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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종려주일, 2014년3월29일)

하늘기차 | 2015.03.29 15:10 | 조회 2309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종려주일                                                                                                                         히5:7-10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간 날은 유월절 절기가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나귀 새끼를 타고 귀우뚱 거리면서 예루살렘에 입성합니다. 바로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나, 사람들은 예수를 다윗의 나라를 회복할 왕으로 추대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사람들은 겉옷을 길에다 깔고, 종려 나무 가지를 꺽어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며 한 껏 분위기를 끌어올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환호를 마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함께 따라 온 사람들 중에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의 이러한 환호를 못 마땅하게 여겨 예수님에게 제자들을 꾸짖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오히려 예수님은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라 하며 그 환호와 열기를 받으시며 나귀를 타고 뒤뚱거리며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였습니다. 요한 복음에는 3 번 예루살렘에 입성하는데, 그러니까 첫 째, 두 번째 입성에서는 예루살렘의 당국이나, 백성들도 예수를 그렇게 주요 인물로 주목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입성할 때는 그 동안의 예수님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바로 직전의 5병2어의 기적을 통해서,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죽은 나사로의 부활로 한 껏 고묻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 번에는 유다의 왕권을 회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고, 예루살렘의 종교인들이나, 헤롯왕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 그리고 당시의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도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예의 주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행진과 달리 또 다른 행진이 반대 쪽에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로마 군대의 행렬이었습니다. 유월절 절기가 다가오면 예루살렘에서 60km 떨어져 있는 로마 총독이 거주하는 가이사랴에서 올라왔습니다. 왜냐하면 유월절 절기에 혹 일어날 수 있는 해방의 열기를 예의 주시하기 위해 예루살렘의 안토니아 요쇄에 상주하는 로마군을 지원하기 위해 로마 총독이 이끄는 로마군 본대가 올라왔습니다. 과연 로마 제국의 행진은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말을 탄 기병들, 보병들, 가옷과 투구, 휘장과 깃발, 말발굽 소리, 행렬이 쏟아내는 흙 먼지, 북소리, 번쩍임, 그리고 그 행렬을 응시하는 분노의 눈초리들 등등. . .

   로마 군대의 행렬은 로마제국의 권력을 과시하는 죽음과 폭력의 행렬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행렬은 말과 칼과 투구가 아니라, 어린 나귀를 타고 뒤뚱거리며 나아가는 갈릴리 어촌 촌놈들과 함께하는 지극히 초라한 행렬이었습니다. 이 두 행진은 일주일 후에 십자가에서 만나, 각기 자기 역할을 수행합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요, 로마제국은 세상의 나라입니다. 당시의 세상 나라의 수장인 로마 총독의 죽음의 행렬과 하나님 나라,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의 생명의 행렬이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십자가에서 만난 것입니다. 죽음인 로마의 폭력이 생명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밖은 것입니다. 죽음이 죽음의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이요, 평화이신 예수님은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다가오는 죽음을 향하여 거리낌이 없이 나아가, 그 죽음을 받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5:54에서 죽음을 삼켰다고 합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내었고, 또한 그 십자가를 통해 십자가가 아닌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하는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셨고, 이 세상을 두려움과 불안으로 덮으려 하는 죽음의 힘이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언젠가 폐차장에서 자동차를 폐차하는 동영상을 보았는데, 자동차를 부수는 기계가 자동차를 집어삼키는 장면은 정말 두려웠습니다. 굉음과 함께 승용차 한 대를 다 집어 삼키는데, 차가 뒤집혔다가, 솟구쳤다가, 눕혀졌다가, 그래도 안되니까, 큰 기중기로 차를 다시 잡아 기계축으로 밀어넣으면서 차가 파쇄되는 광경 통해 저는 권력, 폭력의 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폭력과 하나님에게 도전하는 힘은 죽이는 힘은 있지만 생명을 살리는 힘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 십자가를 통해 죄사함의 영원한 생명의 은혜, 생명을 살리는 은혜를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의 행진을  환영하며 호산나를 외치는 환호를 예수님은 유대의 왕으로 받으신 것이 아니라, 당시에 제자들을 포함해 사람들은 몰랐지만 평화의 왕으로 받으신 것입니다.

