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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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삶 : 교회공동체의 삶 Ⅱ(창조절 여섯째주일, 2018년 10월 14일)

하늘기차 | 2018.10.14 14:38 | 조회 1175


                   종말의 삶 : 교회공동체의 삶 2

20181014(창조절 여섯째주일)                                                                          4:4-9

     이제 곧 수능 날자가 다가옵니다. 시험이 1115()이니 한 달 남았습니다. 수험생이 없는 자녀는 수능날자가 언제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수험생들의 가족은 하루하루가 새롭습니다. 모든 것들이 그 때를 향하여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다른 모든 것들은 정지되고 유보되어 있습니다. 종말은 이와 같습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부활 승천 하신 주님께서 분명히 동시대에 곧 오리라는 믿음때문에 모든 것이 주님 다시 오심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의미가 부여된 시간을 카이로스라고 합니다. 그러나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의미없이 물 흐르듯이 흘러갑니다. 이런 시간을 헬라어 원어 성경은 크로노스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어머니 마리아가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자 내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한 것은 주님이 십자가에 시간의 의미를 맞추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온 인류가 그 은혜를 입는 그 때야말로 이 죄된 인간 세상에 있어서 가장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며, 그 때에 모든 시간은 정지되고, 그 십자가의 죽으심이 온 우주 공간과 시간에 퍼져나갑니다. 바로 2000년 전의 십자가의 죽음이 지금 이 시간에 나에게 카이로스로 다가오며, 또한 앞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는, 마지막 심판이 현재 나에게 카이로스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건이, 또한 주님 다시 올 그 사건이 지금 이 순간에 나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내 삶을 주관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입시생은 지금의 하루 하루가 모두 그 입시를 향해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 일을 위해 모든 것들이 유보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잠,친구 만나 수다 떨기, 영화보기, 소설 읽기, 여행, 음악 듣기 등...그 모든 것이 입시날이라는 시간에 맞추어 정지되어 있습니다. 미래의 시간이 지금 나의 삶을 주관하며, 의미를 부여합니다. 종말도 그와 같습니다.

   성도는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가치를 O으로 놓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개인의 신앙이 아니라, 공동체 신앙이라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세계적인 사회 경제 정치적 거대 담론의 틀 안에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폭력적이기도한 세상의 세속적인 가치의 틀에 매이지 않고 기쁨으로, 평화로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비롯되었다고 지난 주에 이야기하였습니다. 혼자서는 앞으로 다가 올 세상의 더 큰 힘과 틀 앞에 너무나 무력해 질 수 밖에 없으며, 그래서 꼭 교회공동체뿐 아니라, 교회는 세상을 장악하려는 시대적 흐름 속에 함께 인류애를 나누는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모두와 연대해야 합니다. 전에 연대한다는 말이 성경에 에이레네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다락방에 모여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찿아와 평화라고 했을 때, 그 원어가 에이레네이며, 이 말의 원 뜻이 공감하라’, ‘함께하라여서 연대가 어떤 운동권의 무슨 공산당, 빨갱이의 언어가 아니라, 예수님이 친히 두려워 떠는 제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하신 말씀이어서, 이 말에 폭넓게 의미 부여를 하면 바로 연대라는 말이고, 이 말을 세월호 사건이 터진 이 후 프란체스코 교황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제 용인시 교회 모임의 축구시합이 있었습니다. 8월에 공문이 왔고, 그러니 처음자리 FC는 모든 잇슈가 용인축구선교대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2달 동안 선수선발, 연습일정, 친선 게임, 비용, 유니폼, , , 그렇게 준비하였습니다. 12무했다고 합니다. 처음자리 FC가 어제 용인교회들과의 축구시합을 위해 준비하는 모습은 마치 교회가 다가오는 종말을 위해 준비하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축구가 혼자 게임하거나, 혼자 준비할 수 없는 것처럼 종말도 혼자 준비할 수 없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혼자 은사가 깊고, 혼자 축복을 많이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전체가 함께 은혜를 입고, 교회전체가 공동체로 신앙이 고백되어지고, 기쁨과 슬픔과 시대적 아픔을 함께 체감하는 것입니다. 마치 축구가 각 포지션 별로 역할을 감당하지만 승리와 패배는 혼자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선수들 만이겠습니까? 뒤에서 응원하는 가족들,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수만의 헤아릴 수 없는 먼저 간 성도들이 운동장의 관람석에 앉아 우리가 결승점을 통과하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종말을 기다리는 한 팀입니다. 교회 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이 때를 기다리고 있으며, 성도들은 그 맨 앞 전선을 사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은사에대해 열기가 지나친 것을 지적하며 더 큰 은사는 사랑이라 하며, 오히려 교회에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이 더 요긴하다고 합니다. 고기 교회 만 교회가 아닙니다. 지구 전체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자연생태계의 아픔, 지구촌 난민, 성소수자, 노동자, 농민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이고, 그들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교회공동체가 지향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을 따라 우주가 지금도 확장되어 가고 있듯이 퍼져나갑니다.

