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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포도주 : 부끄러움(사순절네번째주일, 2017년3월26일)

하늘기차 | 2017.03.27 14:51 | 조회 1692


                 빵과 포도주 : 부끄러움

사순절 네번째주일                                                                                                          요6:55-65

   52어의 기적 후, 사람들이 예수님을 다시 찿았을 때, 썩는 양식 말고, 영생을 위한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느냐고 다시 묻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무슨 표징을 보이시겠냐고 하며, ‘당신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믿으라고 하는데 다시 일에대해 묻습니다. 일에 지독하게 매여있습니다.

   55절에서 예수님이 내 살은 참 양식이요, 내 피는 참 음료이다라는 말이 나온 것은 분명이 믿으라고 하였는데, 자꾸 딴 소리 하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한 것인데, 그 보내신 사람이 예수라는 것을 직감한 사람들이 열을 받아 우리 조상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종 모세의 기적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만나를 먹었는데, 네가 무언대, 건방지게 믿으라 마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열을 받아가지고, 모세의 기적을 통해 내린 빵도 역시 하늘이 준 것이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하며, 하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라 합니다. 여기에 사람들이 한 수 접고 들어갑니다. 아마도 겉으로만 그러는 척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그 빵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거두절미 하고 내가 생명의 빵이다라고 합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말을 한 것입니다. 그들의 율법책과 기도서와 성전에서는 눈씻고 보아도 없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먹는 빵에서 영적인 빵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라고 하니 사람들의 얼굴이 사색이 됩니다. 이 친구는 요셉 아들이잖아 합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이 사마리아여인과 대화할 때와 흡사합니다. 처음에 먹는 물 달라 하다가,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영적으로 순간적으로 넘어가자, 사마리아여인이 그 물 좀 달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내 남편 데려 오라합니다. 예수님은 이 여자의 안타까운 삶을 보신 것입니다. 그런데 52어의 기적을 맛본 사람들은 예수님이 내가 생명의 빵이다라고 하며 먹는 빵에서 영적인 빵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수군거리기만 하는데, 광야에서 만나를 처음 보았을 때도 조상들은 수군거렸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36절에 보면 나를 보고도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기 일에 매여서, 종교의 벽에 갖혀서 스스로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여전히 자기 주장만 합니다. 예수님은 믿음에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며 영적인 성찬으로 넘어가는데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꾸 믿음의 대상을 우상화 시킵니다. 그럼 자기 책임이 없거든요. 하나도 없거든요. 양심의 거리낌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거든요. 교회생활 만 잘 하면 되요. 사회와 역사와 자연에 부끄러울 것이 없어요. 왜요? 교회생활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해 주시니까요. 바로 그 하나님이 우상입니다. 하나님 이름 걸어 놓고, 하나님 뜻과 그 나라와 상관 없이 자기 일, 자기 좋은 것 하며 눈물 흘리기 까지 자기 만족을 합니다. 예수님이 왜 믿음에서 성찬으로 넘어갔을까요? 믿으라, 믿으라 해도 이 사람들이 믿지를 않고 자기 일만 하려고 해요. 이미 주신 하나님 나라를 구하지도 누리고 싶어 하지도 않아요. 이미 세상의 좋은 것들을 누리고 있고, 설사 누리지 못하더라도 잘 믿고 봉사하면 누리게 된다고 교회의 모든 체제를 종교화 하고 우상화 하였기 때문입니다. 들꽃과 공중의 새와 가축들, 노동자들, 외국인들, 역사와 통일, 왜 사드가 배치되면 안되는지, 4대강이 참담하게 망가졌는지? 왜 핵발전소는 안되는지?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합니다.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됩니다. 마치 우리 안에 갖힌 새입니다. 동물원의 동물 같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믿음에서 살과 피를 먹어야한다는 것으로 넘어 갑니다. 니고데모도 그렇구 우리는 하늘을, 위를 바라보는 것이 신앙이라 여깁니다. 그렇게 해서 역사 이래로 종교적인 틀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이신 예수님이 육신이 되신 것은 하늘이 아니라, 하늘의 기적이 아니라, 땅의 기적을 보라는 것인데, 니고데모처럼 자꾸 하늘 만 바라봅니다. 예수님이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한 것은 니고데모에게도 이야기 했듯이, 3:12처럼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떡과 포도주로 넘어간 것은 땅의 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땅에서 햇빛과 바람과 비를 맞고 잘 자란 곡식과 열매에서 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하늘 보좌 버리고, 이 땅에 내려와 십자가에 달려 찢기시고 흘리신 살과 피를 마치 떡과 포도주처럼 먹고 마시라 하며 영적으로 넘어갑니다. 예수님은 영적이라 하며 땅의 것에대해 말씀합니다. 그래서 당시에도 사람들이 헷갈려 한 것입니다. 유대교 매뉴얼에는 없습니다. 성찬은 말씀의 육화, 체휼. 살이되고 피가되는 영적인 찌개 백반입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주께서 주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잔치에 참여하는 처음은, 먼저는 무엇일까요?

