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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달린 죽음과 연합(성령강림후 일곱 번째주일, 2023년 7월 16일)

하늘기차 | 2023.07.16 13:19 | 조회 250

                 십자가에 달린 죽음과 연합

성령감림후일곱째주일                                                                                           마28:16-20;6:3-11

   사도 바울은 오늘 로마서 본문 4절에서 세례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것이라 합니다. 어떤 신비로운 합일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택하여 부름받아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한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죽음인가요? 그리스도 예수의 죽으심이라 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기 뜻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는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을 하는가 하면 말씀드렸지만 세례를 통해서 입니다. 그럼 왜 연합을 하나요?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들 가운데서 죽어서 무덤에 장사된지 사흘 만에 살아나신 바, 우리도 새 생명 안에서 살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4절에서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한다 했을 때는 무심코 지나갔는데, 5절에서 그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으로 연합한다고 할 때, 저는 이 본문에서 그만 멈추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것과 같은 죽음에 연합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십자가의 죽음을 죽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지금 그 죽음을 죽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부활입니다. 그럼 어떻게 연합하나요. 세례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함께 못 박힙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죽으심과 세례가 어떻게 등치될 수 있을까요? 그 간극이 무엇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이 간극로 인하여 복음이 희석되고, 복음 아닌 것이 복음으로 전면 배치되어 종교적 만족으로 치환되는 것은 아닌가요? 이것이 가능한가요? 저는 이렇게 풀어냅니다. 영적 전환. 성령의 내적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지금 여기 오늘 말도 안되는 그래서 글자그대로 문자적으로는 도저희 넘어설 수 없는 영적인 살아있는 말씀이 됩니다. 은총이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영적 전환, 즉 세례를 통해 십자가의 죽음을 죽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았으면 이 놀라운 전환은 문자에 묶여 그냥 고대의 사건으로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6절은 이 죽음을 옛사람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고후5:17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고 합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단지 죄를 씻는 의식이 아니라. 복음의 핵심입니다. 좀 당황스럽지 않나요? 그동안 너무 무심하지 않았나요? 복음의 핵심이 죽음이라니? 사람들은 죽음을 꺼려합니다. 죽음을 회피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그래서 영생을 논하며, 신앙합니다.그런데 기독교는 영생이 아니라 부활입니다. 그런데 죽지 않으면 부활이 아닙니다. 인간의 유한함, 연약함, 한계를 있는 모습 그대로 품고 갑니다. 그런데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바로 그 죽음. 모두 싫어하고, 수치스럽고, 부끄러워하던 죽음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의 십자가 죽음 이후 다락방에 숨어 있었는데, 그곳에 주님이 찿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동안 전전긍긍하며 스승을 십자가에 내 몬 책임감에 서로 얼굴도 처다 보지 못하다가 주님께서 에이레네”, 공감하라, 마음을 나누라, 그렇게 평화라고 말씀하시자, 서로를 보기 시작하면서 다른 형제들도 자기와 같은 마음인 것을 깨달으며, 주님의 죽음을 만지며 보며 부활하였습니다. 부활이 그렇게 찿아온 것입니다. 아마도 죽음을 기억하고 선포하는 종교는 기독교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한 달에 한 번 성찬에 참여하며 고백합니다. 이 성찬은 부활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을 기념합니다. 주님의 살, 주님의 피입니다. 죽음을 먹고 마십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는 기독교인들을 인육을 먹는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려 모함하고 핍박하였습니다.

   교회는 세례와 성찬을 통해 주님의 죽음과 연합하여 옛 것은 벗어버리고 생명 안에서, 믿음 안에서 살아갑니다. 기독교의 근본 가치의 근저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사의 죽음, 병사가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이 죽음은 인류 역사의 시간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인류가 물질문명을 통해 만든 모든 재화는 이 십자가 앞에 전환되었습니다. 세상 가치는 주님 십자가 앞에 0일 수 밖에 없습니다. 십자가 앞에서의 이 세상 가치, 시간의 멈춤이 마지막 때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완성되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원수가 밭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고 합니다. 그러자 종들이 가라지를 뽑아버릴까요?하자, 주인이 가라지와 함께 밀 까지 뽑힐테니 추수 때 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 하면서 추수 때가 되면 알곡은 거두어 드리고, 가라지는 불태워 버릴 것이라 합니다. 그러면 마지막 때가 아닌 지금의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요? 거짓과 참, 정의와 불의, 선과 악, 신앙과 불신, 사랑과 미움, 모두가 공존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내가 세상 끝 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곁을 끝 까지 떠나지 않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처럼 말입니다. 마태는 복음의 처음과 끝을 주님이 함께 계시다는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1:22, 23에서 예수의 이름에대해 언급하는데, 그 뜻은 여호수아, 여호와, 예수아 등과 같은 어원의 단어로 그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로서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입니다. 함께하시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28:20에서도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삶, 죽음, 부활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 합니다.

