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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에 가지 않았던 길(창조절 다섯째주일, 2018년 9월 30일)

하늘기차 | 2018.09.30 14:04 | 조회 914

 
                     

                   이 전에 가지 않았던 길

 

2018930(창조절 다섯째주일)                                                                           3:1-6

   길에대한 노래들이 참 많습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 . .” 하는 GOD’, 김민기의 새벽길’, 신촌블루스의 골목길’, 후랭크시나트라의 ‘my way’ , , , 검색해 보니 최근 최근 사랑을했다를 부른 아이콘의 이별 길이 내일 나온다고 하내요. . .이렇게 사람들은 인생을 길로 표현하는데,

     오늘 본문 말씀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 요단강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들이 이전에 가지 않았던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해 주시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언젠가 노회가 평택의 시흥 교회에서 열린 적이 있습니다. 한 번 가 본 기억이 있어서 평택 까지 가면 그 곳에서 대충 기억이 나겠지 하고 출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평택에 다 왔는데도 교회의 위치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다행히 노회 보고서 책자에 지도가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보여주며물었더니, 평택이 아니고 송탄이라는 것입니다. 송탄이 평택에 통합되어 시 이름은 평택이지만 지리적으로는는 송탄이라는 것입니다. 시흥 교회에 도착하였는데, 예배가 끝났더라구요. 길 때문에 아주 애 먹은 적이 있습니다.

     교우여러분! 혹 인생의 길이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까? 늘 갔던 길 또 가고, 왔던 길 또 돌아오는 다람쥐 채바퀴 도는 삶인가요? 애쓰고 수고하는데 결실이 없나요? 지난 주에 민21:4,5에서

길을 걷는 동안에 백성들은 마음이 몹시 조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런가하면 형제 나라인 에돔이 문을 걸어 잠그고 자신의 영토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렵지 않은 시대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1979년에 시작된 IMF는 우리 모두를 참 힘들게 하였습니다. 특히 지금은 고령화 시대, 젊은이들의 일자리, 경제정책의 전환, 4혁명, 비핵화 등 복합적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전에 가지 않았던 길로 갈 것이라고 합니다. 과연 이 길은 어떤 길일까요? 왕이 행차할 때 처럼 주단이 깔린 꽃 길일까요? 이 말은 하나님께서 동행하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앞서서 열어주시는 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광야를 통과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나요?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까마귀 고기를 삶아 먹었는지, 바로 얼마 전의 은혜를 언제 그러했느냐는 듯 잊어버립니다. 당장 가로막음이 커보이니 이 전의 함께한 길의 은혜를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시내산에 이르러 모세가 10계명을 받는 동안 산 아래에서는 황금송아지를 만들어 절하고 먹고 마시며 난장을 칩니다. 하나님은10계명 2번째 돌판을 모세에게 전달하며 이제 조상들과 약속한 땅으로 올라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중간에 이스라엘을 진멸할까 염려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모세는 회막으로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33:15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려면, 우리를 이 곳에서 떠 나 올려 보내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면, 주 님께서 주님의 백성이나 저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저 자신과 주님 의 백성이 땅 위에 있는 모든 백성과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거듭 기도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모세는 이 광야길이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갈 수 없으며,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에게 절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나, 함께 하지 않으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영적 감각이 무딥니다. 살고 있지만, 살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길로 인해 마음이 상한 것입니다. 이 구절의 히브리원어성서는 영적 결핍을 의미하는데, 공동 번역이나, 현대인성서는 참지 못해라고 합니다. 한글개역의 조급하다, 모두 영적인 결핍을 보여줍니다. 히브리원어성서에 가장 충실한 번역은 KJV인 것 같습니다. KJV‘the soul of the people was much discouraged(의욕상실, 낙심한, 좌절한)because of the way’라고 합니다. 교우여러분!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데 힘이 드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먹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데, 더 이상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운 만나를 먹구 싶지 않은 것입니다. 길을 가다 보면 지금 가는 길이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인지, 방향도, 목적도 희미해지고, 그러다 보면 주님의 섭리, 하나님이 지금도 함께 하심은 보이지 않고, 길의 열악함 만 보입니다. 영적 결핍입니다.

