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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는 나'(부활세번째주일, 2023년4월23일)

하늘기차 | 2023.04.23 13:19 | 조회 306


                           나도 나는 나

부활절세번째주일                                                                                                  요8:28;10:7,11,14,30

   요한 복음에는 말씀(Logos), 생명, , 포도나무, 양의 문, 목자 등 예수를 상징하는 단어들이 거듭 반복해서 나오는데, 이 상징은 8, 9, 10장에 이르러 나는 나’, 그리고, ‘나와 아버지는 하나에서 그 정점에 이릅니다. 10:24은 성전 봉헌을 기념하는 때라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인 셀루시드 왕조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4세에 의하여 더럽혀진 성전을 재 탈환하여 하나님께 성전 봉헌을 축하하는 명절입니다. 8일 동안 집집 마다 촛불을 매 일 하나씩 밝혀 8일에는 가운데 큰 촛불을 중심으로 모두 아홉 개의 촛불을 밝혀 성전 회복을 기념합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을 드러내기에 알맞은 절기입니다. 예수님은 거듭 자신이 누구인지 밝혔지만, 유대인들은 네가 누구냐?’, ‘그리스도이면 분명하게 말해달라고 하는데, 그들은 예수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흔들 수 있는 마카비 같은 메시야, 영웅인가라는 의혹을 갖고 질문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힘의 메시야가 아닙니다. 그러한 힘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참 평화는 아니며, 그러한 메시야를 꿈꾸는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비 주체적으로, 그리고 개별적인 모습으로 초라한 자아, 여전히 껍데기 만 남은 자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시켜 버립니다.

   예수님은 8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대해 말씀하는 중에,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면서, 28절에서 내가 곧 나라 하며, 그 근거를 아버지의 말씀 만을 따르는 것에 있다고 합니다. 역설입니다. 나는 나라고 하면서 자기 의지, 생각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을 따른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의 나는 나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히브리노예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킬 때 스스로 밝힌 이름입니다.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나는 나인 분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들 예수가 나는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 10;30에서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 없으면, 예수님의 모든 자기 정체성인 빛, 생명, 진리, 포도나무, 양의 문 등은 허상일 수 밖에 없는데 예수님은 분명하게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나는 나라고 인식하는 순간 는 빛입니다. 생명입니다. 길입니다. 여러분! 길은 결국 입니다. 세상은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세상이 어두우니 빛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싫어합니다. 그러나 이미 아버지 하나님이 히브리 노예들 앞에서 나는 나라 하였고, 아들 예수 역시 세상의 어두움 속에서 나는 나라 하였습니다. 그러니 교우 여러분 우리도 주님을 본 받아 나는 나를 드러냅시다. 그러면 어떻게 나는 나일까요?

