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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한 목자(부활절제3주, 2015년4월19일)

하늘기차 | 2015.04.19 16:24 | 조회 2081



                                                                 나는 선한 목자
부활절제3주                                                                                      요10:11-16, 27-30; 벧전2:21-25

   예수님은 ‘당신은 누구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았습니다. 스스로도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묻기도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이 누구시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요한 복음 본문의 배경의 때는 성전 봉헌절 때 입니다. 예수님이 성전 경내 솔로몬 기둥들이 있는 곳을 걷고 있었는데, 그 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묻습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의 마음을 졸이게 하시렵니까? 당신이 그리
         스도이면 그렇다고 분명하게 말하여 주십시오.” 그러자 주님이 대답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가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그 일들이 곧 나를 증언해 준다.”고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식으로 예수님의 정체성에대해 질문할 때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인가요? 예수 그리스도, 구세주, 구원자, 인자,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런데 그렇게 예수님에게 ‘예수님,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고 물을 때 그 사람들이 마음 속에 그리고 있는 메시아는 어떤 메시아인가요?

   앞에서 질문하던 때의 시기를 성전 봉헌을 기념하는 때라 했습니다. 이 기념축제는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인 셀루시드 왕조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4세에 의하여 더럽혀진 성전을 재 탈환하여 하나님께 성전 봉헌을 축하하는 명절입니다. 이 절기가 되면 8일 동안 집집 마다 촛불을 매 일 하나씩 밝혀 8일에는 가운데 큰 촛불을 중심으로 모두 아홉 개의 촛불을 밝혀 성전 회복을 기념합니다. 당시 안티오쿠스4세는 반기를 든 예루살렘을 침략하여 성전에 제우스 상을 세우고, 절하게 하며, 돼지를 잡아 피를 뿌리며 성전을 모독합니다. 그리고 친헬라파 유대인의 한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워 성전을 관리하게 합니다. 전국에 걸쳐 제우스 상 앞에 무릎을 꿇게하는 왕명이 떨어졌는데, 순수 혈통의 제사장 가문의 한 사람인 하스몬가의 맛다디아가 이에 저항하면서, 그 아들들, 특히 셋째 아들인 유다 마카베오가 용맹을 떨쳐, 소위 마카비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 유다 마카비의 승리를 기념하는 절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에게 ‘네가 누구냐?’라고 물었던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이미 예수가 마카비 같은 메시야, 영웅이냐 라고 마음에 정하고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러한 질문에 ‘네 말이 맞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마카비나, 다윗같은 영웅적인 메시야가 아닙니다. 이미 마음으로 답을 갖고 묻는 질문에 답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그리스도일까요? 오히려 예수님은 그러한 메시야에 대해 안티메시야였습니다. 군사적 힘, 세상의 권세, 세상에 힘을 바탕으로 하는 힘을 마음대로 구사하는 그러한 메시야는 아닙니다. 그러한 힘은 역사적으로 일시적이거나, 한 집단, 나라에게 지배와 전제의 힘은 줄 수 있지만 우리 모두에게 평화와 자유를 줄 수 없습니다. 그러한 영웅, 용사는 일시적으로는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메시야를 꿈꾸는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비주체적으로, 그리고 개체적인 모습으로 초라한 자아, 여전히 껍데기 만 남은 자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시켜 버립니다.

   그런데 주님은 유대, 이스라엘, 버려진 가나안 땅을 두루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믿음을 고취시키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이 말은 구원의 주체가 타자가 아니라 내가 될 수 있다는, 참 자아의 모습만이 참 구원을 맛 볼 수 있다는 주님의 행보였습니다.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그 초청에 답하여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하였습니다. 오히려 병들고, 가난하고, 세리나 창녀 같은 소외된 사람들은 그 아픔과 고통 속에서 자신을 회복하고자 주님께 나아올 때, 믿음을 다시 찿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종교의 껍데기에 쌓여 보지 못하던 자신의 모습을 주님을 만나, 주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 속에서 믿음은 다시 살아났고, 참 메시야, 참 구원자가 누구인지를 봅니다.

