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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와 엘리사벳(대림절네번째주, 2015년 12월20일)

하늘기차 | 2015.12.20 15:42 | 조회 2186


                     마리아와 엘리사벳

대림절네번째주                                                                                                     눅1:39-45

     지난 목요일에 밤토실에서 준비한 별보기가 수지고등학교 천문학동아리 천진의 도움으로 6시30분부터 2시간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날씨는 매우 추웠지만, 하늘은 그 어느 때 보다 청명하고 마침 달이 초생달이어서 별을 관찰하기 더욱 좋았는데, 3번째 대강절 밤에 동방박사들이 하늘의 별을 따라 베들레헴을 찿았던 느낌이어서 좋았습니다. 어른들 까지 포함해서 90여명이 참여한 것 같은데, 하늘이 맑아 카시오페아와 북극곰 자리 등은 눈으로 볼 수 있었고, 큰별과 작은 별이 주황색과 푸른색을 띠고 빛나는 모습, 또 별이 무리를 이룬 플레이아데스 성단은 망원경을 통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하나님이 창조한 우주의 별을 바라보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성탄을 기다리는 마음이 아닐까 십습니다. 내년에는 마굿간 점등 예배 때 별도 같이 보는 시간을 가지면 금상 첨화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주는 급속히 팽창해 가고 있습니다. 거시적, 미시적 관찰이 점점 더 그 인식의 지평을 넓혀갑니다. 우리의 세계를 지각 범위에선 뉴턴 법칙이, 소립자의 세계는 양자역학이, 빛의 속도에선 상대성 이론이, 블랙홀 안에서 일반 상대성 이론이 그리고 미시적 원자의 세계는 쿼크라는 입자로 풀어내는데, 또한 우주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은 4%밖에 없고, 나머지 23%는 암흑 물질이고, 73%는 암흑 에너지라고 합니다. 저의 시대의 꿈과 별이 지금은 우리 인식, 과학 안으로 빠르게 들어오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래도 여전히 팽창되는 우주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있다, 없다’로 구분하는 눈에 보이는 세계는 물질이 ‘있다, 없다’로 과학적 경험으로 이야기 되는 세계인데, 팽창하는 우주 밖은 없다는 것입니다. 물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주가 팽창해 가면서 있음을 확장시켜 나갑니다. 그러나 팽창하는 우주 밖에도 존재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세계 곳곳에 충만합니다. 이렇게 과학문명이 과학적 인식을 통해 진실을 빠르게 인식해 나갈 때, 신앙이 꿈 만 붙잡고 있을 수 없습니다. 그 꿈이 눈 앞에 놓이면, 또 다른 꿈이 앞에 놓여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과학 체계가 역사와 더불어 끊임없이 진보해 나갈 때, 교회는 그 진보의 틈과 사이를 사랑과 정의와 평화의 질서로 체워 나가야 합니다. 과학의 진보를 뒤 따라가는 역사는 너무나 많이 폭력으로, 특히 국가 폭력으로, 차별로, 갈등으로 이어져 왔는데, 언제까지 교회와 성도가 이기적인 모습으로 자기성 쌓고 있을 수 만은 없습니다. 종교가 그래서 필요합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며, 진보하며 일어나는 갈등과 아픔, 자기계체의 욕망 속에, 이기심의 틀 속에 아기 예수 탄생이 말해주는 하나님의 참 평화의 나라를 증언해야 합니다.