   주님께서는 오늘 말씀에서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라고 하십니다. 목축을 주업으로하는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이 말씀은 익숙한 삶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참된 목자가 누구이고, 거짓 목자가 누구인지를 봅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참 목자입니다. 이 문은 어떤 문인가요? 어린 양 피흘려 죽으신 십자가의 문입니다. 히브리 노예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출애굽할 때, 모든 기적과 재앙을 총 동원하여도 바로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지만, 마지막 어린 양 피흘리는 죽음으로 바로는 모세에게, 아니 하나님에게 백기를 들고 히브리민족을 이집트에서 내 보냈습니다. 또 아브라함이 인륜을 거역하고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따라 모리아산으로 올라가 이삭을 제물로 드려야 하는 일을 돌이키게 한 것도 어린양의 피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에 따라 바로와 대항하여 치열하게 싸울 때, 그 싸움을 멈추게 한 것은 어린 양의 피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인륜을 접고 자기 아들 이삭을 야웨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바치려 할 때, 칼을 든 오른 팔을 붙잡은 것은 덤불 숲 속에 준비해 둔 어린 양입니다. 어린양 피흘린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면 살려고 애쓰고 수고하는 것이 모두 헛될 수 밖에 없는데, 우리도 지금 그렇게 헛 수고하며 살텐데,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주시려고, 온 인류 모두에게 유일한 생명의 문인 십자가를 기필코 세우신 것입니다. 좁아보이고, 힘들어 보이고, 찿는 사람이 적지만 결국 문은 하나 어린양 피흘림의 십자가입니다. 나는 너, 나는 가족, 나는 일, 나는 돈, 나는 조직이 아니라 나는 나를 인도하실 분은 양의 문이시며 참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게 우리를 인도하지만 사람들은 스스로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가장 벗어버리기 힘든 것이 종교의 옷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틀에서 벗어난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 그 가짜들, 율법에서, 헬라철학에 익숙한 세상 학문에서, 로마의 시민에서 돌아섰습니다. 우리도 가짜에서, 내 것이다 라는 것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바로 빛이신 주님께서 빛으로 인도하십니다. 빛이 하도 밝아 바울은 눈이 멀었습니다.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바울은 그동안의 모든 것, 바울의 전 존재의 근원, 그동안 자신이 쌓은 모든 것이 나는 나'를 덮어 씌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자신이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으나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그동안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의를 얻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움이, 주님의 의로움이요, 바울의 의로움이요, 나의 의로움입니다. 나는 그렇게 죄 없다 인정받아 나는 나입니다. 무엇이 두렵습니까?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나는 나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참된 나는 다른 나가 고통받고, 힘들어하고, 애통해 할 때, 함께하려 하고 공감하려 합니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소아시아로 향하기 위해 두로아에 이르렀을 때, 밤에 환상이 나타나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우리를 도와달라는 간청에 유럽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여기서 갈린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그렇게 우리를 향해 살려달라고 손을 내미는 손 길들이 있을 때, ‘나는 나인 사람은 당연히 그 사람의 손을 잡아줍니다. 주님이 이 시대에 살아계시면 누구에게 찿아가 누구의 손을 잡을지는 자명합니다. 온 우주의 모든 피조물과 한 분 창조주 하나님과 한 분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성령님이 모두 각 자 하나이며, 또 그 하나가 온 우주의 피조물과 시간 속에서 하나로 띠를 띠어 탁월한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참된 나는 나이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을 참된 나로 인도하기 위해 믿음의 불모, 거짓 종교에 모든 삶의 가치가 무너진 당시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면서 믿음을 회복시켜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근데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가진 것을 지켜주고 유지시키며, 확대 재생산하는 종교구조, 물질에대한 애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로서의 참 믿음의 모습이 낯 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자 유대인들이 예수를 돌로 치려했습니다. 신을 모독했다는 것입니다. 참된 나는 아버지 하나님, 아들 예수, 거룩한 성령님이 모두 하나이며, 온 우주와 역사가 다 그 안에 함께 하나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아버지와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하면서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머물러 있을까요? 사랑 안에 머물러 있으라 합니다. 어떻게 사랑 안에 머물 수 있을까요? 내 계명, 말씀을 지키면 사랑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당신 스스로 아버지의 말만 따른다는 그 지혜입니다. 이게 진짜 지혜입니다. 유일한 지혜입니다.

   근데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종교 안에 만 머물러 있습니다. 주님이 그 편협한 하나됨, 자기 끼리 하나됨을 헤체시켜 버렸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된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성전에 가서 정식으로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죄 용서를 받고 회복되기를 바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양문 곁 베데스다 못에는 혹여나 물이 동하면 뛰어들어 병 고침을 받기를 바라는 민간신앙에 매달리는 희망없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주님이 오셔서 38년된 병자의 병을 고치시며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성전과 베데스다못으로 나뉘었던 죄 용서와 치유가 예수님이 베데스다 못에 오심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오늘 날에도 사회질서는 여전히 기득권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차별을 옹호하는 편협한 법 체계, 지금도 쉼 없이 기계처럼 소모되는 노동자들의 고통,인정받지 못하는 농민들의 땀 흘림, 거짓된 정보를 뿌리는 언론체계, 역사 왜곡, 관행과 무관심에 익숙하여 변화를 거부하는 고위급행정조직, 평화 보다는 전쟁을 외치는 것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낡은 이데올로기를 통해 사회 체제를 유지하려는 세력들 속에 휘둘리며 우리는 거짓된 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이시며 우리도 그렇게 나는 나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목자의 음성을 따르는 목자의 양입니다. 이스라엘은 양을 칠 때 자기 개인의 우리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주인의 양들을 한 우리에 함께 넣어 키웁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꼴을 먹이러 양 우리로 목자가 들어 가서는 자기 양을 데리고 나올 때 목자는 독특한 자신의 소리로 신호를 합니다. 그러면 신기하게 그 목자의 음성을 듣고는 그 목자의 양들만 따라 나옵니다. 한 마리도 예외없이 모두 다 따라 나온다고 합니다. 양은 아주 온순한 동물인데 아무런 제주가 없습니다. 싸울 줄도 모르고, 하소연 할 줄도 모르고, 그런데 한 가지 제주가 있는데, 그것은 오직 주인의 사인, 주인의 소리를 알아 보는 것입니다. 말씀할 때, 소리낼 때 알아들을 수 있는 것 이야말로 얼마나 귀한 지혜입니까? 주님이 우리를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로 인도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나는 나로 살기 원하는 사람들을 축복을 하십니다. 8:31, 32에서 너희가 내 말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는 내 제자가 될 것이며, 그리고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서로같이 나는 나로 복된 삶을 나누는 교회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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