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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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우리, 여러분(대림절세번째주,2015년12월13일)

하늘기차 | 2015.12.14 15:00 | 조회 1590


                      사람, 우리, 여러분

대림절세번째주                                                                                             고전3:16-4:5

     오늘 말씀 4:1절에서는 ‘사람’, ‘우리’라는 호칭이 나오고, 3:23에서는 ‘여러분’이라는 호칭이 나오는데, ‘우리’ 바로 3:22의 바울과 아볼로와 베드로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세상의 지혜와 사람의 가치관을 가지고 서로 편을 갈라 놓은 것을 사도 바울이 ‘우리’ 라는 호칭으로 다시 연합 합니다. 또한 고린도에 복음을 전파한 바울일행을 호칭하기도 합니다. 그 ‘우리’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이라 합니다. 사도 바울은 1절에서 ‘사람은’이라고 하면서, 무언가 불만 섞인 어조로 못 마땅 해 하며 말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이라고 하면서 ‘이와같이 . .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대해서는 3:18 이하에서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며, 지혜로운 자들의 생각을 헛된 것으로 아신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세상이 지혜롭다고 하는 자를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 3:21은 ‘아무도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하면서,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에대해 이야기하다가 ‘여러분’이라는 호칭으로 넘어갑니다.

     ‘모두 다 여러분의 것’이라고 하는데, ‘여러분’은 3:16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고린도교회이며, 고기교회이기도 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바울, 아볼로, 게바, 그리스도파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누어진 고린도교회에게 사도 바울은 세상, 삶, 죽음, 현재, 장래. . . 등 세상의 모든 것이 여러분의 것이라고 21절과 22절에서 반복하여 말합니다. 그리고는 여러분, 즉 고린도교회는, 고기교회는 그리스도의 것, 다시말해 그리스도에게 속해있으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 즉 하나님에게 속해 있다고 합니다.

     모든 것 이라는 말 속에 편 가르는 옹졸한 그리스도가 아니라 우주적 그리스도, 교회가 만물의 중심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 탁월한 비죤입니다. 당시 교회는 초라하였고, 모이는 것 조차 박해로 인해 공개적일 수 없는 때에 바울은 그 문제 많은 고린도 교회를 우주적 교회로 바라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모두라고 할 때, 가게에 가면 모든 것이 다 있다는 ‘다이소’ 같은 백과사전 식의 ‘모두 다’ 가 아닙니다. 2:9절에서 사람들이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다고 하는데, ‘우리’는 본다고 합니다. 어떻게 볼 수 있나요? 성령을 통해서 입니다. 무엇을 보나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밖은 사건 속에서 오히려 역으로 하나님의 진리의 비밀을 십자가를 통해 ‘모두 다’ 드러 내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다’인 것입니다. 생명의 진리가 어떻게 공의로움으로, 그리고 평화로 사랑의 수고를 통해 세상 속에 드러나는지를 성령의 감동을 따라 보는 것입니다. ‘본다’는 말과 ‘한다’는 말은 질적 차이가 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일은 무엇을 ‘한다’라는 말 보다는 ‘본다’라고 해야 맞고, 적절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은 생명에관한 것이며, 생명은 하나님에게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일에 인간은 개입할 수 없습니다. 간혹 세상에서 복지 차원의 일들을 하는 것과 교회가 생명의 일을 하는 것이 겹쳐지며, 세상이 정의와 평화를 위한다 할 때 서로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내용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들어 세상의 평화와 교회의 평화가 다르지 않습니다. 다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교회의 하나님이 세상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로움이 또한 세상의 정의로움입니다. 시민단체나, 민주영역에서 외치는 평화와 하나님의 평화가 다를 수 없습니다. 한 분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교회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이 있습니다. 세상은 ‘일을 한다’고 하지만 교회는 ‘일을 본다’라고 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홍해 앞에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일하는지 ‘보기만 하라’합니다. 그 생명의 공의로움과, 평화로움이 십자가, 생명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손 길이 어느 쪽으로 향하는지, 역사 속에 하나님의 생명의 강줄기가 어디로 흐르는지 보아야 합니다. 못 보면, 합니다. 자기 일 합니다. 그러면 은혜는 사라지고, 공과가 나타납니다. 그러면 좋지 않은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하는데 말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기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아야 합니다. ‘본다’는 말과 ‘한다’는 말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영적 비밀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비요, 감추어진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십자가를 통해 드러내시며, 성령의 감동을 통해 봅니다. 이것이 ‘모두 다’인 것입니다.

