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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부활과 영생(부활 다섯째주일 2016년4월24)

mungge | 2016.04.25 17:19 | 조회 2831



본문: 고린도전서 1535~44

제목: 몸의 부활과 영생

 

두 남녀가 사랑할 때 최고의 사랑고백은 무엇일까요? “영원토록 당신만을 사랑할거야.” 아닐까요? 영원토록 변함없는 사랑을 할거라는 고백만큼 서로의 가슴을 설레고 마음을 강하게 만드는 말은 없을 겁니다. 다들 그런 고백 받으시고 결혼 하신거죠?

그래서 우리는 결혼식때 그런 변함없는 사랑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서로에게 금반지를 예물로 준비합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색깔과 성질이 변하지 않는 금의 속성처럼 변함없는 사랑을 이어가자는 뜻이지요.

 

어떻게 그 사랑이 변하지 않고 잘 이어오고 있습니까? 2005KBS 프로그램인 감성과학다큐-사랑에서 사랑하는 두 남녀의 뇌를 스캔해 보았답니다. 100일 가량 사귀었을 때의 뇌와 그 후로 사귄지 300일이 지났을 때의 뇌를 비교해 본 거죠. 비교해보니 사랑하는 감정일때 행복과 쾌감, 흥분을 일으키는 대뇌 부위에 있는 미상핵의 활성화 정도가 현저히 다르더랍니다. 두 남녀가 사귄지 300일가량이 되자 감정을 주관하는 미상핵의 활동이 줄어들고, 이성을 관장하는 피질부위가 활성화 되는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코넬대의 신시아 하잔 교수5천여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열정적 감정을 느끼는 기간은 평균 18개월에서 30개월이라고 발표하고 이것을 ‘900일의 폭풍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랑, 쉽지 않은 거죠.

 

불완전한 인간의 사랑이 영원할 수 없듯이, 우리의 생명은 당연히 영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살아가는 힘을 얻기 위해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매일 매일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없고, 결국 죽음 앞에 허물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인류 역사의 많은 이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영생을 얻는 방법이 무엇일까 찾았습니다. 진시황제는 영원한 삶을 꿈꾸며 불로초를 찾아 헤맸지요. 소크라테스는 불멸의 방법으로 자식을 낳는 것과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예술지식을 낳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어떤 방법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다.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 (3:36)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 (5:24)

 

요한복음에서는 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과 그 아들 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되고 영생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이러한 주님의 말씀에 확고한 믿음을 갖고 계십니까?

 

그런데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영생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몸은 죽지 않는 것일까요?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은 영생할 수 있다고 했으니 죽음을 피해야 하지 않나요? 예수님은 오빠 나사로가 죽자 슬피 우는 그의 누이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11:25)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십니까?

그런데 우리 인간은 누구도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살아생전에 만날 거라 기대하고 종말론적 삶을 살았던 초대교회의 신도들도 사도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조들도, 수도사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천사장의 나팔소리를 들을 때에 하늘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바울도 죽었습니다.

 

~ 그럼, 예수님의 말씀을 틀렸다고 할 수 없으니 다르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생은 육체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에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해 보는 거지요. 그러면 예수님 말씀에서 모순되게 느꼈던 부분이 해결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의 영혼을 담고 있는 육체는 썩어져 없어지지만 영혼만큼은 하나님의 보호아래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 맞는 말입니까? 믿음과 순종의 고백이 되나요?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을 다시 보겠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장문의 편지를 쓰면서 뒷부분에 와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죽은 사람의 부활과 몸의 부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지역은 해상교통이 편리한 위치여서 상업이 번창했고, 남부 그리스 아가야 지방의 주 총독이 머물 정도로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이 지역은 이 세상과 저 세상, 현상계와 이데아계를 나누는 그리스의 이원론 철학이 발달한 곳이기도 합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 중에 일부가 이러한 영향을 받아서 죽은 사람의 부활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이 부활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이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몸을 다시 살린다는 개념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몸을 영혼의 감옥으로 여기던 세계관의 영향을 받았던 그들은 죽음 이후에 몸이 다시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자신들은 방언과 같은 성령의 은사를 받아 이미 영적인 천상의 존재가 되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었기에, 죽을 때 벗어버릴 몸이야말로 궁극적 영성의 방해물이라고 생각한 거지요. 현재의 몸의 의미를 부정하고 그것이 미래에 소용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만약 영생을 믿을 때에 영혼의 영생만으로 이해한다면 고린도 교회에서 몸의 부활을 믿지 않았던 이들과 같은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은 믿지만 거룩한 육체의 영생을 믿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은 믿지만 몸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부활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고전15:3부터 바울은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복음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잘 요약해서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고,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살아나셔서 많은 이들에게 몸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에게 나타나셨나는 155절부터 자세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열두제자에게, 오백명에게, 동생 야고보에게, 사도들에게, 그리고 바울 자신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몸은 이 땅에서 한 생이 끝날 때 버리는 영혼을 담았던 일회용 그릇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머리위에 펼쳐진 하늘과 발을 딛고 있는 땅도 주님이 재림하시는 종말의 때에 불타버릴 땔감이 아닙니다. 42, 49절의 말씀처럼 주가 다시 오실 때 우리 몸이 변화되어 썩지 않을 것과 죽지 않은 것을 입듯이, 이 세상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우리의 몸과 지금의 땅 하늘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영혼의 존재로 다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 철학의 한 사상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부활의 영이 아닌 부활의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기독교가 가진 궁극의 소망이다. 그리고 이러한 궁극적 종말에 대한 소망은 지금 여기의 일상에 대한 우리의 관점에 영향을 미칩니다.

 

몸의 부활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관점을 달리 보게 만듭니다. 몸의 부활에 대한 신앙고백은 예수가 고난 속에서 죄와 죽음을 감당한 그 상처의 피흘린 몸이야말로 부활의 생명이 싹터 나오는 거룩한 터전이 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관계없는 몸의 부활은 없습니다. 몸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걸어간 그 길을 믿음으로 걷는 일이며, 오늘도 예수님처럼 우리가 그 길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예배시간에 사도신경을 통해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하고 고백하였습니다.

 

영생은 죽어서 몸을 떠난 영혼이 누리는 그 무엇이 아닙니다. 영생은 지금 몸으로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썩어 없어지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가 신령한 몸으로 변화할 때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전한 영생입니다. 영과 혼과 육체가 완전해지는 영생입니다.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 분이 걸어가신 십자가 고난의 길을 따라 걸어갈 때.”(17:3) 몸의 부활과 함께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축복의 길입니다. 영생은 끝없이 이어지는 양적인 시간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질적인 시간의 의미입니다.

 

날마다 자신의 이익만을 좇으며 자신의 몸살림만 생각하던 자아를 죽이고, 예수님처럼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어 놓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에 영생이 우리의 현실에 가로질러 들어옵니다. 죽음의 권세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삶에 대한 걱정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그때에야 비로소 억울함과 걱정으로 가득 차 보이는 현실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맛보게 되고, 영생을 체험하게 되며, 영원의 시간에 잇대어, 접붙여 살아가게 됩니다. 저 세상과 이 세상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통합되는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이 말씀을 믿고 십자가 고난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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