     프란체스코는 자연과 대화를 나눌 정도로 자연과 깊은 영적 교감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습니다. 프란체스코는 풍요로운 중산층의 자녀로 호화스러운, 사교적인, 유머어가 넘치는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쟁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히면서 세상의 물욕에서 스스로를 끊는 동기를 얻게 되었고, 출옥 후 뼈가 앙상할 정도로 힘든 투병 생활을 거치면서 이 전처럼 사교, 파티, 호화로운 삶을 보기 보다는 질병, 죄의식, 공허, 허무를 보면서 믿음의 길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그의 설교, 기도는 사람뿐만아니라 자연 까지도 감동을 주며 교감합니다. 프란체스코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기가 바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요, 자녀라는 것을 체휼하여 끊임없이 기도의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프란체스코는 우리는 아무것도 바라지 말 것이며, 요구하지도 말 것이다.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구세주이신 주님 이외의 어느 것에게도 위로와 기쁨을 얻으려고 하지 말자고 하면서, 만일 이러한 마음이 흔들릴 때면 문둥병자의 얼굴, 종달새의 노래, 양의 온순함, 들에 핀 꽃. . . 피조물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며 감사를 하였습니다. 오히려 핍박, 고통, 학대, 비난, 멸시를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며, 모든 환경 속에서 하나님과 만나, 하나님을 알아가며, 주님이 인도하는 순도 100%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이 말을 잘 새겨들어야 합니다. 순도 100%라고 했는데, 우리가 순결하고, 깨끗해야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면 아무도 주님이 인도하는 길을 따르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율법이요, 윤리로 넘어갑니다. 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순결하고, 깨끗해야하는 이유는 순결하지 않고는 주님이 인도하는 길, 섭리, 경륜을 보아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단정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보기는 보는데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며, 우리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자꾸 놓치는 것 같에요. 그러니까 무어 좀 더 새로운 것, 만나가 아니라, 메추라기, 마늘과 양념을 찿는 것 같은데, 지금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도 영적으로 40년 광야길을 가는 것입니다. 철들어서 장가가면 30-40살이고, 애 낳고 살림살이 장만하며 살다 보면 40년입니다. 그러다 보면 70-80살이 됩니다. 보는 삶과 볼 수 없는 삶의 차이는 같은 세상을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 6번째에서 마음이 깨끗한 자가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본다고 한 말이 바로 그런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본다는 것은 복음, 은혜이지, 결과론적인 율법, 즉 순결해야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순결하고 깨끗해야, 이미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 지혜와 능력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 하였습니다. 왜 굳이 벗으라 하였을까요?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광야길에 나왔을 때에도 잠이들어 꿈 속에서 하나님을 뵙고야, ! 하나님이 여기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몰랐구나! 하며 두려워하였다!’고 합니다. 보아야합니다. 보는 만큼 믿음의 길을 갑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예비하심을 볼 수 있어야합니다.

 오늘 말씀 4-6절은 당신들이 이전에 가 보지 않았던 길을 가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당신들이 가는 길을 안내할 것이오. 그러나 당신들과 언약궤 사이는, 이천 보쯤의 거리를 띄우고, 그 궤에 가까이 가지 마시오. 5.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자신을 성결하게 하시오. 주님께서 내일 당신들 가운데서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6.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메고 백성보다 앞서 건너가라고 명령하자, 그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들 앞에서 나아갔다.”고 합니다. 거리를 띄우라고 합니다. 주님의 신비에 접근할 필요 없습니다. 이것은 율법궤, 말씀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는 믿음이요, 신뢰입니다. 성결하라고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 그 뜻을 볼 수 있습니다. 언약궤를 메고 앞서 건너가라고 합니다. 스스로 마음이 급하여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과 함께, 주님이 인도하는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마음을 깨끗하게 하지요? 지난 주에 교회는 마음 공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말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에서 말씀이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고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어 골수와 관절을 찔러 쪼개기 까지 한다고 합니다. 말씀은 우리를 정화시키고, 새롭게 하며, 삶의 동력을 주며, , 어떻게 살지를 깨우쳐줍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성도의 삶은 생각이나 논리를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품고, 넘으며 기도와 말씀이, 성령의 내적 감동이 우리의 삶을 견인하는 삶입니다. 마음에 말씀도, 기도의 깊은 감동도 없다면, 물론 하나님은 이런다고 은혜 주고, 저런다고 은혜를 주지 않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와 함께하시는 지를, 지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나의 상황을 어떻게 풀어가시는지를 봅니다. 여호수아는 이 전에 가지 않았던 길로 간다고 합니다. 여호수아가 그 길을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거울아! 거울아!는 아니니 착각하지 말구요. 다시말해 주님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을 내적 감동을 통해 온전히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 것이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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