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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성령강림후여섯번째주, 2015년 7월 5일)

하늘기차 | 2015.07.05 15:58 | 조회 1869



                                                                           부르심!
성령강림후여섯번째주                                                                                                                                 창18:6-8;마5:1-1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마므레 상수리나무 아래 앉아서 졸며, 깨며 묵상하고 있을 즈음에 세 사람이 찿아옵니다. 이 세 사람은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 소식을 전합니다. 하나는 내년 이 맘 때 아이를 낳을 것이고, 또 하나는 소돔 과 고모라의 멸망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 몇 가지 흥미로운 모습을 봅니다. 찿아 온 세 사람이 아브라함이 지극 정성으로 준비한 음식을 먹습니다. 근데 그 때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고 있었을까요? 창18:8에
     “그들이 나무 아래에서 먹는 동안에, 아브라함은 서서, 시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언젠가 수요 예배 때, 그 구절을 외우라고 하면서 ‘우리 교회는 앞으로 이 본문 말씀을 붙들고 나아갈 것입니다.’ 라고 한 말씀입니다. 어떤 말씀이었죠. 잊지 말자고 했습니다. 눅22:27말씀입니다.
        “누가 더 높으냐? 밥상에 앉은 사람이냐, 시중드는 사람이냐? 밥상
         에 앉은 사람이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
         데 있다.”입니다. 이 모습은 그냥 아브라함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이 세 사람을 만나는 말씀은 이 전에도 수도 없이 보았지만, 지난 번 수요일 오전 성경읽기 모임에서 이렇게 전혀 예상치 못한 관점에서 말씀을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예수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주님의 말씀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눅18장은 아브라함 이야기에 있어서 그 이전 과 이 후를 바꾸는 전향적인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아브라함이 보여주는 모습은 ‘서서, 시중을 들었다’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삶의 전환점, 믿음의 전향 점에서 보여 준 모습은 ‘서서, 시중을 들었다’입니다. 우리, 그리고 한국교회의 전환점이 되어애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지나친 해석을 하는 것일까요? 우리 교우 여러분에게 이 본문을  나누어 드리고 싶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고기교회는 50주년을 맞이하며 이 말씀을 붙들 것입니다. 몸이 부서져라고 붙들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해 보아야, 우리 노력과 뜻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말씀입니다. 몸이 부서지기 전에 내 마음이 먼저 부서질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과 역사가 아니면 깨우침과 인도하심이 아니면 스스로 말씀 앞에, 교회 앞에 겸손치 않으면 감히 그 곁에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그저 혼자 땀 뻘뻘 흘리며, 목청껏 외치다가 제 풀에 꺽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저 어린아이와 같이 이 말씀 앞에 섭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성도가 늘 마음 판에 세겨야 하는 말씀이라고 한 말씀은 역시 누가복음에서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어떠한 믿음인지를 예수님께서 설명하려고 하신 말씀입니다. 바로 눅17:1~10의 말씀 중에 10절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을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우리는 쓸모없
        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여라.”는 말씀입니다. 누구복음의 이 두 개의 본문 말씀은 앞으로 우리 교회가 마음 판에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신6:6,7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쉐마로 주신 말씀, 그러니까 신6:4에서 ‘너희는 들으라’하고 말씀할 때 ‘들으라’는 뜻인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들으라’고 특별히 강조한 말씀이 어떤 말씀인가 하면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치십시오. 또 당신들은 그것
         을 손에 매어 표로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으십시오. 집 문설
         주와 대문에도 써서 붙이십시오.”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5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에 ‘들으라’는 말씀으로 눅2227과 1710을 내어 놓습니다. 두 본문이 고기 교회 성도들의 일상 속에서 삶의 지혜가 되고, 능력이 되어 은혜로운 생명의 삶, 역동적인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발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근데 아브라함도 그렇고, 주님도 그렇고 서서 시중을 드는 섬기는 모습은부담으로 다가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우리는 찬찬히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세 사람을 맞이합니다. 마므레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우리로 치면 마므레상수리 나무는 마을 입구의 당상나무입니다. 우리 벌장투리에도 500년된 당상나무가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몇 년 전 만 해도 단오 때만 되면 느티나무 아래에서 돼지도 잡고, 창포로 머리도 감고 모처럼 나무에다 그네를 걸어 뛰우며 마을의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제사도 드리고 말입니다. 