     성탄기록은 70년대 이 후에 기록된 마태와 누가에만 있습니다. 50년 경에 기록된 바울서신이나, 마가복음, 그리고 100년 경에 기록된 요한복음에는 탄생에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어찌보면 메시야 탄생이 상업주의와 연말, 연시와 맞물려 너무 지나치게 고무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성탄이야기는 주로 누가의 이야기입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유대인의 족보로부터 시작을 하고, 그래서 예수의 탄생도 마리아가 아니라 요셉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가부장적입니다. 그리고 동방의 박사들과 헤롯, 유아살해와 이집트로의 피신 속에 마리아의 이야기가 잠깐 나올 뿐입니다. 그러나 사도 누가는 족보가 아브라함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로부터 시작하여 인류의 조상이 아담이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인류의 창조주라는 것을 보여주며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유대교 안에서 헬라세계로 그 지평을 넓힙니다. 그러나 누가는 사도행전도 그렇지만 이방인을 위해 복음을 기록하였습니다. 눅2장에서그 연원을 아우구스 로마 황제부터라 하고, 첫 시작은 로마의 관원인 데오빌로에게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태와 달리 예수의 생애를 유대의 예언의 관점에서 보지 않아서, 구약의 인용이 거의 없습니다. 여성과 이방인들과 가난한자들, 사마리아인 등 유대교의 경계를 모두 허물고, 그 지평을 넓힙니다. 성탄에대해서도 목자와 가축들과 마리아와 엘리사벳, 안나와 시므온과 어느 시골 마을의 제사장 사가랴와 같은 동네의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과 목자 같은 천민들의 이야기로 장식합니다. 그래서 성탄은 예루살렘 왕궁이나, 성전이 아니라, 제사장이나, 당시 신학자들인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이 아니라, 마굿간에서 일어났습니다.

     성탄은 당시 왕과 지혜자라고 알려진 동방박사들과 천민인 목동과 동네 시골 소녀와 가축들을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거룩함의 고정관념이 깨어집니다. 마굿간이 성전입니다. 아! 그렇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곳이 거룩한 곳이라는 것을 봅니다. 마굿간이 우주입니다. 별이 그 안으로, 천사들이 그 마굿간 안으로 들어와 한 생명을 축하해 주고 있습니다. 한 생명은 우주요, 역사이며, 하나님의 한 모습, 하나님 형상입니다. 이것은 인간 만이 아니라, 온갖 피조물이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생명이 평화입니다. 평화하지 않으면 생명이 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한 갓난 아이가 태어나면서 평화요, 영광이라 했습니다. 어린 생명입니다. 생명은 주변의 사람들, 가축들, 식물들, 해와 달과 별과 바람과 비가 돌보지 않으면 잘 자랄 수 없습니다. 평화는 어린 순과 같고, 어린 양과 같습니다. 평화는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백화점에서 돈으로 살 수 있는 완제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평범한 시골 처녀입니다. 구약의 에스더나, 밧세바 같은 등장인물들을 보면 심히 아름답다고 표현하는데, 마리아에대해서는 아름답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마리아가 아름다운 마음을 품고 있는 여인임을 이야기합니다. 천사의 소식을 듣고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달려온 목자들이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자 2:18, 19절에 보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겼다고 하는데, 마리아는 마음 속에 곰곰이 되새겼다고 합니다. 예수가 12살이 되어 유월절 절기에 예루살렘 성전에 머무는 바람에 한 때 잃어버렸다고 소동을 피웠는데,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가나에서 먼 친척의 혼인잔치가 벌어졌을 때, 포도주가 떨어져 난감해 할 때, 일꾼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찬찬히 권유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의 문을 닫는데, 이 모습 속에서 마리아가 말씀을 앞서서 열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교회도 말씀을 닫는 것이 아니라, 앞서서 말씀을 열어 제껴야 합니다. 참 지혜로운 여인입니다. 사물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며, 앞서서 되어질 일을 바라봅니다. 자식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큰 슬픔을 이겨냅니다. 마리아의 인품은 말씀을 사모함에서부터 옵니다. 천사가 아이를 낳으리라는 선언을 비록 처녀로서 받아 들일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말씀 앞에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성도의 삶의 지혜와 능력은 바로 이 말씀으로부터 옵니다. 이 지혜와 능력으로 아들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받아들였습니다. 구원의 문을 아픔 속에서 열어 제낀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유대 시골 마을의 제사장의 아내였는데, 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제사장의 아내로서 아이가 없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다고 여겨지던 때 였습니다. 얼마나 많이 기도를 드렸겠습니까? 이제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아이를 기대하지 못하던 때였는데, 이 기다림이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의 탄생으로 이어질지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이 그 기다림 속에 있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2만여명의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봉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비를 뽑아 순 번을 정하여 매일 성소에 분향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많은 제사장 중에 평생에 한 번 만이라도 분향을 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와 같았을 것입니다. 1년이 365일이니까, 10년이면 3650 명, 20년이면 7300명. . . 그런데 유대 시골 마을제사장 사가랴가 드디어 분향 당번으로 뽑힌 것입니다. 얼마나 기뻣겠습니까? 분향하는 날 이른 아침 성전 봉사를 하던 중에 천사가 나타나 아이를 낳으리라는 소식을 듣습니다. 사가랴는 천 사의 말을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을 때 까지 벙어리가 됩니다.

