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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을 이겼다(부활절제6주, 2015년5월10일)

하늘기차 | 2015.05.10 11:18 | 조회 2115



                                                          내가 세상을 이겼다.
부활절제6주                                                                                                              요16:23-33

  오늘 말씀 첫 마디는 ‘그 날에’입니다. 이 날은 언제일까요? 유대인들의 시간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지금의 시간과 장차 다가올 시간입니다. 지금의 시간은 악하며, 심판 받아야할 때 이지만, 앞으로 다가 올 시간은 하나님의 시간으로 악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선한 뜻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영광의 때입니다. 그런데 이 두 시간 사이에 메시야가 오십니다. 메시야가 하나님의 날, 영광의 날, 승리의 날을 이루시는데, 그 메시야의 때, 이스라엘은 영광의 날의 태동을 기다리는, 생명을 잉태하는 진통을 겪게됩니다. 성경은 그러한 아픔과 고통을 구약에서 거듭 이야기합니다. 사13:6-9입니다.
        “슬피 울어라!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깝다. 전능하신 분께서 오시는
         날, 파멸의 날이 곧 이른다. 날이 가까이 올수록, 사람들의 손이 축
         늘어지고, 간담이 녹을 것이다. 그들이 공포에 사로잡히고 괴로워
         하고 아파하는 것이, 해산하는 여인이 몸부림 치듯 할 것이다. 그
         들은 놀라 서로 쳐다보며, 공포에 질릴 것이다. 주님의 날이 온다.
         무자비한 날, 진노와 맹렬한 분노의 날, 땅을 황폐하게 하고 그 땅
         에서 죄인들을 멸절시키는, 주님의 날이 온다.”

   예수님도 역시 마지막 때 주의 날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고 있었고, 마음 속에 깊이 새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에게 자신이 이제 떠나갈 것이며, 다시 돌아온다고 하면서, 다시 돌아올 때에는 나의 통치가 시작이 되며, 나의 나라가 올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떠나서 돌아오는 날 까지 너희들은 근심하며, 애통해 할 텐데, 그 고통과 아픔, 그리고 근심은 아이를 잉태한 여인이 해산을 기다리는 기쁨의 진통과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 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면 복되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뜬 구름 잡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지 지난 주에 세월호 가족 중에 예은 엄마(안산 화성교회 전도사님이십니다)가 저희 교회에 찿아오셨습니다. 안산에 세워질 목공방에대해 의논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로서는 오늘 이시대의 고통과 아픔을 품고 가는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나누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목요일 기도회 때는 저희 경기노회 치유와화해의 생명운동10년위원회 목사님 몇 분과 흥덕새누리교회의 오카리나 소년부 동아리아이들 몇 몇, 그리고 창현엄마, 다영아빠와 함께 신학생들 하여 10여명이 예배를 드리는데, 마침 신학생들이 카네이션을 가지고 와서 전달하자 창현 엄마가 울컥 하며 울음을 참지 못하였습니다. 창현이에게 받을 카네이션이었을 것입니다. 올해의 어버이날이 세월호 가족들에게는 작년이야 정신없이 지냈겠지만 참 힘들겠다 싶습니다.

