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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포도나무(부활절제4주, 2015년4월26일)

하늘기차 | 2015.04.27 16:57 | 조회 3202



                                                            나는 참 포도나무
부활절제4주                                                                                                                 요15:1-8

   한신대 명예교수인 김경재 교수님이 어느 신문 칼럼에서 한국교회 선교 130년의 역사를 나무가 자라는 모습으로 4단계로 나누어 비유하였습니다. 첫 단계를 싹이 나서 땅에 뿌리를 내린 시기라고 합니다(1884~1920년). 1919년 3·1 독립만세 사건의 한 축을 감당하면서 민족과 숨결을 함께하던 시기요, 1세대 선교사들이 교회를 세워, 한글 성경을 보급하며, 글을 깨치고, 한문 장벽에 막혀있던 영적, 지적 갈증을 풀어주었으며, 엘리자베스 셰핑과 같은 선교사들이 결핵환자들과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아주며, 복음을 전파했던 불꽃 같은 자기 희생적 사랑의 시기였는데, 조상제 폐지라는 문화적 충격을 맘속에 품은 체 야소교를 환영하고 받아들였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둘째 단계는 시련성장기(1920~1960년)인데, 간신히 착근한 어린 묘목이 병충해와 가뭄과 들짐승과 전쟁 포탄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듯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시기였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안창호, 조만식, 이승훈, 김약연, 이상재, 김마리아 등 선각자들이 민족교육에 혼신의 힘을 쏟았으며, 그러나 헌신적인 1세대 선교사들과 달리, 이 후의 선교사들은 한국교회의 후견인 노릇을 하며, 교파 분열의 씨앗을 뿌렸다고 평가합니다. 6.25전쟁 을 통해 교조적 공산주의 집단의 박해를 받으며 철저한 반공집단이 되는 ‘정신적 외상’을 입었고 맹목적 친미주의 기독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제1공화국 시대는 마치 기독교 국가나 된 듯이 착각했고, 4·19 학생혁명과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날 때도 깊은 역사의 잠에 빠져 시대 징조를 읽어낼 능력이 없었지만 <사상계>를 통한 함석헌, 등 몇명 들사람들의 외로운 외침은 교회 울타리 밖에서 메아리쳤다고 합니다..

   셋째 단계는 분지개화기(1960~2000년)로서, 제법 자란 과수나무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듯이 한국 기독교는 보수교단과 진보교단이라는 두 개의 가지로 분지해 뻗어나가, 한 나무에서 각기 다른 색과 맛을 열매를 맺었으며, 진보적인 ‘기독교교회협의회’(NCC)는 민주화에 혼신의 힘을 쏟으며 군부권력의 폭력에 저항했는데, 1970~80년대 통계자료를 보면 옥살이한 성직자와 교수와 문인, 제적당한 학생, 정보부에 끌려가 죽거나 고문당한 사람, 노동·농민운동가 등 고난당한 자 과반수가 기독교계 사람들이었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 보수적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소속 교단들은 교회의 양적 성장에 힘을 쏟았고, 산업화 과정의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소시민들에게 심령 위안처 ‘노아방주’를 제공했고, ‘성공과 번영’의 메시지로 선민의식을 고취하였으며, 덩치가 커진 ‘한기총’은 정치 보수세력의 든든한 지지집단이 되어, 어떤 경우 극우적 편향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넷째 단계는 전지응축기(2000~2015년)로서, 지금 진행중인데, 교회가 자정능력을 상실하여 세상 법정에 서는 등, 여러 불미스러운 구설에 오르내리게 되었으며, 일부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중세기 신성로마제국의 지역 영주들처럼 권력욕과 명예욕에 도취되어 교회의 공공성과 신성성을 잃어버린 바, 신자유주위가 전 세계를 무릎꿇리는 가치 혼란 시기에 무엇보다도 참 신앙, 참 사람다운 삶이 무엇인지, ‘세속 한복판에서 초월 경험’이 무엇인지, 찰나를 사는 티끌 같은 인간 생명이 왜 존엄하고, 사랑은 왜 죽음보다 강한지 삶의 언어로 새롭게 들려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공생과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공유하여 더불어 사람답게 살고 싶어하는 착한 마음을 지녔지만, 무력감에 주눅 든 수많은 우리 사회의 고독한 개인들을 격려하고 연대하도록 돕는 일이야말로 교회가 마땅히 해야할 일이라고 일갈을 합니다.

