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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성령감림후열세번째주일, 2023년 8월 27일)

하늘기차 | 2023.08.27 14:16 | 조회 307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

 

성령강림후열세번째주일                                                                                                   삿4:8,9.12-16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광야로 나아갔을 때, 8:2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시험하시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지 안 따르는지를 알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이어서 3절은 시험 중에 이스라엘을 만나로 먹이신 것은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 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하였을 때 였습니다. 백성 중에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자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 전에 모세는 신1:21에서 이스라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올라가서 차지하십시오. 두려워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마십시오”. 그럼에도 모세는 땅을 탐지할 사람들을 먼저 보내자고 하는 말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그만 그 말에 마음이 흔들려 신1:23에서 내가 듣기에도 그 말은 옳은 말이어서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 두사람을 뽑자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이 아니라 사람의 말을 듣습니다. 결국 정탐하고 온 결과 올라가지 말자고 다수결로 결의를 합니다. 102입니다. 그러자 여호수아와 갈렙이 옷을 찢으며 하나님이 주신 땅이니 올라가자고 부르짖었지만 오히려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쳐 죽이려 하였고, 하나님은 진노하여 이집트에서 나온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빼고 모세를 포함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시험을 잘 치러야하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이 더 안타까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험은 가나안 정복 이 후 사사시대에도 계속됩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땅에 정착하면서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가나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묻고, 그 방법을 따르면서 그들의 관습, 예절, 종교 까지 그리고 자녀들이 이들과 결혼을 하면서 점차 가난안에 동화되어 갔고 결국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숭배함으로 출애굽의 하나님을 저버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삿2:3에서 나는 그들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않겠다. 그들은 결국 너희를 찌르는 가시가 되고, 그들의 신들은 너희에게, 우상을 숭배할 수밖에 없도록 옭아매는 올무가 될 것이라고 말씀 합니다. 사사기 말씀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고의 말씀이며, 생명의 말씀입니다. 예를들어 사업을 하다보면, 또는 내가 속한 직장이 잘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고 파산할 지경 까지 이르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가정에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견해 차이가 있는 등 일들이 것 잡을 수 없이 생겨나 숨 쉴 겨를도 없어질 때, 물론 외적인 원인으로 인하여 일상이 힘들어 지지만, 이럴 때 성도는 최소한 이 어렵고 힘든 상황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하나님께 물어 보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온전한가? 물어보아야 합니다.

   최근에 계속 회자되는 문화 현상으로 소위 K-pop, K-drama , 더 나아가K-Food 등 한류라는 문화현상이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봅니다. 이 전에는 문화적인 열등감이랄까, 미국 산업, 일본 전자, 유럽의 문화를 쫓기에 급급했는데, 지금은 세계가 한국을 주시합니다. 저는 이 현상을 보면서 이렇게 세계의 문화 속에서 한국이 가진 고유의 문화를 지켜넬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전파하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한류라는 현상 안에 한국의 고유한 정체성이 살아있는 것을 보며, 뜬금없기는 한데, 불연 듯 한국 사회에서 기독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신학적인 정체성, 군사 독제를 거치며 해방신학과 정신을 같이하는 민중신학이라는 고유한 신학체계를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신학적인 정체성도 중요하지만, 오늘 한국교회, 성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해 봅니다. 결국 자본과 세상의 논리에 교회가 함몰된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이 교회 시스템과 프로그램에 갖혀 교회 프로그램을 열심히 참여하면 신앙이 좋은 것으로 착각하며 역사와 사회 앞에 하나님의 공의 평화, 생명에 대해서는 등을 돌린 모습을 보며 오늘 이 시대에 교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할 때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대로 그렇게 고사될 수도 있읍니다.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답게 살려면, 기독인이 기독인 답게 살려면, 언약 백성이 말씀 백성으로 살아가려면 어떻해야 할까요?

   오늘 말씀은 언약 백성이 언약 백성답게 살지 못하여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가나안의 야빈왕이 이스라엘을 치러 오자 당시 예언자 드보라는 아비노암의 아들 발락에게 병력을 거느리고 다볼산으로 향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가나안 군대를 기손강으로 유인하여 너의 손에 넘겨줄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발락은 드보라에게 함께 가지 않으면 가지 안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드보라는 같이 갈 것을 약속하면서 그대신 너는 승리의 영광은 얻지 못할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가나안 군대를 대패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드보라 여선지자는 발락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오늘 본문 4:14입니다. “, 가십시오. 오늘이 바로 주님께서 시스라를 장군님의 손에 넘겨 주신 날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그대 앞에 서서 싸우러 나가실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발락은 주저주저하며 앞서서 싸우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지 못합니다. 구약을 통해 모세, 여호수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 늘 인지되는 것은 그들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 이스라엘을 앞 서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앞서 가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발락은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각 지파 별로 가나안 땅을 분배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족속을 모두 쫓아내지는 못하였습니다. 가나안에 여전히 거주하는 족속들은 동맹을 맺어 계속 이스라엘을 위협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분배 받은 땅을 지키기 위해 계속 전쟁을 치러야 하였기 때문에 말이 정복이지 그 혼란, 불안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불안정은 사사시대 내내 계속 되었는데, 물론 불안과 혼돈은 정복하지 못한 외부의 원주민의 끊임없는 도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근본 이유에대해 삿2:2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숭배의 제단을 헐어버리라 하였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세상의 일을 세상의 방법으로 풀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는 말은 제가 본문을 풀어서 한 말이고, 성경 본문은 너희는 나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고 해도 되지만, 성도들의 언어는 당연히 순종하지 않았다가 맞습니다. 공동 번역은 명령을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글개역은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영어 성경도 “disobeyed me”입니다. 성도들의 행동은 먼저 말씀 앞에 어떻게 서는가가 중요합니다. 진정 한글 개역 처럼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하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묻고 계시는데, 말하기 전에 먼저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듣지 않습니다. 아니 듣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해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부할 후에 제자들에게 찿아갑니다. 처음 제자들을 바닷가에서 만날 때를 연상케 합니다. 예수님은 이 번에는 깊은 곳이 아니라 그물을 오른 쪽에 던지라 하자, 제자들이 그물을 오른 쪽에 던지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서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에 순종한 것과 같은 결과를 얻습니다. 3자 입장에서 볼 때 그물을 오른 쪽에 던지든, 왼 쪽에 던지든지 관심이 없다면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지만, 오른 쪽이라 하면 오른 쪽이어야 합니다. 왼쪽은 복음이 아닙니다. 은혜도 아닙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역인 것입니다.

