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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 실마리 : 불쌍히 여김(창조절 두째 주일, 희년기념주일, 2019년9월8일)

하늘기차 | 2019.09.08 14:29 | 조회 945


               오후 3: 실마리 : 불쌍히 여김

201998(성령강림후제13)                                                                  3:1-10

 

부활의 감흥이 체 가시기도 전에, 성령은 제자들을 세상 사람들 앞에 세웁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향하던 중 아름다운 문곁에 앉아있던 앉은뱅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4, 5절은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그를 눈여겨 보고, 그에게 말하였다

                       "우리 를 보시오!" 그 못 걷는 사람은 무엇을 얻으려니 하고

                                두 사람을 빤히 쳐다 보았다.”고 합니다. “눈여겨 보고라는 말씀이 저는 불쌍히여겼다는 말로 읽혀집니다. 예수님이 52어의 기적을 일으켜 5천명을 먹이실 때에, 14:14절은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고 합니다. 또 나인이라는 성읍으로 향하시다가 나인성 과부의 외 아들이 죽어 관에 실려 성 밖으로 나가는 장례 행렬과 맞딱드렸을 때도, 7:13은 주께서 그 여자를 보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합니다. 아마도 아름다운 문곁의 걸인은 베드로와 요한이 바라보자 그저 한 푼 얻을 수 있겠다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눈여겨 봅니다. 불쌍히 여긴 것입니다. 이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걷지 못하던 사람은 다리의 힘을 얻어 회복되었습니다. 성경의 기쁨 중 가장 소중한 기쁨은 회복의 기쁨입니다. 돌아온 탕자, 잃은 양 한 마리 찿는 이야기는 모두 회복에대한 비유입니다.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다시 찿은 기쁨에 잔치를 벌입니다. 부부 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노와 사, 학생과 교수, 국가 간에, 민족 간에, 남북, 흑과 백, , , 모두 회복의 기쁨을 맛 보아야 합니다. 행복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오늘 말씀은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는 중에 생긴 일입니다. 이 사건은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하였고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는데, 3: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 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두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가의 다락 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전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과 40일 동안 함께 지내실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 찿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 입니까?”(1:6)하고 이스라엘의 회복에대해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 베드로가 예루살렘 성전 아름다운 문앞에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고 선포하는 만유의 회복과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의 체험을 받기 이전의 베드로가 바라보는 이스라엘의 회복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회복이라는 자기 중심적인 변화, 유대민족주의의 깃발을 높이 들려는 생각, 그러기 위해서 이웃 나라와 끝 없이 분쟁하는 회복이 아니라, 모든 만물, 온 세상 피조물의 회복입니다. 이러한 만유의 회복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이 세상의 모든 것, 모든 창조된 것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 아래 다시 놓여질 수 있을까요? 성령은 제자들의 닫힌 마음을 열어 새롭게 하셨습니다. 사물을, 세상을,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십자가에 달리며 죽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문곁의 걷지 못하는 사람을 바라봅니다. 성령의 내적 감동입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밖았습니다. 이 마음으로 손양원 목사님은 소록도로 향하였습니다. 이 마음으로 우리는 강남 지하철 8번 출구에서 김용희님과 성찬예배를 드렸습니다. 미군의 사드배치로 힘들어하는 소성리 주민들 곁으로 다가가 콘테이너를 들여 기도처소로 삼고 지금 까지 지켜오고 있는 강형규 장로님, 강정마을의 송강호 박사와 개척자들, 공동체, 루렌도 가족과 함께하려는 홍주민 목사님, 그리고 이주민 공동 행동 등, 모두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의 발로입니다. 기적은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역과 역할이 있습니다. 불쌍히여기는 마음인데, 이 마음은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 마음입니다. 십자가 마음입니다. 이 마음의 실마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기적은 사람들의 모든 가치관과 경험을 내려놓게 합니다.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낯 설어 당혹케 합니다. 관행, 관계, , , 등 사람들의 생각을 멈추게 합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어찌하여 이 일을 이상하게 여깁니까? 또 어찌하여 여러분은, 우리가 우리의 능력이나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하기나 한 것처럼, 우리를 바라봅니까?”라고 하며 말씀을 전합니다. 기적으로 놀라워하며 생각이 멈추어버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집니다. 기적이 없었으면 유대인들은 제자들의 말씀을 받아들였을까요? 설교의 내용이 어떤 내용인가 하면 소위 Kerygma입니다. 선포라고 합니다. 첫 째는 예수를 십자가에 메달은 인류 역사의 가장 큰 죄를 지었으니 회개하고 돌아와 죄 씻음을 받으라고 합니다. 아마 기적이 없었다면 받아들이지도, 양심의 가책도 없었을 것입니다. 둘 째부활에대한 증언입니다. 죽음이 생명을 이기지 못하며, 교회는 부활에서부터 시작이 된 것이니,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부활의 증거입니다. 지금 여기는 반상회가 아니라, 동창회가 아니라 교회로 모이는 것입니다. 세 째부활의 능력입니다.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하였습니다. 기적은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을 할 수 없는 십자가와 부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 당신들이 십자가에 못 밖았으니 회개하라는 Kerygma를 가능케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기적이 지금은 왜 일어나지 않는가? 