자는 여전히 고통과 어려움, 남 모르는 아픔으로 힘들어 하며, 아직 저 한테는 하나님이 찿아오지 않았어요, 나는 아직 하나님 못 만났어요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출애굽의 모세는 하나님 만나는데 40년이 걸렸습니다. 참 지난한 세월을 보내고 나서 가시떨기 불 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의 그 오랜 기간은 마치 좋은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깨끗하고 질 좋은 포도를 잘 숙성하는 과정 과 같습니다. 잘 발효되면 맛과 향과 색이 조화로운 특급 포도주가 만들어지듯이 하나님이 아직 여러분을 만나주지 않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시간에 우리와 만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만남의 시간 동안에 우리가 감당해야할 것은 마음을 흐트러 뜨리지 말고, 하루 하루를 하나님과의 긴장감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 삶이 비록 힘들고, 고통스럽고, 감당하기 벅찰지라도, 하나님은 그 과정을 통해 우리를 포도주처럼 변화시켜 하나님의 뜻에 합한 사람으로 세우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잘못된 계획, 욕심의 탑을 쌓고 있지는 않는지요? 욕심을 가슴에 품고 여전히 소망 없는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그래서 절망과 좌절 속에 울부짖지는 않는지요, 나의 불행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지는 않는지요? 그러나 바로 그 합당하지 않은 자리에 하나님이 찿아오십니다. 마음을 조금만 비우고, 열면, 바로 그곳에 우리가 지긋 지긋 하게 여기는 바로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그 곳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체험을 한 하갈에게 세상은 더 이상 공허, 어둠, 혼돈이 아닙니다. 충만, 빛, 질서입니다. 세상은 억울함과 적대감, 시비와 분쟁과 질투, 생존경쟁의 처절한 싸움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살아 숨쉬는 하나님의 손길이 닿아 있는 곳입니다. 창조의 질서가 살아있는, 보기에 좋은 자리입니다. 하갈은 하나님 체험 후에 자신이 견딜 수 없어 뛰쳐 나온 아브라함의 집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하갈은 이제 하나님의 은혜입은 자가 된 것입니다. 길 거리 풀 한 포기, 샘 하나, 나무 한 그루 그 어느 곳도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부활 이후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찿아와 십자가의 고통을 창자국과 못자국을 보여주며 아픔과 고통을 보고 만지게 해 주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무서워 말라하십니다. 세월호 침몰의 유가족들에게 세월호 현장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자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침몰의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는 과정을 통해 가족들은 위로와 치료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그러한 진상 규명의 과정을 뛰어넘는 하나님으로부터 찿아오는 평화, 즉 요셉이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한 것처럼, 또 야곱이 ‘형님 얼굴이 하나님 얼굴 같습니다’라고 하는 평화가 오늘 이 시대 넘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25/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625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958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335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928 2005.09.02 16:30
495 다윗은 기도의 사람(성령강림후열일곱째주일, 2014년10월5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980 2014.10.05 15:22
494 주님께 달린 것이다(성령강림후열여섯째주일, 2014년9월28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77 2014.09.28 15:16
493 하나님을 믿어라!(성령강림후열다섯째주일, 2014년9월21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587 2014.09.21 17:31
492 우리는 메뚜기가 아니다(성령강림후열네째주일, 2014년9월14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733 2014.09.14 17:08
491 주님께 복을 받은 사람(성령강림후열세째주일, 2013년9월7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16 2014.09.07 10:59
490 어떤 사람(성령강림후열두번째주일, 2014년8월31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85 2014.08.31 14:38
489 ‘율법궤를 가지고 오라... 말라’(성령강림후열한번째주일,2014년8월2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33 2014.08.24 15:25
488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성령강림후열번째주일,2014년8월1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688 2014.08.17 14:52
487 다 하는 사랑(성령강림후아홉번째주일, 2014년 8월10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066 2014.08.10 14:30
486 사무엘은 라마로 돌아갔다.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790 2014.08.03 15:08
485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성령강림후일곱번째주일, 2014년 7월27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26 2014.07.27 14:23
484 생명과 평화의 성령(성령강림후여섯번째주일, 2014년7월20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62 2014.07.20 17:28
483 하나님이 기뻐하는 아들(성령강림절후다섯번째주,2014년7월13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720 2014.07.13 15:19
482 자녀로 삼으시는 영(성령강림후네번째주일, 2014년7월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89 2014.07.06 15:58
481 알게 하심(성령강림후세번째주일, 2013년6월29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226 2014.06.29 15:42
480 영적 훈련(성령강림후두번째주일, 히12:1-7)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44 2014.06.22 14:02
479 도우시는 성령님(성령강림후첫번째주일, 2014년6월15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728 2014.06.15 16:55
478 함께하는 평화(성령강림주일, 2014년6월8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44 2014.06.08 14:16
>> 찿아오는 평화(부활절제일곱번째주, 2014년6월1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545 2014.06.01 18:10
476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부활절제6주, 2014년5월25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660 2014.05.25 1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