  하여간 그 날 예은이 엄마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행령이라는 것이 법을 집행하기 위한 하위 법인데, 하위법인 시행령이 상위법인 특별법을 모두 뭉개버렸습니다. 아마 헌법 소원이라도 해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예은 엄마의 모습에서 그 1년의 고통과 아픔이 그대로 느껴져 왔습니다.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스스로 조심스러웠습니다. 1년 동안 애썼는데, 애 쓴 정도가 아니라 온 몸을 다 하여 싸웠는데, 하나도 얻은 것이 없습니다. 그 때 문득 떠오른 생각을 예은 엄마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예은 엄마, 하나님의 역사는 참 천천히 굴러가서 진화하고 발전해
         가는 것이보이지 않네요, 그것은 마치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하는
         데, 하나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너무 빠르고, 너무 커서, 그 소리
         도, 속도감도 느끼지 못하지만 지구는 계속 돌고 있는 것처럼 말입
         니다.”고 하니까, 웃으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이 갑이래요, 우리는 을이구요. . .”하면서 씁쓸히 웃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요즈음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거대한 생명의 수레가 정의와 평화의 바퀴로 굴레가는데, 너무 커서 지구의 자전, 공전도 눈에 보이지 않는데, 하물며 물리적 공간 보다 더 크고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우주적 시간을 그나마 인간의 시간 계산으로 어림잡는 역사로 바라보니 얼마나 천천히, 느리게 굴러가나 하는 생각에, 우리는 알 수 없는 영겁의 세계 속의 한 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속의 인간의 온갖 피조물의 죽음과 아픔과 고통이 덫 없이 묻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답답하고, 상상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 속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 역사의 수레바퀴의 아픔을 이해시키거나, 설명해 줄 수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라고 그냥 생각 없이 말 던지면 안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늘 그 날에는 아무 것도 묻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 그 때가 되면 그렇게 궁굼해서 이리저리 물어보며 헤매된 그 수 많은 의문들이 답으로 돌아 올 것입니다. 질문의 시대가 가고 응답의 시대가 옵니다. 반드시 옵니다.  가장 궁굼한 질문 중에 하나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왜 이렇게 악이 승하냐 라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신정통치에대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세상이 어두움과 빛, 거짓과 진실, 거짓 신앙과 참 신앙이 마지막 때, 주님이 오셔서 심판하시며, 하나님의 선한 뜻을 완성하실 때 까지는 이렇게 혼돈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8장 마지막 절인 20절에 보면 ‘내가 세상 끝 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때가 오면 더 이상 질문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전 까지 주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우리와 늘 함께하십니다. 성령은 지혜의 영이요, 거룩의 영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며, 우리를 지키며, 보호하며, 인도하시며, 우리의 능력이십니다.

   하여간 아무 것도 묻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은 17절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궁굼해 하면서 시작이 된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보지 못할 것이고, 그러나 곧 조금 있으면 보게 될 것이라는 말에 제자들은 어리둥절합니다. 19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물어보고 싶어하는 것을 아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애통하며 고통할 때, 세상이 기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제 대 역전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 그 때에 근심이 기쁨으로 변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의 신앙, 하나님에대한 지식, 진리, 자유, 평화 이 모든 보이는 일들이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 세상을 바라봅니다. 온유하다는 말을 찬찬히 음미해 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선한 뜻을, 그리고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기다림, 그러니까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시간에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직무유기하라는,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맡기어진 십자가, 나의 짐을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을 따르는데, 온유합니다. 주님도 그렇게 주님의 짐을 주님의 멍에로 메고 가셨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당신의 짐을 지시면서 지난 주에 마11:29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우라’고 하시면서 그래야 마음에 쉼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열심히 나에게 주어진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다 보면, 볼쌍 사나운 일, 말도 안되는 일, 기가 막히는 일을 당하는데, 그래서 마음이 거칠어지고 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주님처럼 짐을 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쉴 수가 있습니다. 주님처럼 일하지 않으면 금방 자기 의로움에 붙들려,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주변의 것들이 눈에 보이고, 또 느끼고, 생각하며, 의식하는 것들을 바라보고 비교하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이 쉬지 못합니다. 그러니 주님에게 꼭 배워야 합니다. 온유함과 겸손함입니다.

   온유라고 했는데, 그리고 또 20절에서 근심이 기쁨으로 변한다고 했는데, 그 기쁨은 희망입니다. 온유는 마음에 품는 기다림이라고 한다면, 희망은 기쁨의 기다림입니다. 내 삶의 언어와 행동이 마치 꽃 봉우리가 피어오르는 것 같은 찬란한 믿음입니다. 온유도, 희망도 다 믿음입니다. 그러나 보이는 세상을 통해서는 조금도 얻을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용기입니다. 그렇게 희망하며 기뻐하고, 온유하여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믿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믿음의 용기가 있어야 하나님께서 택하여 부르신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상속을 기업으로 물려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분이 바로 갈렙입니다. 갈렙은 다른 지파들이 자신의 유산을 다 차지하고 나서야 마지막에 자기 유산을 위해 싸우겠다고 85세의 노후의 몸을 이끌고, 젊은 장수들과 같은 대열에 끼어 전쟁터로 나갑니다. 그 오랜 기간 동안 믿음을 잃지 않고 기다려 마지막 순간에 그 용기를 드러냅니다. 믿음은 용기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내가 승리하였다는 말은 지금 세상을 바라보며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래서 거칠고 치열한 삶의 자리에서 그리고 얻은 것이 하나도 없는 정말 좌절과 절망의 시간에 이 말 함부로 했다가는 돌 맞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꼭 겉으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우리 성도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것은 ‘내가 세상을 이겼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이 세상을 이겼다고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악이 성하고, 바로 그 악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밖은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주권, 생명의 주권이 빌라도에게 있지 않다고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시면서 십자가를 받으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악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숨어있던 악이 노출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악이 자기 꽤에 걸려 넘어간 것입니다. 예수 만 십자가에 매달면 모든 세상이 자기 손 안에 들어올 줄 알았는데, 이미 주님은 세상을, 악을 이겼다고 선언합니다.