   2주 전 7월 첫 주에 희망을 설명하는 준비된 삶에대해 말씀을 나누면서, 과연 우리는 종말을 기다리는 공동체인가? 성서가 말하는 교회공동체 맞나?라고 질문하였는데, 그 날 오후에 416안전공원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세월호 엄마, 아빠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며 예배를 드리면서 세월호안전공원에서 예배드리는 세월호가족들이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2014416일 이후9년이 지나고 10주기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날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바라보았나요? 세월호 엄마, 아빠를 곁에서 지켜 보며 느낀 것은 2014416일 이후 직장, 인간관계, 건강, 교회 등 먹고 마시며 즐기는 그 모든 것이 멈추어 있는 것을 곁에서 지켜 보았습니다. 그 동안 이 세상에 살며 추구하고, 누리던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오직 한 가지 잃어버린 자녀에대한 연민만 남아있을 수 밖에 없이, 오직 진실 규명, 책임자 처벌, 그리고 416 안전공원 설립인데, 지난 번 안전공원예배를 이끄는 김은호 목사님 통해 들은 이야기는 안전공원 착공이 점점 멀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종말을 바라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평화, 기쁨, 감사와 비교가 될 수는 없겠지만 세월호가족들이 세상 가치에 무감, 무관한 모습에서 종말의 삶이 어떤 가치의 삶인가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간접적으로 바라 보았습니다.

   그리고 2018년 세월호 목공 가족들과 함께 다녀 온 뉴욕 메이플릿지 브루더호프 공동체가 생각납니다. 세월호가족들하고 공동체에 도착하였는데, 그 때 마중나온 한국인 박성훈님 부부가 우리를 처음 인도한 곳은 공동체 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공동묘지였습니다. 을씨년스러울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참 깨끗하고 정감있게 꽃들이 피어있지만 그렇다고 화려하지 않은, 그냥 집 한 켠의 익숙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적 끊긴 죽음의 자리가 아니라,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 더 나아가 생과 사가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단지 공간 만이 아니라 부르더호프 공동체가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가 느껴진 것입니다. 나무 울타리를 쳐 놓은 잘 가꿔진 잔디밭 공동묘지가 공동체식구들이 가장 즐겨 찾는 장소라는 것이었습니다. 공동묘지 안의 의자에 앉아 기도하기도 하고 성경을 읽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 자기들은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고 믿으며, 공동묘지에서 산 자와 죽은 자들의 하나 됨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부르더호프 공동체의 삶이 그렇게 생과 사를 구분하지 않는 평화가 느껴진 것입니다. 그 때 박성훈님이 여러 무덤들 중에 우리를 인도한 무덤은 루크라는 신생아인데, 임신사실을 알고 병원에서 진단받았는데, 선천적인 문제가 있어서 태어날 수 없으니, 유산을 권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산모와 공동체는 계속 기도하였고, 결국 루크가 태어났는데, 아침에 태어났고, 엄마가 루크를 목욕시키고, 젖도 물리고 안아주고, 노래도 불러주었고, 아기는 손 가락을 빨고, 칭얼대고 울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고는 저녁에 10시간 만에 모든 가족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하늘나라로 간 날, 산모인 케이틀린이 진통을 시작하며 비바람이 몰아쳤는데, 아이가 태어나면서 비가 멈추고 무지개가 확연히 피어났다고 합니다. 박성훈님이 번역해서 나누어준 루크의 할아버지의 글에 비가 억수로 쏟아지더라도 태양은 언젠가 다시 구름을 뚫고 나올 것이며 광채를 비출 것이다. 심지어 가장 위협적인 소나기 먹구름이 몰려 온다고 해도 햇빛이 프리즘을 통해 수백만의 빗방울을 아름다운 무지개 빛으로 바꾸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루크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박성훈님은 세월호 가족들에게 케이틀린의 무지개는 우리가 완전히 슬픔에 굴복하거나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깨우침이기도 하다며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는 것. 믿음을 통해 죽음 넘어의 천개의 태양 보다 더 밝은 눈물이 없는 곳의 소망으로 지금 이 세상을 바라 보자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 종말을 산다는 것은 생과 사의 구분이 없이 살아가는 평화의 삶일진데, 그 날 생과 사를 품고 평화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고기교회 교우여러분! 지금 여기 이 세상에서의 삶에 너무 몰입하지 마시고 잠시 거리를 두고 주님 앞에 나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세례와 성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의 연합, 기독인의 삶이란 십자가의 죽음을 선포하며 기념하는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내는 것을 잊지 않는 우리서로같이 교회이기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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