     그런데 육에 속한 사람들, 자연에 속한 사람은 영에 속한 일을 볼 수 없습니다. 이해할 수도 없고, 어리석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은 영적으로 만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다음입니다. 3:3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육에 속한 사람들이라 합니다. 어린 아이 같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대해 1장에서 고린도 교회가 받은 은혜를 더 할 나위없이 칭찬을 합니다. 어떤 은사에도 부족함이 없고 풍족하며, 온갖 언변과 지식이 늘었다고 하니, 그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교우여러분! 아직도 은혜가 무엇인지,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모른다면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여러분의 지금의 삶을 통해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어렵고, 힘들고, 감당키 어렵기 까지 하다면 하나님은 오히려 그러한 절박함 가운데 찿아 오셔서 여러 다양한 은혜로 우리를 충만하게 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십자가의 지혜는 커녕 거져 베푸신 오병이어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베푸신 생명의 잔치도 맛 보지 못하는 육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은사로 충만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여러분은 아직도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당시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방언을 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예언을 하고, 영적 분별 등, 9가지 은사를 넘치도록 받았지만 그것은 은혜요, 선물로 준 것이지, 이제 그 선물을 키워 열매를 맺어야하는데, 기껏 세상 사람처럼 싸우고 있습니다. 자기 은사가 크다는 것이고, 다른 성도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즉 고린도 교회가 그러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한국 교회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받은 은사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무슨 열매가 맺히어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열매는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드러납니다. 줄기와 가지, 뿌리와 흙, 햇빛과 바람과 비를 통해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생명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애써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입니다. 생명으로부터 나는 것입니다. 교회에 은사는 많은데, 이제는 그 은사도 사라지는 것 같은데, 열매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3장에서 밭으로 비유하고, 건축물로 비유하며, 16절에서는 성전이라 합니다. 이 성전은 구약개념의 눈에 보이는 성전이 아닙니다. 그 성전은 바벨론과, 로마에의해 다 훼파되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다른 종교에서 성지를 찿아 기도하는 행사를 바라 보면 유구무언입니다. 성전은 이제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성전은 비유입니다. 그 성전은 어떤 성전인가 하면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는 성전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감동하십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할 것은 여러분!이라는 것입니다. ‘나’가 아니라 ‘우리’요 ‘여러분’, 즉 교회입니다. 이 성전이라는 말의 원어인 ‘나오스’는 성전 안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지성소를 뜻합니다. 이 교회가 바로 우주적입니다. 공간적이거나, 양적으로 보지말고,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교회라는 뜻입니다. 우주적이고, 역사적인 교회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내적 감동을 통해 감추어진 하나님의 지혜를 보고, 듣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2:15에서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서도 판단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선언입니다. 어찌보면 유아독존식의 막가파요, 안하무인의 안면몰수와 같은 불통의 천박함으로 치달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과 하나인 하나님의 백성의 자존감입니다. 지 지난 주에 ‘이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말씀을 전할 때, 예수님에게는 권위가 아니라 자존감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생명의 지혜, 능력이 있다고 했듯이 사도 바울은 복음 전도자로서의 자존감이 있습니다. 그 자존감으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그렇게 자신을 매도 하며, 인신 공격까지 해 댔지만, 그래서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고, 세상 법정에 심판을 받더라도, 문제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양심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참 겸손하며, 자기 정체의 자리를 분명히 잡습니다. 뭐라고 하는가 하면 이러한 일로 내가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의로움이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선함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움과 선함을 덧 입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유하고, 기쁨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를 지금 여기 이 자리에 부르셔서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심판하실 분은 주님이시라고, 모든 것을 주님께 돌립니다. 사도 바울의 정체성일 뿐 아니라, 성도들의 정체성입니다. 이 자존감은 이미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계획된 하나님의 섭리요, 경륜이요,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자존감 속에서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것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신실함입니다. 변함없다는 것입니다. 늘 변함이 없습니다. 주님의 성품 중에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면 신실함과 불쌍히 여김입니다. 특히 신실함은 어제나 오늘이나, 늘 변함없이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햇빛과 단비를 골고루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멀리 떠난 막내 아들을 여전히 떠나 보낼 때의 마음으로 기다리시는 마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은, 관리자는 이 하나님의 마음을 따릅니다. 이 마음으로 주님의 판결을 기다립니다. 주님은 그 기다림 속에 감추어있던 것을 환히 밝혀 드러냅니다. 주님은 ‘사람’이든, ‘여러분’이든, ‘우리’이든 마음 속의 생각을 드러내십니다. 감추어 있는 것 같지만 주님은 드러내십니다. 세상 속에 기쁜 소식을 드러내십니다. 모두가 잠든 때에 천사와 목자와 이방의 동방박사를 통해 하나님이 인류를 향해 계획하신 일을 드러내십니다. 이 기쁨이 세 번째 대강절에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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