   반면 많은 사람들은 믿지 못하였습니다. 특히 현실문제에 붙들린 사람들에대하여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수 없이 믿음에대해 말씀하셨지만, 그 와중에도 주님은 믿음 없음을 거듭 깨우쳤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와 들의 백합에대해 이야기하면서 염려와 걱정에대해 말씀하면서, 그것은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라고 하며,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하며 일 갈 하십니다. 물위를 걸으시는 주님을 따라하다가 풍랑을 보고 물에 빠져드는 베드로를 손으로 붙잡아 올리시며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아!’ 오천명이 먹은 사건 후에, 사람들이 떡에만 필이 꽂혀있는 제자들에게도 믿음이 적은 사람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과부와 재판관의 이야기를 통해 과부와 같이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해야한다고 가르치시면서, 그러나 내가 다시 올 때 세상 속에서 믿음을 찿아 볼 수 있겠는가 하며 안타까워하십니다. 어떤분은 믿음을 찿아 볼 수 있겠는가 하신 그 말씀이 과부와 같은 믿음을 찿아 볼 수 있겠는가 라고 잘 못 해석합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것이 단순히 내가 간절히 구한 것을 응답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제 믿음의 발걸음을 내디딘 것에 불과한데, 사람들은 그것을 믿음이라 오해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선한 목자에대한 말씀인데, 8, 9, 10장에서 빛, 생명, 목자에대한 주제가 전체적으로 연결되어 봉헌절에 성전에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그 정점을 이룹니다. 8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대해 말씀하는 중에,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면서, 요8:28에는 ‘내가 곧 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하던 히브리 노예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나’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너희들은 노예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나처럼, 너희들도 ‘나는 나'로서 살라는 것입니다. 자존적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요8:30은 ‘내가 곧 나’라는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근데 그 ‘나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면 28절 말씀에서 ‘내가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아니하고 아버지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빛이다, 목자다, 부활이다, 생명이다, 진리이다 라고 자신의 정체성에대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지만, 이것은 상징이지요, 그 상징들의 바탕은 내가 내 아버지의 말씀 만을 따르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따를 때 빛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부활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씀 만을 따르는 분이 누구인가 하면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인가하면 ‘나는 나'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는 나’라고 하니 사람들이 다 놀랩니다. 이상하게 여깁니다. ‘나는 나’가 빛이고, 생명인데,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두려운 것입니다. ‘나’의 참 모습을 그동안 보지 못해서, 특히 하나님을 아주 잘 믿는다는 사람들, 귀신도 쫓아내고, 십의 일도 잘하고, 금식기도와 말씀을 깊이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 ‘나는 나'이신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사람들과 논쟁하는 중에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요8:44에서’마귀의 자식들‘이라고 하였습니다. 8장59절에서는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까지 합니다. 이게 내 모습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나는 나’로 살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하십니다. 8:31, 32에서 너희가 내 말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는 내 제자가 될 것이며, 그리고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벧2:21에 보면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가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려고 본을 남겨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본이 무엇인가요? ‘나는 나’로 살아가는 나입니다. 여기에 무슨 종교적인 것들 덫 씌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거짓말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렇게 덫 씌우려하는 사람들에게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냥 ‘나는 나’ 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보여주신 것처럼, 그리고 예수님께서 스스로에대해 ‘나는 나’라고 한 것처럼, 그리고 나를 본받으라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 나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베드로서 본문 말씀 24절에서 우리 죄를 자기의 몸에 몸소 지시고서, 나무에 달리셨는데,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죄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죄에 죽고, 의에 살았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는데, 예수를 구주로 믿으며 죄 용서를 받아 '참된 나‘로 인정을 받았는데, 또 삼박자 축복이니 하면서 다시 껍질을 뒤집어 쓰면 안됩니다. 이제 ‘나는 나’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십 자가에 달리셔 십자가의 좌, 우, 아래, 위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내셨습니다.

   9장에는 나면서부터 눈 먼 사람의 눈을 고쳐주셨는데,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죄인이라고 하면서 죄인이 어떻게 병을 고칠 수 있느냐고 합니다. 부모들도 출교당할 것이 겁이나 눈을 뜬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합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이 눈을 뜬 청년을 출교시킵니다. 눈 뜬 사람을 내 쫓았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네가 인자를 믿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내가 믿습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누구를 믿는다구요? 인자, 즉 사람, 즉 ‘나는 나’인 사람을 믿는 것입니다. 근데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놓아주면서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나는 나’되도록 주님께서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간음하다 붙들린 여자에게, 날 때부터 시력을 잃었던 사람에게 오셔서 그 마음을 환히 밝혀 주셨습니다.
  
