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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씨, 기쁨의 단 (추수감사주일, 2016.10.30.)

mungge | 2016.11.04 20:46 | 조회 1713



제목: 눈물의 씨, 기쁨의 단

본문: 시편 126

설교: 김준표 목사

 

오늘 본문 126편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1~3절이 과거에 구원을 베푸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이라면, 4~6절은 과거의 구원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위기에서도 다시 구원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1돌려보내실 때” 4돌려보내 주십시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하나님이 앞으로 베푸실 구원을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의 기쁨으로 비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대인들의 역사를 보면 그들에게 아주 큰 고통과 아픔의 사건이 있었음을 봅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 제국에 멸망하고, 남유다는 바벨로니아 제국에 멸망하여 나라를 잃어버린 사건입니다. 그런데 고대 신정일치 사회에서 한 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단순히 국가의 주권을 강대국에게 빼앗긴 민족의 아픔 그 이상의 사건이 됩니다. 그들이 믿고 따르던 민족의 신이 능력을 상실해 버리고, 다른 민족의 신들과의 전쟁에서 항복하고 무릎 꿇은 사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방의 그 어떤 신보다 더 위대하다고 믿었던 여호와 하나님이 영원토록 거하시겠다고 약속했던 예루살렘 성전이 와르르 무너지고,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라고 했던 이스라엘 나라를 빼앗겼으니 유대인들의 마음은 얼마나 혼란스럽고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들 나라의 멸망을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없음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나라를 빼앗긴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못한 자신들의 죄 때문이고, 특별히 희년사상에 근거해서 땅에 안식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대하36:21, 26:34) 원수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70년 동안 황폐하게 된 땅이 비로서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는 유대인들의 사고는 정말 독특한 역사관이고 신앙고백입니다. 그래서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은 포로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하나님을 저주하거나 여호와 신앙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을 찾았고, 두 번째 출애굽을 꿈꾸듯 그들을 포로지역에서 이끌어내고 회복하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구전과 두루마리에 파편적으로 내려오던 모세오경을 하나로 묶어 성경을 만들었던 시기가 포로기였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하는 좋은 증거입니다.

포로로 끌려가 있는 70년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힘겨움과 고통으로 한숨짓고 눈물 흘리는 인생을 살았을 유대인들에게 드디어 꿈같은 일이 생깁니다.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 제국의 왕이 유대인들의 고향인 가나안땅으로 되돌아가도 된다고 허락한 것입니다. 나라도 잃고, 게다가 전쟁의 포로로 끌려가 갖은 고통과 슬픔에 잠겨 있던 유대인들에게 이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비참한 포로생활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유대인들의 입에는 웃음과 찬양의 함성이 가득찼다고 성경은 말합니다.(2) 그런데 잠깐 생각해 볼까요. 포로로 잡혀간 세월이 70년입니다. 70년이면 포로로 잡혀갔던 성인들이 생생한 모습으로 되돌아 올 수 있는 기간을 넘어섭니다. 20대 초반에 끌려갔던 이들은 90세가 넘었으니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황이었거나 이미 죽음을 맞이한 때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포로기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포로로 끌려갔던 이들보다는 이들의 자녀들이었을 것입니다. 한 세대를 30년이라고 하니 이미 두 세대를 넘은 것이고, 하나님께 회복의 기도를 간절히 드렸던 이들에게 찾아온 해방이 아니라, 그 후세들에게 찾아온 구원과 회복이었습니다.

이제 시편의 시인이 왜 하나님의 구원사건을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의 기쁨과 연결 지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봄에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마음은 어떨까요? 지금 농사를 짓는 분들이 봄에 씨앗을 뿌리면서 눈물을 흘리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 해 농사가 하늘의 도움으로 제때 내려주는 비와 필요한 만큼의 햇빛, 그리고 농작물에 피해를 줄 태풍이 잘 비껴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씨앗을 뿌릴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 본문 5, 6절에 나오는 씨를 뿌리는 사람은 눈물을 흘립니다. 여기에서 씨를 뿌리는 사람은 심은대로 거두리라는 땅의 당연한 이치를 알고있는 농부일뿐 아니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깊은 좌절과 고통 속에서 인생을 경작하고 꾸려나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나라를 잃고 삶의 뿌리가 뽑힌 채 포로로 잡혀와 고통 속에 살고 있었던 포로된 유대인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언제 있을지 모르는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살았던 삶을 회개하고,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달라고 간절한 눈물로 하나님께 호소하였습니다.

눈물의 기도를 드린 이들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포로로 묶여있는 그들의 운명을 바꾸고, 죽음에서 건져지는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4절의 네겝의 시내들에 다시 물이 흐르듯이가 그것을 표현해 줍니다. 여기에서 네겝은 이스라엘 남부에 넓게 펼쳐져 있는 광야, 사막의 땅을 말합니다. 이 남방의 땅은 항상 바짝 말라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폭우처럼 쏟아지는 빗줄기에 강과 시내가 생겨나고 주변이 푸르러지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기적과도 같은 일을 이루어주셨습니다. 눈물의 기도가 이룬 기적은 70년의 포로생활을 하고 있던 유대인들의 자녀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기적 아닌 것이 없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자연만물이 새로워지는 새 세상을 맞이하며, 그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일용할 생명과 양식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고집스럽고 이기적인 우리들이 오늘 이 시간 주님의 이름을 찾고, 그 분의 얼굴을 마주하고자 이 예배에 참여한 것도 기적입니다. 우리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자녀들이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사랑을 나누며 건강하게 자라나는 것도 기적입니다. 가을 추수를 맞아 우리의 땀과 노력 없이도 귀중한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것도 기적입니다. 어느 것 하나 우리 힘과 능력으로만 되는 것이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이 기적은 어떻게 어디에서 왔습니까? 누군가의 눈물과 희생의 기도의 결과입니다. 그 기도는 우리 부모님의 기도일 수도, 이웃의, 농부의 기도일 수도, 아니면 피조물들의 탄식의 기도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눈물의 씨가 현재 우리가 누리는 기쁨의 단이 된 것입니다. 본문의 5,6절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중간에 단어를 하나 더 첨가하는 것이 좋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은 (누군가가 뿌린 씨를) 기쁨으로 거둔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은 (누군가 뿌린 씨의) 기쁨의 단을 가지고 돌아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눈물의 기도는 모든 생명들이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눈물의 기도는 생명의 경계를 허물고, 시간의 장벽을 뛰어 넘어 우리 모두를 주님 안에서 하나 되게 하는 기적을 만들어 줍니다.

성도님들도 오늘 눈물의 씨를 뿌리십시오. 그것은 자녀를 위한, 가족을 위한, 이 땅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뭍 생명들의 조화로운 삶을 위한 눈물의 기도입니다. 우리의 눈물의 씨는 자녀에게, 이웃에게, 자연만물에게 기쁨의 단으로 돌아옵니다. 눈물의 기도는 메마른 사막에 물길을 내는 하나님의 기적임을 잊지 맙시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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