   예수님은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게 홀로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갈 때, 제
자들이 자신을 배반할 것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가장 제자들을 필요로 할
때, 그들이 등을 돌릴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
랑하고 있으며, 더 놀라운 것은 여전히 제자들을 믿고 있습니다. 32절에서
예수님은 모두 나를 버리고 흩어질 것이라 합니다. 왜 그러냐하면 우리가 연
약하고, 힘 없음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
로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미리 말한 것은 나중에 그들이 예수님을
버렸다는 것을 알고 절망에 빠졌을 때, 이미 너희들의 배반이 나를 충격에
빠뜨리지 않을 것 이라는 것, 그리고 이런 일이 너희들에게서 일어나더라도
나의 사랑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미리 말해줌으로, 제자들로 하여금
말씀하신대로 제자들이 예수님을 다 버리고 떠났을 때 큰 실의와 절망에 빠
지지 않게 하려는 예수님의 배려였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승리를 선언하십니다. 제자들 마져도 예수님을 떠나
고, 홀로 계시지만 예수님은 홀로 계시지 않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님의 그 십자가의 연민, 고통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세상은 여전히 악이 성하며, 어두움이 활게를 치지만 주님이 계시며, 주님은 열심을 다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람들을 부르시고 택하시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어느 상대를 제압하거나, 자기 영역에서 상대를 내 쫓거나 하는 승리가 아닙니다. 어떤 승리인가 하면 당장에 정의가 실현되고, 악한자가 한 순간에 다 멸하고 하는 승리가 아닙니다. 그러한 승리에 살아남을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의를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정의를,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세우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믿음. 그러니까 하나님과 하나됨.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과 하나되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입니다. 하나됨으로부터 오는 신뢰입니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고, 불법과 편법과 거짓과 거짓 신앙이 아픔과 고통이 넘쳐나지만,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회복시키실 주님께서 마지막 까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변화와 이 지구 피조물의 진화(특히 인간의 인격적 성장을 보면 정말 답답합니다. 나를 보아도 답답합니다. 과연 우리는 영적인 진화 이 전에, 언제 온 지구의 사람들이 인격적인 성숙함을 나눌 까?)는 마치 달팽이가 기어가는 것 보다 더 느리게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유한하게 창조히셨습니다. 더욱이나 유한한 인간의 시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볼려구 한다면 그것은 욕심이 아닌가 십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유로 말하였고, 그래서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러나 오늘 말씀처럼 이제는 물어보지 않을 때가 온 것입니다. 30 말씀에 제자들이 ‘물어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환히 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기는 무엇을 알았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밖히실 때 예수님을 다 떠났는데요. 그래도 예수님은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라고 제자들을 인정해 주십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부모 앞에서 다 알아 할 때 ‘그래 우리 아들 정말 다 아네’ 하는 것 과 같습니다. 우리의 고백을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33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하기 위한 것이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평화를 선물로 주십니다. 평화하지 않으면 이 역사의 전환, 변화, 새하늘, 새 땅을 향한 우리의 답답함을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가만히 있어 직무유기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어두움 속에서도 열심히 주님처럼 씨를 뿌리며, 주님의 짐을 주님의 멍에를 목에 걸고 주님과 함께 겨리소 멍에를 왼쪽에는 주님이이 나는 오른 쪽에서 지고 가는데, 주님과 두런 두런 이야기하면서 일을 하다 보면 기쁨이 솟아납니다. 이렇게 나아가면 세상으로부터 밀려오는 그 환난, 고통, 시험을 이길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승리는 어떤 외적 싸움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고 아버지를 믿으며 기꺼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 아버지가 하나님의 선한 뜻을 세상에 드러내실 길을 열으신 것입니다. 보통은 자신이 자신의 뜻을 세워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하는데,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치욕적인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의 완전한 일체, 신뢰입니다. 그것이 승리인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 속에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일하시며, 그리고 승리하실 것이라는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신뢰를 다시 한 번 고백하는 것이 바로 성도의 승리입니다. 그래서 요일5:4는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더 세상을 이긴다고 하면서 그 이김이 바로 믿음이라고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누구인가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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