    한국교회라는 나무가 어떻게 자라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칼럼이어서 소개를 하였습니다. 지금은 열매를 맺어 나누어 줄 때인데, 열매가 없어 나눌 것이 없다면, 나무를 심은 농부가 얼마나 실망스럽겠습니까? 이 한국교회라는 포도나무는 세계교회라는 포도나무의 한 줄기이며, 고기교회는 그 한 가지이고, 우리 성도는 그 곁의 작은 가지입니다.

   얼마 전에 몇 교회와 함께 연합으로 제직수련회를 열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강사로 오셨던 유경재 목사님께서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가장 기초가 되는 세포가 자기 혼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수 억, 수 조의 세포들이 몸으로서 다른 세포와 함께 한 존재를 이루는 것입니다. 나 혼자 세포 하나가 자기 잘났다고 혼자 뚝 떨어져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세포는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눈은 눈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귀는 그저 듣는 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가 한 가지 행동을 하려할 때 각 지체가 총동원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꼬르록 소리가 납니다. 코에서 맛있는 향기가 나고, 입에 군 침이 돕니다. 발이 식당으로 들어가 눈이 메뉴판을 보고, 주인에게 손으로 메뉴판을 가리키며 음식을 주문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뇌가 조율을 합니다. 이 전체가 하나입니다. 여기서 어느 세포가 하나 특별하게 튀면 그게 바로 암인 것입니다. 그러면 몸은 죽습니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특별히 제 각각으로 개별적으로 자기 홀로 따로 각기 유아독존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시80은 주님께서 포도나무 한 그루를 이집트에서 뽑아 오셔서 심으셨는데, 산들이 그 포도나무 그늘에 덮이고, 그 가지는 지중해에 뻗어있고, 새 순은 유프라테스 강 에 까지 뻗어있다고 합니다. 시, 공을 초월하여 우주와 역사 속에 뻗어있는 하나님의 포도나무입니다. 우리 고기 교회와 성도님들도 그 포도나무의 한 가지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나는 참 포도나무’라고 합니다. 거짓 포도나무가 있나요?
그렇습니다. 거짓 목자가 있고, 거짓 교회가 있습니다. 거짓 성도가 있습니다. 참기름, 참나무라고 합니다. 교회 뒷 쪽에 바람꽃이 잘 피어났습니다. 바람꽃 이름이 다양합니다. 나도 바람꽃, 너도 바람 꽃, 변산바람꽃이라 합니다. 그런데 참과 거짓은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요? 단순 명료합니다. 열매입니다. 그런데 다른 작물도 그렇지만 포도나무는 다른 과실나무와 달리, 그 줄기가 넝쿨이어서, 지주를 잘 받쳐주고, 가지를 잘 쳐주어 관리를 해 주지 않으면 그냥 야생의 넝쿨로 돌아가 버립니다. 과실수는 열매를 맺지 못하면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과실수는 좀 더 특별한 관리를 해 주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특별한 관리를 받았지만, 좋은 포도열매를 맺은 것이 아니라,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그래서 시80:12에 보면 방치되어 멧돼지들이 숲에서 나와 마구 먹어치우고, 들짐승들이 먹어치운다고 하면서, 만군의 하나님께서 이 포도나무를 보살펴 달라고 하면서 친히 하나님께서 심으신 이 포도나무 줄기와 몸소 키운 이 햇가지를 보살표 달라고 간곡히 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포도나무는 농부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아야 합니다.