   세월호 가족들과 가까이 함께하며 늘 애잔한 마음이 듭니다. 어느 세월호 엄마는 최근 까지 밖에 나가는 것을 꺼려하며, 집 안에 만 계속 머물고 있는데, 최근 우울증에 숨이 막히는 답답함을 호소하며 정신 병원에 입원 가료중입니다. 지난 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통 말을 하지 않습니다. 말 할 이유도 없지요. 남편이 그 아내를 품고 지금 까지 지내오고 있습니다. 적지않은 세월호 가족들이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가족들은 여전히 과거의 사건에 매여서 풀려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죽게한 폭력과 죽음, 그리고 거짓의 카이로스에서 벗어나려하지만, 과거의 어두움에 매여서 하루 하루를 살얼음판 걷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전환을 위한 동기부여가 주어져야 할텐데, 기쁨으로 종말을 살아내야할 교회공동체가 종말의 카이로스를 살아내지 못한다면, 어두움의 카이로스에 붙들려 살 고 있는 세월호 가족들에게 이렇게 삽시다 라고 하며 돌이키게 할 수 있느냐 라는 것입니다. 어두움의 카이로스에 묶인 사람들에게 교회는 기쁨과 평화 자유의 카이로스여야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까 라는 것이 오늘 이 시대에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신앙이 깊어지고 높아지고 넓어져 그리스도의 분량에 까지 이르러야한다는 것은 믿음이 좋아 사업도 잘되고, 자녀도 잘되고, 건강도 좋아지고 라는 식으로 자본의 논리에 함몰되는 개인의 신앙이 아니라, 마땅히 교회공동체가 주님 안에 머물며 함께 누리는 기쁨을 공유하며 맛 보고 나누어 세상에 넘쳐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처음자리FC가 우승했어요, 혼자 기쁜가요? 모두가 기뻐하는 것입니다. 패했어요, 그것도 완패를 했다면 센타 포드 혼자 참담한가요? 팀 전체가 참담해 하는 것입니다. 이런 함께하는 내적 공감이 교회에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잃어버렸고, 어디에서 다시 찿아올까 라는 것입니다. 이런 회복 없으면 교회는 앞으로 비죤이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과 달리 세상을 고통하는 사람들을 통해 인지하는 가난한 모임입니다. 종말은 믿는 자들에게 종말입니다. 저는 미국의 부르더호프 메이플릿지에서 어떻게 공동체가 세상을향해 죽음과 삶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사도 바울이 십자가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벽을 허물 듯이 세상의 벽을 너끈히 부수는 참 평화와 기쁨의 삶을 살아가는지 조심스럽게 볼 수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평화와 자유, 사랑,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 같은 표정, 말들이 어떤 특별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과 소소한 모임을 통해 배려하며, 소통하며 100여년이상 후손들에게 이어져 왔습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 올 세상을 이기려면 이러한 공동체 전체가 누리는 평화, 기쁨으로부터 일 것입니다. 이미 초대교회가 그리고 곳곳의 공동체가 그 평화, 자유를 보여주고 있는데, 문제는 하루하루를 세상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교회의 성도들이 어떻게 그 공동체적인 생명과 정의와 평화를 드러내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교회라고 합니다. 건물이나, 프로그램이 교회가 아니라 사랑의 띠를 띠는 한 사람, 한사람이 교회입니다. 그러나 기왕에 교회는 에베소서의 말씀처럼 높고, 깊으며, 넓어서 마땅히 세상에 하늘의 지혜를 알려야하며, 만물의 충만함이 교회에 있습니다. 이 교회가 세상 속에서 알 박듯이 박혀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입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교회의 최소한의 모임에 함께합시다. 보잘 것 없어보이는 교회의 작은 시간들의 신비로움이 교회에 있습니다. 