아마 아브라함은 그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묵상하고 있지 않았겠나 십습니다. 그런데 그 세 사람을 맞이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은 귀한 분, 이 번에 이 분들을 잘 맞이하지 않으면 다시는 맞이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이 세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모습에서 아브라함이 어떤 마음일지를 알 수 있습니다. 간절합니다. 그런데 준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열처녀 비유에서 신랑을 맞이하는 슬기로운 5처녀의 기다리는 기쁨에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신랑을 기다리는 슬기로운 5처녀와 같다고 합니다. 기다림에는 설레임이 있습니다. 마음이 쿵쾅쿵쾅하고 뜁니다. 아브라함은 찿아온 손님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에 서 있는 것이 힘이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기쁘고, 즐거웠을 것입니다. 귀한 손님 맞아 정성껏 대접하는 주인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종이 아닙니다. 주체자, 자유자의 모습입니다. 고기교회의 성도 한 분, 한 분이 이러한 부름의 성도이기를 바랍니다.

   베드로가 그물을 씻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어촌에서는 그물 씻는 자리가 바로 아브라함의 마므레 상수리 나무와 같은 곳이 아닐까요? 풍어가도 부르며,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며, 세상 이야기, 말씀, 기도 제목, 그러는 중에 주님이, 바로 그 주님이, 그 것도 베드로의 배에 타신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을 하는 동안 베드로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말씀에 넋을 놓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 옳거니 하며, 속으로 추임세도 넣지 않았겠나 십습니다. 근데 주님이 말씀이 끝나자 ‘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밤새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아, 정말 피곤하여 이제 그물 씻어 거두고, 집으로 가서 잠을 자려고 할 참이었습니다. 더구나 한 낮에 고기는 연안으로 몰려, 바다 가운데에는 고기가 없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씀대로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집니다.

   지 지난 주에 설교 제목이 불모에서 생명으로 였습니다. 기억이 나시는지요? 그 때 믿음의 출발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내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에서 출발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불모, 그 생명없는 삶의 자리에서 우리를 불러 생명의 역동적인 기쁨의 삶으로, 은혜로 살아가는 삶으로 인도한 시작이 ‘능치 못함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브라함은 드디어 그 불모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에 선 것입니다. 그 때, 그 하나님의 시간에, 아브라함은 잘 준비하여 기다리고 있다가, 기꺼이 세 분 손님에게 기쁨으로 서서 시중을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세 사람에게 내 년 이맘 때, 아들을 낳으리라는 부름, 즉 ‘능치 못한’아브라함이 ‘능치 못 함이 없는’ 은혜의 부름을 온전히 받은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밤 새 고기 하나 잡지 못하였습니다. 능치 못하였습니다. 불모입니다. 그런데 그 능치 못함의 근거인 ‘밤새 애를 쓴’ 자기 지식과 자기 수고를 이제 말씀을 따라 내려 놓고 깊은 바다로 가서 그물을 다시 내립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능치 못함’에서 ‘능치 못함이 없는’ 생명의 은혜로 나아갔습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지금 까지 고기를 잡아 본 경험 중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두 배 가득, 배가 가라 앉을 정도로 고기를 잡아 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이 ‘능치 못함이 없음’을 통해 패배주의,무력감, 무능과 관행과, 종교적 일상에 빠져있는 베드로를 부르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때서야 자기 앞에 계신 분이 누구인지 깨달았습니다. 나의 주인이시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부끄럽게 살았는지, 그래서 스스로 ‘나는 죄인’이라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고기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선 것입니다. 그저 자기 먹을 것, 자기 좋은 것 속에 함몰되어 있는 베드로가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찿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능치 못함이 없음’의 축복을 받고 담담하게 하나님의 사자들과 작별인사를 합니다. 생각컨데 후손에대한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 번 기회에 확실하게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세 사람이 떠나는 것을 마중 나가던 참에 주님이 소돔의 멸망에대해 이야기합니다. 소돔의 울부짖음이 소돔에서 저질러지는 악행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세 사람은 소돔으로 향하였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대면을 합니다. 그 때 소돔이 우리 사랑하는 조카가 살고 있는 소돔, 그래도 여러 가지 생필품을 보급 받고, 그리고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소돔이 멸망한다니, 이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주님께서 의인을 기어이 악인과 함께 쓸어 버리시렵니까?...의인 쉰
        명을 보시고서도, 그 성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라고 하면서 문제를 제기합니다. 18장 25절입니다.