   호인수 신부님의 <목련이 질 때>라는 시집 중에 첫 시인 장발(長髮)’이라는 시입니다.나를 무슨 반역죄인처럼 / 눈 부릅뜨고 잡으려 하지 마세요(중략) / 친구의 울음소리마저 들을 수 없는 귀가 부끄러워 / 가리고 다니는 것뿐이에요 / 세상에는 아부도 많고 위선도 많지만 / 이 부끄러움을 가리지 않고는 / 죽어도 얼굴을 들 수가 없어 / 마지막 붙들고 있는 나의 양심이에요 / 정말이에요(1978년 작)

     학교 다닐 때 장발단속을 피해 골목길로 다니고, 그리고 저항과 자유라눈 명분으로 치렁치렁 잘 기른 머리를 잘리기 싫어 경찰과 몸싸움 하며 신경이를 부리던 생각이 나는데, 이 시인 신부님은 장발의 이유가 친구의 울음소리마저 들을 수 없는 귀가 부끄러워 가리려 했을 뿐이라고 씁니다. 유아세례를 주며라는 시에서는 나의 때 묻은 두 손으로 / 하얀 네 이마에 물을 붓는다 (중략) / 훗날 네가 부모 되어 / 너의 아기 품에 안고 오늘처럼 내게 올 때도 / 우리는 아기 앞에서 / 이렇게 부끄러우면 어쩌지호인수 신부의 시를 한겨레 신문에 인용한 평화학연구자 정희진님은 그 시집에서 제목만 있어도 되는 시로 <혼자 드리는 미사>라고 하며 시인은 평생 부끄러웠던 것 같다. 부끄러움을 깨달은 인간의 처음 행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몸을 숨기는 것이다. 그런데 검은 사제복은 얼마나 두드러져 보이는가. 게다가 사람들은 신부님, 신부님하며 모셔댄다(얼마나 괴로웠을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과 싸우느라 그저 탈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끄러움을 견디며 시를 쓰는 이도 있다. 나는 부끄러움을 다시 배운다.”고 합니다. 땅에서 이루어지는 일에대해 부끄러워합니다.

   저는 성찬의 삶의 처음은 부끄러움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에 하늘 보좌를 버리고 마굿간에서 태어나 십자가에 달리어 살이 찢기고, 피를 다 쏟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에 일말의 은혜를 깨닫는 처음은, 먼저는 부끄러움입니다.

     태극기 집회가 극성을 부립니다.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탄핵이 되자 대통령 입후보자들이 서로를 물고 뜯기 시작합니다.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이 사회와 교회가 부끄러움을 사회 밖으로 추방해 버린 것입니다. 사실 태극기 집회에 나오는 사람의 대부분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몸으로 겪은 소외된 우리 부모님, 할아버지입니다. 문제는 무대에서 발언하며, 태극기를 선동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체제>를 양상해 낸 기득권자들입니다. 성경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울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울이 스테반 집사를 돌로 처형할 때, 7:58에 보면 그 뒤에서 증인들은 옷을 벗어서,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지도자였던 모습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종교적 기득권을 수호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서북청년단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후 바울은 핍박자에서 전도자가 되었고, 복음을 전파하면 할수록,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내적으로 성숙해져, 예수님의 십자가의 깊은 은혜의 자리에 들어섰을 때 한 말이 부끄럽다는 것이었습니다. 1:15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에 대해 나는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을 합니다. 13절에서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은

               내가 믿지 않을 때에 알지 못하고 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다고 고백을 합니다. 선교 초기에는 자신이 예수의 12사도와 동급인 주님이 인정한 사도라고 강력히 주장하던 바울이 시간이 갈수록 자기는 죄인의 괴수라고 하며 부끄럽다고 합니다.

   부끄러움의 맞은 편에 긍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이 땅에서의 실마리는 부끄러움이 아닐까요? 그동안 자기 잘 난 맛에 교만하게 살았는데, 십자가의 은혜로 자기가 얼마나 부끄럽게 살았는지 전에는 몰랐는데 이제는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와 있는 것을 보기 시작합니다. 윤동주 시인은 일본의 식민통치가 길어지며, 이광수나 최남선 같은 변절자가 생기고, 탄압이 극에 달하여 두려움과 패배감에 사로잡힐 당시, 서시를 통해 부끄러움을 이야기 하며 억압에 저항합니다. 부끄러움은 저항이며, 자유이며, 평화의 시작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시작입니다. 지금의 탄핵과 대통령 선거는 국민들의 부끄러움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요? 세월호, 백남기님 등의 수 많은 살의 찢김과 피흘림에대해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깨달음, 부끄러움말입니다. 그러나 성도와 교회는 십자가 앞에서 좀 더 깊은 부끄러움에 머물러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교회 논 바로 잎구에 노루귀가 노란 복수초와 함께 분홍빛 꽃몽우리를 피워 올렸습니다. 서양꽃은 선명한 색깔로 확연히 자기를 드러내는 반면, 우리꽃은 주변과 어울려, 있는 듯, 없는 듯 마치 부끄러운 것처럼 꽃을 피웁니다. 자세히 찬찬히 머리숙여 보지 않으면 그냥 스쳐지나 갈 수 있습니다. 찬찬히, 자세히 자기를 낮추어 섬세하게 세상을 보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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