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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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보시오”(성령강림후 여섯 번째주일, 2023년 7월 9일)

하늘기차 | 2023.07.09 13:13 | 조회 273


                    “와서, 보시오

성령강림후여섯번째주일                                                                                                       요1:43-51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활동을 시작하면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통상 제자들은 유명한 선생님을 찿아가 그 밑에서 배우려 합니다. 그래서 일타강사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의 경우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예수님 당시의 랍비의 제자들은 학문을 위해 제자가 되는데, 그러면 명예, , 권력 등, 그 이상의 보상을 얻기 때문에 기꺼이 자신의 것을 버리고 스승의 문하에 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학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부르신 분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24:9에 보면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핍박할 터인데,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 합니다. 또 마25의 달란트 비유를 보면 착하고 신실한 종 그리고 악하고 게으른 종에대해 말씀하는데 제자들은 예수의 종이 되기 위해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나눌 때 종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대해 손수 대야에 물을 떠서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일일이 발을 씻어줍니다.

   또한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보면 단지 학문을 전달하고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인격에 참여합니다. 랍비들이 제자들에게 지식과 그 지식을 터득하는 방법을 가르쳤다면, 예수님은 가는 곳 마다 이 전에 듣지 못한 말씀과 이적을 베풀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믿음을 회복시켰습니다.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을 때 요2:11은 이 첫 번째 표징으로 예수님은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심으로 제자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기록을 합니다. 그러면 그 믿음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만나 죄를 용서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예수님과 논쟁이 붙었고, 급기야 예수님은 이들을 살인자요, 거짓말 쟁이요 악마의 자식이라고 직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너희가 듣지 않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았기 때문이라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에서 밝히 드러나는 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말씀을 듣지도 않고, 기적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그 분을 모르지만, 나는 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날 때부터 눈먼자의 눈을 뜨게 하셨을 때에, 바리새인들이 부모에게 이 사실에대해 묻자, 출교당할 까 겁이 난 부모는 이 아들이 날 때부터 눈 먼 아들인 것은 알지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눈 뜬 사람은 내가 아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내가 지금은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지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보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와 함께하시는지를 못 봅니다. 그러나 아들은 본다고 하며 주님, 내가 믿습니다라고 믿음을 고백합니다.

   어떻게 볼 수가 있을까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일으킨 기적에대해 평가하고, 판단하고, 비교하며 내린 결론은 예수가 안식일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세상의 모습 아닌가요? 우선은 나에 대하여, 그리고 내가 남에 대하여, 그리고 남이 나에 대하여 끝 없이 반복하여 판단, 평가합니다. 내가 나를 그리고 세상을 그렇게 본다면, 세상도 나를 그렇게 봅니다. 내가 세상을 내 기준, 내 판단으로 보면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빌립은 이미 예수님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다나엘은 자신의 철학과 종교에 매여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냐고 하자 그러한 나다나엘에게 빌립이 말합니다. 와서 보시오합니다.