   세월호 침몰 사건 1주년에대한 뉴스를 들으면서 얼핏 스쳐 지나간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람이라는 종이 다른 생물과 다른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박쥐나, 돌고래는 초음파를 통해 서로가 소통한다구 합니다. 고래나 코끼리는 큰 몸을 가지고 있고, 잘 달리는 말, 힘이 좋은 소, , , 다양한 특징들은 갖고 있는데, 사람의 특징은 무얼까? 하다가, 그래 마음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힘들고, 마음이 기쁘고, 마음이 즐겁고, 마음 상태에 따라 사람들의 삶이 좌우됩니다. 인간에게 생각과 논리라는 지식체계, 사고 체계가 있지만 무수한 수많은 상호 관계 속에서의 느낌이 마음에 새겨집니다. 마음이 슬퍼하고, 힘들고, 괴로워 하며, 아퍼하기도 하고, 기쁘고, 즐겁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에대해 말씀합니다.

   종교는 마음 공부를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마음을 특별히 공부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성령의 내적 감동을 통해 깨달으며, 연단하여, 그리스도의 분량에 까지 자라는데, 딱히 마음공부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우선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삶의 자리, 역사의 현장 속에서, 그리고 우주와 자연의 섭리 속에서 구체적으로 함께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말씀 빌2:7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을 취하’였다고 합니다. 이 취하였다는 말의 뜻은 노획물을 탈취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마음만 먹으면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이스라엘의 왕으로 대관식을 거행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종의 몸을 탈취한 것입니다. 자기를 비웠다는 구체적인 모습이 종의 모습입니다. 섬기는 자의 모습입니다. 8절에서는 자기를 낮추었다고 합니다. 낮추는데 어디 까지 낮추었는가 하면 죽기 까지 낮추었습니다. 그런데 그 죽음이 어떤 죽음이었는가 하면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여기 까지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9-11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
         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가 예수 그
         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여기 9-11절은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근데 종종 우리의 신앙 속에 종종 하나님 영역으로 넘어들어가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아직 십자가의 고난에도 접근하지 않았는데, 영광에대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순절 기간 동안에는 이 부분은 조심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는 아직 예수님의 십자가, 즉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고, 낮아져 십자가에 까지 나아가는 삶의 자리 바깥에서 진리가 무엇인지,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교회 신앙인 무엇인지 하며 기웃 거리고만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목요일 세월호1주년 기념 시민모임이 있었는데, 그 참석자 중에 지곡동 콘크리트 혼화제 연구소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 류승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연구소는 환경 영향 평가서에 8등급 산림은 훼손하면 안되는데 연구소 측 계획서에 7등급이하로 등급을 맥여서 서류를 작성했다고 해서 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라고 합니다. 근데 이 분이 명함을 하나 건네주는데, 노란 바탕에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게 뭐지요? 하고 물었더니, 그냥 밝게 웃더라구요. 나중에 알아보니 장애인들의 야학인 노들야학에 도시락 만들어주기도 하고, 최근에는 쌍룡자동차, 온갖 고통받고, 아퍼하는 곳에 달려가 그저 따뜻한 밥 한끼 대접하는 모임입니다. 이 번 4.16일 팽목항 기념행사에도 여지없이 밥차를 운영하여 그 곳으로 달려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반찬 만들기에 참여할 사람들을 구하는 것 같더라구요. 근데 ‘밥통’같이 돈 안되는 일을 합니다. ‘밥통’이라는 말이 정겹습니다. 정말 바보같이 돈은 안되는데, 마음과 마음을 이어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어찌 보면 교회가 해야할 일을 하구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기도 하였는데, 그 명암 이름 곁에 무어라고 써 있었는가 하면, ‘이일저일 열심꾼’ 류승아 라고 적혀있었습니다. 한 번 더 부끄러웠습니다. 이런일 저런일 마다 않구 ‘섬기는 자’로 있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에게서는 억지로 짜증을 내는 모습이 아니라 기꺼이 이일저일 열심을 내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 명함에 열심꾼이라고 쓴 말이 그냥 쓴 말이 아닌 것은, 5살 정도된 아들을 데리구 왔습니다. 보통 시민모임에 아이들을 잘 데리고 오지 않습니다. 특히 방해가 될까 보아 더 그렇지요. 근데 이 아이가 모임 중에 스스로 잘 놀더라구요. 그렇게 방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 정말 열심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모임이 끝 나고 뒷풀이를 하는데, 그 장소가 허름한 치킨집이었는데, 그 자리에도 아이와 함께 찿아와서 끝 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정말 ‘열심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열심을 다해 기쁘게, 기쁘고, 즐겁지 않으면 이러한 류의 일은 할 수가 었습니다. 지속적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헤른후트 로중기도서를 통해 일상에서 함께 ‘거룩한 독서’를 할 수 있는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이 묵상서의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디아코니아’, 즉 섬김입니다. 저는 고기교회의 50년의 역사를 맞이하며, 앞으로 이 후에 어떻게 교회가 정체와 방향을 잡을 것인가에 대한 것을 헤른후트 기도서 로중을 접하며 동기부여를 받았습니다. 10년 전 40주년 기념교회 표어가 ‘처음자리 그대로 주님의 은혜가 가득한 고기교회’ 였었습니다. 그대로 였던 10년 인 것 같습니다. 50년 이 후의 10년은 어떨까요? 하여간 헤른후트, 즉 ‘주님이 보호하시는 곳’이라는 공동체 운동은 폰 친젠도르프에 의해 1700년 경에 독일의 북동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당시 체코에서 종교개혁을 하다가 1415년 화형 당한 얀 후스의 후예들이 도망 나와 독일의 이 작은 마을에 스며들었을 때, 진젠도르프가 자기 땅에 받아들이면서 공동체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치열한 종교개혁의 물고가 터질 때에 이 공동체는 영적 경건을 개혁운동에 자리매김 하였습니다.