지난 95새벽기도 때에 삼상29장을 읽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에 도피하던 시절, 전쟁터로 나갔을 떼, 아말렉이 다윗의 시글락성으로 쳐들어 와서 아내와 아이들을 모두  포로로 잡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교회는 성과 같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성 안을 교회 안을 튼튼히 세워 밖으로 영토를 넓혀가야 합니다. 그래서 눅10:1주님께서는 다른 일흔[] 사람을 세우셔서, 친히 가려고 하시는 모든 고을과 모든 곳으로 둘씩 [둘씩] 앞서 보내셨다는말씀처럼 그렇게 세상으로 나가 17말씀처럼 기쁨으로 돌아와 함께 성령께서 어떻게 감동하며 일하시는지를 나누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성을 공고히 지키지 않고 세상으로 나가면, 세상이 역습을 합니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교회를 어떻게하든지 쓰러뜨리려 합니다. 저는 성 안을 공고히 하고 싶습니다. 교회는 새벽에 매 일 녹색의 멕체인 성경읽기표를 따라 하루에 2장 성경을 읽고 매 일 주제를 달리하며 반복하여 기도합니다. 새벽기도는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새벽기도시간을 소 닭 보듯하지 마시고, ,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아니면 시간을 정하여 그렇게 나온다면 좀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십습니다. 교회는 수요일에 강해를 통해 성경의 지식을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교회공동체는 성경의 지식이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매일 쏟아져 나오는 세상의 정보들을 말씀으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주일은 오전 예배로 시작하여 저녁의 예배로 하루를 온전히 드립니다. 교회가 동네에 하나 있을 까 말 까 할 때의 4-50년 전 상황 보다 자본의 거대한 힘은 마치 일본 만화 제목인 거인의 진격과 같이 우리 성과 가족과 무엇보다 교회를 황폐케 하고 있습니다. 주일은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서 자유케하며, 화평케하는 선물입니다. 선물을 소중히 여겨야합니다. 여러분의 바쁘고, 피곤한 일상온전히 지키는 주일과 저울질 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일저녁에 매 주 다르게 드려지는 예배에서 낮의 뜨거운 열기를 식히며 가라앉은 저녁 공기를 가로지르는 찬송은 너무나 우리의 마음을 영적 감흥으로 충만케 하기에 족합니다. 둘째 주일 오늘은 떼제찬양기도회를 통해 우리 모두의 기도제목으로 주께 중보합니다. 단지 우리와 나라 안에 갖힌 기도의 지평을 전 지구촌으로 확장시키는 찬양기도의 시간입니다. 첫 주의 저녁기도회는 교회와 세상의 기도제목을 하나님께 살라 바칩니다. 기도제목을 나누지 않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 들어보았는지요? 너무 무심하지 않나 십습니다. 3번 째주는 성도들이 강단에 서거나, 교회가 이 시대에 필요로하는 주제를 강사를 초청하여 듣기도 하여, 우리의 부족한 신학적 갈증을 체웁니다. 4번째주300년 전 독일의 진젠 도르프에게서 시작된 헤른후트 공동체에서 시작된 묵상집 로중이 제시하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해석하며 느낀 감흥을 삶의 이야기와 더불어 나누며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공유합니다.

     교회가 성을 지키려 나누는 최소한의 시간들입니다. 이 소박한 시간 시간을 통해 하나님은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을 아름답고, 선하게 세우십니다. 이제 교회가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이 시대를 교회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입니다. 교회를 세우는데 함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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