     마리아가 먼 친척 엘리사벳에게 찿아갑니다. 인사를 하자 뱃 속의 아이가 뛰었습니다. 엘리사벳은 깊은 영적 통찰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최초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엘리사벳의 영적 탁월함 역시 마리아에 못지 않습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문안하자, ‘태중의 아이가 뛰는 것을 느끼며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줄 믿은 여자는 행복합니다”라고 하며 인생의 참 기쁨이 어디에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고백합니다.

     지금부터 20년 전 사숙이와 화순이가 꽃 다운 나이에 고기리와 대장동에 시집와서 살았습니다. 둘이는 서로 서로 난초재배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 그런데 화순이와 사숙이는 꼭,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 하는 숙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숙이와 화순이는 시집이 각기 모두 몇 대 독자라는 프레임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화순이는 몇 대 독자인데, 그 전에 아이를 잘 못 유산하여, 병원에서 아이를 낳지 못할 수도 있다는 기막한 판정을 받았을 때 였습니다. 그리고 사숙이는 지금 여기, 종미 할머니라고 부르는 고영자님 시모님이 계시지만, 지금도 그렇게 정성껏 시모님을 모시며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그 당시 딸 만 둘이었던 이번에 권사로 피택된 사숙집사님에게 아들은 반드시 낳아야 할 역사적 사명이 었습니다. 그 때 임신이 되었을 때, 제가 종미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이 번에도 딸이면 어떻게 하지요? 하니까 또 낳아야지 하는, 그 모습은 독립투사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종족 보존을 위한 절대로 이 대에서 김씨 문중의 자손이 끊어질 수 없다는 결연함이 눈 빛에서 보였습니다. 그런데 20년 전 지금과 같은 성탄을 기다리는 성탄 전야에 그 간절한 바램을 가지고 연극을 하였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엘리사벳과 마리아 역을 두 분이 불어 오른 배를 가지고 드라마틱한 성탄 연극을 한 것입니다. 아마 어느 교회에서도 이러한 드라마틱한 연극을 할 확률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종현이와 상욱이가 1995년에 상욱이는 3월13일에 종현이는 3월21일에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20년 전 일입니다. 오늘 종현이가 왔나요, 종현이는 기계자동차공학과에 재학중입니다. 상욱이는 생활음악을 전공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은 태어나 자라납니다. 종현이와 상욱이는 남 달리 태어난 것입니다. 최근에는 이수현 변주영 부부와 이신원 배한내 부부가 생명을 낳았습니다. 어찌보면 성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까운 가족들, 친지들, 교우들과 더불어 성탄을, 글자그대로 ‘거룩한 탄생’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한 생명, 한 생명이 거룩한 것입니다. 새와 들꽃과 나비와 매미, 그 어느 한 생명도 거룩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거룩한 탄생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평화의 생명의 탄생을 누리고, 나누며, 꽃 피원 내는 고기교회 성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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