   어제 아무것도 안하는 휴양회잘 다녀왔습니다. 처음 김씨알집사님과 답사를 갔을 때에는, 학암포 해수욕장이 폐쇄가 되었습니다. 그 전에 답사지에 거의 도착할 즈음에 나한억집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휴양회 장소 답사가고 있는데 다 왔다고 하니 아쉬워하더라구요. 아마 쉬는 날이어 소식을 접하고 집사님도 같이 답사를 가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통화를 끊고 학암포에 도착하니, 수영장이 폐쇄되었다는 팻말이 붙어있는 것이었습니다. 참 난감하였습니다. 그래서 어~휴 하며 이제 이만한 휴양지를 어디에서 찿나 하며 문득 나집사님에게 전화하여 상황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장소를 물색하던 중에 나한억집사님으로부터 전하가 걸려왔습니다. “목사님, 교회 건축할 때 ALC블럭으로 벽체시공을 맡으신 집사님이 이 곳 태안의 교회 집사님이신데, 연락을 하여 어디 있을 만한 휴양지를 물었더니, 집사님이 다니는 교회가 매 년 가는 휴양회 장소가 있는데 갈음이 수영장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갈음이 수영장을 검색하여 찿아가니, 세상에! 둘 도 없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아무것도 안하고 쉴 만한 장소였습니다. 어제 우리는 정말 편히 하나님의 쉼과 친교를 하고 왔습니다. 돌아보면 이미 하나님은 우리 고기교회를 위해 휴식 장소를 준비해 두셨읍니다. 어떻게 그 뜻을 따라 나아가느냐는 우리의 몫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어찌 그 뜻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위한 삶의 길을 계획하시고 준비하시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니 불안, 염려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의 관계망을 통해 우리 교회가 쉴만한 장소를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도 역시 그렇게 앞 서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고기 교회 건축 때에도 우리 교회 본 당 옆 인도를 처음에는 마당 한 가운데를 가로 지르도록 설계되어서, 보면 영 부담스러웠고, 그렇게 진행되어 가고 있었고, 아직 본당 주변의 자갈밭이 설계 되어있지 않은 무형의 자리였을 때, 어느날 윤무진 집사님이 지어질 본 당을 따라 인도를 내면 어떨 까고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머리가 환해지면서 손뼉을 쳤습니다! 맞다! 그렇게 지금의 인도가 잘 만들어 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본당 창, 천장, , 로비, 자모실, 2층 다락방 등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이 계획하지 않은 설계가 없습니다. 문제는 교회가, 성도가 어떻게 주님의 계획을 읽어 내는가 인데, 하나님은 여러 모양으로 그 계시와 뜻을 알려주시며, 그 뜻에 어떻게 따르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인데, 그렇게 하나님과 씨름하며, 그 뜻에 한 걸음씩 나아가 결국에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까지, 아니 아브라함의 믿음을 조금씩 따라 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하는 그 말 한마디에 숱 한 삶의 난관을 거치며 부족을 이루는데, 장차 부족을 이끌 자기의 가장 소중한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 명령에 순종함으로-통상 부족국가 시대에 부족의 후계자가 없으면 그 부족은 다른 부족의 먹잇감이 되는 시대였을 것입니다-아들 예수를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아들을 내어 놓는 하나님 신앙의 자리에 까지 나아가 믿음의 조상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믿음의 거대한 은혜의 강줄기의 흐름에 참여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아니면 그냥 내 생각, 내 모임, 내 기준에 따라 눈에 보이는 삶에 매인 삶을 살으시렵니까? 성경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은 자신의 논리 구조에서 벗어나 그 넘실되는 세상의 파도를 믿음을 타고 넘어 저 넓은 은혜의 바다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미쳐 경험하지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한 새로운 삶이 다가올 것입니다. 늦기 전에 결국 가나안 땅에도 못들어 가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부름 받은 자녀로서 지난 수요일 요한복음 공부 하면서 함께 읽었듯이,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이 아니라,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따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삶을 살기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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