   빛에대한 이야기는 빛을 밝히는 봉헌절에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말씀하시며 마감을 합니다. 이 성전은 이제 무너질 것이고, 새로운 성전 , 내 안의 성전, 빛이신 주님이 밝히시는 마음의 성전, 내 안에 참 나를 드러내어 다른 참 나와 함께 참 나로, 빛으로 살아가는 성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 빛이신 주님께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나는 목자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목자이신가요? 이 목자 역시 상징이요, 은유입니다. 가짜 목자는 양을 잡아먹고, 양을 도둑질하려고, 자신의 권위와 명예를 세우려고 지도자연합니다. 그러나 참 목자는 어떤 목자일까요? 영웅적인, 지도자로서의 메시야가 아니라, ‘나는 나’라는 것을 환히 밝히시는 분. 우리로 믿음을 깨우쳐 죄 사함의 은총을 따라 예수님을 본 받아 ‘나는 나’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 인도하시는 분,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로 인도하여 다시는 거짓된 나, 아니면 너, 아니면 제3자로 존재감 없는 삶, 투명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에서 우리를 돌이켜 ‘나는 나’로 살아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이 그렇게 살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인도하지만 사람들은 스스로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가장 벗어버리기 힘든 것이 종교의 옷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만들어 입은 옷이라서 좀처럼 벗지 못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그렇습니다. 자기의 삶의 바탕이니, 그것을 놓으면 파산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틀에서 벗어난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 그 가짜, 율법에서, 헬라철학에 익숙한 세상 학문에서, 로마의 시민에서 돌아섰습니다. 바로 빛이신 주님께서 빛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빛이 하도 밝아 바울은 눈이 멀었습니다.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바울은 그동안의 모든 것, 바울의 전 존재의 근원, 그동안 자신이 쌓은 모든 것이 ‘나는 나'를 덮어 씌웠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래서 자신이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으나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그동안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의를 얻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움이, 주님의 의로움이요, 바울의 의로움이요, 나의 의로움입니다. ’나는 나‘입니다.

    이 참된 나는 다른 나가 고통받고, 힘들어하고, 애통해 할 때, 함께하려 하고 공감하려 합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갈릴리에서 활동하셨고, 세례 요한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광야로 나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와 역사의 주인이시며, 주권자이십니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소아시아로 향하기 위해 두로아에 이르렀을 때, 밤에 환상이 나타나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우리를 도와달라는 간청에 유럽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여기서 갈린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그렇게 우리를 향해 살려달라고 손을 내미는 손 길들이 있을 때, ‘나는 나'인 사람은 당연히 그 사람의 손을 잡아줍니다. 주님이 이 시대에 살아계시면 누구에게 찿아가 누구의 손을 붙잡을지는 자명합니다. 자꾸 정치다, 종교다, 예술이다 하며 거짓말하면 안됩니다. 용기없다, 미안하다. . . 그것도 거짓으로 미안하다 하면 안됩니다. ’나느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나는 나’의 원형이시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의 모든 피조물과 한 분 창조주 하나님과 한 분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성령님이 모두 각 자 하나이며, 또 그 하나가 온 우주의 피조물과 시간 속에서 하나로 띠를 띠어 탁월한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참된 나로 존재하며, 우리들을 참된 나로 인도하기 위해 믿음의 불모, 거짓 종교에 모든 삶의 가치가 무너진 때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면서 믿음을 회복시켜 자존감을 세우셨습니다. 근데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가진 것을 지켜주고 유지시키며, 확대재생산하는 종교구조에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나는 나'로서의 참 믿음의 모습이 낯 설었던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믿다가는 자신이 쌓아온 모든 기득권을 다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참 나로 인도하는 목자다’. 이 참 나로 인도하는 목자의 목자됨이 어디에 근거하는지 하시는지요? 3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이 말을 듣자 유대인들이 예수를 돌로 치려했습니다. 신을 모독했다는 것입니다. 참된 나는 아버지 하나님, 아들 예수, 거룩한 성령님이 모두 하나이며, 온 우주와 역사가 다 그 안에 함께 하나라는 것입니다. 근데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종교 안에서 만 하나입니다. 주님이 그편협한 하나됨, 자기 끼리 하나됨을 헤체시켜버린 것입니다. 오늘 이러한 편협한 종교체계가 다시 퍼져있습니다. 내 종교, 내 교회 하면서 말입니다. 이슬람이 어떻고, 천주교가 어떻고, 불교가 어떻고 하며 자기 성을 쌓읍니다. 더 나아가, 도시문명을 유지시키기위해 온세상의 자연과 그 안의 생명들을 죽음으로 내 몰며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이시며 우리도 그렇게 참 사람으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목자의 음성을 따르는자가 그 목자의 양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로 인도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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