   저희집은 신봉동 아파트단지 입니다. 단지 제일 위 쪽 산자락에 위치해 있어 조용하구 좋습니다. 5, 6라인에 위치해 있는데, 지난 금요일 저희 아파트 라인의 현관 앞에 작은 글귀와 바구니 하나가 놓여있었는데, 그 글의 내용은
        “얼마 되지 않지만, 가지고 갈 만큼 편하게 가지고 가세요, 그리고
         맛있게 드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하는 문구였는데 그 글 아래에 무엇이 놓여 있었는가 하면, ㅎ ㅎ 머위대가 여러 비닐 봉지에 깨끗하게 담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집사람이 한 봉 가지고 왔는데, 너무 마음이 배불러서 다시 내려가서 짧은 글 하나 남겨 놓았다고 합니다.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내요, 고맙습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물론 몇 호의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구요. 작은 일이었지만 5, 6라인의 주민들은 행복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 한 가지 일 때문에, 무언가 5, 6 라인이 끈끈하게 하나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평화와 사랑과 나눔의 열매를 값없이 맛 있게 먹었습니다.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는데, 같은 라인 1층의 아주머니가 화단을 정말 이쁘게 가꿉니다. 구근류의 꽃들이 벌써 피어나고, 앵초도 피어나고, 오고 가며 볼 때 마다 저의 마음을 봄 기운으로 가득 체워 봄의 기운을 받고 있습니다. 나도 무언가 나누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이 마음은 무언가 댓가를 얻고자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스스로 좋고, 기뻐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매입니다. 그 분의 마음에서 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조건 없이 ‘나는’ 것입니다. 열매는 가지에서 ‘나는’ 것입니다.

   대추나무에서 대추가 열리고, 포도나무에서 포도가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럼 무슨 열매를 맺을까요? 어떻게 열리나요? 포도가 나무 줄기에 붙어있으면 ‘그냥..’ 나는 것입니다. 열매가 스스로 나려고 나는 것이 아니라 줄기에 붙어 있으면, 가지에 꽃이 피고, 그리고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 줄기에 붙어있는 가지인가요? 예수 나무입니다. 삯군 나무에 붙어있으면 삯군의 열매가 맺힐 것이고, 바리새인 같은 종교쟁이에게 붙으면 쉰네나는 종교 냄새가 날 것이고, 그러나 예수 나무에 붙어있으면 예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맺히는 것입니다. 근데 한 두 개 열리면 누구 코에 붙이겠습니까? 열매는 자고로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풍성하게 맺혀야 입이 쩍 하고 벌어지며 우리에게 함박 웃음을 주는 것입니다. 작년 교회 포도나무에 포도 송이가 한 200 송이 열렸나요? 이렇게 뻥도 칠 정도로 신바람 ‘나는’ 것입니다. 작년에 참 많이 열렸습니다. 가지도 큰 방 처마 까지 뻗어가며 그 기운을 내는데, 정말 많이 열렸습니다.

   오늘 말씀에 가지치기를 해 줍니다. 무엇이라 했습니까? 말씀입니다. 말씀은 우리들에게 들어 와서 주인노릇 하는 삯군을 다 몰아냅니다. 온갖 잡다한 주인 행세하는 거짓 정보들, 자기 자신의 신념이나, 경험, 또는 의무 등을 다 물리칩니다. 히4:12절 말씀입니다.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 날 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줄기와 온전히 이어지게 합니다. 예수님도 말씀을 따라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아들 예수, 인류 구원의 생명의 열매를 맺으신 겁니다.