   무엇을 본다는 것일까요? 주님은 사물을 볼 때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그 근원을 보십니다. 우리는 먹고, 마시고, 웃고, 울고 하며 눈에 보이는 세상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보는데 예수님은 그러한 눈에 보이는 것에대해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존재하는 내적 근원을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삭개오를 만났을 때에도 세상이 혐오하는 세리장이가 아니라 죄로 인해 고통하는 소외된 자로 바라봅니다. 그렇게 바라보는 주님의 모습이 삭캐오에게 건네는 말 한 마디에서 느껴집니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겠다고 하십니다. 삭개오는 급히 뽕나무에서 내려 와 주님과 함께 자기 집으로 가서 잔치를 벌입니다. 어서 내려 오라 하니 급히 내려옵니다. 예수님과 삭개오가 마음이 통한 것입니다. 자신을 둘러 쌓고 있던 껍데기를 다 벗어버립니다. 소유의 절 반을 내어놓고, 강탈한 것이 있으면 4배로 갚겠다고 합니다. 세상눈으로 보면 삭개오는 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주님이 자기를 바라보던 시선으로 주님을 본 것입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예수님께 감염이 된 것입니다. 주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믿음이 바이러스처럼 세상에 퍼져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예수님이 죄인과 어울린다고 수군댑니다. 볼 수 없으니까요?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을 때에도 주님은 내적 근원에 닿아있어서, 그러니까 우주와 역사와 온 갖 피조물이 하나로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 그리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는 근본을 보시는 주님에게 사마리아인이라는 차별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실 물을 한 잔 달라고 말을 건넵니다. 만약 이 여인이 유대인이라 하며 역차별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사마리아 여인은 야곱의 우물에서 물을 한 바가지 퍼서 드린 덕분에 세상의 모든 재화를 다 해도 살 수 없는 영생에 이르게하는 샘물을 얻습니다. 이 여인은 그 즉시 우물가의 물동이들을 다 버려두고 마을로 뛰어가 와서 보십시오합니다. 이 여인도 주님이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니, 그 분이 메시야인 것을 본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삭캐오와 사마리아 여인은 모두 주님을 만나 근본을 보시는 주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오늘 빌립은 주님을 보았습니다. 또 나다나엘도 예수님과 아주 짧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생명의 본질인 주님의 사랑을 본 것입니다. 주님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디에서 온전함을 나타내 보이시나요.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자 그 근원에 닿아있는 시선이 온전히 드러납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죄 없이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미움이나 원망이 아니라 사랑으로 바라봅니다. 로마의 백부장이 세상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시선을 본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믿음을 고백을 합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 손! ! 그 다음에 발, 얼굴 이렇게 하나 하나 씩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 한 번에 완전하게 태어납니다. 우리 선림이를 보면 몇 가지 부분적으로 치료를 받고는 있지만 완전합니다. 교우여러분 혹 자기 자녀를 다른 자녀들과 비교하며 판단하지는 않나요? 그러지 마세요. 생명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어떤 모습이든지 완전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온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지 말고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매 순간 완전합니다. 그러나 점 점 완성을 향해 나아 갑니다. 그런데 완성은 무엇을 열심히 하거나, 도를 닦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완전함이 자라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생명입니다. 그러니까 나무가 자랄 때, 커질 때 막 자기가 노력해서 되나요? 그냥 열매 맺을 때 까지 성숙해 지는 것입니다. 생명의 모습인데, 생명은 무엇을 막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먹고 자라며 성숙해갑니다. 그런데 욕망으로 인해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성숙해지려면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포도나무의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을 열심히 해야 성숙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주님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세상을 봅니다.

   얼마 전부터 옛 예배당 뒤 화단에서 범부채 꽃이 올라옵니다. 무심코 지나가는 사람은 못 보지 만, 관심이 있는 사람은 꽃 몽우리가 올라오기도 전에 꽃이 필 것을 알아챕니다. 근데 범부채 꽃은 이미 땅 속에서부터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보는 것은 그 끝의 모습이 아닌가, 사과를 보면 이미 사과 씨 안에 사과가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세상을, 교회를 부름받은 형제를 생명의 근원으로 보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주님처럼 그렇게 나 자신과 세상을 봅시다. 믿음입니다. 이렇게 믿고 보며 머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타락한 영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선을 창조하였지 악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선이 스스로 타락하여 자기 길을 간 것입니다. 그래서 선악이 내 안에 함께 있습니다. 쌍둥이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죄는 생명과 사랑, 평화를 뒤로 하고 자기 길을 간 것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 선과 악이 같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롬7:20에서 내 안에 죄가 자리잡고 있다고 합니다. 죄를 품고 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죄는 내 힘, 기도, 묵상을 통해서 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죄를 끌어 앉지 못해 아! 나는 비참한 사람이라고 까지 하였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그렇게 탄식을 하였을까요?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을까요? 죄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소위말해 빠스카, 건너가다입니다. 출애굽입니다. 나를 구속하는 내 안의 바로에게서 벗어나야 합니다. 죄의 결과가 있습니다. 고통, 어두움, 고통, 좌절, , , 이것은 죄 지은자가 품고 가야 할 몫입니다. 그러나 죄책감에서는 멀어져야 합니다. 오히려 죄 보다 책감에 더 힘들어 하며 우울해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지 말고 존재의 근원이시며, 생명이신 주님을 바라 보아야하는데, 성령께서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촐애굽하여 홍해 바다에 가로막히고, 뒤에서는 바로의 군사들이 쫓아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갖혔습니다. 그 때 모세가 출14:13에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가만히 서서, 주님께서 오늘 당신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 보기만 하십시오라고 합니다. 주님이 세상을 보는 눈으로 세상를 보는 우리모두서로 교회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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