        “그처럼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게 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닙니다. 의인을 악인과 똑같이 보시는 것도,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닌 줄 압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께서는 공정하게 판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닙니다’라는 말은 아주 점잖은 말입니다. 이 말 원어의 뜻은 ‘신성 모독이야’, ‘불순해’, ‘더러워’입니다. 하나님이 불경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티끌이나 재 밖에 안되는 주제이지만 감히 아뢴다고 하면서 또박 또박 하나님을 질타하는 형국입니다. 의로운 자들이 악인들과 함께 죽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 의로우심에 폐를 끼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숫자 놀이를 하여 결국 의인 10명에 이릅니다. 그런데 그 후에는 더 이상 숫자에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19장으로 넘어가는데, 소돔이 유황불에 멸망하면서 19:29은 ‘하나님께서 그 재앙 속에서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간절한 바램은 이루어진 것인가요?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 때에도 노아를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노아에게서 무엇을 보고 계실까요? 성경은 악인의 죽음, 악인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의로운자의 고난에대해 말씀합니다. 꼭 재난과 재앙이 있을 때 회자되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이 우상 숭배의 죄 때문에 대지진의 피해를 입었고,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했다고 합니다. 이 번의 메르스 전염병의 확산을 동성애의 죄악과 연결시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계획 바램과 무관하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 시간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그러한 사건, 폭력, 죽음, 재앙 속에 하나님이 기억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하박국이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께 강력히 그 시대의 불의, 불법, 우상숭배를 탄원할 때에도 하나님은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는 그러한 시대적 정황 속에 ‘남은 자들’의 신앙에대해 이야기하며, 악인이 아니라 고난받는 종에대해 거듭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은 소돔이 멸망할 때에 아브라함을 기억하여, 롯을 그 재앙에서 건져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끈질긴 간청으로 숫자놀이를 하였지만, 10명에서 멈추고 그 다음에 한 사람의 신앙을 인정하였습니다. 이 믿음의 전통을 따라 사도 바울은 롬3:22에서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온다고 하면서 아무런 차별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아브라함을 부르신 부름의 이유입니다. 이제 죄를, 잘못을 이야기하지 말고, 믿음의 의, 다시말해 하나님처럼 인정해 주는 것이 소중합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말입니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마 생각건대 세상은 점점 더 악해져 갈 것입니다. 그러니 그 쪽을 바라보지 마시고, 인정하시는 하나님을 따라 그대로 그 모습을 인정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법은 법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에게 맡기라 한 것처럼, 법은 법에게 맞기고, 논리와 합리성, 그리고 세상의 논리는 세상에 맡기고, 성도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 지금의 세상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희망이요, 은혜요, 부름에 합당함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아브라함이 멸망의 자리에서 재와 연기가 솟아 오르는 모습을 비추어주며 끝이 납니다. 그런데 만일 그 자리에 내가 서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들까요? 지금은 지구촌이 기후 생태적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국가적으로도 사회, 정치, 문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위기라고 합니다. 교우여러분!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들으라 하신 눅2227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있다.’는 말씀과 눅1710의 ‘우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는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인정 받고, 세상의 그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며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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