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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주현절 일곱번째주일, 2017년2월19일)

하늘기차 | 2017.02.19 14:08 | 조회 1150



                             어떤 사람

주현절후 일곱째주                                                                                                          막4:26-29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나라와는 다르게 존재합니다. 지난 주에 하나님께서는 역사와 우주의 생명질서를 스스로 낮아짐을 통해 세우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모습이나, 섬기는 사람을 윤리나, 제도로 보면 본질적인 것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근원적인 생명의 몸짓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스스로 낮아짐 속에는 주권자의 영광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데, 사도 바울은 빌2장에서 예수의 십자가에서 주권자의 영광을 보았다고 증언합니다. 본다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드러나 있는 것의 참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주현절 7번째 주일인데, 주님의 특성 중의 하나가 자기 발현, 드러냄이라 하였고, 세상의 온갖 것들이 새는 새대로, 나누는 나무 대로, 하늘의 별들은 별대로 하나님을 닮아서 자기 발현을 한다고 하였는데, 새가 나무처럼 자기를 발현하지 않고, 나무가 자존심이 있지 새처럼 자기 잘난 것을 드러내지 않듯이, 하나님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방식으로 발현하기 때문에 세상의 논리와 가치로는 그 발현을 볼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랬다가는 예측할수 있는 분이어서, 욕심많은 인간들에 의해 우상으로 섬겨지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시떨기나무 가운데 발현하셨을 때에, 다가오는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상 속에 스스로를 드러내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씨를 뿌려 놓고 밤낮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그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지만 어떻게 그렇게 되는 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열매가 익으면 낫을 댑니다. 추수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이 전체 과정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씨를 뿌리는 사람을 농부라고 하지 않고 어떤 사람이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이 사람들 앞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상상을 해 보면, 농사짓는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은 듣는 사람들은 아! 이것은 내 이야기 이구나 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중에 누가 가장 예민한 반응을 보였을까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야 대망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왔을 즈음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묻는 것처럼, 특히 예수님의 활동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대한 기대감은 매우 높아만 갔습니다. 아마 예수님 당시에 가장 하나님 나라를 급히 원했던 무리는 열심당원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 투쟁의 깃발을 올렸던 사람들입니다. 로마가 곧 멸망하고, 다윗 왕권 시대의 영광의 나라가 곧 올 것을 희망하며 살았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듣고 실망하여 등을 돌린 열심당 제자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투쟁하며, 동지애를 나누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하는데, 그 나라를 위한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모른다고 하니 답답하였을 것입니다. 처음에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 역시도 예수를 권력을 가진, 힘 있는 메시야 관을 가지고 바라 보았는데, 22:27은 그러한 제자들과 사람들을 향하여 단호하고, 명료하게 섬기는 사람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을 보면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기 직전 까지도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오냐고 묻는 모습을 보는데, 예수님은 이러한 관심에대해 너희가 알 바 아니라고 일축하십니다. 여러분 알 이유가 없겠습니까? 공생애 3년 동안 줄 곳 일관되게 말씀하신 것이 하나님 나라인데 어찌 알 바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알 바 아니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너희가 생각하는 그러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 수 없습니다. 비밀일 것도 없지요, 그동안 숫하게 말씀하셨는데 말입니다. 다윗의 왕권을 바라보는 식으로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고 여전히 세상 나라입니다.

     교우여러분! 하나님의나라는 먼저 씨를 뿌려야 합니다. 뿌리지 않으면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면 씨를 뿌려 보았나요? 하나님의 나라의 씨는 누가 뿌리나요? 기독인인가요, 교회다니는 사람인가요? 오늘 말씀은 어떤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특권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세워지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열매는 보이거든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이 세상의 삶과 제도권 속에서 퍼져나갑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열매가 어떻게 맺어지는지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참 독특합니다.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나라입니다.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집니다. 세상에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여기 있습니다. 어떤 사람입니다. 여러분 기왕에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살려고 한다면 이 신비로움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익숙해져야 한다고 한다면, 이것은 훈련되어야 합니다. 저는 제자훈련이라는 것을 신뢰하지 않지만,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우리 가운데 세워져 나가는지를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훈련입니다. 그러니까 나의 공과가 없습니다. 업적이 없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비를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편지에서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고 하면서 심는 자와 물주는 자가 하나라고 합니다. 자라게 하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씨를 뿌리는 어떤 사람으로 살려면, 여기에는 어떤 특권도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 백성 같은 틀이 없습니다. 그냥 어떤 기독인인데, 그렇게 신앙하려면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의 표현에서도 보았듯이 하나님의 역할과 어떤 사람의 역할이 다릅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 역할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분노하게 되고, 좌절하게 되고, 무기력해지고, 매너리즘에 빠집니다. 생명의 일을어떻게 인간이 알거나, 할 수가 있나요? 그러나 우리는 어떤 사람, 씨뿌리는 사람입니다. 즐기십시오. 자기 역할에 충실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롬14:17,18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체적인개념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