   근데 오늘 말씀 3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그 말로 말미암아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씀인가요? 이미 깨끗하다고 합니다. 내가 깨끗해지려고 막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깨끗하다고 선언 하십니다. 주님은 이미 너희가 복이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이미 주님은 내가 빛이라고 합니다. 내가 소금이라고 합니다. 생명의 열매는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함께 나눌 만한 풍성한 열매가 없을까요? 그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4절 말씀에 무어라고 하시나요?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고 합니다. 아! 그렇구나 이미 주님은 깨끗하다고 선언하시는데, 우리가 아직도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그저 눈꼽 만큼 열매 맺는 것은 그 놀라운 하나님의 복된 선언을 지켜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그럴까요? 그래서 주님은 무어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면 ‘머물러 있어라’고 합니다. 머물러 있으라는 말이 포도나무 비유에서 몇 번이 나오는지 아시는지요? 무려 11번이나 나옵니다. 그만큼 머무는 것이 포도나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어디에 머물러 있으라고 합니까? ‘내 안에’, 주님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렇게 머물러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어떻게 머물러 있나요? 이미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깨끗해 졌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화답을 할 차례입니다. 어떻게 하는가 하면 기도에 머물러 있어야합니다. 바뻐서 안되나요?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고,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요?  바쁜가운데서, 불편한 가운데서도 시간을 내는 것입니다. 그래야 열매가 나는 것입니다. 내야 납니다.

   지 지난 주에  벧전 1:3-9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가 유산을 물려 받았다고 했습니다. 근데 무엇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상속의 은혜가 무엇인지, 얼마나 큰지 알려면 기도해야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미 주님이 우리가 깨끗하다고 선언하셨는데, 그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은 머물러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머물러 있어야합니다. 최소한 매 달 첫 번째 주일저녁에 교회를 위해, 그리고 교회가 기도하는 그 제목을 놓고 중보의 기도를 드리자 하는데, 정말 집사님들 조차도 한 명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벌써 10여년이 지났는데, 정말 모질게 따르지 않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에 머물러야 합니다. 성경에대해 아는 척 하지말고, 기도 하는척 하지 말고 교회 신앙을 통해 어린아이처럼 하나 하나씩 배우고 익혀야합니다. 기도는 누가 대신 해 줄 수 없습니다. 배우는데는 왕도가 없습니다. 저는 그동안 목회자로 있으면서 어떤 특별기도나, 특별한 장소에서 보다는 늘 교회에서 기도하였습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어 지금 까지 온 것입니다. 그 모두가 은혜였습니다. 늘 새롭게 하시고, 매 번 새로운 의미를 주셨고, 그래서 감사하고, 기쁨이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제자가 되고, 열매를 맺어 하나님이 그 열매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기도는 말씀을 되세김질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되세김하면서 스스로에게 체화되어 말씀이 세상에서 하나 씩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더 넓게, 높게, 깊이 알며, 기도를 더 넓게, 높게, 깊게 드려가야 합니다. 주님은 16절에서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특히 기도하는 고기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혀 오고 가는 세대에 함께 나누면 감사하겠습니다.

   넓고, 높게, 깊게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주님 안에 성령의 내적 감동을 통해 말씀과 함께 머물러 있으면서 농부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주와 역사 속에 뻗어있는 포도나무를 어떻게 관리하시나 보시기 바랍니다. 단세포처럼 자기, 그리고 자기 가족 안에, 그리고 자기 형편에 갖혀 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눅8:20에서 선생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서서,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한다고 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 나의 어머니요, 나의 형
         제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에게 가족의 외연은 혈연 중심에서 하나님 나라로 열려있습니다. 농부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주와 역사 속에 뻗어있는 이 포도나무에 어떻게 거름을 주고, 햇볕을 보내주시고, 바람과 비를 보내어 키우셔서 열매 맺게 하시는지 기도에 머물러 보시기 바랍니다. 농부이신 아버지께서 어떻게 포도원을 관리하실까요? 저 쪽 담장 아래 쪽의 포도나무가 시들시들 하면 농부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 가운데 포도나무가 이파리가 노래지기 시작하면 어떻게 할까요? 먼저 돌보아주지 않겠습니까? 막 아퍼서, 힘들어서, 눈물을 흘릴 힘 조차 없는 사람들을 먼저 찿아가 함께 하겠지요. 우리 주님, 십자가에 달리시어 죽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도 그렇게 아버지 안에 머물겠지요. 교우여러분! 주님 안에, 말씀 안에, 교회 안에, 사랑 안에, 기도 안에 머물며 농부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볼 수 있는 복된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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