   작년에 한국에 왔던 희망의 신학의 몰트만 박사는 이미 세속화가 거세게 진행되고 있는 영국 등 다른 유럽 국가와 독일의 큰 차이는 영성의 흐름이 여전히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독일 내에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일어났던 경건주의의 흐름이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경건주의는 교회의 신앙과 신학만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섬기는 자리에 있다’는 주님의 말씀은 경건 운동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할 지를 말해줍니다. 눅22:27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 제자들 사이에 누가 높은 자리에 오를까 라는 문제로 입씨름을 하였고, 예수님이 그 사실을 알고, 세상의 권력자들이 어떻게 행사하는지 잘 안다고 하면서, 밥상에 앉은 사람과, 시중드는 사람 중에 누가 높으냐고 물으시면서, 밥상에 앉는 사람이 아니냐?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왜 너희는 섬김을 받으려 하느냐, 그것은 너희들이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라 했습니다. 마음은 자칫하면 속절없이 자기 내면으로 덧 없는 여행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들려주는 마음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나라에 머물며 지경을 넓히는 마음입니다.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첫 째는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는 마음입니다.
       둘 째는 ‘낮아져서 죽기 까지 낮추어, 십자가의 죽음’, 다른 죽음이 아니라, 반드시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십자가는 당시의, 아니 인류 보편 역사의 모순과 거짓, 욕망, 폭력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사랑이 드러난 것입니다. 폭력과 평화, 축복과 저주, 생명과 죽음, 구원과 죄를 다 짊어진, 인류 역사의 유일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마음을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열정’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요2장에서 예수님이 처음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 ‘성전 이방인의 뜰’의 장사치들을 다 내어 쫓으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시69:9를 인용하여
        “주님의 집을 생각하는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라고 하며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마음을 자기 중심적으로, 종교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십자가를 중심적으로 깊게, 넓게, 높게 세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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