                          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그리스도를 이렇게 섬기는 사람은,

                           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와 디아코니아가 연결이 되네요. ‘그리스도를 이렇게 섬긴다고 합니다. 바울은 예수를 권력을 회복할 능력있는 자로 바라보던 처음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이 섬기는 자로 있다는 것을 압니다.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누린다고 합니다. 누린다는 말은 즐거워한다는 것 아닌가요? 하나님의 나라가 추상적인 언어가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우리가 살아가는 제도 속에, 정치, 경제, 사회와 문화 속에 그대로 있다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먹고 마시는 것에 매여버리고 말았잖아요? 이러한 틀 속에서 어떻게 전환, 페러다임의 변화를 가져 올까요? 단순합니다. 이 나라에 참여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 처럼 누리십시오. 이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가 오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사람은 뿌릴 줄 알아야하며, 기쁨으로 씨를 뿌립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에게 속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권한을 넘 보지 말고, 기뻐하며, 즐기십시오.

   그런데 뿌릴 씨앗은 있나요? 이미 종자씨앗 까지 다 팔아먹은 것은 아닌지요? 전 세계가 테러리즘 같은 폭력에 노출되었는데도 하나님 나라의 모습 중에 가장 소중한 평화가 교회에서 보이지를 않습니다. 세상은 세상일 한다 하더라도, 교회는 평화를 전하고, 증거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제 봄이 오고 있는데, 텃밭을 가꾸려면 씨앗을 선별하여, 묘종을 해야하는데, 평화의 씨앗은 구했나요? 성도들은 생명, 정의 평화의 씨앗을 어디서 구하나요? 우리 안에 평화의 씨앗, 마음의 평화가 없는데 어떻게 평화를 뿌릴 수 있나요? 왜 우리의 마음에 평안함이 없고, 불안과 분노만 남았을까요? 자꾸 하나님 역할하려는 것은 아닌가요? 뿌리는 것이 아니라, 자라는 것에 마음을 쓰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어떻게 생명이 자라며, 평화가 세워져 나가는 것에 털 끝 만한 관여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쁨으로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 분노가 있나요? 절망감 속에 무기력해 졌나요? 혹 하나님의 역활을 건드리지 않았나요? 예수님의 달란트의 비유에서 처럼 1달란트 맡은 사람이 과정이 부담스러워 뿌리지 않는다면, 있는 것도 빼앗깁니다. 우리는 이제 내게 있는 평화의 씨앗을 다 빼앗기지는 않았는지요?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에 편지하면서 거듭 기뻐하라고 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간구하며, 기도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 속에대해 감사의 기도가 있나요? 하나님 나라 씨앗의 종자입니다. 감사하는 기도가 하나님의 평화를 불어온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어떻게 하나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줍니다. 자꾸 처음에 가진 마음과 생각을 놓쳐버립니다. 어디서 놓쳤나 보면 감사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의 평화를 부르고, 그 평화가 마음과 생각을 지켜줍니다. 기쁩니다. 즐거워합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기독교 단체가 있습니다. ‘평화를 뿌리는 사람들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누가 뿌리나요? 예수믿는 사람? 교회에 다니는 사람? 어떤 사람입니다. 어떤 특권도, 기득권도, 신앙생황 10, 30, 모태신앙, 목사, 장로 어떤 기득권도 없습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기독교인이나, 교회 성도는 아니지만, 어떤 사람은 기독인이어야 하고, 성도들이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예수 그리스도의 죄 사함의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최소한의 기독인의 자존심입니다. 이 자존심 다 팔아먹지는 않았는지요? 감사와 기쁨으로 즐거워하며, 하나님 자리 넘 보지 말고, 내게 주신, 줄로 재어 준 내 구역을 섬세하게 최대로 확장하며, 다른 피조물과 충만한 조화로 평화를 함께 즐기는 고기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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