라는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저는 왜 초대교회 때와 같은 기적이 지금 일어나야 하는지 반문을 합니다. 이 번 주 기독공보에서 요청이 와서 목양칼럼을 썼습니다. 4번을 써야합니다. 그래서 416과 관련한 글을 써야겠다 생각하고 그 첫 글을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제목으로 썼고, 추석이라 2번째 원고를 미리 보내 달라고 하기에 또 416목공과 관련한 원고를 써서 담당자에게 보냈습니다. 조금 있다가 카톡이 왔습니다. “목사님~ 3번째 원고는 고기교회 성도들과의 에피소드로 글 부탁드려요~^^ ”, “코너명이 목양칼럼이라서”, “ 다양한 소재로 써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목양이라는 말을 저는 싫어합니다. 양을 친다는 뜻입니다. 소위 양은 성도이고, 목은 목사인 것 같은데, 저는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목자는 지금도 주님 한 분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저도 양입니다. 단지 저는 말씀, 그리고 기도에 전념하는 목자가 아니라 양입니다. 그러니 다른 것에 대해서는 집사님들이 해 나가야 합니다. 이 기자는 눈에 보이는 교회 만 교회로 압니다. 무슨 무슨 교회라는 이름이 있는 내 교회에 갖혀 있습니다. 그동안 세월호 엄마 아빠들과 4년 동안 함께한 것을 교회로 생각을 안 하는 모양입니다. 김용희님과 강남 4거리 한 복판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교회 예배로 보지 않는가 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응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원고도 세월호에대해 보내려고 합니다. 세월호에대해서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목양이라 생각해 본적 없습니다. 그냥 엄마, 아빠들과 함께했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입니다. 고기교회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고정관념을 가지고는 오늘 교회의 위기시대를 한 걸음도 헤쳐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왜 기적이 지금은 안 일어나는가?’ 라고 묻기 보다는 기적은 멈추었는가?’ 라고 물어야 합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어찌 기적이 멈추었겠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한, 역사 속에서 더 이상의 생생한 만남은 없을 유일무이한 1세인, 제자들, 그리고 복음이 어두움과 죽음을 뚫고 힘차게 뻗어나가는 시점에서 일어나는 기적의 역사와 동네면 동네, 길이면 길이 48달 교회로 이어지는 때의 기적의 역사는, 다시말해 성령의 역사는 당연히 초대교회 때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것은 초대교회 이후의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따라 초대교회의 정신을 지금 이 시대에 회복하자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저는 이러한 질문 이 전에, 이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묻고 싶습니다. 예수님 공생애 초창기에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이삭을 따서 손으로 비벼 먹습니다. 그 때 바리세인들이 그 모습을 보고 율법을 어겼다고 시비를 겁니다. 저는 그 당시 제자들이 객기를 부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님이 우리 대장인데 무서울 것이 없지 하며 어깨 올리고 두목 예수를 모신 기분에 그 기세가 한 껏 부풀어 오르지 않았나, 그러니 그동안 자기들을 얽매었던 율법을 무시하는 행동이 나왔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십자가를 향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제자들이 서로 누가 높은 자리에 오를까 하던 것을 보면, 유대교의 규례와 절기는 제자들의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 예수님도 안식일 지키지 않으셨는데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들뜬 어깨들은 십자가 앞에 다 무너졌습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은 다 무너졌습니다. 한국 교회가 경제 부흥과 함께 성장하며 꽤 어깨가 올라갔습니다. 기적도 한 목 했고, 귀신을 쫓아내고, 치유와 회복 등 수 많은 일들을 해 냈습니다. 그 모습이 제자들의 모습과 오버랩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변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향하던 중 아름다운 문곁에 앉아 구걸하는 걷지 못하는 사람을 눈여겨 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이 마음은 십자가에서 드러내신 주님의 마음이요, 하나님 마음입니다. 주목해야할 것은 오후 3시입니다. 제자들이 유대인들의 예배와 규례를 겸손히 지켜나갑니다. 제자들이 변하니 조상들이 지켜오던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의 소중함이 보입니다. 제자들이 걷지 못하는 사람을 눈여겨 본 실마리는 성전을 향하는 마음입니다.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나에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없지만 사모하는 마음은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사모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시편은 그 마음을 사슴이 시냇물을 찻듯이 라고 합니다. 또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 보다 더 하다고 하였습니다. 갈급합니다. 저는 이 마음이기를 원합니다.

무언가 하나 얻으려는 사람을 근원적으로 회복시켰습니다. 그 처음이 오후 3시 기도회에 참석하는 중에 일어났습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 하나 구걸하여 그 날 하루를 넘기려는 사람에게 성령은 베드로와 요한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타고 하루가 아니라, 전 생애의 회복을 허락하였습니다. 교회에서 드리는 주일 오전, 저녁, 그리고 수요 성경강해, 새벽, 구역예배를 통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늘 반복되는, 나와보아야 그만그만 한 것 같은, 그러나 정해진 장소, 시간에 따라 교회 이름으로 드려지는 모임을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오늘도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 복음의 기쁨,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 기적의 역사, 회복의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이 마음을 얻는 실마리를 잃지 마시기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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